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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에서 백수로 살기 - ‘청년 연암’에게 배우는 잉여 시대를 사는 법
고미숙 지음 / 프런티어 / 2018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조선에서 백수로 살기 -고미숙<프런티어>
2019.1.8 *****
백수란 무엇인가? 백수는 무엇으로 사는가? 백수의 비전은? 백수의 일상은?
청년들의 실업률이 증가하고 은퇴한 노년들이 제2의 직업을 찾기 위해 분투노력하는 있다. 100세 시대를 맞이하여 젊으나 늙으나 일을 하고 싶어하는 사람들은 많아지고 있으나 마땅한 일자리가 없어서 백수의 삶을 맞이하고 있다. 그렇다면 우리는 진지하게 백수의 삶에 대해서 생각해봐야 마땅하다.
저자는 옛날 사대부 명문가의 자손으로 태어나 과거에 급제하여 고위관직을 탐하지 않고 오로지 자신의 학문을 갈고 닦으면서 중국을 여행하며 글을 쓰고 유유자적 살았던 진정한 백수의 원조, 연암 박지원의 삶을 통해 진정한 백수란 어떤 삶을 살고 어떻게 생각하며 살아야 하는지 살펴본다.
21세기는 백수의 시대이다. 4차산업혁명에서 인간의 노동은 더이상 가치가 없다. 인간의 노동은 로봇으로 대체될 것이다. 그렇다면 인간은 어떻게 대처해야 할까? 백수들의 인식의 대전환이 필요한 이유다.
백수들은 더이상 화폐의 증식으로 통해 지금의 행복을 미루지 말고 지금 당장 내가 행복하고 잘 살아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자립이 필수다. 관계와 활동을 중심으로 삶을 유연하게 살아보니 자기 삶의 매니저가 되어보자!
"전후에 보낸 소고기 장볶이는 잘 받아서 조석 간에 반찬으로 하니? 왜 한 번도 좋은지 어떤지 말이 없니? 무람없다, 무람없어. 난 그게 포첩이나 장조림 따위의 반찬보다 나은 것 같더라. 고추장은 내 손으로 담근 것이다. 맛은 좋은지 어떤지 자세히 말해주면 앞으로도 계속 두 물건을 인편에 보낼지 말지 결정하겠다." -박지원 저, 박희병 역<고추장 작은 단지를 보내니>,35쪽 / 본문 57쪽
연암 박지원이 자식들에게 쓴 편지이다. 요즘 가정주부도 할 줄 아는 이가 드문 볶은고추장을 손수 만들어서 자녀들에게 보내놓고 왜 맛이 있는지 없는지 말이 없냐고 채근한다. 주부10단의 어머니의 마음이 엿보인다. 그 시대에 사대부 양반의 자제인 남자가 장을 담글 줄 알다니... 그래서 그는 자신의 아내와 사별한 후에 재혼하지 않고 홀로 지낼 수 있었다. 의식주를 제 힘으로 해결할 수 있는 진정한 자립이 되었기 때문이다.
"나는 바란다. 천하의 사람들에게. 황금이 있다고 해서 반드시 기뻐할 일은 아니요, 없다고 해서 반드시 슬퍼할 일도 아니다. 이유도 없이 자기 앞에 황금이 굴러들면 천둥이 치는 것처럼 놀라고 귀신을 만난 듯 무서워하며, 길을 가다가 수풀에서 뱀을 만나 머리칼이 쭈뼛 서도록 소스라쳐서 물러나듯이 해야 할 것이다." -박지원 저, 김혈조 역,<열하일기3권>,(황금대기),296쪽 / 본문 67쪽
백수 연암 박지원은 당당하게 홀로 자립하기 위해서는 돈에 대한 욕망을 다스릴 수 있어야 한다고 했다.
그는 좋은 집안에서 태어났지만 연암집안은 일찌감치 청빈을 모토로 삼았던 까닭에 절대 넉넉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돈에 연연하지 않고 살았음을 물론이고 그렇기 했기에 평생 돈에 메이지 않고 자유롭게 살 수 있었던 것이다.
"저자에서는 이익으로써 사귀고, 면전에서는 아첨으로써 사귀는 법이다. 따라서 아무리 서로 좋아하는 살이라도 세 번 손을 내밀면 누구나 멀어지게 되고, 아무리 묵은 원한이 있다 해도 세 번 도와주면 누구나 친해지기 마련이야. 그러므로 이익으로써 사귀면 지속되기 어렵고, 아첨으로써 사귀면 오래갈 수가 없지. 대단한 사귐은 얼굴을 마주 대하지 않아도 되고, 두터운 벗은 서로 가까이 지내지 않아도 된다네. 다만 마음과 마음으로 사귀고, 그 사람의 덕을 보고 벗을 삼으면 되는 것이야. 이것이 바로 도의로써 사귄다는 것일세." -박지원 저, 김명호 역<지금 조선의 시를 써라>,(예덕선생전),67쪽 / 본문 91쪽
밥맛이 떨어졌을 때 입맛을 돋워주고 살맛이 떨어졌을 때는 삶을 보는 시선을 바꾸어주는 존재가 바로 진정한 친구가 아닐까? 우정을 지속하려면 의기투합해야 한다. 무엇으로? 취미처럼 변덕스럽지 않고 화폐가 끼어들 수 없는 활동. 그건 지성, 존재와 세계에 대한 탐구다. 생명을 위한 배움이다. 지성의 비전을 공유하면 우정은 저절로 깊어진다.
집은 베이스캠프이다. 그곳에서 의식주를 해결하고 충전하면 그만이다. 아침을 먹고는 활동의 무대로 뛰쳐나와야 한다. 집이 성지인 것 마냥 떠받들고 거기에 모든 인생을 투자하면 지금의 나의 행복은 물 건너가게 된다. 운동삼아 걷는 것으로 체력을 보강하고 그럼 자연히 수면 또한 깊어진다. 다리를 움직이면 머리가 맑아진다. 밖에 나가 활동하게 되면 돈이 필요하다. 백수들은 공짜로 누릴 수 있는 공유경제에 접속해서 경제적인 활동을 해야한다.
다른 생각, 다른 정서, 다른 관계 등과 마주치는 여행을 떠나라. 방향을 바꾸면 사건이 벌어진다. 진정한 삶의 주역이 되고 싶다면 여행하는 동안 사건을 겪고 이야기를 창조해라! 맛집을 향하는 미각과 사진찍는 데 여념이 없는 시각에 탐닉해서는 곤란하다. 미각과 시각에서 청각과 촉각, 후각 등으로의 전환 혹은 확장, 여행의 성패는 거기에 달려 있다. 관찰하고 기록해라!
"길 위에서 길을 묻는 연암. 길은 언제나 유동한다. 저들과 나 사이에서, 언덕과 물 사이에서, 또 이것 저것 '사이'에서. 이것과 저것이란 세상을 지배하는 이분법을 지칭한다. 거기에 포획되며 길을 잃는다. 길을 찾기 위해서는 '사이에서' 사유해야 한다. 그래야 이것 아니면 저것을 강요하는 이분법에서 벗어나 제3의 길을 창안할 수 있다. 그것은 늘 우발적이고 유동적이다....(중략)....그 역동성과 스릴을 즐기려면 끊임없이 질문을 던져야 한다. 존재의 심연, 삶의 본질에 가닿는 원초적인 질문을. '난 누구? 여긴 어디?' 이것이면 충분하다. -본문 203쪽
"나를 비우고 내려놓는 그만큼 세상이 내게로 온다. 삶이 저 심층에서 솟아오른다. 소유에서 접속으로! 증식에서 생성으로! 노마드가 되는 첫 번째 스탭이다. 길은 한 걸음이면 충분하다. 그 한 걸음이 '천 개의 길, 천 개의 고원'으로 이어질 터이니." -본문 205쪽
백수는 직업이 없는 게 아니라 스스로 경제활동을 주도하는 존재이다. 자신의 고유한 리듬을 알게 되면 타자를 이해할 수 있다. 그 상호작용이 존재와 세계에 대한 인식의 확장으로 나아갈 수 있다. 학교에서 알려주지 않는 것들에 대한 탐구와 공부가 백수가 주력해야 할 학문이다. 그것을 위해서 가장 핵심적으로 해야할 활동이 바로 '독서'이다.
"천하의 모든 이들이 책을 읽는다면 천하가 태평해질 것이다." -본문 232쪽
"내가 제일 좋아하는 일은, 마음에 드는 글을 새로 창작했을 때 한두 사람 뜻이 맞는 이들과 조금 술잔을 기울이다가 글을 잘 읽는 의젓한 젊은이로 하여금 음절을 바로하여 한 번 낭랑하게 읽게 하고서는 누워서 글에 대한 평이나 감상을 듣는 것이다." -박종채 저, 박희병 역<나의 아버지 박지원>,115쪽 / 본문242쪽
"읽고 쓴다는 것, 이것이야말로 우주 사이의 가장 통쾌하고 거룩한 일" -정조대왕, 본문242쪽
"꿈이나 목표 따위는 필요없다. 반드시 이루어야 할 사명 따위란 없다. 삶에는 본디 어떤 의미도 없다. 삶은 오직 사는 것 그 자체만이 목표다. 살다 보니 돈도 벌고 만나고 헤어지고 창작도 하고 정치도 하는 것이지, 그 반대는 절대 아니다. 돈을 벌기 위해! 사랑을 위해! 예술을 위해! 정치적 이념을 위해! 그렇게 목표 지향적으로 살다보면 결론은 허무다." -본문 258쪽
"나는 이제야 도를 알았다. 명심(깊고 지극한 마음)이 있는 사람은 귀와 눈이 마음의 누가 되지 않고, 귀와 눈만을 믿는 자는 보고 듣는 것이 더욱 섬세해져서 갈수록 병이 된다. 지금 내 마부는 말에 밟혀서 뒷수레에 실려 있다. 그래서 결국 말의 재갈을 풀어주고 강물에 떠서 안장 위에 무릎을 꼰 채 발을 옹송그리고 앉았다. 한 번 떨어지면 강물이다. 그땐 물을 땅이라 생각하고, 물을 옷이라 생각하고, 물을 내 몸이라 생각하고, 물을 내 마음이라 생각하리라. 그렇게 한번 떨어질 각오를 하자 마침내 내 귀에는 강물 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무릇 아홉 번이나 강을 건넜건만 아무 근심 없이 자리에서 앉았다 누웠다 그야말로 자유자재한 경지였다." -고미숙 저, <열하일기, 웃음과 역설의 유쾌한 시공간>, 361~362쪽 / 본문 260~261쪽
이 세상에서 백수로 살기는 참으로 외롭고 처절하다. 하지만 저자는 특유의 재치와 낙관성으로 '백수'라는 어감에서 오는 쓸쓸함과 슬픔을 웃음과 해학으로 승화시켜 백수의 삶이 이토록 고귀하고 아름다워질 수 있다는 인식의 대전환을 가능케한다. 이 세상에는 여러 종류의 백수들이 있다. 취업을 준비하는 취준생, 가정주부, 은퇴, 명퇴를 한 장년층들이 해당된다. 하지만 경제활동을 하고 있는 직장인들 또한 언제가는 백수가 될 터. 이 책은 백수들뿐만 아니라 100세 시대와 4차 산업혁명을 맞이하는 이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이 과연 어떻게 살아야 하고 무엇을 추구하며 살아야하는지에 대하여 지혜롭고 명쾌한 해석과 함께 해결책을 제시하여 준다. 또한 저자가 워낙 유쾌하고 명쾌하게 이야기를 풀어나가서 순식간에 책을 후루륵 읽게 된다. 어떻게 살아야 할지를 고민하는 모든 분들에게 이 책을 추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