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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
그라치아 마리아 델레다 지음, 정란기 옮김 / 본북스 / 2018년 12월
평점 :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어머니 -그라치아 델레다<본북스>
2019.1.2 ***
"풀은 오늘밤에도 나갈 준비를 하고 있었다." 로 이야기는 시작한다. 그녀는 그의 방에서 들리는 모든 소리에 귀를 기울이며 제발 그가 나가지 않고 잠자리에 들 수 있기를 간절히 신께 기도한다. 하지만 그녀의 바램과 달리 폴은 세찬 바람을 뚫고 그가 사랑하는 여인의 집으로 돌진한다. 폴의 어머니는 남편과 일찍 사별을 하고 오직 외아들 하나만 바라보며 평생을 아들만을 위해 헌신한다. 아들을 자신의 소망대로 사제로 키우기로 마음을 먹고 궂은 일을 마다하지 않으며 하녀로서 힘들게 살다가 드디어 아들이 자신의 뜻대로 사제가 되어 이 마을의 신부가 되었다. 그런데 얼마 지나지 않아, 폴은 사제로서는 하지 말아야 할 인간과의 사랑에 빠지게 되고 어머니는 그를 사탄의 유혹에서 꺼내기 위해 그를 필사적으로 말린다.
폴은 아그네스를 너무나도 사랑하지만 자신의 신분에서는 결코 해서는 안되는 사랑이기에 그 사랑을 단념하고 자신의 자리로 돌아오려고 노력한다. 아그네스에게 이별 통보의 메시지를 어머니에게 전달해 달라고 맡기면서 그는 아그네스와의 이별을 잊으려고 애를 쓴다. 마을에서 일어난 크고 작은 일들을 해결하면서 그는 아그네스를 잊었다고 생각하지만 마치 자석이 철을 잡아당기듯이 그녀는 여전히 그의 마음을 사로잡아 당기고 있었다.
"그러자 그는 마음 깊은 곳에서 산을 내려온 이후 가장 참기 힘든 일이 바로 그녀에 대해 아무것도 모른다는 것, 그녀의 침묵, 그녀가 자신의 인생에서 사라지는 것임을 깨달았다." -본문 116쪽
사제를 돕는 어린 복사, 안티오쿠스는 폴을 존경하고 그처럼 사제가 되고 싶어한다. 항상 신부님 곁에서 그를 보좌하고 그를 따라 다니며 그를 위해 헌신한다. 안티오쿠스는 순수하고 맑고 신에 대한 믿음이 확고하다. 안티오쿠스의 어머니를 뵈러 가면서 폴은 어머니에게 자신이 곧바로 돌아오겠다고 신신당부를 한다. 문을 잠그지 말라고. 아그네스를 절대 보지 않겠다는 의지를 보여주는 것이다.
어머니는 폴이 다시 죄를 지을 것임을 알았지만 왠지 마음이 편안해진다. 아들이 여자를 사랑하는 것이 죄가 된다는 것에 깊은 연민을 느꼈다.
"그런데 왜.... 오, 주님! 왜, 어째서입니까?" 그녀는 감히 질문을 완성하지 못했지만, 우물 바닥에 있는 돌처럼 그녀의 마음 밑바닥에 남았다. 오, 주님. 왜 폴은 여인을 사랑할 수 없을까요? 사랑은 모두에게, 심지어 하인과 목동에게도, 맹인과 감옥에 있는 죄수에게도 허락된 것인데 왜 그녀의 아이 폴은 사랑이 금지된 유일한 사람이어야 합니까?" -본문 120쪽
어머니가 자신의 아들에 대한 강한 모성애와 연민이 느껴진다. 신께서 주신 인간을 사랑하는 마음을, 자연스러운 아름다운 본능과 욕구가 폴에게는 죄가 된다는 사실이 모순처럼 느껴진다. 믿음과 성령이 충만한 안티오쿠스는 이렇게 말한다.
"사제등 중 가장 젋은 사람들이 스스로 여인과 떨어져 순결하고 자유롭게 살도록 허가를 요청했습니다." -본문 120쪽
교회의 부조리와 모순이 아닌 인간의 고뇌와 번민으로 그려진다. 왜 사제들은 결혼을 할 수 없고 목사들은 결혼을 할 수 있는 걸까? 사제와 목사와의 거리는 얼마나 되는 걸까?
"본능은 결코 우리를 그릇된 길로 이끌지 않아. 하지만 자, 안티오쿠스. 어머니 앞에서 사제가 되고 싶은 이유를 말해보렴. 너도 알겠지만, 사제는 직업이 아니야. 숯꾼이나 목수가 되는 것과는 달라. 지금 넌 사제가 되는 것이 쉽고 편안한 삶이라고 생각하지만, 나중에는 아주 어렵다는 걸 알게 될 거야. 다른 모든 사람에게 허용되는 기쁨과 즐거움이 우리에겐 금지되어 있고, 진정으로 주님을 섬기길 원한다면 우리 삶은 지속적인 제물이란다." -본문 128쪽
안티오쿠스는 폴의 선하고 순수하고 믿음이 확고한 어릴 적의 모습을 반영하는 거 같다. 안티오쿠스는 폴이 아무리 달래고 힘든 일이라고 알려줘도 그 뜻을 굳히지 않고 오히려 더욱 더 사제가 되고자 하는 열정을 확실히 드러낸다. 안티오쿠스의 어머니를 만나고 나서 그는 어머니가 계시는 집으로 바로 가려고 했지만 결국 유혹을 이기지 못하고 아그네스를 만나고야 말았다. 그곳에서 그는 그가 얼마나 아그네스를 원하고 사랑하는지 깨닫게 된다. 하지만 폴은 자신의 어머니와의 약속을 저버릴 수 없고 신부의 옷을 벗어던지고 그녀와의 사랑을 위해 멀리 도망갈 수도 없다. 그녀를 너무도 사랑하지만 자신의 본분으로 돌아와 그녀와 결별을 선언한다. 폴에게 실망한 아그네스는 신도들에게 이 사실을 폭로하겠다고 위협한다.
다음 날 성당에서 예배를 드리는데 폴은 아그네스가 성당에 있는 것을 본다. 그는 얼굴이 하얗게 질리고 손까지 떨며 머리속에 하애진다. 과연 아그네스는 그들의 열애를 폭로했을까?
하루동안에 일어난 일들을 인물들의 입장에 따라서 심리 묘사를 차분하게 이어간다. 어머니의 불안하고 두려운 감정들이 행동으로 잘 묘사되어 있고 폴이 아그네스를 만나지 않으려 애쓰는 모습들이 곳곳에 잘 드러나 있다. 사제이기 전에 한 인간으로서의 폴이 사랑하는 사람을 마음껏 사랑할 수 없음에 좌절하고 고뇌하고 번민하는 과정들이 이야기 속에 잘 녹아들어가 있다. 어머니는 그저 폴이 행복하게 잘 살기를 바라며 사제를 시켰는데 그게 과연 아들을 위해 옳은 선택이었을까? 어머니가 바라던 삶을 그대로 산 폴은 그 삶에 과연 만족했을까? 폴은 사랑하는 여인보다 자신의 구역인 교구를 지키는 일이 더 먼저였을까? 아니면 인간에 대한 사랑보다 신을 사랑하는 마음이 더 컸던 것일까? 아직 신의 존재를 확신하지 못하고 모든 것을 믿을 수 없는 나에게는 모든 것들이 물음표로 남았다. 그리고 누가 처음으로 사제의 사랑과 결혼을 금지시켰는지 궁금해진다.
-리뷰어스의 클럽의 소개로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솔직하게 쓴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