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알던 그 사람   -웬디 미첼, 아나 와튼<소소의 책>

2018.11.9 *****



#에세이

 예전에 친구들과 이런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다. 나이가 들었을 때 가장 무서운 것이 무엇일까? 노년에 암에 걸리는 것도 무섭지만 가장 무서운 것은 자기 자식도 못 알아보는 치매라고 입을 모았다. 그리고 우리 자신과 가족들이 제발 치매 같은 저주는 걸리지 않기를 바랐었다. 치매는 자신은 행복하지만 주변 사람들을 힘들게 하는 병이라고 우리는 정의 내렸다. 하지만 과연 그럴까? 자신의 존재를 조금씩 잃어 버리는 병인 치매를 앓는 본인은 천진난만하게 마냥 행복할까?
 이 책은 우리가 얼마나 치매에 무지한 지를 깨닫게 해준다. 나는 치매를 단지 기억을 전혀 하지 못하는 병으로만 단정지었다. 그렇기에 한 인간으로써 가질 수 있는 존엄성과 자존감, 기억을 순간적으로 잃어버렸을 때 오는 무력감, 허무함, 혼란스러움 등 여러 가지 감정들과 싸워야 한다는 것을 알지 못했다. 



 저자는 영국 요크시에 사는 58세의 여성이다. 그녀는 이혼 후에 생계를 위해 청소부를 거쳐 국민건강보험 소속으로 간호사의 근무일정을 짜는 직원으로 20년간 헌신적으로 근무하고 일을 잘하기로 소문난 성실한 베테랑이었다. 일을 하는 워킹맘이자 싱글맘으로 두 딸을 키웠다. 그러던 어느 날 갑자기 머릿속이 뿌연 안개가 낀 것처럼 집중할 수 없고 생각을 할 수 없는 일들을 겪는다.
 알츠하이머라는 진단이 내려진 후의 과정 속에서 그녀가 겪어야했던 수많은 고통, 고난 힘겨운 삶들이 고스란히 펼쳐진다. 이 책은 환자로서 그녀를 보게 되는 것이 아니라 한 인간으로서 존재감을 빼앗기지 않으려는 인간의 처절한 노력과 용기의 기록이다.

 “치매를 앓는 사람의 기억을 내 키만 한 책꽂이로 생각해 보면 좋겠습니다. 맨 위칸-발꿈치를 들어야 손이 닿는-은 오늘 아침에 뭘 먹었나 같은 가장 최근의 기억이 들어 있습니다. 어개 높이에는 50대쯤의 책이 꽂혀 있습니다. 언제든 원하는 때에 익숙하게 손을 뻗어 그 칸의 책을 꺼낼 수 있습니다. 힘들이지 않고 무리 없이. 무릎께에 꽂힌 책은 20대의 기억입니다. 그 다음 발까지 몸을 굽히면 발가락 끝 옆에 유년기의 책이 있습니다. 치매가 생기면 책꽂이가 좌우로 마구 흔들리고, 늘 맨 위칸의 책이 가장 먼저 떨어집니다. 그러면서 다시 책을 위로 솟게 해서, 때로 가장 최근의 기억이 아래쪽에서, 젊은 시절의 칸에서 나온다고 생각되기도 합니다. 어쩌면 어린 시절의 기억은 선명하지만, 아침에 뭘 먹었는지 기억나지 않는 것도 그 때문입니다.”                                   -본문 107쪽
 알츠하이머가 우리의 기억을 어떻게 엉망으로 망쳐 놓는 걸까? 알츠하이머를 겪어보지 못한 일반인들은 단지 기억을 잃어버리는 병으로만 막연하게 생각하기 쉬운데 저자는 아주 적절한 비유를 들어서 알츠하이머를 잘 설명하고 있다. 그리고 여기에 한 마디를 더 붙여서 당부한다.
 “뇌에는 다른 부분이 있습니다. 허술한 첫 번째 책꽂이와 다른 책꽂이가 있지요. 이 책꾲이는 튼튼합니다. 이것은 감정의 책꽂이입니다. 치매가 이 책꽂이를 좌우로 흔들면... 마치 다른 두 ‘나’-전과 후-가 단단한 지면 아래서 충돌하는 두 개의 지질구조판인 것처럼....이 책꽂이가 더 튼튼하고 더 유연해서 거기에 꽂힌 책들은 더 오래 더 안전합니다. 천지가 최근에 다녀간 일을 잊는다 해도 -왜냐하면 그 책은 사실들의 책꽂이에 꽂혀 있으니까 - 같이 있을 때 느낀 사랑과 행복과 편안함 같은 감정은 내게 남아 있습니다. 같이 있을 때 내가 한 일, 내가 한 말, 심지어 방문 사실을 잊을지라도 그들을 보면서 안전하게 행복하게 느낀 것을 압니다. 그러니 치매 환자들이 기억하지 못하는 것 같아도 방문을 중단하지 마세요.....”
 그녀의 마지막 말이 내 가슴을 울린다. “방문을 중단하지 마세요.” 그들은 기억은 못할지 모르나 감정은 남아있어 느낄 수 있을 것이라고. 우리가 전혀 생각하지 못했던 사실이다. 기억을 못하면 감정도 없을 거라고 으레 짐작했었다.
 예전에 재미있게 보았던 영화 ‘노트북’이 떠올랐다. 젊은 시절 서로 사랑했지만 엇갈린 사랑만 하다가 결국에는 시련을 이겨내고 자신들의 사랑을 이룬 실화이다. 하지만 그들의 노년은 행복하지만은 않았다. 여자는 결국 치매가 걸려 요양원에서 지낸다. 자신의 남편도 알아보지 못하고 자신을 찾아오는 자녀들을, 자신을 매일 찾아오는 남편(그녀는 결코 기억하지 못하는)의 자녀라고만 생각한다. 사랑하는 사람들을 기억하지 못하는 사람과 그것을 지켜보기만 해야 하는 가족들이 참으로 안타깝게 느껴졌었다.
 우리는 치매나 알츠하이머에 걸린 사람들에 대한 이미지가 있다. 요양원에서 지내고 스스로 생활할 수 없고 혼자서 일상 생활을 할 수 없는 사람들이라고 규정짓는다.

 “이 병은 매년 상자에서 크리스마스트리에 전구를 꺼내는 것과 비슷하다. 전선 뭉치를 풀고 엉킨 부분을 펴서 플러그에 꽂아 상태를 확인한다. 전선에 달린 작은 전구들이 켜졌다 꺼지고 아예 켜지지 않는 전구도 있지만 어느 전구가 그럴지, 언제 어느 전구가 고장이 날지 예상할 수가 없다.”                                      -본문 142쪽
 “누구나 소중한 것을, 감상적으로 가치 있는 물건을 잃어버린 기분을 기억한다. 알츠하이머 환자들은 매일 이런 일을 당한다. 다만 없어지는 게 물건이 아니라 가장 소중한 기억, 나를 만드는 사연이다. 그러나 감정까지 잃지는 않기에, 텅 비어버린 슬픈 눈 뒤에 사랑이 단단히 남아 있을 것이다.”                                 -본문 155쪽

#희망 용기
 하지만 저자는 그런 어려움과 혼란 속에서도 자신의 존재를 지키려고 노력하고 알츠하이머라는 병을 사람들에게 제대로 알리기 위해서 강연을 나가고 다양한 모임과 활동을 한다.
 치매라는 병은 계속 진행되는 병이다. 그런 과정 속에서 치매에 걸린 당사자는 자신의 기억과 존엄을 빼앗아가는 고통과 싸워야하고 매번 상실감을 느끼고 자신의 장래, 현재, 미래 역시 믿지 못한다. 그리고 자신의 자식들은 그 과정을 고통스럽게 지켜볼 것이다. 매일 매일의 작은 일조차 그녀에게는 삶의 투쟁이 되었다. 약을 챙겨먹고 식사를 하고 양치를 하는 일들이 말이다. 우회전을 하지 못해 자가용을 모는 대신 버스를 이용하거나 자전거를 이용해 좌회전만 해서 먼 길을 돌아 집으로 가야만 한다. 하지만 이런 것들은 그래도 그녀에게 할 만한 일이다. 그녀는 예전 직장에서도 일 중독자로 불릴만큼 자신이 맡은 일은 항상 최고로 잘해냈고 두 딸들을 혼자서 잘 성장시켰다. 그녀의 심장은 아직도 열정적으로 뛰고 있었지만 치매는 그녀가 할 수 있는 일들을 하나 둘씩 제거해나갔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치매를 알리기 위해 알츠하이머 협회에 가입해서 치매에 대해 강연을 하고 블로그에 매일의 일상을 기록하며 사람들에게 알츠하이머가 어떤 병인가를 세세하게 묘사하여 사람들에게 그것의 편견과 고정관념을 없애고 긍정적으로 대처할 수 있게 해주었다. 우리도 새로운 곳으로 여행을 떠난다거나 낯선 곳을 방문해야 하는 상황이 생기면 설레기도 하지만 새롭게 시도해야 하는 일들, 기차예약이나 교통수단, 호텔 찾기 등등에 걱정이 생기기 마련이다. 일반인들도 새로운 일에 대한 두려움이 있는데 치매를 ‘안고 가는’ 그들은 오죽 하겠으랴. 그런데 그녀는 매번 그런 두려움과 공포에 맞선다. 치매 강연을 위해 런던을 가는 날에는 지나가는 거리를 미리 검색해서 사진으로 뽑아놓고 기차예약과 버스들에 대해서, 호텔가는 길에 대한 자료들을 일일이 검색해서  사진으로 뽑아서 파일에 넣어둔다. 그것을 보면서 호텔을 찾아가고 강연장을 찾아간다. 기차가 연착이 되거나 연기가 되거나 택시를 불렀는데 1분이라도 늦어지면 그녀는 갑자기 엄청난 공포에 휩싸여 무력감에 빠지고 머릿속이 하얘지며 엄청나게 혼란스러움 경험을 한다. 하지만 그런 고난과 고통이 늘 도사리고 있지만 그녀는 강연을 나가고 협회에 나가는 것을 미루거나 그만두지 않는다. 



 치매를 안고 사는 이들은 집에서 치매가 더 나빠지기를 기다려야만 하는가? 아니다. 그녀는 자신의 존재감을 갉아 먹는 치매와 싸우고 싶고 이겨나가고 싶다. 그리고 사람들에게 치매를 안고 살아가는 그들이 어떻게 일상생활을 하는지, 어떤 마음으로 살아가는지에 대해서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주려 한다. 이 책은 단순한 에세이가 아니다. 치매를 안고사는 사람의 삶의 보고서이고 희망과 용기의 기록이다. 이번 책을 계기로 나조차도 알츠하이머에 대한 편견과 고정관념이 있었는데 그것을 모두 쓰레기통에 던져준 고마운 책이다. 이제 병으로 사람을 판단하지 말고 인간의 존엄성을 가지고 그들은 바라보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지 깨달았다.  



- 리뷰어스 클럽의 소개로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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