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세계는 팔레스타인 제노사이드에 침묵하는가 - 잔해 속의 그리스도
문터 아이작 지음, 김상기 옮김 / 동연출판사 / 202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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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라엘-팔레스타인 전쟁이 아니라 이스라엘에 의한 팔레스타인 학살이고 인종 청소다. 전쟁이 아니라 반인륜 범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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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본 질서 - 긴축이 만든 불평등의 역사
클라라 E. 마테이 지음, 임경은 옮김, 홍기훈 감수 / 21세기북스 / 202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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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축은 새로운 개념이 아니다. 2차 세계대전 이후 30년도 안 되는 호황 기간을 제외하면, 긴축은 현대 자본주의를 내내 지배해왔다. 자본주의가 있는 곳에는 늘 위기가 따르고, 이 위기 때마다 긴축이 등장했다. 긴축은 역사적으로 부채 감소, 성장 촉진 등 정해진 목표 달성에 효과적이지 않았다. 그럼에도 긴축은 계속 시행되어왔고, 긴축은 자본주의 체제를 지키기 위한 중요한 보루였다. 그러나 긴축은 저성장이나 고인플레이션 같은 경제적 위기를 해결하지 못한다. 긴축의 진짜 목적은 국가 경제의 체질을 개선해 경제지표가 회복되게 하는 것이 아니라, 대중의 항의와 노조의 파업을 틀어막아 자본주의적 생산관계를 지키는 것이다.

세계 1차 대전은 자본주의에 반대하는 집단적 각성을 이끌었다. 전쟁 기간 모든 참전국 정부는 엄청난 양의 군수물자를 생산하느라 시장에 개입할 수밖에 없었다. 국가 개입주의는 임금 관계와 생산수단의 사유화가 자연스러운 것이 아니라, 계급제 사회의 정치적 선택이었음을 만천하에 드러냈다. 전쟁이 끝난 후 유럽 노동자들은 강력하고 급진적인 목소리를 내고 자신들의 신념을 표출했다. 유럽 전역에서 유례없는 민주적 격동이 일어나고 통화 인플레이션이 고조될 무렵, 경제 관료들은 자신들의 세계를 보존하기 위해 '긴축'이라는 가장 강력한 무기를 휘두르기 시작했다. 긴축은 예나 지금이나 자본주의라는 절대 진리를 지키는 가장 강력한 무기이다.

긴축은 다수의 노동자에서 소수의 저축자, 투자자에게로 자원을 이동시켰고, 이는 대중들에게 경제 생산의 억압적 조건을 견디라는 무언의 강요였다. 이러한 순응 요구는 자본주의를 유일한 최선으로 묘사하는 경제이론 전문가들에 의해 더욱 확고해졌다. 긴축이 그토록 효과적인 이유는 '근면'과 '검약'이라는 긍정적인 이미지로 포장되어 있기 때문이다. 애덤 스미스, 데이비드 리카도, 토머스 로버트 맬서스 시대부터 찬양된 이 미덕은 후대 경제학자들에 의해 계승되었다. 경제학자들은 전후 경제 위기를 시민권이 과하게 신장한 탓으로 돌렸다. 그 결과 시민들의 사회경제적 권리가 약해졌고 경제적 희생, 절제, 근면, 임금 삭감을 통해 각자도생해야 했다. 이 모든 것이 자본을 축적하고 경제적 대외 경쟁력을 확보하기 위한 필수 조건이었다.

유럽 정부와 중앙은행은 부유층의 자본 축적을 돕기 위해 노동계급에 긴축을 강요했다. 역진적 과세를 통해 소수 부유층의 부담을 덜어주었고, 예산 삭감을 통해 공공 자원을 대다수 민중에서 부유층에게 전환하였고, 통화 긴축을 통해 부유층의 재산 가치를 높였고, 산업 긴축을 통해 수직적 임금 관계를 강화하고, 임금을 억제하였다.

긴축과 기술관료제 사이의 긴밀한 관계 그리고 강압적 정책으로 합의를 꾸집어내려 한 20세기 초의 노력은 성공했고 오늘날까지도 생생한 현실로 이어지는 중이다. 경제 위기는 늘 반복되는데도, 새로운 위기가 닥칠 때마다 해결책을 고안하라고 부름을 받는 사람은 여전히 경제학자들이다. 그리고 그들이 내놓는 해결책은 임금 삭감, 노동시간 연장, 복지 축소 등 항상 노동자가 가장 큰 고통을 떠안는 방식이다.

1920년대나 지금이나 긴축의 승자는 언제나 소수의 부유층이다. 최상위층 1%는 배당금, 이자 등 불로소득으로 살아간다.노동소득에만 의존하는 나머지 인구는 패자가 되었다. 세계적인 부자 워런 버핏은 말한다. "계급 투쟁이 벌어지고 있다. 그러나 투쟁을 일으키는 것은 내가 속한 부자 계급이다. 게다가 우리는 승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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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전한 구원
에단 호크 지음, 김승욱 옮김 / 다산책방 / 202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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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 유부남 아니에요?" 그녀가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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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비상구 계단을 살금살금 내려와 주차장으로 가서, 남들이 볼 수 없는 곳에 이르자마자 입을 맞췄다. 키스가 어떤 것인지 나는 잊고 있었다. 내 품에 안기고 싶어 하는 사람을 품에 안는 것이 어떤 느낌인지도 잊고 있었다. 내 손길에 녹아내리는 사람, 내가 자신의 치마 속으로 손을 넣어주기를 바라는 사람, 내 손이 더 멀리까지 닿기를, 더 심하게 밀어붙이기를 바라는 사람, 그럴 때 작게 소리를 내는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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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은 욕망이 아니었다. 그렇게 단순한 것이 아니었다. 몇 년 만에 처음으로 나는 인간이 된 기분이었다. 이 세상에서 나고 죽는 인간. 지금 이곳에 나는 살아 있었다.
(31 쪽)


아내였다. 혈관의 피가 멈추는 기분으로 나는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 내가 힘들게 말했다.
내 귀에 들리는 것이라고는 내가 영원히 사랑하겠다고 약속했던 여자가 걷잡을 수 없이 흐느끼는 소리뿐이었다. 그녀는 말도 제대로 하지 못하고 울기만 하다가 숨을 몰아쉬고는 또 엉엉 울었다.
"미안해, 미안해, 당신을 정말 사랑해" 내가 말했다. 메리는 거의 숨도 쉬지 못하는 것 같았다.
나는 다시 말했다. "당신을 정말 사랑해. 미안해"
그녀가 전화를 끊었다. 내가 곧바로 다시 걸었지만 그녀는 전화를 받지 않았다.
(145쪽)

스무 살 시절에 나는 사랑이 무엇인지도 몰랐다. 사랑은 정의 내리기에는 너무나 가슴 벅찼다. 규정 짓기에는 너무나 혼란스러웠다. 이해하기에는 너무나 숭고했다. 담아두기에는 너무나 뜨거웠다. 받아들이기에는 너무나 파괴적이었다. 함께하기에는 너무나 아팠다. 포기하기에는 너무나 달콤했다. 버리기에는 너무나 아름다웠다. 외면하기에는 너무나 어지러웠다. 무엇인지 알 수조차 없는 사랑은 나를 부드러운 미풍에 실어서 짓무른 꽃내음 가득하고 햇살 따사로운 공중으로 둥실둥실 떠올려 주었다. 그리고선 변덕스럽게 나를 끌어내려 쓰러뜨리고 굴리고 짓밟고 모욕하고 더럽혔다. 사랑은 나를 오물 속에 내동댕이쳤다. 그러고 나서도 사랑 그놈은 끝내 자신을 드러내지 않았다.

그리고 수십 년이 지난 지금도 나는 사랑이 무엇인지 모른다. 사랑은 숭고하다고 하기에는 너무 원초적이고, 파괴적이라고 하기에는 너무 관대하고, 아프다고 하기에는 너무 요란하고, 달콤하다고 하기에는 너무 계산적이고, 아름답다고 하기에는 너무 초라하고, 어지럽다고 하기에는 너무 맹목적이다. 이제 사랑이 무엇인지 찾기에는 나는 너무 비루하고, 누추하고, 탐욕스럽다. 이제 사랑마저 내게 오면 부끄러운 무엇이 된다. 그 정도로 나는 더럽혀져 살아왔다. 내 손으로.


도서관이었다. 다시 영미소설 신작 코너였다. 작가의 이름이 눈에 확 들어왔다. '에단 호크' 그 에단 호크인가? 책을 뽑았다. 맞다. 그 에단 호크다. '죽은 시인의 사회'의 그 여린 소년, '가타카'의 그 절박한 젊은이, '트레이닝 데이'의 그 거친 형사, '비포 시리즈'의 그 에단호크, 그가 지은이였다. '톰 행크스'의 '그렇게 걸작은 만들어진다'를 보았을 때처럼 부러움과 호기심, 그리고 질투심이 확 밀려왔다.

이 책은 에단 호크가 쓴 소설이다. 연극에 대한 얘기고, 예술에 대한 얘기고, 사랑에 대한 얘기고, 상실에 대한 얘기고, 위로에 대한 얘기고, 치유에 대한 얘기고, 이별에 대한 얘기다. 그리고 지루한 얘기고, 뻔한 얘기고, 진부한 얘기다. 그러면서도 매혹적인 얘기다. 그렇게 삶은 상투적이다. 한 번 밖에 살지 못하면서도.


영화 배우에 대한 이야기였다. 30대 후반의 남자 영화 배우, 세계적인 록스타를 부인으로 두고서 한 순간 일탈을 한 영화 배우. 그로 인해 이혼을 겪게 되고, 덕분에 온 세상의 조롱을 받는 유명한 남자 배우. 그런 그가 뉴욕의 연극 무대에 서는 이야기다. 그렇게 연기를 통해서 자신을 찾아가는 이야기다.

호기심으로 시작했지만, 처음에는 진도가 나아가지 않았다. 책을 잡고 있으면 자꾸 눈이 감겼다. 사랑에 관한 이야기를 읽을 때는 눈이 번쩍 뜨였다. 내 얘기 같았다. 그러나 다른 이야기가 나올 때는 지루했다. 그러다가 점점 빠져들었다. 책을 다 덮은 지금 내 가슴은 따뜻하게 벅차오른다.

책은 많은 이야기를 한다. 그러나 나는 사랑 얘기만 말하련다. 다른 이야기는 하지 않으련다. 가족에 대한 이야기나 연기에 대한 이야기는 말하지 않으련다. 다른 얘기들까지 하는 건 나에겐 너무 버거운 일이다. 처음 시작할 때 사랑에 대한 얘기로 읽었듯이, 다 읽은 지금 사랑의 얘기로만 기억하겠다. 아니, 솔직하게 말하자. 다 읽은 지금 나에게 이 얘기는 사랑 얘기가 아니다. 이 얘기는 욕망에 대한 얘기고, 고통에 대한 얘기고, 실존에 대한 얘기다. 삶은 그렇게 혼란스럽다. 최소한 나에게는.

"우리 둘 다 서로를 놓아 보내고 있었다. 우리는 미친 듯이 서로를 사랑했다. 수많은 젊은 연인들이 그렇듯이, 우리는 시를 쓰고, 별을 보고, 서로를 끌어안은 채 밤을 꼬박 새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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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달플 때도 있고, 고통스러울 때도 있고, 하기를 잘했다 싶기도 하고, 끝나서 다행이다 싶기도 했다. 이 모든 감정이 어떻게 동시에 진실일 수 있는지 이해가 가지 않았지만, 정말로 진실이었다"
(33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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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탈로니아 찬가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46
조지 오웰 지음, 정영목 옮김 / 민음사 / 200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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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략적으로 말해서, 폭발 한가운데 서 있는 느낌이었다. 크게 꽝 하는 소리와 함께 사방에서 빛이 번쩍거려 앞이 보이지 않았다. 나는 엄청난 충격을 느꼈다. 통증은 없었다. 아주 격렬한 충격만 느꼈을 뿐이다. 전극에 몸이 닿았을 때의 느낌과 동시에 완전한 무력감을 느꼈다. 짓눌리고 움츠러들어 무(無)로 변해버리는 느낌이었다. 앞에 있던 모래주머니들이 엄청난 거리로 멀어졌다. 아마 번개에 맞았을 때도 이런 느낌이 아닐까. 나는 즉시 총에 맞았다는 것을 알았다. 그러나 굉음과 섬광 때문에 바로 옆의 소총이 오발되어 맞은 줄 알았다. 이 모든 일이 눈 깜짝할 사이에 일어났다. 다음 순간 나는 무릎이 꺾이면서 쓰러졌다. 머리가 땅에 부딪히면서 꽝 하는 소리가 크게 났다. 그러나 다행히도 다치지 않았다. 멍하고 어찔어찔한 느낌이었다. 매우 심하게 다쳤다는 의식은 있었으나, 일반적인 의미에서의 통증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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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알이 목을 관통했다는 것을 안 순간 나는 이제 끝장이라고 생각했다. 총알이 목 한가운데를 관통하고도 살아남은 사람이나 짐승이 있다는 이야기는 들어본 적이 없었다. 입 가장자리에서는 피가 뚝뚝 떨어졌다. '동맥이 날아갔구나' 나는 생각했다. 경동맥이 잘렸을 때 얼마나 오래 버틸 수 있는지 궁금했다. 내가 죽음을 예상한 시간이 2분은 되었을 것이다. 그것도 재미있었다. 그런 시간에 어떤 생각을 하게 되는지 아는 것도 재미있다는 뜻이다. 처음 떠올린 것은, 다분히 관습적이게도, 아내였다. 두 번째 떠오른 것은 세상 - 생각해 보면 결국 무척이나 마음에 드는 세상이었다 - 을 떠나야만 한다는 사실에 대한 격렬한 분노였다. 나는 이 터무니없는 불운에 격분했다. 얼마나 의미 없는 일이냐! 전투도 아니고 이 염병할 참호 한 귀퉁이에서 순간의 부주의 때문에 죽게 되다니!"
(238쪽 부터~)

1936년 잉글랜드 작가 조지 오웰은 '신문 기사를 쓸까 하는 생각으로' 스페인에 갔지만, 가자마자 의용군이 되었다. '그 시기, 그 분위기에서는 그것이 해볼만한 가치가 있는 유일한 일이었기 때문이다.'

'카탈로니아 찬가'는 조지 오웰이 스페인 내전에 참전한 기록을 적은 참전기이다. 그리고 동시에 전장의 초연하면서도 달아오른 열기를 보여주는 기록물이다. 그리고 동시에 파시스트 반란군 앞에서 연합 세력인 노동 계급에 대한 탄압에 골몰한 좌파 권력에 대한 고발문이다. 그리고 동시에 인간의 품위에 대한 믿음과 실천의 고백록이다.

나는 스폐인 내전에 대해 아는 것이 거의 없다. 1930년대 후반 스페인에서 파시스트 군인 프랑코가 쿠데타를 일으켰다는 것. 이에 대항하여 헤밍웨이 등 수많은 외국의 지식인들이 공화정부를 지키기 의해 목숨을 걸고 참전했다는 것. 그럼에도 프랑코는 승리하여 끝내 수십 년간 계속될 파시스트 정권을 세웠다는 것 정도?

마찬가지로 나는 조지 오월에 대해서도 아는 것이 거의 없다. 그럼에도 조지 오월의 책을 읽은 것이 없다는 것에 부담감을 가끔 느끼곤 했는데, 그것은 내가 수년 전에 우연히 보았던, 읽었다기 보다는 보았던 그의 짧은 인용문 때문이었다. 정확한 내용이 기억나지는 않지만 사회주의에 대한 글이었던 것 같다. 그는 사회주의를 얘기하면서도 이념보다는 인간애를 우선하였고, 나는 그 짧은 글로 그에게 호감을 품게 되었다.

그후 그를 잊어버렸다가 올해 초 '조지 오웰 사후 75년 이벤트'로 그의 책 몇 권이 재출간 되면서, 그의 책을 뭐라도 읽어야 한다는 강박감이 살짝 들었다. 그래서 '위건 부두로 가는 길'을 도서관에서 빌렸다가 중간까지 읽고는 만기일이 되는 바람에 반납하였다. 그러다가 밴드에서 독서 토론으로 '1984'를 하면서 처음으로 그의 책을 제대로 읽게 되었다. 그리고 며칠 전 도서관에서 제목에 끌려서 이 책 '카탈로니아 찬가'를 빌려 읽게 되었다.

조지 오웰의 글을 읽을 때 마다 느끼는 건데, 그는 글을 쉽고 평이하게 쓴다. 화려한 수식이나 과장된 치장 없이 담담하게 글을 써 내려간다. 그러면서도 명료하고 진솔하다. 이 책 또한 마찬가지였다. 참혹한 전쟁터의 경험을 기록한 글임에도 그 섬뜩하고 치열하고 험악했을 경험을 진솔하고 담담하게 써내려간다. 심지어 앞에서 인용한 것처럼, 자기 자신의 목을 관통하는 총상조차 관찰자처럼 차분하게 써내려 간다. 덕분에 나 또한 궁핍하고 참혹한 전쟁터의 현실에서, 엄혹한 파시스트의 공격 앞에서 분열하는 이념 속에서, 웃기기도 하고, 저열하기도 하고, 치열하기도 하고, 숭고하기도 한 인간 군상의 다양한 모습을 차분하고 냉정하게 바라보게 된다.

조지 오웰은 의용군에 자원한 후 부대와 함께 제대로 된 소총조차 없이 전선으로 배치된다. 총알이 머리 위를 날라다니고, 고양이만한 쥐가 몸을 넘어 다니고, 진창이 된 참호 속에서 포개어서 잠이 들고, 몇 날 며칠을 씻지 못하고, 언제 터질 지 모르는 조악한 수류탄을 품고 다니고, 먹을 음식이 부족한 상황에서도 그들은 좌절하거나 절망하지 않는다. 그 궁핍하고 곤란한 상황에 적응해 살아가고, 그 누추하고 옹색한 생활은 그들의 일상이 된다. 그러다가도 어느 순간 때가 오면 그들은 그 궁상스러운 일상을 떨치며 용기있고 숭고한 모습으로 일어선다. 그럴 때 그들은 목숨조차 초개같은 치열한 전사가 된다.

그 '일상성'을 보면서 나는 깨닫는다. 지금의 내 모습 또한 내 본질의 모습이 아니라 내 일상의 모습이라는 것을. 살아오면서 변해온 것은 내가 아니라 나의 일상일 뿐이었다. 언제인가 때가 오면 나도 일상을 떨치고 내가 바라고 꿈꾸는 삶의 모습으로 용기 있게 일어설 수 있을까? 지금은 그럴 수 있다고 그저 스스로를 믿어야 할 뿐이다.

우리는 보통 스페인 내전하면 조지 오웰, 헤밍웨이, 앙드레 말로를 얘기하지만, 파시스트에 맞서 제대로 된 무기 조차 없이 제일 먼저 전장으로 달려간 사람들은 수많은 이름 없는 노동자들이었다. 비록 피고 지는 꽃봉우리처럼 짪은 시간이었지만 그들은 카탈로니아에서 차별 없고 평등한 세상을 만들었다. 그리고 그것을 지키기 위해 그들은 주저없이 전장으로 달려가 목숨을 던졌다. 그것이 바로 혁명과 해방의 뜨거운 열기였고, 조지 오웰은 그 열기속에 스스로를 던졌다.

근데 어떻게 그들은 패배했을까? 왜 공화주의자들은 패배했을까? 수 많은 사람들이 몸을 던져 싸웠던 스페인 내전은 왜 파시스트들의 승리로 끝났을까? 늘 그것이 궁금했었다.

그것은 자유주의 열강들의 야욕 때문이었다. 민주주의의 수호 보다는 자신들의 시장 보호를 우선한 서구 열강들의 방관 때문이었다. 프랑코 반란군을 적극 지원한 독일, 이탈리아의 파시즘 정권과 달리 영국을 비롯한 서구 자본주의 국가는 그저 방관만 했다. 공화주의자들을 지원한 국가는 오직 소련 뿐이었다.

그리고 그것은 또한 분열 때문이었다. 소련의 지원을 등에 업은 공산주의 세력은 파시스트 반란군의 진압 보다 내부 권력 쟁취가 더 급했다. 그들은 연합하여 파시스트 반란군에 저항했던 아나키스트들을 공격했고, 아나키스트 의용군의 일원으로 싸워왔던 조지 오웰은 몸을 숨겨 영국으로 도망쳤다..

삶은 가혹하고, 세상은 잔혹하고, 신은 불공평하다. 노동자는 궁핍하고, 부자는 배부르고, 악인은 승승장구하고, 밤길은 멀고, 해는 떠오르지 않는다. 그러나 그 속에서도 인간은 아름답고, 용기는 숭고하다. 


조지 오웰은 공화주의 세력의 분열과 거짓에 피로와 환멸을 느꼈다. 그러나 그 환멸도 그가 카탈로니아 해방 정국에서 느꼈던 혁명과 평등의 열기를 지울 수는 없었다. 조지 오웰은 자신이 알고 있는 진실을 알리기 위해서 이 책 '카탈로니아 찬가'를 쓴다. 그리고 나는 이 책에서 숭고한 아름다움을 마주한다.

책은 책을 부른다, 여행이 좋았을 때 새로운 여행을 계획하듯이, 등산이 좋았을 때 새로운 산을 오르듯이, 사랑이 달콤했을 때 또 다른 사랑을 찾듯이, 좋은 책은 또 다른 책을 찾게 만든다.

나는 이제 스페인 내전에 대해 더 알고 싶어졌다. 나는 이제 조지 오웰의 책을 더 읽고 싶어졌다. 그리고 나는 이제 갈등한다. 다음엔 '스페인 내전'을 읽을 것인가 아니면 '나는 왜 쓰는가'를 읽을 것인가? 좋은 책은 또 다른 책을 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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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타십 트루퍼스 환상문학전집 27
로버트 A. 하인라인 지음, 김상훈 옮김 / 황금가지 / 201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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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협하고 졸렬한 폭력성을
삶의 진리로
떠들어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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