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의 미술사 - 자본은 어떻게 예술의 가격을 만들어왔는가
심상용 지음 / 구텐베르크 / 202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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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11월, 바나나 한 개와 덕트 테이프 한 조각이 620만 달러에 팔렸다. '마우리치오 카텔란'의 <코미디언>, 이틀이면 썩기 시작할 바나나와 그걸 벽에 부착했던 테이프 조각이 86억원에 팔린 것이다. 그 86억원은 무엇에 대한 가격일까? 미술의 가격은 대체 어디에서 오는 것인가. 누가, 어떤 논리로, 어떤 메커니즘을 통해 그 가격을 만들어 내는 것인가?


상업 갤러리 시스템은 19세기 중반 '폴 뒤랑 뤼엘'이라는 한 미술상에 의해 시작되었다. 그는 모네, 마네, 드가, 르누아르 등 무명의 화가들과 계약을 맺고 그들의 작품을 대량으로 매입하였다. 그는 개별 작품들의 다양한 스타일을 '하나의 상품군'으로 묶어, 전통과 차별되는 신흥 브랜드로 키웠다. 또한 전시, 가격 관리, 해외 시장 개척 등 미술품 유통 전반을 체계화하였다. 오늘날의 시스템 투자와 유사한 비즈니스 시스템을 미술 시장에 도입한 것이었다.


뒤랑-뤼엘의 시장 시스템은 오늘날까지 미술 제도 전반에 각인되었고, 작가들은 경제적 기반과 창작의 자율성 사이에서 끊임없이 줄다리기를 하는 처지에 놓이게 되었다. 미술 시장은 예술을 지속 가능하게 만드는 토대를 제공하는 동시에, 그 예술을 시장의 규범에 편입시키는 메커니즘을 구축한 것이다.


뒤랑 이후 현대 미술의 키워드는 전시, 갤러리, 컬렉터, 딜러, 큐레이터, 경매사, 비평가, 미술관, 언론이 결합한 국제 유통 구조 속에서  형성되고, 가격은 작품 자체의 예술적 가치가 아닌 제도권 미술계의 합의에서 산출된다. 오늘날에는 주로 글로벌 금융 엘리트, 신흥 재벌, 헤지펀드 매니저, 테크 벤처 부호 등이 현대 미술 시장의 핵심 플레이어이고, 이들에게 미술은 재무적 수익과 상징 자본이다.


이때 관람 대중은 작품의 가치 생산에 감정적으로 동원된다. 그들은 자신이 열광하고 공유한다고 느끼지만, 실제로는 플랫폼, 미디어, 제도 기관, 브랜드가 설계한 감각 구조에  맞춰 반응하도록 설계된 알고리즘을 따를 뿐이다. 작품 앞에서 포즈를 취하고, 사진을 찍고, SNS에 업로드하는 행위는 작품의 시장 가치를 증식시키는 무료 홍보 노동이 된다.


<돈의 미술사>는 서울대 미대 교수 '심상용'이 '미술사의 표면 아래 가려져 있던 가격과 가치의 구조를 드러내'는 책이다. 저자의 말마따나 미술사를 다루는 책은 지나치게 충분히 많다. 그러나 미술의 가격이 어디서 오는지 설명하는 책은 드물다. 저자는 인상주의의 탄생에서부터 약 150년에 걸친 근현대 미술의 역사를 '돈'이라는 하나의 맥락으로 서술한다.


이 책은 매우 흥미로우면서도 미술의 문외한인 나에게는 좀 뻑뻑한 책이다. 돈을 중심으로 미술의 역사를 다루는 책인지라, 이야기의 근저에는 이미 기본적인 미술사를 깔고 있다.  웬만한 사람들은 다 알고 있을 유명한 미술가와 비평가와 용어들을 알지 못하는 나는 많은 이름과 용어들을 인터넷에서 검색하며 수고롭게 책을 읽었다. 반면 나와 달리 이미 미술에 다소의 지식을 갖고 있을 사람들에게는 꽤 흥미롭고 심층적인 이야기가 될 것 같다.


그러나 미술에 무지하고 관심도 별로 없는 나에게도 이 책은 매우 흥미롭고 의미있게 다가온다. 미술의 기반이 되는 자본이라는 주제 자체가 매우 흥미로울 뿐만 아니라, 꼭 돈이 아니라도 미술사의 다양한 관점과 심도 있는 사연들을 들려준다. 거기에 더해 평소 내가 미술에 대해 갖고 있던 개인적인 의문을 해결할 단초를 제공해준다.


요즘은 미술에 대한 세상의 관심이 워낙 커다란 시대인지라, 미술치인 나조차도 가끔 미술관이나 미술 전시회를 가게 될 때가 있다. 그럴 때면 나는 작품 보다는 그 작품에 대한 설명에 압도당할 때가 많다. 고급진 어휘가 현란하게 춤을 추는 화려한 문장과 심오하게 발현하는 깊은 의미가 나에겐 너무 난해하다. 그러면서도 작품을 보며 받는 나의 단순무식한 느낌을 무시하고 해설이 설파하는 심오하고 고상한 의미를 수용해야 할 것 같은 압박을 받을 때가 많다.


그런 경험 속에서 나는 종종 혼자만의 의문을 품곤 한다. 미술과 텍스트는 무슨 관계인가? 시각은 문장에 종속된 것인가? 미술은 서술 없이 존재할 수 없는 것인가?  남들 앞에서 꺼내기 어려운 이런 무식하고 무례한 의문에 대해 저자는 나름의 답을 던져준다.


미술 비평은 19세기 후반 신흥 시장과의 긴밀한 협력을 통해 세잔을 '현대 미술의 기원'으로 자리매김 하면서, 상업적 이해관계를 미술사적 필연성으로 연계시키는 기능을 담당한다. 즉, 시장의 작품 가격 상승을 위해 비평이 가치 조정을 담당하게 된 것이다. '화상-비평가-수집가의 삼각 네트워크'가 유기적으로 작동하면서 오늘날의 플랫폼 자본주의의 초기 형태에 해당하는 네트워크 자본 시장이 그때부터 형태를 갖추게 되었다.


이후 모더니즘 미술사는 개념미술이라는 전위를 구축하면서 미술의 존재론적 지위를 '시각'에서 '담론'으로 옮겨 놓는다. 작품은 더 이상 시각적 경험의 대상이 아니라 철학적 사유의 매개로 재정의되었고, 이제 미술은 '눈'을 거치지 않아도 유효한 개념과 담론의 생산 도구로 전이된다. 결국 작품의 난해함은 필연적인 결과가 되었고, 예술의 생명력은 감각적 해방이 아닌, 제도권 권력자들이 행사하는 해석의 메커니즘 안에 갇히게 되었다.


그리고 이 구조는 미술을 시장과 긴밀하게 결부시킨다. 현대미술 시장에서 거래되는 것은 '이미지'가 아니라 '담론'이 되었고, 작품은 더 이상 시각적 경험의 대상이 아니라 철학적 사유의 매개로 재정의되었다. 시장은 회화나 조각 자체보다 '역사적 지위'를 거래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리고 그 지위는 작품 밖에서 철학자와 이론가들에 의해 정해진다. 철학적 신화가 경제적 가치 상승을 이끌게 되었고, 이 구조는 오늘날 미술 시장의 메커니즘 자체가 되었다.


작품의 가치는 점점 더 방대해지는 텍스트, 난해한 이론, 자의적인 수수께끼, 정치적 수사, 철학적 개념들의 난무를 통해 얻어지고, 종종 이해하기 어려울수록 더 높은 가격을 책정받는다. 현대미술 시장은 해석 권력의 시장이 되었다. 시장과 철학이 공모하였고, 예술가는 자유을 잃고 근대이론에 의해 결정되는 상품이 되었다. 유행과 명성을 만들고 무너뜨리는 사람은 예술가가 아니라 비평가다. 그리고 이제는 그 권력이 비평가에게서 갤러리, 딜러, 경매사, 컬렉터의 시장 네트워크로 넘어갔다.


간단히 말해서, 미술가들은 예술가의 체면을 유지하면서도 높은 가격을 받기 위해, 즉 배부른 예술가가 되기 위해 돈이 되는 서사를 원했고, 그를 위해 비평과 철학에게 주인의 자리를 내주었다는 얘기다. 미술은 돈을 위해 문장의 치맛자락 아래로 들어갔고, 그때 문장은 담론이라는 이름의 선전문이었다. 그리고 이제 그 담론조차 비평가에게서 딜러와 수집가  그리고 헤지 펀드  매니저에게  넘어갔다. 이제 미술은 예술이 아니라 투기 상품이다.


물론, 이 얘기는 저자의 견해가 아니다. 이 생각은 미술에 대해 관심도 없고, 아는 것도 없으면서 미술 산업을 암호화폐 산업의 사촌 정도로 여기는 나의 난폭하고 협량한 해석이다.


저자는 나처럼 무례하지도 편협하지도 않다. 미술의 가치를 사랑한다. 저자는 '미술의 가격을 해부하지만, 미술의 가치를 부정하지 않는다. 돈이 미술에 매긴 가격의 역사를 끝까지 추적하고 나면, 돈으로 매길 수 없는 미술의 무게를 비로소 더 선명하게 보고 싶은 마음'으로 인상주의 이래 현대미술의 역사를 풀어간다.


노동의 추상화를 예술에 이식시킨 마르셸 뒤상의 레디-메이드, 미술시장의 메커니즘이 탄생 시킨 파블로 피카소의 천재성 서사, 예술에 '효율적인 테일러 시스템'을 도입한 앤디 워홀의 초상화 비즈니스, 미술을 특권 계층의 전유물로 만든 메리 분의 금융 자산화, '예술가가 곧 1인 기업'이라는 제프 쿤스의 금융 파생상품화된 미술, 주식 시장의 투기 기술을 도입하여 미술 시장의 사제 계급이 되어버린 헤지펀드 매니저 등의 다양한 사례를 들며 현대 미술을 이야기한다.


이 책은 꽤 재미있다. 그리고 강렬하다. 자신만의 색깔로 현대미술사를 풀어간다. 뻔한 작품 해설처럼 지상을 떠나 고고한 허공을 부유하며 방황하지 않는다. 흔한 미술사처럼 예술가 개인의 성정과 이력에만 몰입하지 않는다. 역사성과 사회성이라는 날줄과 씨줄의 직조 속에서 생성되고, 만개하고, 약동하고, 물러간 미술가들과 그들의 작품, 그리고 끝내는 '예술처럼 보이는 금융'이 되어버린 현대미술을 이야기한다. 그리고 그 이야기는 시장이라는 지상의 사슬에 단단하게 구속되어 있다. 그래서 더 재미있다.


이야기는 이야기에서 그치지 않는다. 저자는 이야기 속에서 계속 짚고 확인한다. 예술이 무엇인지, 예술은 어떻게 세계와 관계할 것인지. 그리고 끝내는 우리에게 묻는다. 당신은 가격 너머 어떤 미술을 기대하는가? 나는 그 질문이 당혹스럽다. 나는 미술에 무엇을 기대하고 있을까? 쉽게 대답이 나오지 않는다.


이 짜릿한 이야기에서 아쉬운 것은 평이한 언어다. 용어를 줄이고, 단어를 늘렸으면 어땠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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