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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의 기원 - 세계 질서와 부의 운명을 뒤바꾼 방향의 역사
제리 브로턴 지음, 박세연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26년 7월
평점 :
1972년 12월 7일, 아폴로 17호의 한 우주비행사가 태양 빛을 받은 온전한 지구의 모습을 카메라로 찍었다. 그 사진은 '블루 마블'이라는 이름으로 알려졌고, 지금까지도 지구의 전체 모습을 담은 최초이자 유일한 사진으로 남아있다.
그러나 이 사진을 처음 현상했을 때, NASA는 한 가지 문제를 발견했다. 그것은 구름이 뒤덮인 남극이 맨 위에, 아프리카 대륙이 중앙에, 그리고 아라비아반도가 그 아래에 있었기 때문이었다. 셔터를 누르는 순간, 우주비행사는 무중력 상태로 카메라를 들고 있었기에 어디가 위이고 어디가 아래인지 구분할 수 없었다. 세상 사람들에게 혼란을 줄 수 있다고 우려한 NASA는 결국 사진을 거꾸로 뒤집었다. 일반 상식에 부합하고자 북극을 위로, 남극을 아래로 놓았다.
오늘날 대부분의 사회는 심리적, 시각적 차원에서 지리를 인식할 때 북쪽을 위에 놓는다. 하지만 언제나 그랬던 것은 아니다. 역사상 가장 많이 복제된 블루마블 사진은 우리에게 절대적인 방향을 규정하는 보편적인 기준이란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어떤 사회는 남쪽이나 동쪽을 위로 삼았고, 이러한 방위 설정은 그들의 언어와 종교 속에 흔적으로 남았다.
당연하고 절대적으로 보이는 동서남북이라는 네 가지 기본 방위는 사실 우리의 생각보다 훨씬 더 주관적인 체계이며, 시대와 지역, 언어 및 문화에 따라 변한다. 세계 지도나 사진에서 북쪽이 꼭 위에 있어야 할 이유는 없다. 기본 방위가 실제로 존재하는 절대적인 기준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인간이 창조한 문화적 산물이다.
네 가지 기본 방위는 단지 방향을 정하는 시스템에 그치지 않는다. 이는 우주적 세계관과 도덕, 종교 생활, 그리고 전 세계 정치와 경제에 이르기까지 폭넓은 영향을 미친다. 사람들은 기본 방위를 근간으로 천체의 움직임을 설명했고, 기도를 올리는 방향을 정했으며, 세상을 지정학적 차원에서 동과 서로, 그리고 낙후된 남반구와 산업화된 북반구로 구분하고 조직하였다.
물론 동서남북 네 방위에는 물리적 실체가 있다. 그러나 언어가 없다면 네 방위도 아무런 의미가 없다. 네 방위를 언어로 정의하는 순간 그 용어의 사용과 의미에 관한 규칙이 만들어지고, 그 규칙은 시대와 사회에 따라 끊임없이 변한다. 언어가 진화와 해석의 대상인 것처럼, 네 기본 방위도 그렇다. 북쪽은 별을 기준으로 할 것인지, 지도를 기준으로 할 것인지, 아니면 자기 나침반으로 할 것인지에 따라 달라진다.
그렇다면 왜 그토록 많은 사회가 네 가지 방위를 선택했으며, 또 왜 그중 하나를 우선적인 방향으로 정한 것일까? 인류는 왜 두 개나 다섯 개가 아닌, 네 개의 방향을 기본 방위로 설정한 것일까? 그리고 세계 지도를 만드는 과정에서 왜 북쪽을 위에 둔 것일까?
네 기본 방위에 관한 최초의 기록은 메소포타미아 지역의 아카드 왕조 시대에 이뤄졌다. 1931년 오늘날 이라크 지역에서 발견된 '가수르 지도'라는 이름의 점토판은 방위를 표시하고 거기에 이름을 붙인 최초의 지도로 알려져 있다. 이 지도는 천문 관측이 아니라 기상에 관한 경험, 즉 바람의 방향을 바탕으로 네 가지 방위를 정의하고 있다.
다양한 문화권에 걸쳐 형성된 기본 방위의 어원들을 살펴보면, 특정 사회 속의 방위 규칙을 이해할 수 있다. 아프리카의 경우, 네 방위를 표현할 때 사용하는 언어는 대개 복잡한 민족학적 구분을 기준으로 사용했고, 고대 중부 아메리카 지역에서는 신과 창조 신화와 연관되어 기본 방위를 사용했다. 중앙아메리카 문명의 기본 방위의 가장 독특한 점은 다섯 방향을 기반으로 한다는 것이다.
반면 그리스 철학과 과학은 풍향을 바탕으로 하는 메소포타미아 문명의 관심을 그대로 물려받았다. 아리스토텔레스 이후 열 두 가지 풍향을 중심으로 방향과 다양한 지역과 사람들을 설정했다. 그리스인들이 아테네에 건설한 '바람의 탑'은 최초의 기상 관측소로 알려져 있으며, 또한 최초의 시계탑 역할도 했다. 로마인들은 풍향을 가리키는 그리스 용어들을 받아들였고, 로마의 건축가 비트루비우스는 풍향을 스물 네가지로 규정하였다. 그린란드와 캐나다, 알래스카에 걸친 북극 지역에서 살아가는 이누이트족은 바람을 의인화하고 그 특셩에 따라 성별까지 부여했다.
유럽에서 기본 방위 개념이 정립되는 가장 결정적인 순간은 9세기 초 사를마뉴 시대였다. 사를마뉴는 바람이 아니라 태양의 움직임을 기준으로 네 방위의 명칭을 새롭게 정했다. 이러한 원게르만어 용어들은 9세기경 노르웨이 이주민들의 노르드어 방위 체계에도 영향을 미쳤고, 대부분의 현대 유럽 언어에서 그 사례를 찾아볼 수 있다. 유럽은 그리스-로마 세계부터 두 개의 정반대 방위(남과 북, 동과 서)가 쌍을 이룬다는 전제를 물려받았고, 이를 다시 후대로 물려주었다.
기본 방위 체계에서 기준이 되는 방위는 종교적, 정치적 이유로 특정 방위를 다른 방위들보다 더 우위에 두는 방식으로 결정된다. 예를 들어, 고대 그리스에서는 아폴론이 태어난 곳인 델로스가 중심이었기에 서북쪽이 우위를 차지했다. 중세 기독교 시대에는 예루살렘이 중심이었으므로, 성경에 실린 창세기와 예수의 십자가형을 근거로 동쪽을 위로 두었다. 마찬가지로 초기 이슬람 지도 제작자들은 종교의 중심지인 메카가 위치한 남쪽을 위로 정했다. 19세기 대영제국은 런던, 더 구체적으로 그리니치를 정치적 지형의 중심으로 삼으면서 북쪽을 위로 생각했다.
지난 토요일 올림픽 공원으로 향했다. 올림픽 공원 내 '들꽃 마루'라는 곳을 구경하기 위해서였다. 햇볕은 따뜻했고, 바람은 상쾌했다. 느긋하고 포근한 기분 속에서도 종종 불쾌함을 느꼈다. 공원 입구에서 마주친 이른바 '태극기 부대'를 너무 여러 번 마주쳤기 때문이다. 그들이 너무 무 여러 곳을 휘젓고 다닌 까닭도 있지만, 내가 들꽃 마루를 찾지 못하고 공원 안을 헤맨 이유도 있었다.
공원의 표지판과 안내도를 보면서 들꽃마루를 찾아갔지만, 안내도는 언제나 북쪽을 기준으로 그려져 있었다. '현위치'와 들꽃마루 표시를 보면서도 어느 방향으로 향해야 하는 건지 감을 잡기 어려웠다. 공원 여러 곳을 헤매며 태극기 부대를 자꾸 마주치게 되었다. 좋은 날, 좋은 장소에서의 나쁜 경험이었다. 그럼에도 끝내 찾은 들꽃마루는 아름다웠고, 토요일 오후의 공원은 상쾌했다.
길치에 방향치인 나는 공원 안내도 뿐만 아니라 길찾기 앱을 사용할 때도 자주 헤맨다. 자동차 네비처럼 내가 가는 방향이 표시되지 않기에, 내가 가야 할 방향과 다르게 엉뚱한 방향으로 길을 헤맨 경험이 여러번 있다. 나는 안내도나 길찾기앱이 '나의 앞 쪽' 방향이 아니라, 북쪽을 기준으로 그려지는 것이 늘 아쉬웠다. 다행히 요새 길찾기 앱은 사용자의 보행 방향이 표시되기도 하는 것 같다. 앱에 좀 더 익숙해지면 방향치의 애로 사항도 많이 줄일 수 있을 것 같다.
'지리의 기원'은 지리학자 '제리 브로턴'이 지은 방향의 역사에 관한 책이다. 학창 시절 지리 과목을 매우 싫어했던 나로서는 다소 버거운 책이다. 이제 겨우 1장을 읽었으면서도,내가 굳이 이런 세세한 사항들을 알 필요가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방향'이 절대적인 것이 아니라 시대와 지역과 문화와 종교에 따른 주관적인 개념이라는 설명은 살짝 충격적이다. 나로서는 알지도 못했을 뿐만 아니라 의문조차 품어본 적 없는 사실이 사실은 사실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내가 이 책을 어디까지 읽을 지는 모르겠다. 끝까지 읽을 지, 아니면 더 이상 읽지 않을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은 '동서남북이 진리가 아니라 지위'라는 깨달음 하나 만으로도 충분히 의미있는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