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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국의 악당 - 황금시대 대서양의 해적들 ㅣ 아우또노미아총서 89
마커스 레디커 지음, 박지순 옮김 / 갈무리 / 2026년 3월
평점 :
<만국의 악당>
"저놈들은 우리를 악당이라고 욕하지만, 사실 차이 나는 것은 하나밖에 없어. 그들은 법의 보호를 받으며 가난한 사람들을 약탈하고, 우리는 우리 용기의 보호 아래에서 부자들을 약탈하지"
- 해적 선장 찰스 밸라미
1650년부터 1730년의 해적의 시대, 두 가지의 테러가 유럽을 배회하고 있었다. 하나는 국가를 수호하던 사람들이 저지른 테러. 그것은 강자가 약자에게 가하는 테러였다. 오늘날 그들은 문화적 영웅, 심지어는 건국의 아버지가 되었다. 또 다른 하나는 해적들이 저지른 테러, 그것은 약자가 강자에게 가하는 테러였다. 그들은 오랜 세월에 걸쳐 반영웅적 속성의 문화적 영웅이 되었다.
국가의 판사들은 해적을 '인간과 신의 모든 법을 거스르고 반대하는 하잖은 강도'라며 단죄했지만, 해적들 스스로는 자신들을 국가가 없는 사람들이라고 생각했다. 그들은 '전 세계에 대한 전쟁을 선포'했고, 자신들은 '바다에서 왔다'고 외쳤다. 해적들이 18세기 초에 처음으로 그들의 검은 깃발 졸리 로저를 내세웠을 때, 그들은 새로운 선언을 한 것이었다. 그들은 강력한 국가에 폭력으로 대항하는 프롤레타리아 무법자를 자처하며 자신들을 '만국의 악당'이라고 선포했다.
해적들은 대개 대서양 상선, 해군 함선, 사략선에서 근무했던 가난한 노동자 선원들 출신이었는데, 그들의 세계는 협소한 숙소, 부족한 식사, 잔인한 징계, 낮은 임금, 끔찍한 질병, 신체적 장애를 일으키는 사고, 그리고 조기 사망을 겪는 곳이었다. 그들은 엄격하면서도 잔인할 정도의 규율과 부족한 음식, 그로 인한 잦고 갑작스러운 죽음 속에서 살아갔다.
해적이 되면서 그들은 자신들의 세계를 바꾸었다. 독재적인 지휘 체계를 민주적인 선출방식으로, 가혹한 규율을 느슨하고 자유주의적인 운영 방식으로, 부족하던 식량 사정을 흥청거리는 잦은 잔치로, 착취적인 임금 관계를 집단적 위험 분담으로, 부상과 조기 사망을 적극적인 치료와 생활 보장으로 바꾸었다.
해적의 삶은 대부분 전투나 감옥 또는 교수대에서 마감하는 짧은 삶이었지만 그들은 짧을 망정 충만한 삶을 선택했다. 해적의 삶은 약탈과 '당장에 손에 잡을 듯한 금화'에 대한 기대, 풍부한 음식과 음료, 고급선원 선출, 자원의 평등한 분배, 부상자에 대한 배려, 그리고 즐거운 동지애를 제공했으며, 이 모든 것은 그들이 정의를 표현하는 방식이었다. 그들의 모토는 '즐거운 삶, 짧은 인생'이었다.
1713년 위트레흐트 조약으로 스페인 왕위 계승 계승 전쟁이 종결되고 평화가 찾아오면서 잉글랜드, 프랑스, 스페인 등의 국가는 해군을 대규모로 감축하고, 사략 허가장을 중단한다. 이에 따라 수 많은 선원 일자리가 줄어들고, 가뜩이나 열악했던 선원들의 노동 조건은 더욱 가혹하게 추락한다. 숙련된 기술을 갖추고도 일자리를 구하지 못한 많은 선원들이 해적을 선택하게 되고 1716년부터 해적의 황금 시대가 열린다.
1716년부터 1726년까지 다민족 출신 약탈자의 수는 약 4천 명에 달했고, 이들은 스페인 계승 전쟁 동안 스페인과 프랑스의 해군과 사략선단이 나포하거나 손상시킨 선박보다 더 많은 2,400척 이상의 배를 나포하고 약탈했다. 화폐와 화물을 약탈하며 상품을 난폭하게 바다에 내던지고 함선에 불을 지르고 가라앉히는 등 재산을 파괴함으로써 법을 위반했고, 악덕 선장을 고문하거나 처형하는 '정의의 분배'를 실시했다.
16세기와 17세기의 해적은 전리품과 목숨을 모두 지킨 채 처벌을 면할 수 있었다. 영국, 프랑스, 네덜란드는 스페인에 대한 해적의 공격을 지지하거나 묵인해왔다. 그러나 스페인 계승 전쟁의 종식으로 안정화된 대서양 무역에 황금시대의 해적이 광범위한 해를 끼치고, 약탈과 파괴로 재산 소유의 안정성을 방해하자, 지배 계급은 해적을 '인류 모두의 적'으로 간주한다.
왕실 관리, 법률가, 상인, 논평가, 성직자, 작가들이 참여하여 선언문, 법적 소송, 청원서, 소책자, 설교, 그리고 신문 기사를 통해 소멸 시켜 마땅한 해적의 이미지들 만들어 냈다. 동시에 압도적인 해군 전력과 대대적인 교수형으로 해적 소탕에 나섰다.
화려했던 해적의 황금 시대는 1722년 두 대의 거대 해적선이 해군에게 패배하면서 내리막길로 접어들기 시작하여, 1726년이 되면 대서양 해적은 사실상 종료된다. 대서양의 곳곳의 나라들은 교수형을 통해 바다의 무법자에 대한 화려한 처형을 연출했다. 일부 해적은 후회를 하며 순종적 태도를 취하다 죽어갔지만 또 다른 많은 해적은 자신들에게 주어진 역할을 거부하며 교수대를 마지막 전복 행위를 보여주는 자리로 삼았다. 그들은 교수대로 당당하게 걸어가 권력자들을 조롱했다.
해적들은 신성모독적이고 불경했다. 해적들의 행동은 유럽 사회 대부분의 영역으로부터 그들이 느끼던 깊은 소외와 계급적, 인종적, 성별적 모순을 반영하고 있었다. 이전 세대의 해적들은 교수형을 피하기 위해 자신을 사략선원이라고 불렀지만 18세기 초의 해적들은 달랐다. 그들은 범죄자를 자처했다. 교수대에 서서 그들은 외쳤다. '해적의 삶이야말로 정신이 올바로 박힌 사람에게는 유일한 삶이다.'
17, 18세기 대서양 해적에 대해 알게 되면 그들의 해적선은 일종의 '해방구'였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가난한 선원, 죄수, 매춘부, 채무자, 방랑자, 탈출 노예와 계약 하인, 종교 급진주의자, 정치적 포로 등 '만국의 버림받은 자들'은 해적이 되면서 스스로의 주인이 될 수 있었다.
그들은 민주적인 절차를 거쳐서 일종의 자치정부를 구성했고, 권력을 선장에게 집중하는 대신 분산했다. 노동과 위험을 균등하게 나누었고, 약탈물을 저마다 정당한 몫을 나누어 가졌다. 부상자와 병자에게는 더 많은 몫을 나누어 주는 복지 체계를 갖추었고, 출신이나 피부색이나 성별의 차별이 없었다. 해적선끼리는 서로 형제의 관계였다. 그들의 세계는 평등하게 연대하고 즐기는 활기찬 세상이었다.
해적의 평등하고 자유로우면서도 죽음과 함께하는 세계를 알아가는 것은 놀랍고 흥미로운 자극이었다. 어린 시절 읽었던 동화책 '피터맨'과 '보물섬', TV에서 재미있게 보았던 버트 랭카스터 주연의 영화 '진홍의 도적', 조니 뎁 주연의 유명한 영화 '캐리비안의 해적' 시리즈 등 문학과 미디어를 통해 겪은 해적은 이 책의 저자가 말하듯이 이중적이었다. 때로는 잔인하고 흉폭한 도적이기도 했고 때로는 낭만적이고 반항적인 영웅이기도 했다.
그러나 이들 이야기 속에서 내가 본 해적은 거칠고 난폭한 도적떼였다. 좋게 보아주더라도 반항적인 반영웅이었을 뿐이었다. 민주적 공동체로서의 해적의 모습을 나는 전혀 알지 못했다. 그러다가 이 책을 비롯해 해적에 대한 이야기들을 접하면서 나는 감춰지고 왜곡되어 왔던 전복적인 사실을 새로 배우는 즐거움을 다시 한 번 누리게 되었다. 뿐만 아니라 해적을 통해 다시 한 번 드러나는 자유롭고 평등한 세상을 꿈꾸는 인류의 멈추지 않는 열망에 또 한 번 감탄하게 되었다.
동시에 해적을 모든 인류의 적으로 만들었던 프로파간다가 지금 이 시대에도 여전히 강력히 작동하고 있다는 것을 다시 한 번 깨닫는다. 평등과 자유를 향한 인류의 꿈이 결코 멈추지 않는 것처럼, 프로파간다도 멈추지 않는다. 권력자의 존엄과 부자들의 재산과 귀족들의 권력에 대한 도전은 언제나 악마화 되어 왔다. 그리고 지금 2026년 여름의 대한민국에서도 자신의 목소리를 내는 시민은 비난 받고 조롱 받는다. 여전히 거꾸로 읽어야 바로 볼 수 있는 세상이다.
나는 죽음을 곁에 두고 자신들의 해방구에서 살아갔던 해적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감춰졌던 진실을 알게 되는 벅찬 즐거움과 자유와 평등을 향한 인류의 끊임없는 의지에 탄복을 느끼면서도, 한편으로는 불편함을 감추기 어렵다. 그것은 해적들이 자신들 내부에서는 자유롭고 평등한 민주적 공동체를 이뤘음에도 불구하고, 자신들 바깥에 대해서는 탐욕스럽고 난폭한 약탈자였기 때문이다. 그들의 아름다운 세상은 외부의 약탈을 통해서만 가능한 세계였을까? 그 모순과 한계가 나는 불편하다.
그러나 이런 불편함은 어쩌면 내가 소시민적 도덕률에 갇혀 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중세 유럽에 관해 알게 되면 국가야말로 거대한 도적떼에 불과하다는 생각이 들 때가 많다. 왕과 귀족과 성직자라는 사람들의 잔혹함과 포악함과 욕심을 알게 되면 그들이야말로 가장 사악하고 가장 뻔뻔한 도적떼라는 생각이 저절로 든다. 게다가 유럽 내부적으로는 그저 흉폭한 도적떼 무리였던 그들은 아메리카와 아프리카와 아시아에서는 잔혹한 악마였다.
스파이더맨의 삼촌은 강한 힘에는 강한 책임이 따른다고 말했지만 인류 역사를 보면 강한 힘에는 책임 대신 강한 억압과 강한 폭력이 따랐다. 견제받지 못하는 권력은 늘 악이 되었다. 해적은 힘이 약해서 그랬는지 몰라도 국가에 비하면 차라리 관대하고 인간적이었다.
국가에 비하면 인종과 성별을 차별하지 않고 부상자를 돌보는 해적 사회는 해방구라고 보아도 괜찮을 것이다. 외부를 향한 그들의 폭력과 약탈은 어쩔 수 없는 한계였을 것이다. 내외부를 가리지 않고 착취하고 수탈하는 국가나 교회의 폭력과 야욕에 비하면 해적들의 폭력은 차라리 방어적이었고, 저항적이었다. 그러나 그런 이성적 판단에도 불구하고 나의 소시민적 내면은 불편함을 미처 지우지 못하는 것이다.
이렇게 나는 오명을 덮어 쓰고, 기득권에 의해 오해 받아온 '해적'이라는 실험적인 자치 사회에 대해 숨겨진 사실을 깨달으면서, 동시에 나라는 사람이 갇혀 있는 소시민적 한계도 같이 깨닫게 된다. 뒤집어진 세상의 모순과 불의에 아파하고 분노하면서도 변혁을 꿈꾸지 못하고 선악의 도덕률에 갇혀서 발만 동동 구르는 나약한 모순 말이다.
어쩌면 그 모순이야말로 극복해야 하는 소시민적 위선일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만약 그 소심함이 기계적이고 관성적인 선악의 판정이 아니라 약자에 대한 연민과 공감이라면 그야말로 보듬고 간직해야 하는 소중한 가치 아닐까? 나는 아직도 그 판단을 못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