좌파의 길 - 식인 자본주의에 반대한다 서해문집 사회과학 시리즈
낸시 프레이저 지음, 장석준 옮김 / 서해문집 / 202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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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본주의'가 돌아왔다. 오늘날 과도한 부채, 불안정한 노동, 위협받는 생계, 퇴보하는 공공 서비스, 무너지는 인프라, 인종화된 폭력, 극단적인 기후 등 혹독하기 이를 데 없는 위기 속에서 수십 년 동안 거의 쓰이지 않았던 자본주의라는 용어가 곳곳에서 다시 불려지고 있다. 자본주의의 귀환은 현 위기가 얼마나 심각한지, 그리고 그 위기의 극복을 얼마나 많은 이들이 갈망하는지 보여주는 표식이다.

자본주의란 무엇인가? 마르크스에게 자본주의의 첫 번째 핵심 특징은 '생산 수단의 사적 소유'다. 다수 대중이 관습적으로 갖고 있던 공유지와 공유 자원을 소수가 사적으로 소유하면서 생계수단과 생산수단을 잃어버린 대다수 민중은 노동시장으로 나오게 되었다.

두 번째 특징은 '자유로운 노동시장'이다, 생산수단에서 분리된 다수 대중이 생계를 위해 내몰린 노동시장은 자유로웠다. 노예가 아닌 계약 노동자이기에 법률적으로 자유웠고, 동시에 생계수단과 생산수단으로부터도 자유로웠다. 자유로이 쫓겨난 이들이 선택할 수 있는 것은 임금 노동밖에 없었다.

세 번째 특징은 '자기' 확장이다. 자본주의는 '자본 축적'이라는 객관적이고 체계적인 추진력을 갖추었다. 자본가가 행하는 모든 행동의 목적은 자기 자본의 확장이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인간은 자본의 졸(卒)일 뿐이며, 자본 그 자체가 주체이다. 자본은 끊임없이 자기 확장을 추진한다.

네 번째 특징은 '시장'이다. 인간의 역사에서 시장은 늘 존재했다. 하지만 자본주의 사회의 시장은 '토지', '노동', '자본'이라는 생산 요소 마저 시장에서 할당함으로써 이들을 상품으로 변형한다는 점에서, 그리고 사회의 잉여를 인간의 복지가 아닌 시장의 메커니즘이 결정한다는 점에서 특별하다.

그러나 우리가 물려받은 위기 이론은 경제 측면에만 집중하고, 생산 노동을 둘러싼 투쟁에만 몰입한다. 금융 등의 경제적 위기 뿐만 아니라 지구 온난화, 돌봄 결핍, 공적 권력의 유명무실화 같은 비(非)경제적 현상까지 포괄하는 현재의 다차원적 위기에는 우리가 물려받은 표준적인 자본주의 모델이 들어맞지 않는다.

그러기에 우리는 더 깊은 곳으로 들어가야 한다. 마르크스는 <자본> 제 1권에서 시장 교환이라는 통상적 시각 이면에 자리한 '생산'이라는 '감춰진 장소', 즉 '착취'로 우리를 이끌었다. 이 책은 이제 착취보다도 더 꽁꽁 감춰진 그 이면으로 우리를 안내하고자 한다. 착취를 가능하게 하고, 자본주의 생산이 이뤄질 수 있게 하는 배경 조건. 자본주의 DNA에 각인된 특징, 그것은 바로 제 살 깎아먹기의 '식인 자본주의(Cannibal Capitalism)'다.

1. 상품 생산에서 사회적 재생산으로
임금 노동은 사회-재생산 활동의 기반 위에서 작동한다. 출산, 가사, 육아, 학교, 정서적 돌봄 같은 '사회적 재생산' 이 없었으면, 상품 생산은 존재할 수 없었다. 역사적으로 유급 노동이 남성과 결합되어 노출되어 있는 동안, 무급 재생산 노동은 여성과 결합되어 '사적' 가정의 영역으로 유폐되어 숨겨져 왔고, 자본은 공짜로 그 혜택을 누려왔다. 이것은 사회적 재생산의 제 살 깎아먹기이다.

2. 경제에서 생태로
자본은 생산 투입물의 원천이자, 생산 폐기물의 하수구인 자연 위에서 존재한다. 여기서 자연은 자본울 위한 자원이지만, 회계에서 자연은 제로 비용으로 처리된다. '자연은 스스로 무한히 회복할 수 있다'는 전제하에서 아무런 수선이나 보충이나 화해도 없이 헐값이나 무상으로 사용한다. 여기에 신자유주의는 '더 많은 자연'을 시장으로 끌어들였다. 이것은 자연의 제 살 깎아먹기이다.

3. 경제적인 것에서 정치적인 것으로
사기업과 시장 교환이라는 자본주의는 법률 시스템이라는 공적 권력의 기반위에서 존재한다. 재산권을 보장하고, 계약 내용을 강제하고, 분쟁을 심판하고, 반자본주의 저항을 진압하고, 화폐를 공급하고, 지구적 패권을 이어가는 등, 점점 더 지구화하는 자본주의 경제는 영토 국가들의 국제 시스템이라는 정치 체제를 기반으로 한다. 이것은정치의 제 살 깎아먹기다.

4. 착취에서 수탈로
착취는 자유 계약에 따른 교환으로, 노동자의 '잉여노동시간'을 전유하여 자본을 축적하는 반면, 수탈은 자본가가 타인의 자산을 대가를 지불하지 않은 채 폭력적으로 징발하여 자본을 축적한다. 식량, 소비재 등 수탈로 이루어진 낮은 재생산 비용은 착취받는 임금 노동자가 저임금을 받고도 노동력을 유지할 수 있게 만든다. 즉, 착취는 수탈의 밑받침위에서 높은 이윤을 거둔다.

착취의 대상이 되는 '노동자'는 개인과 시민에 해당하여 국가에 의해 보호받고, 자기 노동력을 자유롭게 처분할 수 있다. 반면 수탈의 대상이 되는 '타자', 즉 동산 노예, 식민지 예속민, 정복당한 '원주민', 부채 노예, '불법 체류자', 유죄 확정 중죄인, 인종분리국가와 그 예속민 등은 부자유하고 종속적인 존재로서, 정치적 보호 바깥에 권리없이 억압된다. 수탈은 인종적이면서 동시에 제국주의적인 억압이며 제 살 깎아먹기의 토대 노릇을 했다.

(저자는 착취와 수탈의 인종적 구분을 이야기하지만, 과거 인천 공항 정규직 논란이나 최근의 삼성전자 성과급 문제를 보면 우리 나라에서 착취와 수탈을 가르는 분할선은 인종이 아니라 정규직 여부 아닐까 싶다. 단지 정규직 여부 만으로 같은 인종을 단절시키는 섬뜩한 분할을 볼 때 어쩌면 K-자본주의의 야만성과 잔인성은 이미 세계를 선도하는 것 아닐까?)

자본주의적 생산은 자립이 불가능하며, 사회적 재생산과 자연, 정치권력, 수탈에 무임승차해왔다. 하지만 자본의 무한히 축적하려는 '자기' 확장 속성은 자신을 뒷받치고 있는 그 조건들을 불안정하게 만든다. 자기 꼬리를 먹는 우로보로스처럼 자본주의는 자신을 존립할 수 있게 하는 그 조건을 놓고 제살 깎아 먹는 짓을 벌인다.

이렇듯 '비-경제적'인 배경조건에 의존하는 자본주의는 단순한 경제적 시스템이 아니다. 자본주의는 '제도화된 사회 질서'이다. 이는 자본주의 전경에서 드러나는 임금노동의 착취가 배후의 젠더 지배, 생태계 악화, 정치적 지배, 인종적,제국주의적 억압과 구조적으로 결부되어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자본주의를 이해하려면 마르크스적 관점을 페미니즘, 생태주의, 정치이론, 반제국주의, 반인종주의 등 다른 비판적 이론과 연결해야 한다.

자본을 '식인종'으로 보는 저자는 경제가 사회, 자연, 정치와 맺는 관계에 대한 새로운 상상을 요구한다. 그 상상은 투쟁의 잠재력을 해방할 것이고, 반자본주의 투쟁은 노동과 자본의 투쟁만이 아니라 사회적 재생산, 구조적 인종주의, 제국주의, 탈민주주의화, 지구 온난화 같은 쟁점을 포함하는 투쟁이 될 것이다.

이 책 '좌파의 길'은 미국의 정치 철학자 '낸시 프레이저'가 2022년 쓴 책이다. 책의 원래 제목은 <Cannibal Capitalism : How our System is Devouring Democracy, Care, and the Planet – and What We Can Do About It>, AI를 통해 번역을 하면 <식인 자본주의: 우리 시스템은 어떻게 민주주의, 돌봄, 지구를 집어삼키고 있는가 – 그리고 우리는 무엇을 할 수 있는가> 이다.

마치 낡은 정치 결사의 선언문을 연상시키는 진부한 번역판 제목, '좌파의 길'이 우리의 편견과 고정 관념을 자극하며 시선을 가리지만, 이 책은 자본주의가 스스로를 지탱하는 기반인 돌봄 노동, 생태계, 민주주의를 무너뜨리는 제 살 깎아먹기의 포식성과 그 극복에 대한 저자의 깊은 사유와 성찰을 담은 책이다.

딱히 자본주의나 마르크스주의에 대해 공부를 한 적 없이, 학창 시절 주워들은 얘기가 전부인 나에게 자본주의란 생산 수단을 독점한 소수의 자본가와 그들에 의해 잉여 노동을 착취당하는 노동자가 어우러져 착취하고 갈등하고 투쟁하며 '공황'이라는 파멸을 향해 달려가는 새드 엔딩의 '경제' 드라마 정도의 느낌이 다였다. 운동권도 아니었고, 노조를 가입한 적도 없고, 생산직 노동을 해 본 적도 없는 나에게는 뭔가 멀고 아스라한 이야기 같았다.

그러나 수십 년 간 현실의 경제적 삶을 살아오면서 느끼고 부딪히는 많은 불편함과 어려움과 억울함과 괴로움은 자본주의라는 것에 대한 많은 의문과 질문과 회의와 비판을 품게 만들었다. 현실 소시민의 삶을 살아오면서 어떤 이론이나 사상과 상관없이 막연하게 쌓아온 이러한 우리의 직관에 저자는 역사적이고 체계적인 틀을 제공해준다. 우리의 의심과 불만이 막연한 불평불만이 아니라 삶과 세상에 대한 예리하고 날카로운 통찰일 수 있다는 것을 알려준다.

사실, 나는 이 책을 이번에 두 번째 읽었다. 2023년 처음 읽었는데, 당시 이 책을 읽고 '저렴한 것들의 세계사'라는 책을 바로 이어 읽었다. 저렴한 것들의 세계사 또한 이 책과 마찬가지로 자본주의가 세계를 저렴한 값으로 '추출'하여 유지해왔고, 그로 인해 기후 위기나 극단적 불평등 같은 현재의 위기가 발생했음을 설파하는 책이다. 현대는 인류세가 아니라 '자본세의 시대라고 주장하며, 현대 위기의 근원에 자본주의를 자리매김한 책이다.

이 책과 비슷한 관점을 취하면서도, '저렴한 것들의 세계사'는 그 추출 대상을 보다 상세하게 명시한다. 즉, '자연, 돈, 노동, 돌봄, 식량, 에너지, 생명'의 일곱 가지를 말하는데, 결국은 이 책의 '돌봄 노동, 생태계, 민주주의'를 보다 세분화해서 이야기하는 셈이다. 또한 낸시 프레이저의 주장이 보다 추상적인 차원에서 이론을 고찰하는 데 비해, '저렴한 것들의 세계사'는 역사를 통해서 보다 명백하고 구체적인 이야기를 상세하게 전개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비슷한 관점의 이야기를 하면서도 서로 다른 특징의 두 책을 읽은 것은 나에게 커다란 자극이 되었다. 오다가다 귀동냥으로 들었던 경제 투쟁의 자본주의가 아니라 삶의 모든 것을 규정하고 구성하는 사회 제도라는 자본주의 이론은 내 막연한 직관과 의문에 갈증을 해소해주고 풍부한 양분을 제공해주는 풍요롭고 맛있는 만찬이 되었다. 살아가기 위해서는 밥과 음식 뿐만 아니라 지식 또한 (그리고 사랑까지) 계속 섭취해야 함을 다시 한 번 깨닫게 해주는 훌륭한 경험이었다.

그러나 자본주의가 경제라는 한정된 틀에 갇힌 시스템이 아니라 우리의 삶과 문명 전체를 포괄하는 사납고 난폭하고 걸신들린 사회 제도라는 확장된 깨달음에도 불구하고 그 위기 극복은 쉬워 보이지 않는다. 저자는 경제를 넘어서는 자본주의에 맞서 경제를 넘어서는 확장된 사회주의를 말한다. 그러나 그 구체적 길은 쉽게 보이지 않는다. 확장된 인식은 오히려 새로운 의문을 던진다.

수년 만에 책을 다시 읽는 지금도 여전히 나는 답을 모른다. 아니, 답은커녕 질문이나 제대로 하고 있는지 모르겠다. 그러나 책을 읽는 것은 과연 답을 찾는 것일까? 책 속에 답이 있을까? 아마도 그렇지 않을 것이다. 책을 읽는 것은 오히려 질문을 찾는 행동일 것이다. 올바른 질문을 하기 위해 책을 읽고 사유하는 것이리라. 답은 책이 아니라 삶에 있다. 살아가며 올바른 답을 쓰기 위해 책에서 올바른 질문을 찾는 것이리라.

'좌파의 길'이라는 길거리 전단지를 연상케 하는 어색한 제목과 '식인 자본주의'라는 거칠고 험한 부제는 이 책을 멀고 어렵게 느껴지게 만든다. 마치 사회 운동가나 노조 활동가나 강단 이론가 같은, 우리와는 다른 사람들을 위한 책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그러나 그렇지 않다. 이 책은 오히려 우리 평범한 생활인들이 읽어야 할 책이다. 우리 소시민들이 알아야 할 세상이다.

내 삶의 곤란과 불편과 궁핍과 어려움은 오직 나의 어리석음이나 나의 게으름이나 나의 잘못 때문에 발생하는 것이 아니다. 자본주의라는 인간 사회와 제도 속에서 살아가면서 만나는 복합적이고 다층적인 위기는 우리의 외로운 삶을 더욱 곤란하게 만든다. 우리는 무인도에 혼자 고립되어 있는 것이 아니다. 우리는 자본주의라는 미로 속에 갇혀 있다. 혼자가 아니라 여럿이.

그 속에서 자신만을 자책하면서 혼자 고민하고 혼자 머리 싸매는 것은 좋은 해결 방법이 될 수 없다. 우리는 좀 더 넓은 눈으로, 좀 더 깊은 시선으로 세상과 나를 바라봐야 한다. 세상 속의 나를 깨닫고, 나와 결합되어 있는 세상을 봐야 한다. 쿠키 속에 박혀 있는 초코칩처럼. 그 속에서 다른 초코칩들을 느껴야 한다. 그리고 계속 질문을 던져야 한다. 길은 어디 있는가? 이 책은 그 안내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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