홀로코스트 산업 - 홀로코스트를 초대형 돈벌이로 만든 자들은 누구인가?
노르만 핀켈슈타인 지음, 신현승 옮김 / 한겨레출판 / 2004년 1월
평점 :
절판


홀로코스트(Holocaust)는 '인간이나 동물을 대량으로 태워 죽이거나 대학살하는 행위'를 뜻한다. 그러나 오늘날 홀로코스트는 2차 대전 중 나치 독일이 저지른 600만명의 유대인 대학살만을 가리키는 고유명사로 통용된다. 그리고 이제 홀로코스트는 산업이다. 그리고 동시에 무기이다.

'홀로코스트 생존자'는 원래 유대인 게토와 강제수용소에서 살아남은 사람들을 지칭하는 말로, 전쟁 종결 후 대략 10만 명 정도였다. 그러나 2000년 이스라엘 총리부에서는 '살아 있는 홀로코스트 생존자들'이 거의 100만 명에 이른다고 발표했다.

수십 년의 세월이 지나면서 생존자가 줄어드는 대신 오히려 크게 늘어난 것은 생존자가 많을 수록 요구할 수 있는 배상 금액이 커지기 때문이다. 1951년 각종 유대인 단체들에 의해 설립된 유대인 보상청구연맹은 독일과 대략 600억 달러의 배상금을 협정을 맺었다. 그러나 그 돈은 대부분 생존자에게 돌아가기 보다는 보상청구연맹의 관련자들에게 돌아갔다.

실제 강제수용소 생존자였던 저자의 어머니는 3,500 달러를 받았다. 저자의 어머니가 나치 박해에 시달리며 6년간 고생한 대가는 보상청구연맹 사무총장 사울 케이건의 12일치, 홀로코스트시대보험청구국제위원회 로렌스 이글버거 의장의 4일치, 홀로코스트 소송을 중재한 알폰스 다마토 전 뉴욕 주 상원의원의 10시간치 보수에 불과하다.

1990년대 들어 홀로코스트 산업은 노골적인 갈취자로 나서고 있다. 홀로코스트 산업은 홀로코스트 시대의 유럽 전역의 유대인 재산에 대한 소유권을 주장하고 있다. 이들은 1998년 7월 집단 소송을 통해 스위스 은행들에게 스위스 은행에 예치된 홀로코스트 휴면계좌에 대한 배상금으로 12억 5천만 달러를 받기로 합의한다.

이들이 이렇게 커다란 돈을 받게 된 것은 미국 대통령과 의회와 언론을 동원한 피해 부풀리기, 얼토당토않은 비방, 경제적 보이콧 위협, 여론 조작 덕분이었다. 그러나 유대인을 위해 스위스 은행에 지속적인 압력을 가해온 미국은 자신들이 저지른 아메리카 선주민 학살이나 아프리카 노예제에 대한 배상을 위해서는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 심지어 이들은 미국 은행이나 이스라엘 은행에 예치된 홀로코스트 휴면계좌에 대해서는 모른 척 한다.

홀로코스트 산업은 스위스와 조정안을 성사시킨 후 독일의 민영 산업에 대해 200억 달러의 배상금을 요구하며 동일한 성공 전략을 전개했다. 결국 독일인들은 막대한 배상금 요구에 굴복했다. 그러나 보상청구연맹은 그 돈을 희생자가 아니라 다양한 특별 프로젝트에 사용했다. 스위스와 독일에서 성공한 보상청구연맹은 미국의 경제 제재라는 철권을 배경으로 동유럽과 오스트리아를 향한 갈취를 시작했다.

공교롭게도 홀로코스트 배상 운동 시기는 빌 클린턴 미국 대통령의 임기와 일치한다. 그의 선거자금의 절반은 유대인의 돈이었다. 영향력 있는 미국의 유대인 단체 및 개인들과 보조를 맞추었던 클린턴 행정부는 2차 세계대전 당시 홀로코스트 희생자들의 재산을 갈취한 것으로 여겨지는 유럽 각국으로부터 수십억 달러를 짜냈다. 그러나 홀로코스트 생존자들에게는 쥐꼬리만한 금액을, 그것도 최대한 늦게 지급했다. 홀로코스트 배상 운동은 사실상 유럽 각국과 홀로코스트 희생자들에 대한 '이중의 갈취'였다.

홀로코스트 산업은 1967년 6월의 아랍-이스라엘 전쟁 이후 탄생했다. 이른바 6일 전쟁에서 보여준 이스라엘의 압도적인 무력에 깊은 인상을 받은 미국은 이스라엘을 중동의 대리인으로 격상시킨다. 미국 주류 사회의 편입 만을 노리고 있었던 미국의 유대인 엘리트들은 이스라엘과 미국의 동맹 강화에 전력을 기울이고, 그동안 외면했던 나치 홀로코스트를 기억에서 다시 살려낸다.

이데올로기적으로 재무장된 홀로코스트는 이스라엘에게도, 미국의 유대인 엘리트들에게도 완벽한 무기가 되었다. 이들은 이스라엘의 침략 전쟁에 대한 비난도, 유대인 엘리트들의 계급 이익 보호를 위한 보수 정책에 대한 반대도 모두 반유대주의로 몰아세웠고, 이제 홀로코스트는 유대인에 대한 모든 비판을 불법화시키는 강력한 무기가 되었다.

미국의 상위 집단으로 성장한 유대인들은 나치 홀로코스트를 인류 역사상 견줄 데 없는 유일무이한 사건으로 만들었다. 홀로코스트가 유일한 것은 유대인이 유일하기 때문이다. 유대인들이 존재론적으로 특별하기 때문이다. 홀로코스트는 절대적으로 유일무이한 역사적 사건이고, 이는 유대인에 대한 천년에 걸친 이교도의 끊임없는 증오의 결정판이다.

역시 나치가 저지른 50만 명의 집시 대학살과 수백만 명의 폴란드인 대학살은 홀로코스트가 아니다. 최소 수천 만 명 이상이 죽어간 아메리카 선주민 대학살도, 콩고에서 레오폴드 2세에 의해 죽어간 1천만 명의 아프리카인 대학살도, 일본 제국주의에 의해 저질러진 아시아 주민 학살도, 크메르 루즈의 킬링 필드도, 르완다의 제노사이드도 홀로코스트가 아니다.

미국에서 홀로코스트 관련 단체들은 100개를 상회하고, 일곱 개의 대형 홀로코스트 박물관이 있다. 그러나 미국 흑인 노예나 아메리카 선주민의 멸망을 기념하는 박물관은 전무하다. 총 17개 주에서 홀로코스트 프로그램을 교과목으로 지시하거나 추천하고 있으며, 많은 대학교들이 홀로코스트 강좌를 개설하고 있고, <뉴욕 타임스>에는 거의 매주 홀로코스트 관련 기사가 게재되고, 관련 학술 논문은 1만 편 이상이다. 반면 콩고에서 유럽 국가들에 의해 죽어간 1천만 명의 아프리카인에 관련된 학술 논문은 한 권 뿐이다.

미국은 해외에서 드러난 범죄 행위들을 부각시키기 위해 홀로코스트를 환기시킨다. 미국은 캄보디아의 크메르루즈 대학살, 소련의 아프가니스탄 침공, 이라크의 쿠웨이트 침공, 코소보에서 세르비아의 인종청소와 같은 적대국의 범죄를 비난하기 위해 홀로코스트를 동원한다. 그러나 미국이 개입된 범죄에는 홀로코소트를 등장시키지 않는다. 미국이 지원하는 인도네시아의 동티모르 대학살은 보도조차 하지 않고, 과레칼라의 마야 원주민 대량학살은 '누명'이라고 주장한다.

이 책은 홀로코스트 산업의 해부이자 고발장이다. 저자 '노르만 '핀켈슈타인'은 유태인 생존자의 아들이다. 그의 어머니도, 그의 아버지도 나치 강제수용소의 생존자다. 그의 부모를 제외하고 양가의 모든 가족들은 나치에 의해 죽임을 당했다. 그는 홀로코스트 산업이 이스라엘과 미국의 범죄 정책 정당화에 사용되는 것에 분노했기 때문에, 홀로코스트 산업이 유대인이 겪은 고통이 아니라 유대인의 부의 증대에만 기여했기 때문에, 유대인 뿐만 아니라 인류가 겪은 다른 고통에도 마음을 열어야 한다고 믿기 때문에 이 책을 쓰게 되었다.

나치 홀로코스트의 비정상적인 상태는 사건 그 자체가 아니라 그것을 둘러싸고 성장한 착취적인 산업에서 기이한 것이다. 이제 남은 것은 그것을 공개적으로 밝히고, 홀로코스트 산업을 중단시키는 것이다. 사망한 자들을 위한 가장 고결한 태도는 그들의 기억을 간직하고 그들의 고통으로부터 배움을 얻으며, 마지막으로 그들을 편히 잠들게 하는 것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