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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레스타인 번역가의 이중생활
알라 알카이시 지음, 서제인 옮김 / 글항아리 / 2026년 6월
평점 :
"매번 우리 사이의 거리를 가로지를 수 있는 어조를 찾아내려고 애썼습니다. 그 거리는 단지 지리상의 거리만이 아니라 언어 사이의 거리이기도 하고, 역사 사이의 거리이기도 하며, 말할 수 있는 것과 침묵 속에 전해야 하는 것 사이의 거리이기도 했습니다."
책을 펼치자마자 만난 온유하고 사색적인 문장에 마음이 들떴다. 그 문장은 나의 시야를 확장하고, 사유를 자극할 것을 예고하는 것 같았다. 그리고 왠지 한강 작가의 따뜻하고 사려깊은 사유를 연상시켰다. 그렇게 반갑게 읽어가다가 뒤 따르는 글에 나는 그만 울컥하고 말았다."그럼에도 저는 지금 일종의 놀라움이 섞인 감사의 마음을 품고 이 글을 씁니다. 마치 어떤 보이지 않는 실 한 오라기가 팔레스타인을, 그리고 특히 가자를 한국 독자에게로 이끌어가기라도 한 것 같습니다."하나의 문장에 일렬로 놓여 있는 '가자'라는 단어와 '한국 독자'라는 단어가 주는 뭉클함을 모른 채 작가는 담담한 어조로 간절함을 계속 이어간다."소중한 한국의 독자 여러분, 저는 그 일을 후회하지 않습니다. 대신 조금 다른 절박함을 안고 이 글을 씁니다. 여러분께 부탁 드립니다. 이 책의 페이지들을 넘길 때, 여기 쓰여 있는 일들이 아직 끝나지 않았음을, 가자 사람들이 여전히 똑같은 조건 아래 살아가고 있음을 생각해주시기 바랍니다. 그곳에서는 휴전이라는 깨지기 쉬운 언어조차 이스라엘의 폭격이, 모욕이, 영토 침범이, 그리고 체계적으로 정밀하게 관리되는 굶주림이 계속되고 있다는 사실을 가려주지 못합니다."미세하게 떨려오는 자책 속에서 나는 계속 글을 읽어 내려갔다."우리 팔레스타인 사람들은 우리보다 앞서 존재하며 우리를 오직 하나의 문제로만 읽히게 만들고, 결코 인간으로 온전히 읽히지 않게 만드는 이미지와 틀에 맞서 싸우고 있기도 합니다. 저 역시 이렇게 축소되는 과정을 겪었고, 제 말을 듣기보다 먼저 해석하는 사람들이 있는 여러 공간에서 그 틀이 제 위로 내려앉는 것을 느꼈습니다."겨우 서문만 읽어 놓고선, 본문의 글들이 무슨 내용인지도 전혀 모르면서도 나는 끄적거리고 싶어졌다. 말하고 싶어졌다. 이 울컥한 먹먹함을, 이 슬픈 미안함을.한강 작가의 노벨상 수상문을 읽으면서 그 많지 않은 나이에서도 은은히 드러나는 사려깊은 인간애와 양심을 자극하는 연민과 고통을 위로하는 사유가 벅찼었다. 4.3과 5.18이라는 역사적 고통을 파고들면서도 자유와 구원을 꿈꾸는 인간 본성에 대한 천착이 그를 그렇게 만들었을까?그렇다면 알라 알카이시라는, 한강 작가보다도 훨씬 어릴 것 같은 이 팔레스타인 작가를 만든 것은 가자의 고통과 꿈일까? 그 고통 받는 사람들과 함께하는 절규일까? 바로 그 자리에 있던 사람의 생명력일까? 그렇게 그는 나를 끌어들이고, 나를 찔러대는 것일까? 그래서 꽃으로도 때리지 말라는 매를, 이렇게 글로 때리는 것일까?작가는 말한다. "내 언어가 나를 완전히 저버리기 전에, 나는 이 글을 쓴다. 이해받기 위해서가 아니라 흔적이라도 남겨두기 위해, 생각이 스르르 녹아내려 침묵이 되어버리기 전에 그 형태를 남겨두기 위해." 그리고 작가는 그 글을 "리파트 알아리르에게, 그리고 가자의 순교자들에게" 바친다.그렇게 작가를 벗어난 그 글은 나를 때린다. 꽃보다도 약한 매질에 나는 잠시, 살짝 움찔한다. 곧 잊어버리겠지만, 그 기억은 지워지지 않을 것이다. 내 뇌리에, 내 심장에 또아리를 틀고 있다가 기회가 생길 때마다 움찔움찔 나를 계속 자극할 것이다. 그런 작은 것들이 모여 내가 되는 것이고, 나는 그렇게 내가 되길 선택하는 것이다. 구석 한 켠에는 악어의 눈물로 자신을 속이고 위로하는 방관자의 부끄러움이 계속 자리한 채, 나는 나로 살아갈 것이다.가자에 대한 이야기는 굶주림으로 시작한다. "배고픔은 자신만의 언어를 키워낸다. 조용하게 사람을 갉아먹는 언어를, 그것은 극적으로, 혹은 요란하게 찾아오지 않는다. 그보다는 몸과 마음에 스며들어 둘 다 흐물흐물해지고, 구부러지고, 닮아 없어지게 만든다. 배고픔은 생각 위에, 기억 위에, 피부의 연약한 껍질 위에 먼지처럼 내려앉는다." 나는 비로소 실존을 알 것 같다.글을 읽는 내내 먹먹하다. 문장은 연꽃같고, 사유는 선혈같고, 의지는 죽음같다. 나는 경험하지 못했고, 상상하지 못했던 세계 속으로 빠져든다. 배고프고 절박하고 해체되고 무너져가는 멀고 막연하고 흐릿한 세계가 문장으로 새롭게 구성되어 나타난다.나는 먹먹한 가슴과 뜨거운 눈시울 속에서 감탄한다. 이것이 문장이 만들어내는 세계구나. 이것이 언어가 만들어내는 세계구나. 글이 생명을 얻어 스스로 존재하는 세계구나. 꿈처럼 막연하고 신기루처럼 흐릿한 현실이 사라지고 문장들이 눈에 새겨져 피를 따라 흘러 심장에 스며들고 뇌리에 박힌다. 그렇게 작가의 사유는 내 안에 숨쉬는 세계를 구축하고, 언어가 만들어낸 세계는 나의 현실을 전복한다. 글이 세계가 된다. 갑자기 그동안 읽었던 모든 글들이 허무해진다. 비로소 팔레스타인과 가자는 새로운 현실이 된다.꿈을 꾸었다. 수염이 덥수룩한 청년이 높은 담벼락으로 둘러 쌓인 마을을 떠나려 하고 있었다. 누가 말해주지 않아도 나는 그 청년이 가자에 갇혀 있는 팔레스타인 청년이란 걸 알 수 있었다. 청년은 두려움에 떨며 위병소를 찾아갔다. 건너편 마을로 가고 싶다고 했다. 어깨에 소총을 메고 있는 군인은 잔인한 웃음을 흘리며 그를 위병소 밖으로 데리고 갔다.국경 밖으로 나가는 좁고 길다란 길이 보였다. 하얀 벽돌로 만들어진 길은 겨우 두 사람만의 어깨로 가득찰 정도로 좁았고, 못 잡아도 2,3 킬로미터는 넘을 정도로 길었다. 청년은 두려워졌다. 뒤에서 소총을 쏘아대면 도저히 피할 길이 없구나. 그때는 바닥에 엎드려 있어야 하나? 청년은 갑자기 집으로 돌아가고 싶어졌다. 그 길을 걷고 싶지 않았다. 그러나 군인은 소총으로 그의 등을 떠밀며 어서 가라고 재촉했다.그는 떨리는 걸음을 내딛었다. 한 발 한 발 걸음을 내딛을 때마다 심장이 터질 것만 같았다. 청년은 더 이상 참을 수가 없다. 그는 달리기 시작했다. 심장을 쥐어짜고, 온 몸의 근육을 비틀어 미친 듯이 달려갔다. 잠시후 연발총 소리가 터져나왔다. 다다다다다 청년은 앞으로 쓰러졌다. 그가 총을 맞고 쓰러진 것인지, 총알을 피해 스스로 바닥으로 몸을 던진 것인지 나는 알 수가 없었다. 그렇게 나는 꿈에서 깨어났다.눈으로 스쳐 읽고 지나가기에는 글이 너무 선명하다. 문장 하나하나가 증언이고, 비명이고, 호소이다. 글이 발을 붙잡고 팔을 붙들고 몸에 엉켜들고 심장을 파고든다. 책을 읽는 내내 눈시울이 뜨거워지고 가슴이 먹먹해진다. 어서 빨리 벗어나고 싶어진다. 그러면서도 한편으로는 빨리 떠들고 싶다. 빨리 이 책을 얘기하고 싶다. 미쳐 다 읽지도 못한 책을 이렇게 조급하게 떠들어 댄다.작가는 가자의 비명을 부르짖는데 나는 글을 얘기한다. 작가는 영혼의 해체를 절규하는데 나는 문학을 얘기한다. 그 괴리가 미안하고 슬프다. 그렇지만 작가는 언어의 생명을 포기하지 않는다. 그리고 나는 책 겉장 띠지에 써있는 광고 문구를 이해한다. "핏속에 품고 뼛속에 기억할 글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