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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읽는 아프리카의 역사
루츠 판 다이크 지음, 안인희 옮김, 데니스 도에 타마클로에 그림 / 웅진지식하우스 / 2005년 9월
평점 :
우리는 세상을 서양인의 시각에서 본다. 그리고 그 시선은 도식적이고 기계적이다. 많은 경우 우리의 시선과 생각은 한쪽으로 치우쳐 있고, 우리 스스로는 그걸 못 느낀다. 다양하고 다층적이고 불규칙적인 세상이 불편하기에 우리는 종종 규칙적이고 정합적인 이론의 틀 안에 세상을 억지로 끼워 넣으려고 하고, 그것이 맞춰질 때 우리는 안도한다. 실제는 그게 아닐지라도.
'모든 것의 새벽'이란 책에서 인류의 발달이 '국가'라는 중앙집권체계를 향한 기계적이고 필연적인 '발전'의 결정론이 아니라 다양하고 역동적인 '선택'의 결과였다고 이야기하는 것처럼, 이 책 '처음 읽는 아프리카의 역사'는 아프리카의 문명이 '원시적'이고 '미개발'된 것이 아니라 서로를 존중하는 보다 자유로운 공동체 문명이었음을 알려준다. 아프리카가 서양인들에 눈에 비쳐지는 것처럼 검은 대륙이 아니라 다채로운 대륙임을 알려준다.
유럽 열강이 아프리카를 짓밟기 시작한 것은 500년도 더 전에 포르투갈 사람들이 서부 아프리카에 도착하면서부터 였다. 아메리카와 많은 아시아 지역들에서도 유럽인들은 착취자이며 압제자였다. 하지만 그 어느 곳에서도 수백만, 수천만 명의 사람들이 붙잡혀서 수천 킬로미터 떨어진 곳으로 끌려가 평생 그곳에서 노예로 살아야 하는 일은 없었다. 노예 생활의 트라우마는 그 후 오랜 세월이 지나도록 아프리카는 물론 유럽과 아메리카에서도 제대로 이해되지 못했다.
맨 먼저 상인과 모험가들이 왔다. 이어서 기독교의 영혼의 구원자와 가난한 이들을 돕는 사람들이 찾아왔다. 아프리카의 세속 지배자와 정신적 지배자 사이에서 아주 훌륭한 협동 작업이 이루어졌다. 아프리카 사람들이 나라를 빼앗기고 가난해지고 권리를 잃어버리면, 선교사가 와서 유럽 사람들의 양심의 가책을 달래주고 동시에 아프리카 사람들이 지속적으로 가난할 뿐만 아니라 가난함 속에서도 평화를 지니고 살도록 도움을 주었다.
아프리카에서 처음 기독교를 전파할 때 나타난 다양한 사고방식을 이해하게 되면, 지금도 아프리카에서 많은 문제를 불러일으키는 원조 형식을 깨닫게 된다. 이웃 사랑의 정신에도 불구하고 이런 원조 형식은 흔히 대화나 동반자 관계를 뜻하는 것이 아니라, 원하건 원치 않건 간에 구원자라는 태도와 의존을 장기적인 것으로 만든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20세기 중반 무렵 아프리카의 다양한 저항 세력의 반대가 너무 강해지자 식민지 지배자들이 물러났지만, 그들의 태도는 전혀 변하지 않았다. 유럽인들은 가장 부패한 아프리카 정치가들이 권좌에 오르도록 도움을 주었다. 겉으로는 '독립'이라는 깃발을 내걸었지만, 유럽 열강이나 미국과 소련이 자국의 이익에 도움이 되도록 꼭두각시 정권을 만드는 경우는 흔했다.
한편, 아프리카의 사람들은 그렇게 엄청난 규모의 노예 매매가 아랍과 아프리카의 상인들 그리고 자국민을 팔아 부자가 된 정치 지도자들의 협조 없이는 가능하지 않았다는 쓰라린 진실을 바라봐야만 한다. 이런 엄청난 규모의 파국에 결정적으로 도움을 준 아프리카의 권위적 구조에 대한 문제 제기도 앞으로 반드시 이뤄져야 할 중요한 과제이다.
아프리카 국가들은 해마다 개발 원조로 받는 돈보다 더 많은 돈을 서방에 빚으로 갚고 있다. 빚은 해마다 늘어만 간다. 서방 국가에서는 온갖 하찮은 것에도 관세를 매기고, 대부분의 의약품은 부유한 서방 국가들보다 가난한 아프리카에서 훨씬 비싸다. 그리고 개발 계획에서 가장 좋은 일자리는 다시 서방에서 온 사람들 차지다. 오늘날 아프리카에는 옛날 식민 시대에 유럽 출신의 관리보다 더 많은 서방의 개발 원조자들이 있다.
아프리카는 앞으로 어떻게 될까? 아직은 알 수가 없다. 모든 것이 가능해 보인다. 한편에서는 아프리카와 그곳의 주민을 지속적인 희생자로 바라보는, 또는 그보다 더 나쁘거나 그와 비슷한 비판적인 시나리오들이 있다. 에이즈 재앙과 언뜻 보기에 전혀 어찌 할 바를 모르는 정부의 반응과 폭도의 싸움이나 내란을 피해 도망친 수백만 난민들이 바로 그 상징이다.
그에 반해 아프리카 사람들이 아무도 부인할 수 없는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독자적인 방법을 찾아낼 것이라고 보는 관점도 있다. 노예 제도와 식민 지배라는 경제적, 심리적으로 심각한 결과에 수십 년 동안이나 흔들리고 난 다음, 이제 아프리카 르네상스의 시간이 왔다는 것이다. 아프리카와 그곳 사람들의 자의식에 넘친 가치 의식이 돌아왔다는 것이다.
어느 쪽 말을 믿어야 옳을까? 다행히 이것은 신념의 문제가 아니라 오로지 아프리카와 나머지 세계가 동반자 관계를 이루고 구체적으로 어떤 행동을 하느냐에 달려 있는 문제이다.
20세기의 해방 운동은 용기와 끈기와 지혜로움으로 많은 아프리카 국가들에서 유럽의 착취의 사슬을 끊었다. 21세기에는 젊은 아프리카 사람들이, 어린이나 청소년으로서, 여성으로서, 다양한 종족과 소수 무리의 대표자로서 서로 민주적인 대화를 통해 자신들의 개인적인 자기 결정권을 실현하고, 그로써 빈곤과 질병과 전쟁에 맞선 싸움에서 개인적으로도 책임을 떠맡는 것이 중요하다.
젊은 유럽 사람들은 자기들 나라에서 아프리카에 대한 선입견으로 이국적인 원시림과 비참함만을 생각하는 일을 넘어서야 한다. 자기 자신과 다른 사람들이 완전히 '다른 꿈을 바라볼' 자유를 허용해야 한다.
'처음 읽는 아프리카의 역사'는 제목이 알려주는 것처럼 아프리카의 역사를 이야기하는 책이다. 그러나 326쪽의 이 얇은 책 한 권에 담기에 아프리카의 역사는 너무나 길고, 너무나 다양하고, 너무나 복잡하고, 너무나 굴곡진 역사다. 이 책은 보통의 딱딱하고 빡빡하고 꽉 채워진 역사책들하고는 좀 다르다. 이 책은 역사책이라기 보다는 차라리 이야기 책이다. 아프리카의 시작과 문명과 사람을 이야기하는.
약 5억 5000만년 전 모든 대륙 중에서 첫째로 생겨났고, 약 300만년 전 최초의 원시인이 두 발로 걷기 시작했고, 약 10만년 전 작은 호모 사피엔스 그룹이 떠나갔고, 기원전 3000년경 이집트의 파라오 제국이 생겨났고, 한 때 유럽의 식민지였었고, 이제 힘겹게 해방의 시대를 만들고 있는 아프리카 사람들에 관한 이야기.
네덜란드계 독일인 '루츠 판 다이크'가 글을 쓰고, 가나 사람 '데니스 도에 타마클로에'가 그림을 그린 이 책은 따뜻하고 다채로운 이야기 책이다. 글에서는 아프리카의 사람들과 문명을 향한 따뜻한 애정과 아프리카의 역사와 분쟁을 향한 아픔과 아프리카의 미래를 향한 기대와 희망이 느껴진다. 글의 중간 중간 삽입된 삽화들은 마치 그림책의 그것들처럼 따뜻하고 부드럽고 다채롭다. 그렇다. 다채로움이 바로 이 책을 관통하는 시선이자 주제이다.
사실 나는 2005년에 이 책을 구입했었다. 그러나 당시 나는 이 책을 끝까지 읽지 못했다. 책의 서술이나 전개 방식이 많이 낯설고 어색해서 집중을 하기가 어려웠다. 아프리카의 역사가 궁금했지만 너무 막연하고 모호했다. 결국 그 책을 중고에 팔았었다.
그리고 얼마 전부터 이 책을 다시 읽을 때가 된 것 같다는 생각을 해왔었다. 그러다가 20여 년이 지난 지금 책을 다시 중고로 구입해서 이번에는 끝까지 읽고 말았다. 이번에는 편하고 수월하게 이 책을 읽을 수 있었다. 20년 전의 '낯설음'이 이제는 '색다름'으로 느껴졌다. 아마도 그만큼 지금의 내가 20여 년 전의 나에 비해 도식적이고 기계적이고 일방적인 사고를 벗어날 수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리고 나는 이제 사람들에게 이 책의 이야기를 하고자 한다. 서양인의 시각으로 박제된 아프리카가 아니라 원래의 아프리카를. 설사 진실에 미치지 못할 지라도, 최소한 아프리카 속으로 들어가서 아프리카인들 자신의 눈으로 보여지는 아프리카에 관한 이야기를.
아쉬운 것은 이 책의 원본이 2004년에 출간되었다는 점이다. 20여 년의 시간에 대한 공백이 있다. 예를 들면 현재의 아프리카를 얘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중국에 관한 얘기가 전혀 없다는 점이다.
하지만 아프리카에 대해 잘 모르는 사람이라면, 서구 문명의 눈으로 비춰진 단편적인 선입견만 갖고 있는 사람이라면, 아프리카에 대해 좀 더 많은 것을 알고 싶은 사람이라면, 아프리카의 눈으로 아프리카를 알고 싶은 사람이라면, 아프리카의 다채로움을 알고 싶은 사람이라면 이 책은 좋은 출발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