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의 해방일지
정지아 지음 / 창비 / 202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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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아버지의 해방일지'를 알게 된건 유시민 때문이다.
2022년인가? 자신이 그 해에 읽은 책 중에 제일 재미있게 읽었다고 했다.
관심 목록에는 넣어뒀지만 딱히 읽고 싶지는 않았다.
빨치산이라니, 생각만 해도 버거운 단어.

근데 내가 하는

독서 토론에 이 책이 채택되었다.
독토 핑계로 책을 읽었다.

책을 읽으면서 제일 먼저 떠오른 생각은 '시대가 변했구나'
이런 책을 수용하고, 이런 책이 베스트셀러가 될 수 있는 세상이구나.
80년대 비해서 우리 사회는 이렇게 여유가 생겼구나

아버지의 해방일지가
80년대가 90년대라면 나올 수가 있었을까?
그런 책을 쓸 엄두를 낼 수 있었을까?
그 당시에 이 책이 나왔다면
좌파든 우파든 받아들일 수가 없었을 거다.

우파는 빨갱이 책이라고 비난했을 거고,
좌파는 변절자 책이라고 비난했을 거다.

80년대에 이 책을 썼다면
결국은 태백산맥이나 남부군 되었을 거다.
근데 지금 세상은 그 만큼의 여유가 생긴 거다.

책을 읽으면서 유시민이 재미있게 읽을 만 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작가 보다 몇 년 앞서긴 하지만 60년대에 태어났고,
사회주의 혁명노선이 지배했던 80년대 학생운동권이었던
유시민이라면 당연히 재미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공동체 의식을 가진 부모에게 냉소적인
개인주의적이고 씨니컬한 작가에게 공감이 갔다.

나는 이 책이 화해에 관한 책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좌파와 우파가 싸웠던 시대에 대해,
농촌과 도시가 벌어졌던 전통에 대해,
아버지와 자식이 틀어졌던 가족에 대해.

빨치산의 딸로서 겪었을 숱한 고난과 노고를 속에 담아두고서
훈훈하고 먹먹한 인간애로 외피를 감싸서
이야기를 풀어내는 작가의 역량은 탁월하다.

마치 진한 사골 국물에 고기 만두를 넣어서 끓여진,
맛있는 만두국을 먹는 듯하다.
뜨겁고, 진하고, 계란까지 풀어져 있고, 파도 동동 떠있다.
국물은 진하고 만두는 고소하다.
근데, 그 만두 속 한 가운데는 빨간 매운 속이 살짝 들어가 있다.
빨갱이라는.

나에게 가장 인상적이었던 대목은
빨치산이었던 아버지가 놓아준 순경이,
아버지의 부대에 합류하려고 할 때,
순경을 쫓아낸 아버지와
먼 훗날 다시 만나서 나눈 대화.
두 사람이 나눈 대화다

"왜 그랬능가요? 참말로 한 번 반동은 영원한 반동이라 그랬능가요?"
"질 줄 알았응게"
"예?"
"질 게 뻔한 전쟁이었소. 우리야 기왕지사 나선 몸이제만 그 짝은 사상도 읎고 신념도 읎는디 멀라고 뻔히 질 싸움에 끼울 것이오"
"은혜를 갚을라는 것은 신념이 아닝가요?"
"아니오. 그것은 신념이 아니오. 사람의 도리제. 그짝은 순겡을 그만둔 것으로 사람의 도리를 다했소. 글먼 된 것이오. 긍게 다시는 찾아오지 말고 자개 앞가림이나 함시로 잘 싸시오."

그렇다.
나는 가장 기본이고, 가장 중요한 것이 사람의 도리, '인간애'라고 생각한다. 이념이건 혁명이건 정치건 연애건 인간에 대한 애정이 시작이고 끝이다.

근데 사람의 도리나 인간애란 말은 너무 막연하다. 그래서 나는 그걸 약자에 대한 연민, 어려운 사람에 대한 측은지심이라고 한정 짓는다. 그게 알파고 오메가다. 그게 없이 지식이고 신념이고 종교고 다 무슨 소용이란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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