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대인, 발명된 신화 - 기독교 세계가 만들고, 시오니즘이 완성한 차별과 배제의 역사
정의길 지음 / 한겨레출판 / 202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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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서문만 읽고 본문을 읽는 건 나중으로 미뤄둔 책들이 몇 권 있다. 그 중의 하나가 이스라엘의 텔아비브 대학 역사학 교수인 '슐로모 산드'가 지은 '만들어진 유대인(The Invention of the Jewish People)'이라는 책이다. 원서가 출간된 건 2008년이라고 하는데, 국내 번역본은 2022년에 나왔다.

국내 책이 출간된 직후에 제목에 흥미를 느껴서 서문을 읽어봤었는데, 내가 기억하는 서문의 내용을 거칠게 요약해보면, '유대인은 혈통에 기반한 민족이 아니라, 유대교라는 종교에 기반한 민족이다' 라고 할 수 있다.

꼭 유대인의 혈통 얘기가 아니더라도, 막연히 의심하던 내용들을 책의 서문에서 접하면서 신선한 충격을 받았다. 근데, 책이 670쪽이나 되었고, 쉽고 편하게 읽기에는 내용이 세밀하고 깊었다. '만들어진 유대인'의 서문을 읽으며, 어쩌면 우리 한민족 또한 만들어진 '단일 민족'은 아닐까 잠시 의심하기도 했지만, 내가 유대인의 정체성에 대해 큰 관심을 가진 것도 아니었기에 나중에 읽을 책으로 미뤄두고, 세월만 가고 있었다.

그러다가 얼마전 책들을 구경하다가 '유대인, 발명된 신화'라는 책을 발견했다. 제목을 보는 순간 느낌이 왔다. '만들어진 유대인'과 비슷한 관점의 책이겠구나. 아니나 다를까, 이 책은 1980년 후반 이후 이스라엘과 서구에서 재조명되고 있는 이스라엘 고대사 및 팔레스타인 분쟁에 관한 연구 성과에 바탕을 뒀고, 그 중에는 '만들어진 유대인'도 포함되어 있다.


한겨레 신문 국제부 선임 기자 '정의길'이 지었는데, 그는 한글판이 아니라 원서를 읽은 것 같다. 한국어 제목도 다르게 표시되어 있고, 결정적으로 그가 글들을 쓴 것은 '만들어진 유대인'의 한국어 판이 나오기 전인 2020년에서 2021년, 주간지 '한겨레 21'에서다. 그는 '만들어진 유대인'을 포함한 여러 학문적 서적들을 바탕으로 유대인과 팔레스타인 압제에 관한, 이해하기 쉽고 잘 정리된 책을 만들었다.

이 책은 교과서와 미디어와 그리고 수 많은 사람들에 의해 회자되는 '유대인'이 아닌 다른 모습의 유대인을 이야기한다. 새로운 각도에서 새로운 이야기를 하는 책을 만날 때 나는 즐겁다. 스포츠 뿐만이 아니라 책에 있어서도, 설득력과 스토리를 갖춘 도전자는 관객을 흥분시킨다. 그 치열한 시합을 사람들에게 떠들고 싶게 만든다.


즐겁게 읽기 시작한 책을 분노에 빠져 끝냈다. 유대인들을 탄압한 서구인들에 화가 났고, 팔레스타인 사람들을 몰아내는 이스라엘에 치가 떨린다.

팔레스타인 사람들을 학살하는 이스라엘을 볼 때 마다, 나치의 홀로코스트를 겪은 이스라엘이 그 극악한 범죄를 배웠구나 생각했었다. 그러나 이 책을 읽으면서 유대인 차별의 역사가 내 생각보다 더 깊고, 더 강하고, 더 광범위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로마가 아니라 이스라엘이야말로 하루 아침에 이루어지지 않았다.

이스라엘이라는 괴물을 키운 서구 제국주의 열강들이, 지금에 와서 가장 민주적이고 양심적인 문명 국가 행세를 할 때면, 그 뻔뻔함과 위선에 욕이 나오기도 한다. 그들의 부와 민주주의는 유대인 말고도 아프리카와 중남미와 아시아의 무수한 사람들을 살육하고, 그 부를 빼앗아서 이룬 문명 아니던가? 그리고 그 자본은 여전히 세계 곳곳에서 죄악을 저지르고 있다.

그러나 때로 평화는 정의보다 급하다. 계속되는 팔레스타인의 참상 앞에서 누가 옳고 그르니를 따지는 게 뭐가 급하겠는가? 그보다 이스라엘의 학살을 멈추는 것이 시급하다. 그러나 누가 그걸 멈추게 할 수 있는가? 책임져야 할 열강들은 자기들의 이익만 추구하고 있다.

세계 최대의 감옥 가자 지구의 팔레스타인 사람들에 대한 이스라엘의 '인종청소'는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불과 8시간 전 뉴스에서 이스라엘이 'UN 학교'를 공습해서 다수의 어린이를 포함해서 최소 39명을 죽였다고 나온다. 말려야 할 미국의 폭탄이 사용되었다고 한다.

그 학살의 끝은 어디일까? 팔레스타인 사람들을 다 죽이면 끝날까? 이란과 시아파 세력들마저 다 죽여야 끝날까? 차별과 홀로코스트가 이스라엘이라는 괴물을 만들어 낸 것처럼, 미국과 이스라엘은 이슬람 테러리스트라는 괴물을 키워내고 있다. '베르세르크'와 다르게 인과율의 실은 계속 이어지고 있다. 모두가 파멸해야 끝날 것인가?

이스라엘이 아니더라도 자원은 줄어들고, 인구는 늘어나고, 욕망은 깊어지고, 경쟁은 거세지고, 양극화는 극심해지고, 혐오는 깊어가고, 자연은 파괴된다. 인류의 지식은 계속 쌓여가지만, 인간의 지혜와 이성은 오히려 오그라드는 것 같다. 오만하고 탐욕스러운 인류 문명이 멸망으로 달리는 것 같다.


예로부터 노인들은 '세상이 말세야'라는 말을 달고 살았다. 나의 암울한 걱정도 내가 늙어가면서 하는 부질없는 넋두리이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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