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별하지 않는다 - 2024 노벨문학상 수상작가, 한강 장편소설
한강 지음 / 문학동네 / 202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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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소라의 노래 '바람이 분다'를 좋아했었다.

그 노래를 듣고 있노라면 떨고 있는 와인잔이 생각났다.
물을 반쯤 머금은 채
고주파의 소리에 폭발할 듯 떨리는 와인잔의 진동이 느껴졌다.
진동하는 유리잔처럼
불안하고 위태로운 감수성을 갖고 살아가는 삶이 어떨지
상상이 잘 가지 않았다.

작별하지 않는다는
전혀 다른 이야기를
전혀 다르게 말하고 있지만
마찬가지로
종이장처럼 얇고, 면도날처럼 예리한 감수성이 내내 불편했다.

우리는 뽀송뽀송한 아기를 겨울 벌판으로 데려가지 않는다.
어쩔 수 없이 나가야만 한다면
꽁꽁 싸매고, 싸매고, 싸맨 다음에 품에 푹 안고서야
간신히 나갈 것이다.
아기 없이 나 홀로 나가는 경우라도
내복과 두터운 바지와 털옷과 방한 파카로 중무장하고
거기에 손난로까지 하나 챙긴 다음에야
간신히 나설 것이다.

이들은 왠지 온통 벌거벗은 나신의 모습으로
벌판으로 나설 것 같다.
어쩌면 자신을 위해
벙어리 장갑 할 켤레나 털 모자 하나 쯤은 챙겼을 지도.

햇살이 노곤한 봄의 벌판이나
하늘이 높은 가을의 벌판은 못 견디고
춥고 황량한 겨울의 벌판을 찾아 나설 것 같다.
그리하여
얼어붙은 대지에 눈보라 날리고 태양은 숨어 들어간
어둡고 춥고 쓸쓸한 겨울의 벌판을 만나면,
그제서야 비로소 이들의 작품은 태어날 것만 같다.

오래전 읽다가 던져버린 책 중에
길리언 플린의 '몸을 긋는 소녀'라는 책과
마커스 세이커의 '칼날은 스스로를 상처 입힌다'라는 책이 있다.

몸을 긋는 소녀는 너무 우울해서 덮었고,
칼날은 스스로를 상처 입힌다는 너무 유치해서 덮었다.

그 내용들은 기억나지 않건만
오늘 종일 책 제목이 나에게 달라붙는다.
한강은
마음을 긋는 소녀 같고
스스로를 상처 입히는 작가 같다.

이들은 나름 일가를 이룬 치열한 예술가들이지만
나는 이들이 하나도 부럽지 않다.

작별하지 않는다를 힘들게 읽으면서
'이렇게 힘들게 써야 하나' 생각하다가
'이렇게 쓰는 작가도 있어야지' 생각했다.

마찬가지로
이런 책을 읽는 독자들도 있어야지.

그러나 나는 그 독자에서 제외되고 싶다.


그렇지만
이런 작품이 있어서
이런 작가가 있어서
다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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