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렴한 것들의 세계사 - 자본주의에 숨겨진 위험한 역사, 자본세 600년
라즈 파텔 외 지음, 백우진 외 옮김 / 북돋움 / 202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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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초에 말씀이 있었고, 만물이 그로 인해 시작되었다고 한다.


21세기에 마블 유니버스가 생겨났다. 마블 유니버스는 지구를 지키기 위해 초인적인 힘을 지닌 슈퍼 히어로들이 필요했고, 그래서 '어벤져스'가 필요했다. 어벤져스는 '지구를 지켜내지 못한다면 지구를 대신해서 복수하겠다. '는 뜻이고, 그 주제는 '어벤저스는 슈퍼히어로 혼자서는 맞설 수 없는 적과 싸운다'는 것이다. 구성원으로는 캡틴 아메리카, 아이언맨, 토르, 헐크, 캡틴 마블, 미스터 판타스틱, 스파이더맨 등등이 있고, 이들의 힘에 의해서 지구는 지켜진다.


15세기에 자본주의가 생겨났고, 자본세(Capitalocene:자본의 시대)가 시작되었다. 자본주의는 그 이윤을 축적하기 위해 인간을 포함한 모든 자연을 저렴한 비용으로 추출해야 했고, 그래서 '프런티어'가 필요했다. 프런티어는 자본이 인간을 포함한 모든 자연을 만나는 지점이고, 자본가와 국가와 제국의 권력이 자연을 적은 비용으로 동원하기 위해 폭력, 문화, 지식을 활용하는 자본주의에 최적화된 장소다. 그 내용으로는 자연, 노동, 돌봄, 식량, 에너지, 돈, 생명의 7가지가 있고, 이들을 저렴하게 추출해서 세계는 유지된다.


맛보기로 닭과 인간의 자본주의적인 관계를 살펴보자.


오늘날 우리가 먹는 닭은 한 세기 전에 소비된 닭과는 매우 다르다. 오늘날의 닭은 수익성을 높이기 위해 2차 대전 후 유전자를 재조합한 결과물이다. 수익성을 높이기 위해 가슴 근육이 부풀려진 닭은 제대로 걷지도 못하는 공간에서 몇 주 안에 성체가 되어 도축되는데, 연간 6백억 마리가 넘는다. 이를 '저렴한 자연'의 표지라고 생각하자.


닭고기는 전 지구에서 가장 인기 있는 육류다. 그만큼 아주 많은 노동력이 투입되어야 하는데 미국에서 판매되는 패스트푸드 치킨 1달러당 양계 노동자의 몫은 2퍼센트에 불과하다. 재소자를 시급 25센트짜리 노동력으로 쓰는 양계업자도 있다. 이를 '저렴한 노동'이라고 하자.


미국 가금류 산업에서 날개 자르는 일을 하는 노동자의 80%는 통증에 시달리고 고용주들은 이런 고통을 무시한다. 그 결과 노동자들은 다치고 나면 10년 동안 소득이 15% 감소한다. 일을 쉬는 동안 노동자들은 가족과 지원 네트워크에 의존한다. 이를 '저렴한 돌봄'이라고 생각하자.


배는 부르지만 불만족스러운 음식들이 이러한 산업으로 생산되어 싼값에 팔려나간다. 이것이 '저렴한 식량'의 전략이다.


닭을 사육하는 대규모 양계장을 따뜻하게 유지하려면 연료가 많이 든다. 미국 가금류 산업의 탄소 발자국에서 연료가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할 정도다. 프로판, 즉 '저렴한 에너지'가 풍부하지 않다면 저비용 닭은 생산할 수 없다.


한편 가공한 닭고기를 상업적으로 판매하는 사업에는 특권과 보조금이 투입된다. 닭 사료용 콩을 재배할 토지에서 소기업 대출에 이르기까지 공공 자금을 투입해 사적인 이익을 뒷받침한다. 이는 '저렴한 돈'의 한 측면이다.


마지막으로 앞의 여섯 가지를 저렴하게 만드는 것은 동물은 물론이고 여성, 식민지인, 빈민, 유색인, 이주민 같은 인간의 특정 범주를 배격하는 지속적인 쇼비니즘 행위이다. 이것이 바로 '저렴한 생명'이다.


우리의 저렴한 것들은 스스로 창조된 것이 아니다. 사회와 자연, 식민지 정복자와 피정복자, 남성과 여성, 서구와 나머지, 백인과 비백인, 자본가와 노동자같은 이분법을 통해서 등장했다. 이 이분법 각각을 통해서 거의 모든 인간과 나머지 자연의 생명이 저렴해졌고, 권력자들은 이 이분법의 경계를 뚜렷하게 유지하는데 모든 힘을 기울여왔다.


노예, 원주민, 여성, 노동자는 애초부터 연결되어 있는 이들 이분법에 맞서 저항해왔다. 자본가들의 전략에 대응해 성공하기 위한 탁월한 가르침 같은 것은 따로 존재하지 않는다. 우리는 자본주의 생태계의 산물이고, 이 생태계의 상태 변화를 제대로 다룰 준비가 되어 있지 않다.


다행히 라 비아 캄페시나, 흑인생명운동, 장애인권리운동, 아메리카 원주민 여성운동, 빵과 장미(Pan y Rosas) 등 자본주의의 프런티어에 저항하면서 복합적이고 체계적인 탈자본주의의 대응을 하는 운동들이 있다.저자들은 이 운동들을 보완할 몇 가지 아이디어를 제시한다.


바로 미래의 인간을 포함한 우리 인간이 자본세 이후 지구의 나머지 부분과도 함께 번성할 수 있는 '보상 생태'이다. 보상 생태는 인식, 보상, 재분배, 재상상, 재창조를 포함한 프로그램이다.


책은 매우 의미있고 인상적인 내용들로 가득하다. '왜 세계가 오늘날과 같은 모습을 갖게 되었는지 그 과정의 역사를 설명하는 책이다.' 그러나 내 지식 수준에서 읽기 편한 책은 아니다. 글이 상세하고 친절하기 보다는 함축적이어서, 많은 경우 '유추'를 해야 했다. 자본주의와 유럽 역사에 대해 풍부한 지식을 갖고 있는 사람이라면 간결하고 명쾌하겠지만, 내 수준에서는 명확하게 이해하지 못한 채 넘어가야 하는 경우가 많았다.


간신히 책이 말하고자 하는 전체적인 주제와 개괄적인 내용을 이해하는 것으로 만족해야 했다. 책의 내용을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더 많은 관찰과, 더 많은 지식과, 더 많은 숙고가 필요할 듯 하다. 그리고 이 책은 그럴 만한 가치가 충분하다.


한편으로는 책이 어려운 것에 번역도 약간의 책임이 있는 것 아닐지 의문이 든다. 책에서 사용되는 '보상'이란 단어. 책의 내용 상 보상이 아니라 배상이 되어야 할 것 같다. 'reparation'을 네이버 영어 사전에 찾아보았더니 배상이라고 나온다. 보상과 배상을 구분하지 못하는 번역자가 과연 이 책의 내용을 온전하게 소화한 것이 맞을까?


재미있는 내용도 많다. 그 중의 하나. 밀은 토양을 걸신들린 듯 집어삼켜 정기적으로 휴경하게 만들고, 그 결과 가축 사육을 하게 만든다. 유럽은 밀을 재배했다. 그 결과로 늘 농업과 축산업을 병행하게 되었고, 육식을 하게 되었다. 쌀은 집중적인 재배 형태로 발전해서 동물을 위한 공간을 내줄 수 없었다. 쌀 재배 지역의 식단에 고기가 그렇게 적은 이유이다.


저자는 라즈 파텔, 제이슨 무어 공저. 그 중 라즈 파텔은 박사이면서 반세계화 활동가라고 한다. 72년생, 나이도 어린데 어찌 그리 똑똑할까? 나 만화책 보면서 희희낙락 거릴때, 그는 공부하면서 싸웠나 보다.


사실 이 책을 읽으면서도 틈틈이 일본 만화 '진격의 거인'을 봤다. 책이 어렵거나 지루해지면 만화를 보고, 만화로 배가 불러지면 다시 이 책을 읽었다. 진격의 거인은 '일본의 침략전쟁을 미화하고, 러일전쟁을 자위전쟁으로 보며, 피해자 코스프레를 하는 일본의 극우적 가치관을 바닥에 깔고 있다'는 비판을 받기도 한 만화이다. 나도 만화를 보면서 그런 의심이 들었다.


탈자본주의 서적과 일본 우익 만화를 동시에 읽고 있는 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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