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사냥꾼의 죽음 클리프 제인웨이 시리즈 1
존 더닝 지음, 이원열 옮김 / 곰 / 2013년 5월
평점 :
절판


‘북스카우트 바비는 1986년 6월 13일 자정에 살해되었다’
이 책은 이렇게 시작합니다. 이 책은 북스카우트와 북딜러, 그리고 책 수집가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미국에는 희귀도서 시장이 존재하는 것 같습니다. 책 수집가, 북딜러, 북스카우트. 이들이 형성하는 초판본 중심의 희귀도서 시장. 마치 골동품 시장같은. 물론 초판본은 초판본 1쇄를 의미하는 겁니다. 이 책의 저자 존 더닝 스스로가 기자 출신으로 중고, 희귀도서 서점을 운영하는 작가입니다.

책의 주인공은 형사, 권투 선수 출신으로, 책을 수집하면서 책딜러를 꿈꾸는 터프한 형사 클리포드 제인웨이. 책수집가가 복싱선수 출신의 터프한 형사라니? 왠지 어색합니다. 저는 이 설정이 터프함을 꿈꾸는 작가의 판타지라는 편견을 발휘해봅니다.

제인웨이 형사는 ‘내 집은 덴버 공공 도서관의 별관 같은 모습이었다. 방마다 벽 전체를 책이 가리고 있었다’고 하는 책 수집가입니다. 이사갈 때 마다 몇 권 되지 않는 책마저 버려가며 본의 아니게 무소유의 삶을 실천해온 저로서는 부럽기만 한 광경입니다.

우리 나라에 희귀본 도서 시장이 있다는 얘기는 들어보지 못했습니다만, 제가 십 몇년 전에 알라딘 중고마켓에서 대망 20권 전질을 판매한 적이 있습니다. 그때 저한테 출판년도, 가로쓰기 여부 등등 자세한 걸 전화로 문의한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 사람에게 헐값에 판매하고는 왠지 손해본 것 같은 아쉬움을 느낀 적이 있습니다^^; 근데 그 사람이 책을 수집하는 것 같았습니다.

멕시코 마약 전쟁을 다룬 '개의 힘’이라는 소설의 경우, 절판되었던 옛 판본을 알라딘 중고에서 누군가 6만원에 팔고 있습니다. 아마 출간당시 정가의 2~3배는 될 가격입니다.
그런거 보면 우리나라도 어떤 식으로든 책을 수집하는 사람들이 있을 것 같습니다. 초판본과 희귀서적을 수집하는 건 아닐지라도. 준수집가? 그런 분들 제법 있지 않나요?

여하튼, 이 책은 범죄 소설입니다. 범죄 소설의 도식적인 구성을 갖추고 있습니다. 사건과 추적과 반전. 주인공이 증오하는 ‘재키 뉴튼’은 이언 랜킨의 존 리버스가 미워하는 ‘캐퍼티’를 연상시키기도 합니다. 그러나 극적인 자극 보다는 화자의 차분하고 분석적인 서술이 은은한 즐거움을 느끼게 합니다.

이 책의 진짜 재미는 책과 작가들의 이야기입니다. 익숙하거나 어색하거나 혹은 낯선 작가들. 그들의 작품에 대해 초판본 가격을 중심으로 펼쳐놓는 짧은 서술과 평가. 신기하기도 하고, 반갑기도 하고, 발끈하기도 하고, 공감하기도 합니다. 한 예로 서문에 나오는 토머스 해리스에 대한 이야기는 저의 평소의 아쉬움과 비슷해서 크게 공감했습니다.

‘분노의 포도’, ‘노인과 바다’, ‘미저리’, ‘타임 투 킬’, ‘매디슨 카운티의 다리’. 그리고 또 다른 책들에 대한 짧고 소소한 이야기. 그리고 상업적으로 또는 맹목적으로 그 책을 사랑하는 사람들. 인터넷 서점이 생기기 전의 그 옛날, 교보문고와 종로서적과 동네 서점과 혹은 중고 책방에서 느꼈던 그 감성을 추억하게 됩니다.

터프하고 거칠지만 사색적이고 분석적인 책 수집가 형사를 쫓아서 듣는 사건과 책 이야기. 그 담담하면서도 진한 즐거움. 향 짙은 커피처럼 쌉싸름하면서도 그윽한 즐거움. 게다가 커피는 일순간이지만, 이 책은 밤새도록.

이 책은 절판이고, 시리즈 전체는 5권이라는데 국내발간은 2권이 끝입니다.
2권 ‘책사냥꾼의 흔적’은 에드가 알란 포의 갈가마귀를 소재로 하고 있습니다. 추리소설적 구성이 더 강화되어서 극적인 재미는 2권이 더 강렬합니다. 추리소설의 때깔을 더욱 화려하게 입힌 그런 느낌?
저로서는 1권의 꺼끌꺼끌한 질감이 더 반갑습니다만.

시리즈 미발간의 아쉬움이 큽니다. 내가 좋아하는 책은 인기가 없다는 걸 다시금 실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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