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A. 컨피덴셜 판타스틱 픽션 골드 Gold 1
제임스 엘로이 지음, 나중길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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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하드보일드의 대가 제임스 엘로이의 소설로 , 동명의 영화 'LA 컨피덴셜' 의 원작 소설입니다.


제임스 엘로이를 처음 접한 사람에게 초반은 낯설고 불편할 수 있습니다.
다양한 인물들의 낯설은 영어 이름들이 성으로 표현되었다가 이름으로 표시되었다가 하면서 누가 누군지 헷갈립니다. 문장은 짧고 건조해서 툭툭 끊어지고, 이야기는 복잡하고 어지럽습니다. 그러나 계속 읽다보면 금새 빠져듭니다.

수사를 사용하지 않는 짧고 건조한 글이 토막 토막 모여가면서 캐릭터는 숨을 쉬고, 이야기는 꿈틀대면서, 방대하면서도 정교하고 치밀한 플롯에 빠져들게 됩니다. 어쩌면 그건 신기할 수도 있고, 아름다울 수도 있습니다.

건조한 문장들을 씨줄 날줄로 촘촘히 엮어놓은 장대한 이야기는 대하소설을 압축해 놓은 듯하고, 그 압축은 머리속에서 차츰 풀려나가며 처음부터 끝까지 이야기의 힘을 잃지 않습니다.

디테일은 놀랍도록 생생하고 리얼합니다. 읽다 보면 허구인줄 알면서도 실제인가 하는 의문을 품게됩니다. 실제의 인물과 허구의 인물들이 뒤엉켜서 만들어내는 이야기는 다양한 목격자들에 의해 증언된 꼼꼼한 기록같은 착각을 불러옵니다.

그러나 제임스 엘로이의 진정한 위대함은 캐릭터에 있습니다. 그가 만들어낸 비정하고 염세적인 느와르 세상에서 등장 인물들은 혼탁하고 다층적인 본성을 그 바닥까지 들어냅니다.

여기에 선한 인간은 없습니다. 불법과 합법을 넘나들고, 야심은 자기혐오와 섞여 있고, 정의의 이면에는 야합이 있고, 폭력은 연민과 엉켜있고, 가장 당당한 건 가장 사악한 자입니다.

주요 인물은 3명. 거칠고 폭력적인 형사 버드 화이트, 뛰어난 두뇌와 커다란 야망의 거짓 전쟁영웅 형사 에드 엑슬리 , 어두운 양심을 숨기고 쇼맨쉽에 능숙한 형사 잭 빈센즈.
이들은 그 폭력과 야심과 쇼맨쉽에도 불구하고, 위태로운 밤거리를 비틀거리는 취객처럼 불안하고, 보이지 않는 끈에 휘들리는 인형처럼 운명적입니다.

이중에서도 자꾸만 감정이입 되는 건 '여자에 대한 감상적인 애정을 갖고 있는' 버드 화이트입니다. 그는 작중 배경인 1950년대 기준으로도 난폭한 폭력 형사입니다. 여자를 학대하는 남자들에게 집착적인 폭력을 휘두르고, 창녀들에게는 감상적인 호의를 베풉니다.

제 멋대로의 짐작으로는 제임스 엘로이의 비극적인 개인사가 투영된 건지도 모르겠습니다. 그의 나이 열살 때, 어머니는 강간 살해됩니다. 범인은 끝내 잡히지 않습니다. 그의 또다른 소설 '블랙 달리아'는 어머니에게 바치는 고별사입니다.
'어머니, 스물아홉 해가 지난 지금에야 이 피 묻은 고별사를 바칩니다'

국내에서 출간된 제임스 엘로이의 소설은 '블랙 달리아', 'LA 컨피덴셜', '아메리칸 타블로이드' 3권 밖에 없지만, 제게는 그 주인공들이 비슷해 보입니다.
거칠고 상처받고 자기 파괴적이고, 그러면서도 끝내 놓치지 않는 자기 나름의 정의감과 사건을 향한 끝없는 집착. 어쩌면 고별사에도 불구하고 놓지 못하는, 어머니의 죽음을 향한 집착일지도 모르겠다고 저는 제 멋대로 짐작합니다.

그 주인공들을 보면서 그 상처와 어둠과 집착에 나 또한 빠져듭니다. 같이 밝은 곳으로 나오고 싶습니다. 그들에게 박수를 쳐줄 수는 없지만, 그들을 위해 흘릴 눈물은 가득합니다.

이 소설을 이번에 4번째 읽었습니다.

매번 읽을 때마다 더 재미있고 더 빠져듭니다. 복잡한 이야기에 대한 이해도가 높아져서 그런 건지, 그때마다 더 늙어 버린 나의 감성 때문인지는 나도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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