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이컵을 위하여
윌리엄 랜데이 지음, 김송현정 옮김 / 검은숲 / 2013년 8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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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년전에 읽었던 책입니다.

내용은 기억 나지 않는데 재미있었다는 기억때문에 다시 한 번 읽게 되었습니다.
재미있다는 기억만 있고 내용이 기억에 없다는 건 저에게 최고는 아니었다는 얘기겠죠^^;

주인공은 검사입니다, 탄탄하게 자리를 잡은 베테랑 검사.
살인 사건이 벌어지고, 피해자는 아들의 학교 친구입니다.
근데 검사의 아들이 강력한 용의자로 떠오릅니다.
검사는 사건에서 밀려나고, 이제는 자신의 아들을 변호해야 합니다.
그렇게 이야기는 시작됩니다.

미국 범죄소설과 법정소설을 읽으면서 제일 부러운 건 그들의 사법체계입니다.
경찰이 수사하고, 검사가 기소하고, 변호사가 변호하고, 판사가 재판하고, 배심원이 판결하고, 기자가 이 모두를 감시하고.
검사가 수사하고, 검사가 기소하고, 변호사가 변호하고, 판사가 재판하고, 판사가 판결하고, 기자는 검사의 정보원인
우리 나라와는 너무 다릅니다
검사장 주민직선제, 법원장 주민직선제, 대배심제 등등을 제외하고라도 우리와 너무 다릅니다.
재판이라는 운동장 혹은 전장에서 경찰, 검사, 판사, 변호사, 기자는 모두 각각의 선수들입니다.
이 각각의 선수들이 자신의 승리를 위해 치열하게 싸웁니다.
가히 자유주의의 진수 아닐까요?

어쩌면 이런 체계 덕분에 그들의 범죄물과 법정물이 재미있는 지도 모르겠습니다.
이들이 벌이는 치열하고, 정교하고, 교활하고 때로는 야비한 공방,
거기다가 종종 덤으로 주어지는 진실과 정의의 카타르시스까지!
그리고 그 과정에서 펼쳐지는 삶과 인간의 다양한 모습들.
이것이 영미 범죄 소설과 법정 소설이 나에게 주는 재미의 진수인 것 같습니다

그에 비해 우리나라는 오직 검사와 판사만이 선수입니다. 그리고 심판입니다.
가장 큰 문제는 검사와 판사가 이익 공동체라는 겁니다. 전관비리 이익공동체.
그들이 모든 걸 결정합니다.
평소에는 제법 공평한 사법 체계를 흉내내지만, 커다란 이익이 걸린 사건들에서는 검사와 판사가 모든 걸 결정합니다. 증거는 필요 없습니다.
법이 구현하는 건 정의가 아니라 이익입니다.
이래서 우리나라의 범죄물, 법정물이 추리와 논증은 빈약하고 감성과 관계에 천착하는 지도 모르겠습니다.
최소한 나한테는 그렇게 보입니다.
이 소설의 무대가 우리 나라였으면 엉뚱한 사람이 피고인이 되어 유죄 판결을 받고, 이 검사는 정의와 공정의 상징이 되어서 찬양받겠죠?

근데, 미국의 이 자유주의 형사 재판에서도 개인은 공권력에 비해 너무 나약하고 불리한 존재입니다.
그래서 무죄 추정의 원칙이 강조됩니다.
공권력과 사법부의 멋대로의 처벌과 살인을 막기 위해서 '합리적 의심의 여지없이' 죄를 밝혀야 하는 겁니다. 다섯 번 째 증인에서 미키 할러의 표현을 빌면 '합리적인 의혹을 넘어서‘야 유죄인 것입니다.

물론, 미국의 제도도 현실에서 오류를 막을 방법은 없습니다.
그러나 이익공동체의 자기들 멋대로의 조작과 농단은 막을 수 있습니다.
제 생각에는 이 미국의 사법 쳬계는 많은 단점들에도 불구하고 민주주의를 떠받드는 기둥이라고 생각합니다. 범죄자들이 그렇게 좋아하는 자유민주주의를 떠받드는 힘.

미국 범죄 소설과 법정 소설로 형성된 나의 사법적 인식으로는, 대한민국의 사법 체계는 너무 뻔뻔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최소한의 염치와 양심마저 없는.
젊은 시절, ’유전무죄 무전유죄‘를 절규하며
holiday 선율 속에서 자살을 기도했던
지강헌의 절규가 주는 비장미에 전율했었지만,
나이 먹으니 그 당사자들의 절망과 분노를 짐작조차 못 하겠습니다.
개인적인 의견으로는 헌법 1조 1항을 '유전무죄 무전유죄'로 바꾸면 좋겠습니다.
수십 년을 살아오면서 그 맛뵈기라도 한 건, 예비군 훈련 불참으로 즉심 받고 벌금낸 거 2번이 전부이니 어쩌면 나는 행운아일지도 모르겠습니다.

다시 책으로 돌아가면,
사법 체계와 가족에 대한 상념과 고민들을 던져줍니다.
오류를 배제할 수 없는 시스템, 피고인이 감당해야할 어마어마한 경제적인 부담, 아마추어 문외한인 배심원에 맡겨지는 판결, 근데 검사와 판사도 문외한 배심원과 마찬가지로 진실을 알수는 없다는 걸 작가도 지적합니다.

그리고 가족 관계에 대한 많은 생각 거리를 던져줍니다.
가족은 축복이자 저주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사랑이 그럴진대 거기에 피와 유전자까지 더해졌으니.

이야기 자체도 재미있습니다.
범죄 소설과 법정 소설로서의 형식과 재미도 잘 갖췄습니다. 진지한 주제들이 소설의 전개에 녹아들어서 소설의 재미를 더 깊이있게 만들어 줍니다.
편하고 시원한 책은 아니지만 진지하게 빠져들만한 책입니다.
반응도 아주 좋아서 여러 매체에서 올해의 책(2012년)에도 선정되었고 수상도 하고 베스트셀러였다고 합니다.

많은 미국 범죄소설 작가가 그런 것처럼 이 작가도 법조인 출신입니다, 미국 지방 검사. 덕분에 탄탄하고 충실한 구성을 갖췄습니다. 이 작가의 다른 작품인 ’미션 플래츠‘도 구해서 읽어볼 계획입니다.

원래 내가 범죄소설과 법정 소설을 좋아하는 건
현실 따위는 잊어버리고 추리와 논증과 공방과 카타르시스에 빠져들기 위함인데,
'시절이 하 수상'하다 보니 오히려 소설을 읽으면서
뻔뻔스러울 정도로 터무니없는 현실을 자꾸 돌이키게 되어
책을 읽어나가는 데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자꾸 책을 덮게 되더군요.

이 재미있는 소설을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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