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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의사 장기려
손홍규 지음 / 다산책방 / 2008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어느날 문득 박사님이 보고 싶어 네이브에서 박사님 이미지를 클릭 했더니 '청년의사 장기려'라는 책 표지에 하얀 가운을 입은 박사님의 젊은 시절 모습이 그려져 있었다. 얼마나 반가웠던지. 박사님의 젊은 시절을 소설로 그린 책이었는데 주문을 해 앉은 자리에서 단숨에 읽었다.
박사님의 젊은 시절에 대해서는 잘 알지 못했던 터라 박사님을 새롭게 만나는 느낌이었다. 박사님의 성품이나 인품을 아주 가까이서 접하는 듯했다. 박사님의 평전을 읽어보지 않아서 어디까지가 사실이고 어디까지가 가상인지 모르지만 읽는 동안만은 모든 게 논픽션으로 느껴지듯 잘 읽혔다.
책을 읽기 전에는 '쳥년의사 장기려'가 크로닌의 소설 '성채'의 주인공에 필적하는 인물이라 생각하고 개인적인 욕심을 부려 그 이상을 기대했었다. 그러나 충분한 가능성이 있는 인물임에도 불구하고 작품성은 그에 따라주지 못했다. 무엇 때문일까.
우선 인물소설이라는 틀에 너무 얽매여 전기나 평전 식의 생애를 나열하는 단순한 구조를 보이는 점이 소설의 이야기구조를 방해하고 있었다. 성격이나 성품을 잘 묘사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자연스런 흐름의 심리적 갈등을 인물의 것이 아닌 작가자신의 설명으로 처리 함으로서 형상화에 미흡한 감을 주지 않았나 싶다.
워낙 유명하신 분이라 이광수, 조만식, 함석헌, 김일성 등 역사적 인물들과의 만남이 자연스레 녹아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 때문에 오히려 그 인물들과의 에피소드 모음집 같은 느낌을 지울 수 없는 것은 읽는 사람의 편견이나 선입견일까. 그러한 인물들에 대한 편견이나 선입견이 없는 외국인들이 읽었을 때 과연 나열식 에피소드 모음이 아닌 자연스런 이야기구조 속 감동으로 녹아 전달되는 것일까. 예술작품은 역사적 인물화의 수준을 뛰어 넘는 그 무엇으로 녹아 들어야 한다.
그와 반대로 작가가 창조한 인물인 듯한 평범한 사람들이 몇몇 등장하는데 그 인물들은 오히려 과장된 우연처럼 포진돼 있어서 유명인들과의 괴리를 느낄 정도로 작품성을 방해하고 있었다. 박의원과 그 아들 박종훈, 그리고 박대길이 설사 실재하는 인물이었다 해도 그 뒤 우연한 만남들이 억지처럼 포진돼 있음을 지울 수 없었다.
이런 나의 느낌들은 박사님에 대해 내가 너무 많이 알고 있거나 역사적 인물들에 대한 나의 개인적 선입견 때문일 수도 있다. 단순히 설명조의 인물묘사에만 치중해 읽는다면 그 묘사들은 나무랄 데 없이 훌륭하게 감동적으로 읽힐 수 있다. 그러한 감동은 박사님의 인품에 대한 감동이지 소설적 감동이 아닐 수 있다는 것이다. 아무튼 인품에 대한 묘사는 감동적으로 쓰여졌음을 거듭 독자들에게 전하고 싶다.
한 인간이 다른 인간을 그보다 더 이상 온전히 사랑할 수 없다는 게 내가 알고 있는 박사님이고 그러한 박사님을 잘 그려주고 있다는 점에서 작가의 수고와 노력에 깊이 감사한다. 차후에 청년의사 장기려의 후편에 해당하는 노년의 장기려를 집필해 줄 것을 부탁하며 그 작품은 부디 역사적 인물에 대한 강박을 떨쳐버리고 연애소설 같은 자유로운 필치로 쓰여진 문학다운 문학이 되었으면 하고 기대해 본다. 생전에 그 분을 기리는 기러기 같은 여인들이 많이 있었다고 알고 있다.
평소에 박사님은 내가 박사님에 대해 띄워 올린 자유로운 글들에 공감을 표하셨다. 그처럼 박사님은 당신 자신을 공경하는 사람으로보다 자연인으로서의 당신으로 기려질 것을 원하셨다. 윤리로서의 사랑이 아닌 자유로서의 사랑을 늘 갈망하셨다.
장기려, 만인이 쉴 수 있는 사랑의 숲으로 길이길이 기려졌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