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망의 시대 - 새로운 중국의 부, 진실, 믿음
에번 오스노스 지음, 고기탁 옮김 / 열린책들 / 201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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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월 한 달 동안 공부하는 느낌으로 요약해가면서 열독한 책. 리뷰를 쓰려 했는데 끄적끄적 해둔 것들이 좀 무거운 내용인 것 같아서 고민하다 이제야 적는다.

중국을 좋아해서 읽은 게 아니라 정말 알고 싶어서 읽은 책. 다 읽었을 땐 다큐멘터리 한 편 본 것 같은 느낌이다.

8년간 중국 특파원으로 활동한 '뉴요커' 지 기자 에번 오스너스가 쓴 21세기 중국에 관한 이야기이다.

블로거부터 길거리 사람들, 정치인, 기업인까지 다양한 사람들을 인터뷰하며 '야망의 시대'에 살고 있는 중국인들의 생활을 객관적으로 풀어썼다.

주관적인 생각을 최대한 배제하고 다양한 관점에 있는 중국인들의 시각을 골고루 섞어 써서 어떤 사건에 대해서도 대립된 입장의 대표 인물들이 가진 생각, 대다수의 대중들이 가진 생각, 정부의 태도 등 여러 가지 관점에서 사건을 바라볼 수 있게 해준다. 자연스럽게 드는 내 생각도 덤으로.

마오쩌둥 시대부터 21세기 눈부시게 급속도로 발전한 현재까지의 중국을, 그리고 그 중심에 서있는 사람들의 생각을 읽을 수 있다는 점에서 굉장히 흥미로운 책이다.

600페이지 가까이 되는 두꺼운 책이지만 되게 재밌는 다큐멘터리 보는 느낌으로 빠져들어서 읽은 것 같다.

책을 보는 내내 단지 중국만의 이야기가 아니란 생각도 들어서 더 집중해서 본 듯. 아니, 몇몇 에피소드는 현재 우리나라에서 일어나는 일들이 떠오르기도 해서 답답하면서도 안타까웠다.

 

p.41

중국은 고도로 기능하는 독재 정권을 유지했다. 독재자가 없는 독재 정권이었다.

p.275

현실에서의 중국 헌법은 공산당을 넘어서는 법적 권위가 없었고, 따라서 아무런 의미가 없었다. 중국 공산당이 찬양하는 <민주주의> <민주 집중제>, 즉 당 내부에서 논쟁을 벌이고 최종적으로 결정이 나면 무조건 따른다는 개념을 의미했다.

 

p.57

집단을 따라야 한다는 압력은 엄청났다. 문화 대혁명 기간에 서쪽 사막으로 추방당하고 그곳에서 아내가 자살하는 등 공포에 떨었던 한 의사는 후에 이렇게 말했다.

「중국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다른 사람에게 자신의 본심을 내보이지 말아야 한다. 안 그러면 언젠가는 그것이 자신에게 독이 될 수 있다. (중략) 그렇기 때문에 나는 자신의 가장 속 깊은 이야기를 불분명하게 남겨 두는 것이 최선이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중국 산수화 속의 안개와 구름처럼 당신의 사회적인 모습 뒤에 존재하는 개인적인 부분을 감추어라. 당신의 공적 자아를 저녁 식탁의 쌀밥처럼 만들어라. 즉 특징이 없고 눈에 띄지 않으면서 함께 먹는 다른 반찬의 향미를 살리되 그 자체의 향미를 풍기지 않도록 해라.

p.83

야망의 시대에는 과거가 아닌 미래가 그 사람을 평가하는 기준이 되었다.

사회주의 시절의 중국인들은 부모와 조상의 <정치적 신뢰성>을 평가했지만 이제는 남녀 모두가 잠재력, 특히 소득 잠재력에 근거해서 서로를 평가했다.

p.115

인구가 50만 명 남짓한 마카오는 중국의 확장판이자 축소판 같은 느낌을 준다. 중국과 동일한 야망과 위험, 자기 창조의 조합을 원동력으로 삼지만 엄청난 양의 현금과 유동 인구가 그 조합으로부터 정제한 추출물은 너무나 강력해서 그 자체가 도시의 가장 큰 장점이자 약점으로 보일 정도다.

p.158

우리 가이드가 유럽의 느리고 우아한 속도를 비웃었듯이 정다오의 말에 따르면 그녀의 고향 사람들은 <어떤 것이든 밀어젖히고 나아가지 않으면 다음이 없다>고 믿게 되었다.

우리가 횡단보도를 다 건널 때까지 멈춘 채 기다리는 자동차를 보면서 그녀가 비교했다. 「고향의 운전사들은 <나는 멈출 수 없어. 멈추면 아무 데도 못 갈 거야>라고 생각해요.

독재자가 없는 독재 정권, 민주적이지 않은 민주주의 체제.

개인의 의견을 드러내기 힘든 강한 집단성.

끊임없이 앞으로 나아가지 않으면 불안한 사람들.

21세기 야망의 시대를 살고 있는 중국인들의 이야기.

청도나 상하이 여행할 때 엄청나게 많은 차들이 지나다니는 데 그 사이로 사람들이 아무렇지 않은 표정으로 무단횡단하는 모습을 여러 번 본 적이 있다. 차들도 중앙선이니 신호니 다 무시하고 쌩쌩 달리고..

우리나라도 예전엔 고속도로에서도 무단횡단하고 그랬다던데. 너무 급속도로 발전해서 생긴 부작용일까.

p.167 ~ p.168

새로 출현한 중산층을 설득할 수 있는 선전을 만들기 위해 그들은 또 다른 미국 광고계의 대부를 포용했다.

작고한 정치학자 헤럴드 라스웰이었다.

그는 1927년에 <쇠사슬에서 자유로워지고 싶은 대중은 은으로 된 사슬을 받아들여야 한다>고 썼다.

한때 자본주의의 앞잡이들을 비난하는 것으로 경력을 시작했던 공산당 선전관들은 이제 코카콜라의 성공 사례를 연구했고, 중국의 한 광고 교재에서 이야기하듯이 코카콜라가 <이미지만 좋으면 어떤 문제도 해결할 수 있다>는 사실을 증명했다고 주장했다. (...)

공산당 내 학자들의 지적대로 <사람들의 생각을 지배 이데올로기와 일치시켜서 그들의 행동을 표준화하는 문제>가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해졌다.

. 그래, 내가 이 책을 보면서 뭔가 안타깝기도 하고 답답하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슬프기도 했던 건.

정말 중국만의 이야기가 아닌 것 같다는 느낌이다.

쇠사슬에서 자유로워지고 싶은 대중은 은으로 된 사슬을 받아들여야 한다.

이게 1927년에 쓴 말이라니.

p.174

후에 저명한 작가이자 편집자가 된 우쓰에게 그 일은 두 개의 평행한 현실 세계를 보여 주었다.

그가 내게 말했다.

「하나의 이야기는 대중이 알고 있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실제 현실입니다.

p.207

그가 내게 <당신은 민주주의 덕분에 먹고사나요?>라고 물었다. 「당신은 빵을 먹고 커피를 마셔요. 민주주의가 이런 것들을 가져다주는 것은 아닙니다. 인도 사람들도 민주주의를 채택했고 일부 아프리카 국가들도 민주주의를 채택했지만 그들은 자국민들을 먹여 살리지 못하고 있잖아요.

류가 계속해서 말했다. 「중국 사람들도 이제 <한편으로는 윤택한 삶을, 다른 한편으로는 민주주의를> 생각하기 시작했어요. 민주주의가 정말로 윤택한 삶을 제공할 수 있다면야 좋겠죠. 하지만 민주주의를 채택하지 않아도 여전히 윤택한 삶을 누릴 수 있다면, 우리가 굳이 민주주의를 선택할 이유가 있을까요?

민주주의가 없이도 중국은 여전히 인도와 같은 가난한 민주주의 국가보다 잘 살고 있으니 민주주의는 필요 없다는 류와 린이푸. 빈부의 격차는 다른 게 아닌 부패에서 온다고 주장하며 서구식 민주주의를 채택할 필요도 있다고 말했다가 민족주의자들에게 맹 비난받은 우징롄.

민주주의 건 독재 건 부패가 빈부 격차를 만든다는 말은 정말 동감이다.

류는 민주주의가 없이도 중국은 이전보다 잘 먹고 잘 산다고 말하지만, 단순히 GDP가 높으면 모두가 잘 먹고 잘 산다고 말할 수 있을까.

p.224

린이푸는 자국의 호경기를 일컬어 <중국의 기적>이라고 묘사하길 좋아했다. 하지만 진보주의 작가이며 비평가인 류샤오보가 이의를 제기했다.

그는 자신의 눈에 보이는 거라고는 제도적 부패라는 <기적>과 불공평한 사회라는 <기적>, 도덕적 퇴락이라는 <기적>, 낭비된 미래라는 <기적>밖에 없다고 썼다.

린이푸가 중국의 기적이라고 말하는 부분에서 왠지 모르게 우리나라의 예전 모습과 오버랩되는 것 같다. 그리고 기적 같은 부패만 남았다고 말하는 류샤오보.

우리나라도 이때의 중국도 어찌 보면 사상과 이념 때문에 양극으로 대립될 수밖에 없는 문제를 두고 싸우고만 있지 본질은 보지 못한다는 생각도 든다.

p.243

한한은 글을 통해 노동자들에게 그들의 <낮은 임금을 합쳐 봐야 사장이 타는 롤스로이스 자동차의 볼트 한 개 값밖에 되지 않으며, 따라서 공연히 새로운 번영을 암시하는 표제들에 들떠 환호할 이유가 없다>고 촉구함으로써 중국의 급성장을 둘러싼 공식적인 진실에 잽을 날렸다.

그리고 중국 정부를 시원하게 비판해주기 시작한 한 블로거, 한한의 등장.

블로그와 중국 사회를 풍자하는 책으로 유명해진 한한이라는 인물은 책에 따르면,

'그는 유일하게 기업의 후원을 받는 정부 비평가이자 보보스족 감성에 맞춘 열정적인 대변자였다.'

p.334 - p.335

원저우에서 발생한 충돌 사고로 40명이 목숨을 잃었고 192명이 부상을 당했다. (...) 중앙 선전부는 충돌 사고와 관련해 언론사에 최소한의 관심만을 보이도록 지시했다. <의문을 제기하지도, 자세히 다루지도 말라>라고 경고했다. 이튿날 아침 중국 최초의 고속 열차 충돌 사고를 1면으로 다룬 신문은 한 곳도 없었다. (...) 충돌 사고 후 며칠 만에 웨이보에는 충돌과 관련한 글이 중국 전역에서 1천만 건 넘게 올라왔는데 대체로 다음과 같은 정서를 보여 주는 내용이었다. <나라가 얼마나 부패했으면 번개 한 방에 열차가 충돌할까. (....) 우리 중 누구도 예외일 수 없다. 오늘날의 중국은 뇌우 속을 달리는 열차와 같다. (....) 우리 모두가 이 열차의 승객이다.>

p.342

다른 많은 사람들처럼 딩위신은 정부의 회계 감사관들이 뒤늦게 알게 된 어떤 사실을 진즉부터 알고 있었다. 중국에서 요란하게 진행되는 대다수 공공사업 프로젝트가 부정을 저지르기에 거의 완벽한, 요컨대 불투명하고, 감시가 소홀하고, 현찰이 넘쳐 나는 생태계라는 사실이었다.

p.351

1799년에 결국 몰락한 관료 화신은 국가의 1년 치 예산보다 열 배나 많은 재산을 축적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1935, 작가이자 번역가인 린위탕은 <중국에서는 지갑을 도둑질하면 체포될 수 있어도 국고를 도둑질하면 체포되지 않는다>라고 지적하기도 했다.

p.376 - p.381

새로운 분위기가 꿈틀대기 시작했다. 중국의 호황이 거의 모든 사람을 어느 정도는 더 잘 살게 만들었고 평균 소득도 10년 전과 비교해서 세 배 이상 늘었지만 빈부 격차는 당이 의도했던 것보다 훨씬 심각했다. (...) 하지만 소득과 관련한 수많은 논란에도 불구하고 정작 사람들이 가장 신경 쓰는 부분은 기회의 격차라는 사실이 점점 분명해져 갔다. (...) 기회가 사라진다는 느낌과 더불어 자수성가한 사람들의 신화도 퇴색했다. (...) 중국에서 지내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나는 사람들이 경제적 호황을 마치 좌석수가 제한된 기차처럼 여긴다는 느낌을 받았다. 좌석을 선점하거나 적당한 연줄 혹은 적당한 뇌물을 써서 확보한 사람들에게 발전 속도는 상상을 초월할 정도였다. 반면 그러지 못한 사람들은 자신의 발을 최대한 바쁘게 움직여 가능한 빠르게 달리지만 결국에는 기차의 뒤통수가 저 멀리 사라지는 모습만 볼 수 있을 뿐이었다.

p.389 - p.391

문화 대혁명은 권력을 잡으려는 마오쩌둥의 마지막 행보였다. (...) 1960년에 이르자 마오쩌둥에 대한 숭배는 통제 불가능한 상태가 되어 중국의 미래까지 위협하는 수준이 되었다. (...) 덩샤오핑의 경제 개혁으로는 마오쩌둥의 문화 대혁명이 파괴한 중국의 오랜 신앙 체계를 재건할 수 없었다. 부에 대한 끈질긴 추구는 중국이 과거에 겪은 궁핍을 덜어 주었으나 국가와 개인의 궁극적인 목적을 규정하는 데는 실패했다. 이제 진실은 명백했다. 중국 공산당은 야만적 자본주의, 뇌물 수수, 만연한 불평등으로 가득한 나라를 통솔하고 있었다. 경제 성장을 위해 전력 질주하면서 중국은 한때 부패와 부도덕을 저지하던 모든 방어 장치들을 무시한 채 앞으로 나아갔다. 중국인의 삶에는 <징선콩쉬> <정신적 공허>라고 이름 붙인 빈자리가 생겼고 이 자리를 다른 무언가로 채워야 하는 상황이 도래했다.

p.424

천둥양에게도 손녀가 있었기에 나는 <손녀가 자라서 어떤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어요?>라고 물었다.

「그건 사회가 어떻게 흘러가는지에 따라 달라요. 만일 좋은 사람들이 이 사회를 이끌어 간다면 손녀는 좋은 사람이 되어야겠죠. 하지만 나쁜 사람들이 다스린다면, 글쎄요, 나쁜 사람이 되는 수밖에 없지 않을까요?

사회 심리학에는 <제노비스 신드롬>으로 알려지게 된 유명한 <방관자 효과>라는 이론이 있다. <지나치다>라는 이름의 챕터에는 어린 여자아이 샤오웨웨의 뺑소니 사고와 이를 방관하는 중국인들, 그리고 제노비스 사건이 등장한다. 그리고 그 사건이 일어난 장소를 다시 찾아간 작가가 근처 상인인 천둥양과 얘기하며 한 이 대화 속 한마디가 어쩌면 이 챕터에 등장하는 비인간적이고 이해할 수 없는 사건들을 한마디로 요약해주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샤오웨웨의 영상을 보며 그리고 제노비스 사건에 충격을 받은 사람들이 하나같이 "그러한 사람들을 이해할 수 없다", "비인간적이고 비양심적이다"며 비난했지만, 나로서도 그 사건을 비난하기는 쉬워도 막상 그 상황에서 선뜻 내 일처럼 나설수 있었을까라고 묻는다면 사실 잘 모르겠다.

마치 체육대회에서 달리기 경주 중 넘어진 친구를 도와주는 것을 미련하다고 여기는 것처럼 무질서한 사회에서 옆을 돌아보는 미덕은 사라진지 오래라면, 정말 천둥양의 말처럼 나쁜 사람들이 다스리는 세상에선 나쁘게 살 수밖에 없는 걸까.

p.432

시장 논리에 의해 움직이는 지나칠 정도로 경쟁적인 사회에서 개인은 타인에게 어떤 의무를 지는가?

진실을 말하는 것이 위험할 때 시민으로서 진실을 말할 책임은 얼마나 되는가?

독재 체재를 내부로부터 변화시키려고 시도하는 편이 나을까? 아니면 효과가 전혀 없을 것을 각오하고 외부에서 그 체제에 저항하는 편이 나을까?

다른 어떤 것보다 부의 가치가 최우선이 되면서 이러한 사회의 병패를 겪는 게 중국뿐일까. 그리고, 이러한 병패를 겪는, 지나치게 경쟁적인 사회에서 우리가 가진 의무는 무엇인지 생각해보게 된다.

이 책에는 중국의 온갖 썩은 부분, 급격한 성장 속에 숨겨진 단면들이 나오는데 아무리 보아도 우리나라는 물론이고, 대부분의 자본주의 국가에서 일어나는 일이라는, 우리들의 이야기라는 생각을 떨칠 수 없다.

p.292

중국의 일반 국민들은 시상식과 관련해 거의 아무런 이야기도 듣지 못 했다. 또한 시상식 사회자가 정치 개혁이란 <점진적이고 평화적이며 정연하고 세심히 다루어져야 한다>는 류샤오보의 말을 인용하는 것도 듣지 못 했다. 무대 위 텅 빈 파란색 의자에 놓인 메달과 증명서도 보지 못 했다. 중국 내부에서 그 순간은 보잘것없는 존재의 단순한 망령으로 기록되었다. 검열관들은 그해 겨울의 인터넷 금지어 목록에 새로운 검색어를 추가했다. <텅 빈 의자.>

민주 활동가로, 톈안먼 시위에 참여하고 08헌장에 참여한 인물인 류샤오보. 그는 2009년에 국가권력 전복 선동 혐의로 11년형이라는 이례 없는 과한 처벌을 받게 되었고 여전히 수감 중이라고 한다. 기본적인 인권을 위해 오랜 시간 비폭력 투쟁하였다며 노벨평화상을 받았지만 감옥에 갇힌 류샤오보는 물론이고 대리 수상을 막기 위해 가족들까지 가택 연금되어 류샤오보의 노벨평화상은 "텅 빈 의자"에 놓이게 되었다.

'진실'이라는 제목의 이 챕터에 등장하는 류샤오보와 인터넷과 싸우는 중국 검열관들의 모습을 보며 몇 달 전쯤 중국에 처음 갔을 때 인터넷을 거의 쓸 수 없어 답답했던 기억이 떠올랐다. 이 사람들은 이렇게 모든 것이 제한받는다는 것에 아무런 불만이 없는 건지.

p.451

국민에게 페이스북을 허가할 용기조차 없는 중국이 어떻게 차세대 혁신 상품을, 차세대 페이스북을 발명하고자 바랄 수 있단 말인가?

중국 정부가 또는 정부를 옹호하던 류의 말처럼 잘 먹고 잘 살기만 하면 귀 막고 입 닫고 살아야 하는 생활에 정말 문제는 없는지. 지금도 끊임없이 성장하는 중국이지만 과연 어디까지 갈 수 있을지, 그게 그 어떤 가치보다 중요할지.

p.505 - p.506

중국은 이데일로기의 교착 상태에 빠져 있다. (...) 중국을 <보편적 가치>에 반하는 나라를 만듦으로써 당은 보다 많은 무시와 항의, 류샤오보의 빈 의자를 상기시키는 문제들에 직면할 게 분명하다. 그럼에도 국민들에게 굴욕감을 참거나 원인 제공자들을 용서하지 말라고 부추기고 있다.

발작적인 방식으로 자유 시장 체제를 도입한 지 3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중국에는 일관된 정책이 단 하나도 존재하지 않는다. <중심 선율>이 존재하지 않는 것이다. 중국을 장차 어떤 나라로 발전시킬 것인지에 대해서도 정해진 것이 전혀 없다. 중국의 국가 주석은 <중국의 꿈>이라는 표현을 사용하면서 그 단어가 국민들을 하나로 묶어 주기를 바랐지만 국민들은 그 말을 중국의 <꿈들>로 해석하여 저마다 다른 꿈을 떠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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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해줘
기욤 뮈소 지음, 윤미연 옮김 / 밝은세상 / 200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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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일간 푹 빠져서 본 책.
보고 나면 여운이 길게 남는 책이 있는데, 이 책이 그랬다. 밑줄 그어놓은 것도 여러번 곱씹어 봤다.
챕터마다 쓰여진 글귀들도 너무 좋아서 사진 찍어놓고, 샘과 줄리에트의 이야기도.
특히 샘과 줄리에트가 처음 만난 날 바에서의 장면이 이 책에서 제일 좋은 부분.

 

 

p.24
샘은 사람에게는 돌이킬 수도, 치료할 수도 없는 상처가 있다고 생각했다.
그 자신이 매일이다시피 환자들에게 모든 상처는 치유될 수 있다고 장담하고 있지만 그 사실만큼은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p.64
샘의 시선이 이로 물어뜯어 놓은 그녀의 손톱에 가닿는 순간, 그녀는 얼른 주먹을 쥐어 그것을 감추었다.
샘이 그녀에게 미소를 던졌다, 멋쩍은 미소를.
그들은 말을 하지 않고 있을 때조차도, 대화를 계속 이어가고 있었다.

 

챕터6의 쳐다보지 않으면서도 본다는 말과, 말을 하지 않고 있을때도 대화를 이어나간다는 말.
다시 봐도 진짜 명대사인듯.

 

 

p.65 ~ p.66
오후 7시 45분
인간은 수없이 많은 사람들을 만나면서도 왜 딱 한 사람에게만 반하는 걸까?

오후 7시 51분
이 남자는 좋은 사람인 거 같아. 하지만 좋은 때 만나진 못했어.

 

이 책에서 가장 재밌고 좋은 부분. 샘과 줄리에트의 첫 만남.
1분, 5분, 시간이 지날 때마다 줄리에트의 머릿속에 드는 생각과 둘의 대화가 진짜 재밌다.

 

p.200
흔히 사람들은 사진 속에 행복한 순간을 영원히 담아두는 것으로 생각한다.
그러나 사진은 그리움을 불러일으킬 뿐이다.
사람들은 영원을 기대하며 셔터를 누른다.
그러나 찰칵 소리와 함께 그 순간은 영영 사라진다.

 

p.226
그녀의 머릿속에서는 많은 의문들이 교차하고 있었다.
무엇 때문에 우리는 삶에 집착할까?
무엇 때문에 우리는 행운을 바라는 걸까?
수없이 벌어지는 일들 속에서 우리의 자유의지는 얼마나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걸까?
삶의 게임을 지배하고 있는 것은 우연일까, 아니면 운명일까?

 

 


p.361
"마지막으로 한 가지만 대답해줘요."
"어서 말해보세요."
엘리베이터 문이 닫히는 순간 그들의 시선이 마주쳤다.
"왜 항상 행운은 똑 같은 사람들에게만 돌아가는 걸까요?"

 

 

 

p.436
그가 정말로 사랑에 빠지게 된 건 바로 그 순간이었을지도 모른다.
줄리에트의 환하게 웃는 모습, 그녀가 오래 된 샹송을 흥얼거리는 모습을 보면서 그는 그게 그녀임을 확신했었다. 그가 언제까지나 함께 살고 싶은 여자, 그가 보호해줄 수 있는 여자, 그를 보호해줄 여자.
마치 하늘이 그의 고통을 거둬가기 위해 천사를 보내준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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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의자 X의 헌신 - 제134회 나오키상 수상작 탐정 갈릴레오 시리즈 3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양억관 옮김 / 현대문학 / 200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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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미야 잡화점의 기적을 읽고 흥미가 생겨서 뒤따라 본 책이다.

되게 유명한 책인데 왠지 추리소설같은 건 흥미가 안생겨서 안 봤는데, 소위 믿고 보는 몇몇 책들은 정말 잘 짜여진 한 편의 영화를 본 느낌이다. 정말 잘 짰다는 생각이 드는 영화는 놓친 장면들이나 말들을 다시 되새기고 싶어서 두번 세번 보게되는데, 이 소설이 그런 느낌이랄까.

이런 류의 소설이 처음이라 그럴지도 모르겠지만 전혀 예상치도 못한 전개여서 마지막까지 입을 다물 수 없었다. 보통 소설은 보다보면 이러나 저러나 결국 결말은 이렇게 되겠거니 하고 예상되는 시나리오가 있는데, 중간 중간에 나오는 주인공 행동들에 정말 여러번 당황했다.

그리고 조금 이해가 안 갔던 부분들이 결말 즈음에 퍼즐 맞추듯이 들어와 맞는 것을 보고는 진심으로 감탄했다. 


사람이 풀기 힘든 문제를 만드는 것과 그것을 푸는 것 중 어느 쪽이 어려운지. 단, 해답은 반드시 있어. 어때, 재미있지 않나?


영화로도 나온 것도 꽤 유명한 것 같은데, 그 영화 예고편에 이 대사가 나온다.

완벽한 알리바이를 만든 천재 수학자 이시가미와 그걸 파헤치는 천재 물리학자의 만남. 


그렇다면 P≠NP 문제는? 

혼자 생각해서 답을 제시하는 것과 남이 제시한 답이 옳은지 그른지를 판단하는 것 중 어느 게 더 간단할까?

... 자네는 먼저 답을 제시했어. 

다음은 남이 낸 답을 들어줄 차례야.


이 부분에서 이시가미와 유가와가 나눈 대화는 이야기가 막바지로 치닫을 때쯤 뒷통수를 신나게 얻어맞으면서 세네번쯤 다시 읽어봤다. 처음에는 무슨 말인지 몇 번을 봐도 이해가 안가서 그냥 넘어갔었다. 도대체 이시가미가 낸 답은 뭘까, 두근두근 하면서.

결말은 정말 상상도 못했지만. 다시 봐도 손에 땀을 쥐게하는 장면인 듯.

   

사람은 때로 튼실하게 살아가는 것 자체만으로 다른 사람을 구원해줄 수 있는 것이다.


가장 이성적인 수학과 물리라는 학문이 이성으로 설명할 수 없는 사랑과 맞물린.

빈틈없이 완벽한 이시가미의 알리바이의 끝에 드러난 그의 헌신적인 사랑. 그리고 정말 이해할 수 없는 그 헌신의 이유가 드러난 부분이다.

이성적이고 논리적인 사고만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그의 헌신적인 사랑이 사건 끝에 드러나면서 이야기는 막을 내린다. 추리소설로 보이지만 정말 순수한 사랑 이야기인 듯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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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의 수용소에서 (양장) - 빅터 프랭클의
빅터 프랭클 지음, 이시형 옮김 / 청아출판사 / 200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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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고테라피의 창시자 빅터 프랭클의 유명한 책인 죽음의 수용소에서.

삶의 희망이라고는 조금도 없을 것 같은 아우슈비츠 수용소에서 기적적으로 생존한 한 남자가 '희망'에 관해 쓴 이야기다.

   

아마 독일의 역사에 대해 떠올린다면 이 수용소를 떠올릴텐데, 나도 자세히는 이 책을 통해서 관심이 생겨 이것저것 찾아보았는데, 몇 일간 잘때마다 떠올라서 정신이 이상해질 것 같았다.

자살에 관련된 에세이를 쓰다가 뻔한 해결책을 주고 싶지 않아 이것저것 서적들을 찾아보다가 발견한 책이 바로 이거였는데, 그 때와 달리 지금 보니 느낌이 새롭다. 그 때의 에세이도 다시 보니 새롭고.


아우슈비츠 수용소 안의 이야기에 대해서는 이 책 말고도 생존자의 이야기가 많이 있지만 이 책이 주는 특별함이라고 한다면, 일단 단순히 수용소에서만의 이야기가 아니라 그 극한의 상황속에서 찾은 인간애와 희망에 대해 말한다는 것. 그리고 그와 맞물려 탄생한 로고테라피로 내 삶과도 연결시켜줬다는 것.


프랭클은 그 곳에서도 수감자와 가끔 유머로 고통스러운 상황을 견디기도 하고, 죽을 것 같은 순간에 사랑하는 사람을 떠올리며 행복감을 느끼기도 한다.

매일 매일 아우슈비츠에서 죽어가는 사람들을 보며, 그리고 시체들을 지켜보며, 그리고 자신도 목숨이 위태로운 극한의 상황에서 삶의 의미를 찾는다는 건. 사실 상상으로도 쉽지 않다.

공포스러운 상황에서 프랭클은 자신이 생존자가 되어 고향으로 돌아가는 상상을 하기 시작한다. 그리고 자신이 왜 살아야하는지 끊임없이 떠올리고 수감자들을 격려하기도 한다. 인간에게 모든 것을 다 빼앗아도 자기 자신이 선택할 수 있는 자유만은 빼앗을 수 없다. 

열악한 상황, 병, 육체적 고통보다 더 무서운 것은 희망의 상실이었다. 희망을 잃어버린, 살아야할 의미를 찾지 못한 사람은 절망감으로 생명의 끈을 놓아버렸다. 

프랭클을 고통스러운 상황과 병에서 살아남게 해준 것은 살아남아야만 하는 이유, 희망의 끈을 놓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인간에게 모든 것을 빼앗아갈 수 있어도 단 한 가지, 마지막 남은 인간의 자유, 

주어진 환경에서 자신의 태도를 결정하고, 

자기 자신의 길을 선택할 수 있는 자유만은 빼앗아갈 수 없다는 것이다.

- 빅터 프랭클


p.70
꿈에서는 평소에 풀지 못했던 욕구나 불분명한 감정이 정확하게 나타나는 법인데도 말이다.

p.77 - p.78
그때 한 가지 생각이 내 머리를 관통했다.
내 생애 처음으로 나는 그렇게 많은 시인들이 자기 시를 통해서 노래하고, 그렇게 많은 사상가들이 최고의 지혜라고 외쳤던 하나의 진리를 깨닫게 되었다.
그 진리란 바로 사랑이야말로 인간이 추구해야 할 궁극적이고 가장 숭고한 목표라는 것이다.
그때 나는 이 세상에 남길 것이 하나도 없는 사람이라도 사랑하는 사람을 생각하며 여전히 더 말할 나위없는 행복을 느낄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p.86
유머는 자기 보존을 위한 투쟁에 필요한 또 다른 무기였다.
이미 잘 알려진 대로 유머는 그 어떤 상황에서도 그것을 딛고 일어설 수 있는 능력과 초연함을 가져다준다.

감정, 고통스러운 감정은 우리가 그것을 명확하고 확실하게 묘사하는 바로 순간에 고통이기를 멈춘다.
- 스피노자 <윤리학>

p.137
자신의 삶에 더 이상의 느낌이 없는 사람, 이루어야 할 아무런 목적도, 목표도 그리고 의미도 없는 사람. 그런 사람은 곧 파멸했다.

p.138
정말 중요한 것은 우리가 삶으로부터 무엇을 기대하는가가 아니라 삶이 우리로부터 무엇을 기대하는가 하는 것이라는 사실을.
삶의 의미에 대해 질문을 던지는 것을 중단하고, 대신 삶으로부터 질문을 받고 있는 우리 자신에 대해 매일 매시간마다 생각해야 할 필요가 있었다.
인생이란 궁극적으로 이런 질문에 대한 올바른 해답을 찾고, 개개인 앞에 놓여진 과제를 수행해 나가기 위한 책임을 떠맡는 것을 의미한다.

p.138
`삶`이란 막연한 것이 아니라 현실적이고 구체적인 것이기 때문이다.
삶이 우리에게 던져준 과제가 현실적이고 구체적인 것과 마찬가지로. 바로 이것이 개개인마다 다른 인간의 운명을 결정한다.
어떤 사람도, 어떤 운명도, 그와는 다른 사람, 그와는 다른 운명과 비교할 수 없다.
똑같은 상황이 되풀이되는 경우는 하나도 없으며, 각각의 상황은 서로 다른 반응을 불러 일으킨다.

p.147
나는 내 동료를 향해 어떤 상황에서도 인간의 삶은 의미를 갖는 일을 절대로 멈추지 않는다는 것, 그리고 삶의 무한한 의미에는 고통과 임종, 궁핍과 죽음이 모두 포함되어 있다는 말을 했다.

p.176
사람에게 우선적으로 필요한 것은 마음의 안정 혹은 생물학에서 말하는 `항상성`, 즉 긴장이 없는 상태라는 말을 흔히 하는데, 나는 정신건강에 대해 이것처럼 위험천만한 오해는 없다고 생각한다.
인간에게 실제로 필요한 것은 긴장이 없는 상태가 아니라 가치 있는 목표, 자유의지로 선택한 그 목표를 위해 노력하고 투쟁하는 것이다.
인간에게 필요한 것은 항상성이 아니라 정신적인 역동성이다.

p.184
로고테라피에 의하면 우리는 삶의 의미를 세 가지 방식으로 찾을 수 있다.
1) 무엇인가를 창조하거나 어떤 일을 함으로써
2) 어떤 일을 경험하거나 어떤 사람을 만남으로써
그리고 3) 피할 수 없는 시련에 대해 어떤 태도를 취하기로 결정함으로써 삶의 의미에 다가갈 수 있다.

p.237
비극의 세 가지 요소 중 세번째 것은 죽음에 관한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또한 삶에 관한 것이기도 하다.
왜냐하면 삶의 순간들을 구성하고 있는 각각의 시간들이 끊임없이 죽어가고 있으며,
지나간 순간은 다시는 돌아오지 않기 때문이다.

`왜` 살아야 하는지 아는 사람은 그 `어떤` 상황도 견딜 수 있다.
- 니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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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미야 잡화점의 기적 (양장)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양윤옥 옮김 / 현대문학 / 2012년 12월
평점 :
품절


오랜만에 정말 마음이 따뜻해지는 책이었다.
에피소드 하나하나가 맞물리면서 나미야 잡화점과의 아름다운 이야기들이 큰 비누방울처럼 뭉쳐진 느낌이다.
각 인물들의 이야기들이 계속 이어져서 결국 속독해서 한 번 더 봤다.
평범하지만 평범하지 않은 기적같은 사람들의 아름다운 이야기들.
나미야 잡화점은 뭔가 판타지스러운 분위기지만, 그 속에서 생겨난 이야기는 우리들의 이야기다. 잡화점의 기적은 사람들의 진심어린 마음들이 모여 만든 기적이다.
고민을 들어주는 것도 잡화점이 아니라 잡화점에 들어간 아이들이고. 그 누군지도 모르는 사람의 편지를 쓴 사람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헤아려주는 따뜻함과 진지함이 만든 기적이다.


가장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는 고스케의 비틀스 이야기.
파산한 부모님을 따라 야반도주를 해야하는 상황이 비겁하다 여긴 고스케는 결국 혼자 도망친다. 그래도 함께하라는 편지의 충고를 무시하고.

 

p.269
하긴 이별이란 그런 것인지도 모른다.
돌아오는 기차 안에서 고스케는 생각했다.
사람과 사람 사이의 인연이 끊기는 것은 뭔가 구체적인 이유가 있어서가 아니다.
아니, 표면적인 이유가 있었다고 해도 그것은 서로의 마음이 이미 단절된 뒤에 생겨난 것,
나중에 억지로 갖다 붙인 변명 같은 게 아닐까.
마음이 이어져 있다면 인연이 끊길 만한 상황이 되었을 때 누군가는 어떻게든 회복하려 들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게 하지 않는 것은 이미 인연이 끊겼기 때문이다.
그래서 침몰하는 배를 그저 멍하니 바라볼 뿐 네 명의 멤버들은 비틀스를 구하려 하지 않은 것이다.

 

야반도주 전날 마지막으로 비틀스의 영화를 본 고스케는 침몰하는 배와 같은 비틀스의 마지막 연주를 보고, 마음이 단절된 상태에서는 인연이 끊어질수 밖에 없음을 깨닫는다.

 

p.281
아버지와 자신을 이어주던 끈은 이미 끊어진 것이다.
그러면 이제 어떻게 해봐도 관계는 회복되지 않는다.
함께 있어봤자 아무 의미가 없다.
그것을 비틀스가 가르쳐주었다.

 

그리고, 아버지와 고스케 자신도. 아버지에 대한 원망으로 마음이 떠난 상태의 고스케는 아버지와 자신의 관계가 회복될 수 없음을 느낀다.
마음이 단절된 상태에서 야반도주를 해서 함께한다해도 아무 의미가 없다고 생각한 고스케는 결국 도망쳐 다른 이름으로 새로운 인생을 산다.
하지만, 나중에야 우연히 알게된 부모님의 희생과 배려를 느낀 고스케는 속죄하며 다시 한번 마지막 비틀스의 연주를 떠올린다. 그리고, 침몰하는 배를 멍하니 바라보는 듯한 그 장면이 마지막까지 열정적으로 연주하고 있었음을 깨닫는다. 결국 고스케가 새로운 인생을 살면서 잘 지낼 수 있었던 것은 부모님의 희생이 있었기 때문이었음을.
고스케가 마지막에 후회하면서 나미야 할아버지에게 답장 편지를 고쳐쓰는 장면에서 너무 감정이입하는 바람에 진한 여운이 남는다.

 

주위 사람들에게 칭찬받을 만한 길을 선택하는 경우가 있다.
하지만 속내를 들여다보면 끝없이 노력해야 하는 현실이 힘에 버거워 가장 편한 길로 도망친 것이다.
현실에 대한 두려움을 떨치고 스스로를 정직하게 바라보았을 때,
기적이 일어난다.
- 옮긴이의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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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수인 2017-08-11 14: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한국에도 나미야 할아버지가 있었어요!
책을 읽는 내내, 나에게도 ‘나미야 할아버지‘와 같은 존재가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페이스북에 ‘나미야 잡화점을 현실로‘라고 검색하니 실제로 누군가가 익명 편지 상담을 운영하고 있더라구요.
namiya114@daum.net 여기로 편지를 받고 있고, 광주광역시 동구 궁동 52-2, 3층 나미야할아버지 로 손편지를 보내면 손편지 답장도 받을 수 있다고 하네요.
아마 이 책을 읽으신 분들이라면 대부분 저같은 생각을 한번쯤 해보셨을 거라 생각돼 이곳에 공유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