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행한 불행 - 부서지는 생의 조각으로 쌓아 올린 단단한 평온
김설 지음 / 책과이음 / 202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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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을 허물고 하나가 되겠다는 꿈은 꾸지 마라
더 강하고 간소해진 사랑을 만들라 (p. 5)'

결혼하면 부부는 한 몸이라느니, 반쪽이라느니 그런 허황된 꿈을 꾸지 말라는 소리겠지... 그리고 한껏 기대하지 말라는 뜻도 되겠고...


작가 김설은 결혼도 성급하게 했고 그런 성격이어서인지 이혼도 성급하게 했다. 20년이라는 세월이 지난 뒤 다시 부부로 재결합했다 (흔치 않은 일). 그 이후 7년차 결혼 생활을 이어가고 있다. 이런 부부 이야기를 고백하는 김설 작가의 <다행한 불행>, 결혼과 이혼이 불행이라면 결혼 27년 차 끝에 알게 된 작가의 삶 관점에서 그 불행한 결혼은 다행한 일이다. 왜 그럴까?


결혼을 한 사람이라면, 그 사람이 이 책을 읽는다면 자신의 결혼 생활과 배우자와의 관계를 자연히 떠올리지 않을까? 읽는 중간에 잠깐잠깐 멈춰 점검해 보는 시간을 가지게 된다.

지인의 소개로 아내를 만난 지 3개월만 결혼했다. 성급하게 결혼한 동기는 작가와 다르지만 내 결혼 역시 성급했다. 결혼은 90퍼센트가 운이라는 작가의 말처럼 운이 좋았던 건지 이혼할 정도 큰 부딪힘이 없었다. 그 자신감 때문인지 모르겠지만 결혼 문제로 고민하는 후배들에게 자신 있게 반복했던 말이 있다.

'오래 사귀고 결혼하든 그렇지 않든 결혼하면 다 똑같다. 배우자는 내가 하기 나름이다.'
무슨 자신감에 이런 소릴 해댔을까? 이제 와서 생각해 보면 차마 고개를 들 수 없을 정도 창피하다.

8년이란 오랜 세월을 홀로 지내다 결혼하니 모든 것이 어색하고 불편했다. 누가 옆에서 자고 있다는 것부터 간섭, 잔소리 등등 오롯이 내가 계획하고 내 맘대로 사용하던 시간에 끼어드는 것들 투성이였다. 편함도 있어 타협하며 김설 작가처럼 27년이 지났다.

아직도 모르겠다. 아내의 성격을 다 파악한듯싶어 자신 있게 내뱉은 말끝에 찾아오는 건 낭패뿐이다. 생각이 많아져 질문에 대답하기가 어렵다. 이런 연유로 대화가 줄어든다.

'살아보니 부부는 서로 사랑하는 것과 동시에 미워하는 것이 당연했다. 이런 마음을 두려워하지 말았어야 했다. 올바르게 미워하는 일이 매섭게 대립하는 것보다 나았다. (p. 207)'

미워했지만 어느 정도를 넘지 않은 건 운이 좋았다. 실망하고, 원망하고, 화를 내기도 하고, 집을 뛰쳐나가기도 하고 등등 모든 것이 어느 정도를 넘지 않았다. 다행이다.


'권태와 괴로움의 이유를 나의 심리적 변화에서 찾아보려는 생각은 못 했던 것 같다. 몸과 마음이 오르락내리락했던 다른 이유가 있었을지 모른다. 남편은 운이 나쁘게 까마귀 날자마자 배 떨어지는 상황에 놓였을 뿐인데, 까마귀를 왜 날아가게 했냐며, 배는 왜 떨어뜨렸냐며 생떼를 부렸는지도 모른다. 내가 원하는 대로 움직여주지 않는다며 내가 겪는 권태와 괴로움을 정당화했을지도. (p. 239)'

드러내기 쉽지 않은 김설 작가의 고백에 내 결혼 생활이 많이 겹친다. 아무리 결혼이 불행하다 할지라도 그 생활 속에서 문제의 원인을 나에게서 찾고, 포용하는 법을 배웠기 때문에 작가는 다행이란 표현을 한 모양이다.

아내를 쳐다본다. 저 사람은 무슨 생각을 하며 나를 살아냈을까? 웃는 걸까? 체념일까? 불행하다 여길까, 행복하다고 여길까? 무엇을 잡고 버티며 일어섰을까?... 여러 생각 끝에 항상 속으로 되풀이하게 되는 말은...

'하고많은 남자 중에 왜 하필 날 만나서... 고생일까... 한 번뿐인 인생을...'

다투다가도 이런 생각이 들면 눈시울이 뜨거워져 고개를 돌린다.

'그저 삶의 모든 모순에도 불구하고, 불행에 지지 않고 정면으로 맞서 나아가는 순간 우리에게 또 다른 가능성의 문이 열린다는 사실만은 확실하다고 느낀다. 그런 의미에서 내 삶에 불행이 온 것은 어찌 보면 다행한 일이기도 했다. 내가 내 몫의 불행을 기꺼이 받아들이지 않았다면 나의 삶은 일찌감치 헤어 나올 수 없는 절망의 나락에 빠지거나, 외려 피로한 일상의 권태와 의미 없는 행복에 지쳐 허물어졌을지도 모르겠다. (p. 2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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