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4
조지 오웰 지음, 한기찬 옮김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2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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윈스턴은 극단적 전체주의 국가인 오세아니아에 산다. 최고 권력 기관인 당은 빅 브라더라는 가상의 인물을 내세워 텔레스크린 등 다양한 장치로 말과 행동, 표정뿐만 아니라 생각, 감정조차도 감시한다. 그리고 당은 당원들을 통제하고 당의 정당성을 얻기 위해 과거를 끊임없이 고쳐 거짓으로 꾸민다. 당에 반발해 저항한 사람은 끌려가 그 존재 자체가 증발해버린다.

윈스턴은 이런 당을 의심한다. 사랑과 자유에 대한 열망을 품고 당의 감시를 피해 줄리아와 사랑을 나눈다. 그리고 동질감을 느낀 핵심당원 오브라이언에게 접근하지만, 오히려 그가 파놓은 함정에 빠진다. 게다가 오브라이언은 윈스턴을 심문하며 세뇌시킨다.

<1984>는 폐결핵 투병 중에 쓴 조지 오웰의 마지막 작품으로 생을 마치기 5개월 전에 출간된 대표적인 디스토피아 소설이다.


사피어-워프 가설에 의하면 '언어가 사고를 지배한다.'
이 가설의 직접적인 묘사가 소설에 등장한다. 오웰 상상력의 완벽함을 엿볼 수 있는 대목 중 하나이기도 하다. 사고 범위를 축소하는 것이 신조어를 만든 목적이다. 어휘를 점점 줄여서 선택을 폭을 좁힌다. 자신의 견해를 밝히는데 쓸만한 단어가 없어 이단적인 사상을 표현할 길이 없다. 신조어가 개인의 사고를 지배해 주장을 펼 수 있는 기회를 가로막아 횡설수설하는 터무니없는 중얼거림으로 바꿔버린다.


'죽기 얼마 전 병상에서 가진 BBC와의 인터뷰 영상에서 그는 나직하지만 또렷한 어조로, 현재 세계가 빠져들고 있는 위험에 대해 경고하면서 '그런 일이 일어나도록 내버려 둬서는 안 된다. 그것은 바로 여러분들의 책임'이라고 말하고 있다. (p. 480)'

조지 오웰은 전체주의 사회에서 이루질 수 있는 권력의 남용과 오용의 끝판을 보여준다. 또한 이러한 독재권력이 행사될 때 인간 그 개개인의 자유가 얼마나 피폐해지고 말살되는지 그 결과를 경고한다.


'"중요한 건 자기뿐이요." 그가 그녀의 말을 따라 했다.
"그런 일이 있고 나서는 그 사람에 대해 더 이상 예전과 같은 감정을 느끼지 못하게 되는 거구요."
"그렇소." 그가 말했다. "예전과 같은 감정을 느끼지 못해요." (p. 449)'

개인의 자유를 통제하는 것에 더해 학습, 이해, 수용의 단계를 거친 재통합으로 감정을 느끼지 못하게 한다. 고통의 차원을 넘어선 인간성 말살이다. 그야말로 빈 껍데기만 남는다. 감정을 느끼는 인간은 존재하지 않는 사회가 전체주의 권력의 완성이다.


이런 소설을 읽으면 역시 사람은 믿을만한 존재가 못된다는 사실을 뼈저리게 느낀다. 정치제도 중 민주주의가 그나마 가장 사람을 믿지 않는 제도라는 유시민 작가의 말이 생각난다. 그래도 시민들의 원하면 합법적으로 정권 교체가 가능한 우리 사회가 아닐까 하는 마음으로 스스로 위안한다.

그렇지만 한편에는 소설 속 주인공 윈스턴과 같은 삶을 나, 내가 아니면 내 자식들이 살지도 모르겠다는 걱정이 여전히 존재해 두렵다. 조지 오웰이 이렇게 완벽한 전체주의 상상했으니 그 상상을 이루려는 자들이 혹시 있지 않을까? 그런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윈스턴은 총살되기에 앞서 10초만 미리 알아도 체제에 반하는 증오심 가득한 자신의 내부 세계를 드러내리라 다짐한다. 10초만이라도 자유를 누리며 죽기를... 하지만...

'하지만 괜찮았다. 만사가 다 괜찮았다. 이제 투쟁의 시간은 끝났다. 그는 자신과의 싸움에서 승리했다. 그는 빅 브라더를 사랑했다. (p. 457)'
마지막 10초의 자유마저 윈스턴에게서 빼앗아간 소설의 결말이 무섭고 두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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