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들의 흑역사 - 부지런하고 멍청한 장군들이 저지른 실패의 전쟁사
권성욱 지음 / 교유서가 / 202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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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리자 교육을 받을 때 강의에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내용이 '4가지 유형의 리더'였다. 사분면 세로에 똑똑함과 멍청함, 가로에 게으름과 부지런함을 적어 넣은 다음 2가지를 매칭한다. 멍청함과 부지런함, 이 2가지가 짝이 된 유형의 리더가 최악이다.

독일 바이마르공화국 시절, 쿠르트 폰하머슈타인-에쿠오르트 장군이 1933년에 '부대지휘교본'을 발표한다. 교본 중에 하머슈타인-에쿠오르트의 '네 가지 유형의 장교(Four Type of Military Officer)'가 등장한다. '4가지 유형의 리더'가 이 교본에서 유래한듯하다.

군대에서는 유능한 장교를 뽑는 것보다 멍청한데 부지런한, 즉 무능한 장교를 걸러내는 것이 훨씬 중요했다. 여느 조직과 달리 한 명의 지휘관에게 수많은 군인들의 목숨이 달려있을 뿐만 아니라 전쟁의 승패, 한 나라의 존망이 달려있기 때문이다.


전쟁사 연구가 권성욱의 <별들의 흑역사>는 패장 12명의 이야기다. 전쟁을 하다 보면 승리하기도 하고 패하기도 한다. 최선을 다했음에도 불구하고 수적으로 불리하거나 운이 따르지 않아 패했다면 어쩌겠나.

'그러나 이 책에 나오는 패배들은 영화에서 흔히 나오는 것처럼 승리보다 더 위대한 패배 따위가 아니다. 전쟁이 아니라 재난이라고 해도 좋을 만큼 처절하게 깨졌고 어마어마한 인명 손실은 물론 극심한 후유증마저 남겼을 정도다. 더욱이 주인공의 면면을 살펴보면 한낱 '잔챙이'가 아니라 최소 사단장부터 한 나라의 총사령관에 이르는 중책을 맡은 '거물급'이다. (p. 6)'


'악명 높은 일본군 장성 중에서도 대표적인 '오물' 중 한 명이 무다구치 렌야(1888~1966) 중장이었다. 그는 두 번의 큰 사고를 쳤다. 하나는 중일전쟁의 발단이 된 루거우차오사건(중국에서는 7. 7사변이라고 부른다) 이었다. 또 하나는 메이지유신 이래 일본군 최악의 졸전이자 지옥을 선사한 임팔작전이었다. (p. 69, 70)'

야간 훈련 중 병사 한 명이 실종됐는데 이를 중국군의 도발로 간주하고 본국의 허락도 없이 반격해 중일전쟁의 도화선이 된 루거차오사건의 장본인이다. 육군대학을 졸업했다는 이유만으로 특권을 누렸다. 전쟁 보급은 필요 없다며 병사들에게 식량 대신 풀을 먹는 적응 훈련을 시키는 한편, 병사들을 사지에 보내놓고 자신은 호사스러운 유흥을 즐기는 주색에 빠져있었다. 실전 경험이 없으면서 전쟁을 떠드는 군인이었다.

일본 패망 후에도 임팔작전의 실패를 부하의 무능 탓으로 돌렸고, 심지어 죽을 때 임팔작전이 자신이 잘못이 아님을 알리는 팸플릿을 만들어 장례식장에 온 사람들에게 나누어주라는 유언을 남긴 졸렬한 지휘관이었다.


'밴 플리트 : 유 장군, 당신의 군단은 어디 있소?
유재홍 : 모르겠습니다.
밴 플리트 : 당신의 2개 사단은 어디에 있습니까? 당신은 당신네 대포와 수송 수단을 죄다 잃어버린 거요?
유재홍 : 그런 듯합니다
밴 플리트 : 유장군, 당신 군단을 해제하겠소. 정 장군에게 보고해서 새 직책을 찾으시오. (p. 515)'

한국전쟁 동안 한국군 3개 군단 중 2개 군단을 말아먹은 오명의 이름은 유재흥이다. 군단장으로서 전선을 살피는 대신 사단장에서 모든 지휘를 맡기고 사령부를 꽁무니 빼, 이를 보고 사기가 떨어진 병사들이 달아나는 일까지 벌어졌다. 훗날 회고록에서 이를 두고 도주가 아니었다고 핑계를 대기까지 했다.

더욱 기막힌 역사는 불명예로 끝장나야 했음에도 유재흥은 휴전회담 한국군 대표를 역임했다. 전쟁이 끝난 후에는 다시 제 1군 사령관을 지냈고 군복을 벗은 후 외교관으로 활동하다가 1971년에는 국방장관까지 올랐다.


똥별 12명의 흑역사 원인으로 그들의 독선과 아집, 이기심, 우유부단함을 꼽을 수도 있지만 감당하지도 못할 직책을 맡긴 조직에게도 책임이 있다.

'하머슈타인-에쿠오르트의 말처럼 조직이 '멍청하면서 부지런한 사람'을 걸러내지 못해서가 아니라 당사자의 근면함은 그대로인데 자리가 '멍청한 사람'으로 만들었다는 것이 현실의 부조리함이다. (p. 7)'

하지만 이들 패장 12명에게 장군으로서 반드시 갖춰야 할 덕목 하나가 공통적으로 없었는데 바로 '용기'다. 궁색한 변명을 일삼고 실패의 책임을 지기는커녕 다른 사람에게 떠넘기는 비열한 사람들이었다. 자신을 잘못을 솔직하게 인정하는 용기, '진정한 용기'가 없었다.

패전의 역사를 똑바로 바라보는 것을 불편하다고 슬쩍 덮고 넘어가서는 안된다. 반면교사로 삼아야 할 역사적 교훈이다. 저자가 이 책을 통해 우리에게 전하는 메시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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