깃발의 세계사 - 왜 우리는 작은 천 조각에 목숨을 바치는가
팀 마샬 지음, 김승욱 옮김 / 푸른숲 / 202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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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학교 2학년 때, 국민교육헌장과 함께 국기에 대한 맹세를 외우게 했다. '태극기 앞에 조국과 민족을 위하여 몸과 마음을 바쳐 충성'하라는 내용이다.

오후 6시가 되면 나팔 소리와 함께 애국가가 나오고, 애국가가 어느 정도 지나면 그때 국기에 대한 맹세가 흘러나온다. 운동장에서 놀다가 멈춰 서서 태극기가 있는 방향을 향해 가슴에 손을 얹고 국기에 대한 경례를 한다. 지금은 상관없지만 그땐 태극기가 비를 맞으면 절대 안 됐었다. 보관할 때 태극기를 접는 법도 교육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태극기는 지나치게 소중한 상징물이었다.


<지리의 힘>으로 잘 알려진 저널리스트 팀 마셜의 책 <깃발의 세계사>는 '깃발'을 주제로 했다. 부제는 '왜 우리는 작은 천 조각에 목숨을 바치는가'다.

'깃발은 상징이고 디자인이다. 깃발의 이름과 유래에서부터 장식적인 디테일까지 꼼꼼히 짚으면서 저자가 펼쳐 보이는 것은 그 상징에 스며있는 역사와 민족과 정치적 갈등과 분쟁과 평화와 혁명의 이야기다. 말 그대로 깃발을 통해 들여다보는 세계사, 그리고 현재의 세계인 셈이다. (p. 6)'

깃발은 그룹을 구분한다. 깃발은 사람들을 결합하는 데 힘을 발휘하기도 하지만 분열시키는 데도 막강한 힘을 보여준다. 깃발의 힘을 익히 아는 자들은 우리나라의 군사 독재 시절의 예에서 보듯이 권력 유지와 정치적 목적으로 깃발을 사용된다.

추국하는 가치를 깃발에 담기도 한다. 그 나라의 가치는 국기에 담겼고, 환경운동, 추모 등 각종 활동 단체들도 자신들이 펼치는 가치를 깃발에 담아 널리 알리는데 이용한다. 그밖에 이 책에서는 현재 세계의 이슈들을 깃발과 연관 지어 폭넓게 다룬다.


역사성을 띠는 텍스트에 힘이 부치는 나에게 구정은 저널리스트의 '해제'는 많은 도움이 됐다. 구정은은 팀 마셜을 읽어나감에 있어 그의 인식을 경계할 것을 주문한다. 다소 제국주의적이고 역사를 보는 관점이 서구 중심임을 꼬집는다. 팔레스타인 저항의 상징인 파타Fatah의 깃발을 제5장 '공포의 깃발'에 포함한 것이 그 사례이다. 중동문제에 있어 이런 편향에 우리도 예외가 아니다. 미국의 영향으로 이스라엘은 좋은 나라라는 인식 편향을 부인할 사람은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그럼에도 나처럼 백과사전적인 책을 좋아한다면 이 책은 값어치가 있다. 저널리스트 팀 마셜의 지식과 역사를 바라보는 통찰, 그리고 무엇보다 깃발에 대한 이렇게 많은 이야기를 다룬 책이 적어서이다. 소장하고 두고두고 읽을 책이다.


이 책에 실린 흥미로운 해프닝 하나 소개하면...

'하나의 반도, 하나의 민족, 몹시 다른 두 깃발. 이 둘을 하나로 섞기가 아주 힘들 것 같겠지만, 2012년 런던 올림픽이 이것을 해냈다. DPRK의 여자 축구 팀이 콜롬비아와의 경기를 앞두고 경기장의 거대한 전광판을 통해 소개될 때, 각 선수의 이름과 사진 옆으로… 남한의 국기가 나타난 것이다. (p. 255, 256)'

당연히 항의 표시로 선수들은 퇴장했고, 조직위가 실수를 바로잡고 사과한 후 경기가 치러졌다. 경기 결과는 북한의 2 대 0 승리. 다행이다. 이럴 때 우리는 휴전 중임에도 북한을 응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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