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력과 교회 대한민국 권력 비판 3부작
김진호 외 지음 / 창비 / 201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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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별 금지법을 반대하는 사회> 강연을 들으며 권력과 종교가 어떻게 연결돼 있는지 관심을 갖게 됐다. 왜 정치인들이 당선이 되기 위해 개신교, 불교, 천주교를 막론하고 찾아가는지. 국회에서 기독교인들의 신자는 얼마나 차지하는지. 종교와 투표율은 어떤 관계가 있는지. 구체적으로 어떤 단체가 정치에 힘을 행사하는지. 기독교는 왜 차별 금지법을 반대하는지 등 다양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종교의 자유가 있는 우리나라에서 몇몇의 종교에게만 힘을 실어주고 정치권력은 이 종교를 자신들의 권력 유지 수단으로 활용한다는 것은 놀라운 사실이다.

언론을 통해 종교와 권력이 맺는 부정적인 관계를 쉽게 확인할 수 있다. 문제라고 생각하지만, ‘어쩔 수 없지. 원래 그러던 것인데.’라며 지나치기 십상이다. 하지만 원래 그런 것은 없다. 종교는 우리가 사회에서 겪는 고통을 완화해주는 역할을 한다. 또한 불평등, 불화를 방지하고 사회 구성원이 연대할 수 있도록 화합의 장을 마련한다. 하지만 요즘의 종교는 권력 계층을 나누고, 화합이 아닌 분리를 꾀하고 있다. 즉 비정상적인 종교의 역할이 행해지고 있는 것이다.

이 책은 종교와 권력이 맺는 비상적인 관계에 대해 고발하고 앞으로 종교가 나아가야 할 길에 대해 말하고 있다. 강남순 교수님의 비판은 종교계에만 해당되지 않는다. 우리가 일상에서 유념해야 할 생각들을 따뜻한 목소리로 전해주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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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이 적성에 안 맞는걸요 - 마음 아픈 사람들을 찾아 나선 ‘행키’의 마음 일기
임재영 지음 / arte(아르테) / 201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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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친구가 책의 제목을 보고 자신의 이야기라고 했다. “인생이 적성에 안 맞는걸요.” 요즘 그의 삶이 힘들다는 뜻이겠지. 적성에 맞지 않는 일을 한다는 것은 매우 슬픈 일이다. 자신의 마음이 내켜서 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누군가의 목소리나 외부 환경에 의해 억지로 일을 하고 있는 것이다. 적성이 우리 삶에서 갖는 의미는 정말 중요하다.

하지만 모든 일이 적성일 수는 없다. 게다가 그 일이 적성인지 아닌지는 그 일을 겪어본 후에야 알 수 있다. 그리고 단순한 체험으론 그것이 적성인지도 판단할 수 없다. 적성을 판단하기 전의 과정에서 노력과 시간이 필요하다. 우린 어쩔 수 없이 적성이 아닌 일을 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적성이 맞지 않는 일을 한다고 무조건 낙담만 할 필요 없다.

작가는 자신을 정신 나간 정신과 의사라고 말한다. 누군가의 입장에선 안락한 곳에서 안정된 수입을 받을 수 있는 기회를 버리고 추위와 더위를 버텨야만 하는 무급 봉사를 선택한 것이 정신 나간 행위처럼 보일 수 있다. 만약 돈과 자신의 편안함을 기준으로만 생각하면 이는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하지만 그의 선택엔 그것들이 전부가 아니었다. 그가 ‘찾아가는 행복 충전소’를 이끄는 일은 다른 사람을 위한 그의 마음에서 시작됐다. 타인을 위한 선택이지만, 자신의 마음이 원하는 선택을 한 것이다.

찾아가는 행복 충전소를 끌고 다니며 그는 인생에 적성이 맞지 않는 사람들을 만난다. 그의 이야기를 읽다 보면 그가 얼마나 감정이입과 공감을 잘하는지 알 수 있다. 그의 역할을 누군가를 치료해주기보단, 들어주는 역할이다. 들어주는 것에 그의 마음이 담겨있다. 그는 상대의 감정에 이입하고 공감하면서 그의 이야기를 들어준다. 내담자와 같이 울어주기도 하고 그의 눈물을 닦아주기도 한다.

정신과 공부를 하면서 나는 조금씩 달라졌다. 병을 알고 있던 나(환자로서 나)는 병을 치료해보려는 나(의사로서 나)를 만날 수 있었다. 환자였던 내가 의사의 관점에서 스스로를 들여다보게 된 것이다. 그러자 내 모습이 한심하고 못마땅한 것이 아니라, 안타깝고 안쓰러워 보였다.
그 역시 힘든 시절이 있었다. 의대가 적성에 맞지 않아 좌절의 시간을 보냈었다. 하지만 그 안에서 그는 적성을 발견하게 된다. 적성이 아니었던 게 아니다. 단지 적성을 늦게 발견했을 뿐이다. 그에게 상담을 오는 사람들 역시 인생이 적성에 맞지 않는다고 하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적성이 맞지 않기 때문에 인생을 포기하는 것도 생각해봤을 것이다. 그는 찾아가는 행복 충전소를 이끌며 그들에게 행복의 메시지를 던지고 있다.

언제든, 어디서든, 어떻게든 만나자

살아 있으니 넘어질 수 있는 것이고,
살아 있으니 아파할 수 있는 것이다.

넘어졌으니 눕고 싶은 마음이 생기는 것이고,
아프다 보니 죽고 싶은 마음이 생기는 것이다.

넘어지더라도, 아프더라도
제발 살아 달라.

눕고 싶더라도, 죽고 싶더라도
살아만 달라. 제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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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arma1228 2018-12-04 07: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안녕하세요~ 행키입니다! ^^ 리뷰 감사합니당~ 우리의 행복을 위해서! ㅎㅋ
 
조지 오웰, 시대의 작가로 산다는 것
스테판 말테르 지음, 용경식 옮김 / 제3의공간 / 2017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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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물농장, 1984의 작가 조지 오웰. 지난해 이 작품들을 읽었을 때 경험이 떠오른다. 소름의 연속이었다. 소설 속의 이야기가 마치 실재할 것 같은 느낌이었다. 빅브라더가 우리를 감시하듯 누군가 우리를 감시하고 있을 수 있다. 누군가의 지배 속에서 동물들이 이를 인지 못하는 것처럼 우리 역시 인지 못한 채 살아가고 있는 걸 수 있다. 우리는 깨어 있어야 한다. 일상에 무뎌져 생각이 없는 채로 살아가면 안 된다. 당연한 것들에 대해 질문을 던질 수 있어야 한다. 권력에 무릎 꿇는 것이 아니라 당당히 의견을 낼 수 있어야 한다. 그의 책을 읽으며 내 머리에 스쳤던 생각들이다. 그의 책은 나에게 많은 깨달음을 주는 책으로 기억된다.
<조지 오웰, 시대의 작가로 사는 것>은 그의 글쓰기 인생을 다룬 책이다. 그가 글을 어떤 자세로, 어떤 생각을 갖고 썼는지 알 수 있다. 읽는 내내 흥미로웠고 그의 책이 더욱 궁금해졌다. 그의 글은 현실을 외면하지 않는 글이다. 즉, 현실을 반영한 글이며 그의 경험이 녹아있다. 그는 글을 쓰기 위해 경험하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 사람이다. 또한 그 글로 인해 자신의 안위가 위협이 되더라도 그는 글을 쓴다. 그에게 글은 삶이며 그 자신이다.
그의 글을 보며 많은 반성과 생각을 했다. 과연 나는 어떤 글을 쓰고 있을까? 내가 쓰고 싶은 글은 어떤 글인가? 그와 비교했을 때 나의 글 솜씨는 아주 부족하다. 하지만 그처럼 생각이 담긴 글을 쓰고 싶다. 다른 사람의 생각이 아니라 나의 생각이 담긴 글. 보기에 번지르르한 글이 아니라 나의 진심이 담긴 글. 이 글을 보면 나를 떠올릴 수 있는 글. 현실은 외면하지 않는 글.
나는 세상을 알아가는 것을 좋아한다. 또 그 앎을 나누는 것 역시 좋아한다. 지식을 갖춘 교육자가 되고 싶다. 이 길을 걷는다면 나에게 글은 떼어낼 수 없는 존재가 될 것이다. 아마 현실에 타협하는 글을 쓰고자 하는 유혹이 나에게 닥칠 수 있다. 현실을 외면하는 글을 쓰라는 회유가 나에게 다가올 수 있다.

에릭 블레어로 하여금 시작하게 만든 것은 무엇보다도 양심의 가책이었다. 그는 마침내 제국주의를 단지 갱단에 불과한 것으로 간주하게 됐고, 그런 제국주의를 위해 일하고 있음을 자각한 것이다. 버마에서 마주쳤던 얼굴들, 즉 피고인석에 앉아 있는 수감자들, 사형수들의 방에서 죽음을 기다리는 사람들, 내가 거칠게 다뤘던 아랫사람들, 내가 모욕을 줬던 늙은 농부들 내가 화날 때 두들겨 팼던 하인들과 일꾼들의 얼굴들이 그의 머리를 떠나지 않았다. 그가 거기에서 맡았던 역할은 압박 시스템의 톱니바퀴 중 하나였다는 것을 그는 명료하게 자각한다.


나는 맹세한다. 거짓된 글, 외면된 글을 쓰지 않겠다고. 글 안에서만큼은 나에게 솔직해지겠다고. 앞으로 많은 글이 나로부터 탄생할 것이다. 그 글들이 많은 사람들에게 선한 영향력을 미칠 수 있으면 좋겠다
그가 볼 때 러시아와 스탈린에 대해 비판을 주저하지 않는 것은 지적인 정직함의 문제였다. 당신이 몇 년 내내 소련 체제나 그 밖의 다른 어떤 체제에 대해 비굴한 아첨꾼으로 혹은 정치 선전꾼으로 행동하고 나서, 어느 날 갑자기 당신의 지적 정직성을 회복할 수 있으리라고는 생각하지 마시오.
한 번 창녀는 영원한 창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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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고양이로 사는 게 더 행복했을까 - 하루하루가 더 소중한 시한부 고양이 집사 일기
박은지 지음 / 미래의창 / 201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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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수필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수필 특유의 이야기가 끊어지는 느낌이 싫다. 그런 점에서 단편 소설집도 싫다. 맥락 없이 이어져 있는 단편집은 읽기가 너무 힘들다. 대부분의 수필은 그것에 빠지려 하면 다음 소재로 넘어가버리기 일수다. 더 듣고, 더 알고 싶은데 내가 만난 대부분의 수필은 이를 허락하지 않았다. 저자가 들려주는 이야기들이 하나의 책 안에서 연결돼 있지만, 나에겐 그 흐름이 느껴지지 않는다. 뚝뚝 끊어져 있는 이야기와 생각은 나에겐 어떤 의미로도 다가오지 않는다.하지만 이 책은 다른 수필 장르와 달리 흐름과 연결이 느껴져 재미있게 읽혔다. 이 책은 저자가 키우는 제이, 아리, 달이라는 3마리 반려묘에 대한 이야기다. 의도치 않게 나는 이 세 고양이의 이야기를 각각 따로 만났다. 그래서 더욱 이 책에 빠칠 수 있었다. 한숨에 이 책을 읽었다면 이 책 역시 흐름을 느끼기 힘들었겠지. 만약 이 책을 읽는다면, 각각의 고양이 마다 새로운 호흡을 갖고 읽는 것을 추천한다. 각각의 고양이 이야기를 통해 저자가 전하고자 하는 이야기는 비슷하지만 다른 결을 느낄 수 있다. 이 책은 저자의 반려묘에 대한 사랑을 절실히 보여준다. 반려 동물을 키우는 사람이나 반려 동물을 키우고자 하는 사람들이 읽는다면 많은 생각을 줄 것이다. 나 역시 이 책을 읽으며 많은 반성과 생각을 했다.
사람이 아니라 고양이라는 다른 종족의 생명체라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 더불어 나보다 아래에 있는 하급 존재가 아니라 그냥 하나의 개별적인 존재라는 것을 받아들일 때 평화는 비로소 찾아온다.
그에게 반려묘는 단순히 그의 욕구를 충족시키는 대상이 아니다. 많은 사람들은 흔히 자신의 부족한 점을 채우기 위해 반려 동물을 키운다. 외로워서, 심심해서, 남에게 자랑하기 위해 등등의 다양한 이유로 동물을 수단화한다. 그들에게 동물은 주체로서 대상이 결코 아니며 대상화 될 뿐이다. 하지만 저자는 고양이를 주체적인 생명체로서 존중하고 있다. 저자가 고양이들의 이야기를 통해 하고 싶은 말의 핵심이다.
요즘 반려 동물과 관련된 문제 역시 많은 사람들의 동물에 대한 경시적 태도에 기인한 것이라 생각한다. 만약 동물을 자신들과 동등한 입장, 대상으로 봤다면 그들을 함부로 대할 수 있었을까? 가벼운 마음으로 키우다가 싫증나면 그들을 버릴 수 있었을까? 저자가 던지는 메시지는 반려 동물 문제에 대한 원인이면서도 해결책이 될 수 있다. 동물을 키우기 전 동물에 대한 지식을 아는 것 이상으로 동물에 대한 이러한 태도를 지니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나는 지금껏 키웠던 반려 동물에 대해 주체로서 대하지 않았다. 정말 가볍게 생각했다. 반려 동물로서의 존중이지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었다. 싫증이 나면 그에게 관심이 멀어지기도 했고 그들을 관리하는 것조차 귀찮아했다. 정말 무책임했다. 아마 나는 내가 진정으로 책임을 질 수 있을 거라 생각할 때까지 반려 동물을 키우지 않을 것 같다. 내 욕구 충족의 대상으로 동물을 희생하는 것은 죄라고 느껴진다. 동물은 하나의 생명체 그 자체로 소중한 존재다. 우리의 편의에 때라 그들의 존재 가치를 우리에 맞출 권리는 없는 것이다.


저자의 고양이들에 대한 태도와 사랑은 우리 사회가 동물들을 어떻게 바라봐야 하는지 방향을 제시해준다. 하지만 남편에 대한 그녀의 태도에 대해선 다소 아쉬웠다. 그를 대하는 그녀의 태도는 이기적이었다. 그녀는 남편에게 고양이를 고양이 그 자체로 여겨달라고 지속적으로 요구하고 있다. 말을 하지 않아도 마음으로 계속 그걸 바라고 있다. 하지만 그녀에게 묻고 싶다. 그녀는 그를 있는 그대로의 그로서 받아들이고 있는지. 그는 그녀에게 고양이처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수 있는 존재가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고양이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려는 노력은 하지만 배우자에 대해선 그가 그녀를 이해해주길 바라고만 있다. 이 책에서 남편에 대한 이야기가 구체적으로 나오지 않아 오해일 수 있다. 그러나 읽으며 꾸준히 이 생각이 들었다. 남편 역시도 하나의 주체로서의 존재이다. 그의 결에 대해 강요할 권리는 그 누구에게도 없다. 그녀가 고양이를 대하는 태도를 인간인 배우자에게도 보여주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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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고양이로 사는 게 더 행복했을까 - 하루하루가 더 소중한 시한부 고양이 집사 일기
박은지 지음 / 미래의창 / 201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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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수필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수필 특유의 이야기가 끊어지는 느낌이 싫다. 그런 점에서 단편 소설집도 싫다. 맥락 없이 이어져 있는 단편집은 읽기가 너무 힘들다. 대부분의 수필은 그것에 빠지려 하면 다음 소재로 넘어가버리기 일수다. 더 듣고, 더 알고 싶은데 내가 만난 대부분의 수필은 이를 허락하지 않았다. 저자가 들려주는 이야기들이 하나의 책 안에서 연결돼 있지만, 나에겐 그 흐름이 느껴지지 않는다. 뚝뚝 끊어져 있는 이야기와 생각은 나에겐 어떤 의미로도 다가오지 않는다.하지만 이 책은 다른 수필 장르와 달리 흐름과 연결이 느껴져 재미있게 읽혔다. 이 책은 저자가 키우는 제이, 아리, 달이라는 3마리 반려묘에 대한 이야기다. 의도치 않게 나는 이 세 고양이의 이야기를 각각 따로 만났다. 그래서 더욱 이 책에 빠칠 수 있었다. 한숨에 이 책을 읽었다면 이 책 역시 흐름을 느끼기 힘들었겠지. 만약 이 책을 읽는다면, 각각의 고양이 마다 새로운 호흡을 갖고 읽는 것을 추천한다. 각각의 고양이 이야기를 통해 저자가 전하고자 하는 이야기는 비슷하지만 다른 결을 느낄 수 있다. 이 책은 저자의 반려묘에 대한 사랑을 절실히 보여준다. 반려 동물을 키우는 사람이나 반려 동물을 키우고자 하는 사람들이 읽는다면 많은 생각을 줄 것이다. 나 역시 이 책을 읽으며 많은 반성과 생각을 했다.
사람이 아니라 고양이라는 다른 종족의 생명체라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 더불어 나보다 아래에 있는 하급 존재가 아니라 그냥 하나의 개별적인 존재라는 것을 받아들일 때 평화는 비로소 찾아온다.
그에게 반려묘는 단순히 그의 욕구를 충족시키는 대상이 아니다. 많은 사람들은 흔히 자신의 부족한 점을 채우기 위해 반려 동물을 키운다. 외로워서, 심심해서, 남에게 자랑하기 위해 등등의 다양한 이유로 동물을 수단화한다. 그들에게 동물은 주체로서 대상이 결코 아니며 대상화 될 뿐이다. 하지만 저자는 고양이를 주체적인 생명체로서 존중하고 있다. 저자가 고양이들의 이야기를 통해 하고 싶은 말의 핵심이다.
요즘 반려 동물과 관련된 문제 역시 많은 사람들의 동물에 대한 경시적 태도에 기인한 것이라 생각한다. 만약 동물을 자신들과 동등한 입장, 대상으로 봤다면 그들을 함부로 대할 수 있었을까? 가벼운 마음으로 키우다가 싫증나면 그들을 버릴 수 있었을까? 저자가 던지는 메시지는 반려 동물 문제에 대한 원인이면서도 해결책이 될 수 있다. 동물을 키우기 전 동물에 대한 지식을 아는 것 이상으로 동물에 대한 이러한 태도를 지니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나는 지금껏 키웠던 반려 동물에 대해 주체로서 대하지 않았다. 정말 가볍게 생각했다. 반려 동물로서의 존중이지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었다. 싫증이 나면 그에게 관심이 멀어지기도 했고 그들을 관리하는 것조차 귀찮아했다. 정말 무책임했다. 아마 나는 내가 진정으로 책임을 질 수 있을 거라 생각할 때까지 반려 동물을 키우지 않을 것 같다. 내 욕구 충족의 대상으로 동물을 희생하는 것은 죄라고 느껴진다. 동물은 하나의 생명체 그 자체로 소중한 존재다. 우리의 편의에 때라 그들의 존재 가치를 우리에 맞출 권리는 없는 것이다.


저자의 고양이들에 대한 태도와 사랑은 우리 사회가 동물들을 어떻게 바라봐야 하는지 방향을 제시해준다. 하지만 남편에 대한 그녀의 태도에 대해선 다소 아쉬웠다. 그를 대하는 그녀의 태도는 이기적이었다. 그녀는 남편에게 고양이를 고양이 그 자체로 여겨달라고 지속적으로 요구하고 있다. 말을 하지 않아도 마음으로 계속 그걸 바라고 있다. 하지만 그녀에게 묻고 싶다. 그녀는 그를 있는 그대로의 그로서 받아들이고 있는지. 그는 그녀에게 고양이처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수 있는 존재가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고양이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려는 노력은 하지만 배우자에 대해선 그가 그녀를 이해해주길 바라고만 있다. 이 책에서 남편에 대한 이야기가 구체적으로 나오지 않아 오해일 수 있다. 그러나 읽으며 꾸준히 이 생각이 들었다. 남편 역시도 하나의 주체로서의 존재이다. 그의 결에 대해 강요할 권리는 그 누구에게도 없다. 그녀가 고양이를 대하는 태도를 인간인 배우자에게도 보여주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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