팬티 바르게 개는 법 - 어른을 꿈꾸는 15세의 자립 수업
미나미노 다다하루 지음, 안윤선 옮김 / 공명 / 201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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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미나미노 다다하루는 고등학교 영어교사로 13년간 근무하다가 늘 무기력하고 산만한 수업 태도, 의욕저하의 아이들을 보면서 과연 그 원인이 '성적'이나 개인의 '학업 성취도'에 의해서만 판가름 되는 것인지에 대해 깊이 고민하게 된다. 그러다 문득 아이들에게 하루하루의 생활을 즐길 수 있게 하는 '생활력'과 '자립심'을 기르는 게 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깨닫게 되면서 입시교육의 선봉이자 학부모와 아이들의 주요 관심 교육인 '영어'과목을 내려놓고 입시교육에선 소외된 기술가정 교사로 전향한다.

 

기술가정 수업 속에서 학생들과 함께 각자의 삶을 살아가는 방식과 생각에 대해 탐구하면서 일상 생활을 꾸려가는 힘의 중요성을 보다 더 구체적으로 찾아가기 시작한다.

 

"저는 자기 생활을 스스로 정돈하는 힘, 그것을 '생활력'이라고 부릅니다. 이 생활력이 있으면 매일 기분 좋게 생활할 수 있습니다.웬만큼 사소한 일에는 쉽게 굴복하거나 꺽이는 일이 없습니다. 왜냐하면 자기 생활을 꾸려온 자신감이 '어떻게든 살아갈 수 있다'는 자신감을 낳기 때문입니다. 제가 바로 산증인입니다."

 

작가는 서문에서 생활력이 우리의 삶에 행복을 결정하는데 얼마나 중요한 요소인지를 밝히면서 과연 우리가 그 생활력과 자립심을 기르기 위해서는 어떤 노력이 필요한지에 대한 궁금증을 일으킨다.

 

그가 말하는 생활 속 자립은 생활 자립, 경제적 자립, 정신적 자립, 성적 자립 4가지로 분류되는데 이 책이 특별히 빛나는 이유는 작가가 실제 학생들과 수업을 하면서 아이들과 열렬히 토론한 내용에서 그가 얼마나 학생들의 시선에 맞춰 그 자신의 생각과 학생들의 생각의 틀을 깨고 생활 속 힘을 갖추게 하기 위한 노력을 기울였는지에 대해 알 수 있기 때문이다.

 

학생들은 처음에는 심드렁하게 '가족이란 무엇인가', '이상적인 결혼상대는 어떤 사람인가', '노후 준비는 어떻게 할 것인가' 등의 질문에 답을 하지만 교사의 애정어린 공감과 신선한 질문 속에서 보다 확장된 사고로 점점 토론과 논쟁을 즐기면서 수업에 임하게 된다. 이는 단순히 그들이 수업을 재미있게 참여한다는 데에만 의의가 있지 않다. 그들 스스로 얼마나 갇힌 사고 방식에 있는지 객관화 시킬 수 있는 장치가 될 뿐 아니라, 자신과 다른 의견을 들으면서 다양성을 알게 되고 보다 유연한 사고를 할 수 있게 되는 매우 뜻깊은 시간이 되기 때문이다.

 

우리가 매일 겪고 있는 일상 생활과 대인 관계를 선생님의 질문과 서로의 소통으로 알아가는 재미를 아이들은 스스로 체득하면서 실제로 생활에서 보다 많은 생각을 불어넣고 실천에까지 이르게 되지 않을까?

 

고등학생은 이제 생활 습관이나 여러 면에서 고치기에는 머리가 굵어서 어렵다고 여기기 쉬운 시기이기도 하다. 그래서 어른들도 좀처럼 그들을 고쳐나가는 일에 겁을 먹거나 포기를 하기 일쑤이다. 하지만, 입시와 전혀 상관없는 기술가정을 통해, 아이들이 열의를 가지고 수업에 참여하게 하고 자신의 삶을 돌아보게 하는 힘을 기르도록 하려는 작가의 열정은 실로 대단해 보인다.

 

"3년동안 자기 도시락을 스스로 싸서 학교에 다녀보세요."

이제 갓 1학년이 된 학생들에게 도시락 싸는 것만으로도 자립이 어떤 의미인지 알려줄 수 있다는 확신으로 던진 이야기였다. 도시락을 싸기 위해서는 시간이 필요하고, 계절에 따라 부패하지 않도록 신경써야 하고, 양과 영양 면에서도 균형을 따져야 하기 때문이다. 지금까지는 부모님이 알아서 준비해줬지만 이것으로 인해 자기 머리로 생각하고 자기 힘으로 생활을 꾸려가는 훈련이 시작된다.

 

그는 '도시락 스스로 싸기'에 대한 의미가 확실하긴 했지만 그것을 실천할 수 있는 학생이 과연 몇이나 될지는 확신할 수 없었다. 차라리 그 시간에 공부를 하라는 학부모도 있을거고 그런 하찮은 일에 왜 시간을 낭비해야하느냐고 생각하는 학생들도 있을거라고 여겼기 때문이다.

 

하지만, 한 여학생이 졸업을 하면서 그에게 다가와, "입학식 때 선생님이 해주신 말대로 3년동안 도시락을 쌌어요."라는 이야기를 전해 듣는다.

 

그리고 정말 처음에는 도시락 싸는 일이 익숙하지 하지 않아서 빵처럼 간단한 것을 싸 온 적이 있지만, 싸면서 요령이 생겨서 3년동안 한번도 빠짐없이 스스로 도시락을 싸게 되었다는 얘기를 듣게 된다. 덧붙여, 그로 인해 자기 자신에 대한 자신감이 생겼다면서 눈물을 글썽이더란다. 혹자는, '그깟 도시락이 왜?'라고 생각했던 일이다. 하지만, 그 안에 담긴 뜻깊은 의미를 아이는 체득한 것이었다.

 

크게 공감되고 마음을 울리는 주옥같은 글귀들, 살아있는 배움들이 가득한 이 책을 통해 과연 내가 부모로서 내 아이를 어떻게 키워갈지에 대한 생각을 정립할 수 있게 해주었고, 나 역시 다 자란 성인이지만 정말 자립한 인간으로 성숙했는가에 대해 다시금 성찰할 수 있는 계기를 만들어주었다.

 

일상에서 도시락을 싸고, 이불을 개고, 청소를 하고, 빨래를 하고 등등의 여러가지 일이 갖는 뜻깊은 의미를 간과한 채로 살아온 지난 날들에 대해

 

반성도 되고 후회가 되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뿐만 아니라, 우리가 개개인의 삶외에도 사람과 사람이 더불어 살면서 가져야 할 마음가짐과 어울림의 즐거움, 혼자서로 자족할 수 있는 인생의 맛을 알 수 있는 힘으로 '생활력'을 제시해준 작가에게 진심으로 고마운 마음이 들었다.

 

아마 한 동안 이 책을 몇번이고 들추고 돌이켜 읽게 될 것 같다. 내 자신으로서, 아내로서, 자식으로서, 부모로서, 사회의 일원으로서 가져야 할 힘과 소양들을 사례와 심도깊은 질문들로 성찰할 수 있게 해주는 이 귀한 책을 만나게 된 것이 한 해를 시작한 지 얼마 안 된 지금 매우 큰 교훈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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