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어떤 인생도 실패는 아니라고 장자가 말했다
한정주 지음 / 다산북스 / 202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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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을 건너가는 모든 이에게, '그 어떤 인생도 실패는 아니라고 장자가 말했다'

제목 자체부터 강한 인상을 심게 하였다. 그 어떤 삶도 실패는 아니다, 내가 어떤 삶을 과거부터 이제껏 살아왔다 하더라도 모든 경험은 나의 길잡이와 삶의 내공을 이만큼 다지게 하는 발판이 되어주었을 것이다.

장자의 철학은 '우화'의 철학이라고 말한다. 다른 철학자들과 달리 장자는 스스로 지어내고 꾸며 낸 이야기들을 통해 자신의 철학적 메세지를 전한다. 책을 처음부터 끝까지 읽고 나니 정말 많은 우화들이 등장하여 나름 재미도 있었고 그런 비유,풍자,은유들을 통해 우리에게 알려주고자 하는 메세지의 의미를 혼자 더 깊게 생각해볼 수 있는 기회도 마련해준 것 같다. 작가는 이 책에서 쓴 장자의 메세지들은 나의 의견인 것이지, 장자의 우화나 철학을 읽고 판단 및 생각하는 것은 서로 다르게 느낄 수 있으므로 마음껏 생각을 확장해 사고해보라고 권유해보라고 하셨다.


처음 이 책은 '운명'에 관해 이야기를 시작하고 있다. "이제 삶의 방향은 결정되었는가?" 우리가 살아가는 모든 삶은 우연에 의한 것인지, 운명에 의한 것인지에 대한 논쟁은 그동안 매우 팽팽해왔다. 하지만 어느 한쪽의 손을 일방적으로 들어주기는 어렵다. 분명 아무리 우리가 의지와 능력을 발휘해도 통제할 수 없는 힘이 있는가 하면, 동시에 자신의 의지와 역량으로 나의 삶을 통제할 수 있는 힘도 부분 있기 때문이다. 작가는 말하길 운명은 '변화 가능성'과 '예측 불가능'이 두가지의 본성을 가지고 있다고 했다. 그러므로 우리가 어떻게 현재, 여기의 삶을 잘 구성하느냐에 다라 우리의 운명은 충분히 변화하고 다시 구성될 수 있다. 또 하나의 본성은 '모호하고 불확실성'이 우리에게는 훨씬 좋은 장점이자 희망의 메세지로 다가올 수 있는 것이다.

'자신의 운명을 사랑하자!" 운명은 무한한 가능성의 세계이므로 어떤 일이 일어날 수도 될 수도 있다. 또한 운명은 무한히 변화한다. 부유함이 곤궁함으로, 곤궁함이 부유함으로도 바뀔수도 있는 것이다. 삶은 죽음이 되고 죽음은 다시 삶이 될 수도 있다.


또 다른 장에서는 '욕망'에 관해 이야기하고 있다. 사실 우리의 욕망은 곧 '타자의 욕망'이다. 내가 무엇인가를 원한다고 했을 때, 그것은 '타자의 욕망에 만들어진 나의 욕망'을 의미한다.즉 욕망하는 것은 나이고 나의 소유이므로 내가 욕망의 주인 같지만 우리는 항상 누군가와 비교하고 타인의 삶을 부러워하느라 그것이 실제로 나의 욕망인지조차 분간할 수 없다는 것이다. 또한 사람들은 '자신의 욕망'을 사랑하고 그것을 상대방에게 주입시키며 그것을 나의 욕망이라고 자부한다. 노나라 임금과 바닷새의 우화에서 보았을 때, 우리는 대개 상대방이 원하고 바라는 방식으로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원하는 방식대로 사랑한다는 것이다. 이런 욕망의 굴레에서 벗어나는 방식은 무엇일까? 가장 익숙하고 널리 알려진 방법은 욕망을 부정하거나 제거하는 방식이겠지만 이것은 아무런 실효성이 없다. 장자는 욕망을 '거울'처럼 대하라고 말한다. 거울은 아무런 과장이나 축소 없이 그 자체를 솔직하게 보여준다. 그러므로 욕망하는 것을 얻으며 얻은대로, 얻지 못하면 잃은대로 그대로 받아들이고 구태여 집착하지 말라는 얘기이다. 지금까지 다른 사람의 욕망을 좇고 살았다면 지금부터는 정말 자신이 원하고 바라는 것을 찾아 봅시다!


우리는 항상 일상 생활 속에서 불안을 느끼며 산다. 그리고 10대부터 죽을 때까지 사실 평생 우리는 불안을 껴안고 살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어짜피 우리가 불안을 떼고 살 수 없다면 불안을 공부하고 배워야 한다. 그림자를 두려워하다 죽은 남자의 이야기가 있다. 불안을 경험할 때 도망치기보다는 불안 속(그늘, 그림자 속)으로 들어가라, 즉 불안을 삶의 일부로 받아들이고, 불안의 원인이 되는 자신의 삶 속으로 들어가라는 의미이다 .왜냐하면 결국 불안은 자신 스스로 만든 것이기 때문이다.

불안하다는 것을 제대로 깨달은 사람은 누구든지 궁극적인 것을 터득한 셈이다 -키에르케고르-

이번에는 '앎'에 대해 알아보는 시간을 가져보도록 하자. 우리는 살아가며 명확하게 아는 것이 있는가? 장자에게 절대적인 '앎'이란 애초부터 조내하지 않는다. 절대적인 앎은 신화에 불가하며 상대적인 것이다.

삶은 한계가 있지만 앎에는 한계가 없다. 한계가 있는 삶을 가지고 한계가 없는 앎을 추구하는 것은 위험할 뿐이다. 그런데로 계속 알려고만 한다면 더더욱 위험해질 뿐이다. -장자-

아는 만큼 보인다는 말이 있다. 자신의 앎을 통해서, 즉 자신이 이미 알고 있는 지식과 경험에 갇혀서 본다는 의미이다. 우화를 통해 '자기 앎의 안' 즉 자신이 아는 것에 갇혀 버리면 '자기 앎의 밖' 곧 자신이 모르는 것을 절대 볼 수 없다는 점을 알려주고 있다. 소크라테스의 '너 자신을 알라!"라는 말도 있듯이 자신이 모르는 것이 무엇인지를 아는 것이야말로 진정으로 알 수 있다는 뜻이다. 그렇다면 자신의 앎에 갇히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무엇보다 자신의 앎에 대한 확신과 믿음을 버려야 한다. 또한 앎은 상대적인 것이라 누군가에게는 절대적인 것이 누군가에게는 아무것도 아닌 것일 수도 있다. 또한 자신의 람에 대한 확신과 믿음이 타자의 삶과 생명을 위험에 빠뜨리거나 파괴할 수도 있다. 이미 알고 있는 자신의 앎을 잊어버리고 자신이 지배하고 있는 앎을 파멸시키자!


5장에서는 우리가 많이 두려워하는 '죽음'에 관한 얘기를 다루고 있다. 가장 사랑하는 아내의 죽음에 관한 우화를 들며 장자는 삶과 죽음은 자연현상이며 자연의 변화에 불과하다는 철학적 메세지를 전달하고 있다. 죽음을 의식하면 삶은 너무나 혼란스러워진다. 반대로 죽음을 걱정하거나 근심하지 않으면 온전히 지금 여기의 삶, 즉 현실의 삶에 집중할 수 있다. 삶과 죽음 모두 좋게 여기자! 젊음이 소중한 것처럼 늙음도 소중하고 쇠약하고 병든 몸도 소중하다. 우리는 결국 필연적으로 변화를 겪게 된다. 유년기, 청년기, 중년기, 노년기의 흐름에 따라 겪게 되는 정신의 변화를 받아들이고 그에 맞춰 삶 역시 바꿔야한다. 왜 변화를 받아들이고 순응해야 할까? 어떤 것도 영원한 것은 없고 모든 것은 무상하기 때문이다. 마흔 이후의 삶은 앞으로 다가올 늙음의 시간을 받아들이고 변화에 순응하는 지혜가 꼭 필요한 시간이다.

장자를 흔히 현실을 도피한 사상가로 오해하지만, 장자는 다른 무언가가 아닌 나 자신을 위해 살아가야 할 이유를 말해주고 혼란한 시대에 새롭게 살아갈 힘을 부여해주고 있다. 지금 중년의 문턱으로 들어서는 마흔의 삶에 접어든 이가 있다면, 장자의 지혜에서 자신만의 고유한 삶을 살아보길 적극 추천해본다.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쓴 서평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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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어떤 인생도 실패는 아니라고 장자가 말했다
한정주 지음 / 다산북스 / 202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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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자는 힘들고 험한 삶을 살아가는 마흔에 접어든 우리에게 여러 우화들을 통해 각자 생각할 시간을 가지게 해주고 현명한 철학적 메세지를 전달해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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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도소의 정신과 의사 - 치료와 형벌 사이에서 생각한 것들
노무라 도시아키 지음, 송경원 옮김 / 지금이책 / 202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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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죄자들을 치료하는 것에 갈등을 느끼지는 않습니까?

어느 교도소 정신과 의사의 고백, 그리고 교정과 치료, 격리와 보호, 가해와 피해,

그 경계에서 마주한 사람들의 이야기

교도소는 우리가 흔히 접하는 공공시설은 아니다. 정신질환으로 인해 법을 어기거나 여러 범죄를 저지른 가해자들이 수감되는 교도소에 대해 많은 사람들은 여러 시선을 보내온다. 특히 피해자들의 입장에는 자신들의 인생을 송두리째 빼앗아놓고 삼시세끼를 챙겨먹고 봉사 교육도 받게 해주며, 자격증까지 무료로 취득시켜주는 것에 엄청난 반발을 일으킨다. 또한 정신질환으로 인해 수감되었거나, 수감된 후 정신질환이 발병된 대상자들을 위해서 주인공과 같은 정신과 의사는 치료를 해줄 수 있다는 점에서 그런 사람들도 치료를 해줄 수는 없다며 치료를 부정적으로 보거나 많이 가로막아 온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그들을 그대로 방치한다면 인간으로서 우리는 과연 인간의 존엄성을 잘 지키고 있는 것일까.

이 책의 제목인 <교도소의 정신과 의사>에는 두 가지 의미를 가지고 있다고 주인공은 얘기하고 있다. 첫 번째는 주로 교도소 같은 교정시설에서 오랫동안 정신과 의사로 근무한 경험을 바탕으로 쓰였다. 두 번째는 교도소로 대표되는 교정시설이 높은 담으로 둘러싸여 우리의 일상과 격리된 채 눈에 보이지 않는다는 것에 중점을 두고 있다. 그리하여 여기서의 '교도소'는 그 자체의 공간적인 의미보다는 우리 사회의 그늘진 부분, 빛이 닿거나 관심이 닿지 않는 부분을 가리키고 있다고 볼 수 있다.


교도소에서의 정신과 의사는 어떻게 치료를 하며 하루를 보낼지, 일반적인 정신적 치료와 교도소 안에서의 수감자들을 대상으로 한 정신적 치료를 어떻게 다를지 많은 의문을 가지고 이 책을 읽어보기 시작했다. 주인공은 다양한 상황 속에서의 정신과 치료 및 경험을 조우하게 된다. 학대, 다양한 가족의 형태, ADHD와 같은 부주의성과 산만한,. 발달장애, 노인의 병과 죄, 핀란드 교도소에서의 경험, 왕진을 통해 알게된 점 등 다양한 내용을 새롭게 알 수 있었다.

담당하던 한 소녀가 극도로 흥분하여 진정될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출소일을 앞두고 있던 차에 그녀는 말하지 못했던 비밀을 얘기하는데 재혼한 어머니의 의붓 오빠에게 초등학교 저학년때부터 매일 성적학대를 당해왔다는 것이다. 장기적으로, 반복적으로 학대를 당해온 소녀과 같은 경우 체계화된 심리치료는 효과가 없거나 효과가 있어도 매우 제한적이라고 한다. 제일 필요한 것은 안정된 의식주 제공과 끈기 있고 꾸준한 지지이다. 다시 말해 정신의학이 할 수 있는 것은 안타깝게도 지극히 제한적이라는 것을 얘기하고 있다.

우리가 흔히 말하는 '청소년 비행'은 부정적인 학습의 결과와 적절하지 못한 양육, 또한 앞서 말한 '학대'로 인한 결과로 이해할 수 있다. 비행 청소년의 치료 경우 불우한 환경으로 성장 발달이 늦어지는 경우 아동양호시설, 소년원 등 어느정도 보호 환경에서 생활하면 조금이나마 회복되지만, 인생의 초기에 상당한 타격을 장기간 받았다면 회복이 힘들 수도 있다는 점을 얘기한다. 또한 학대를 행한 어른이나 부모도 사실은 학대받았으 가능성이 높을 수 있다. 부적절한 양육과 케어를 받은 사람은 그대로 똑같은 부모가 되기 쉽다는 것이다.


또한 주인공은 발달장애의 하나인 ADHD에 대해 이야기한다. ADHD는 성인과 아이 모두 나타날 수 있고 나이가 들면서 증상이 감소하는 것도 기대할 수 있고 약물로도 치료가 가능하다. 우리나라처럼 일본에서도 ADHD를 교육현장에서 주로 관심을 가지고 있었고, 초등학교 고학년이 될수록 안정적이 된다는 생각이 지배적이었지만 10대 후반, 그리고 어른이 되어서도 이 장애는 계속 남아있을 수 있다. 아동의 경우 쉽게 발견될 수 있지만 성인 ADHD의 진단은 아동보다 어려운 경우가 많다. 성장과정의 영향도 다르고 어쩌면 다른 환경에서는 평범해보였을지도 모르니 말이다.

범죄백서 등의 자료에 따르면 일본에서의 전체 수감자 중 노인 비율이 급증하고 있다. 노인 수감자가 증가하는 배경은 몇 가지 설이 있지만 주로 '노인의 사회적 고립과 경제적 빈곤'이 주된 원인으로 의견을 모으고 있다. 예를 들어 저학력에 지능이 그다지 높지 않은 사람이 공장에서 일하고 결혼은 하지 않았고 회사에서 잘리고, 돈이 없어 늦은 나이에 노숙자가 된다. 더이상 버티기가 힘들어 물건을 훔치다가 경찰에 넘겨져 실형을 살아 이렇게 교도소에 복역하게 되는 것이다. 영국의 다양한 논문에 따르면 노인 범죄의 다수는 성범죄, 약물범죄, 폭행 등이 다수를 차지하고 있었고, 노인을 수감하는 것이 윤리적으로 문제가 있다고 지적하기도 한다.

또한 노인 수감자들을 진찰해보며 알게 된 것은 절도나 무전취식 같은 경범죄 외에도 살인, 살임미수, 상해치사 같은 중대범죄도 많다는 것이다. 그 이유를 캐보니 대부분 가족을 상대로 한 범죄였고, '간병'끝에 벌어진 범죄였다. 오랫동안 정신질환에 걸린 아이를 부부가 같이 간병하다 아내 또한 병에 거려 둘을 살해하고 자신은 자살을 기도했으나 실패하고 살인죄로 들어오는 것이다. 또 다른 수감자는 알츠하이머(노인성 치매)를 겪고 있던 아내를 5년넘게 간병하다 지쳐 살해한 죄로 수감된 여든을 바라보는 남성의 경우도 있다.


주인공은 핀란드의 교도소를 견학할 기회를 갖게 된다. 일본과 핀란드의 교도소는 어떠한 차이점을 가지고 있을까. 핀란드의 교도소 중 가장 규모가 큰 폐쇄교도소인 헬싱키 교도소를 둘러보며 놀랍게 느낀 것 중의 한가지는 교도소안에서의 자살에 대해 교도관이 해외에서 온 방문자에게 사실을 숨김없이 말한다는 것이다. 일본 교도소에서의 자살은 무조건 함구하며 교도소의 오점으로 생각하기 때문이다. 치매 케어에 관련해서도 다리나 허리가 많이 불편해보이는 치매 노인들은 자유롭게 걷고 있었으며 신체를 구속하거나 진정시키기 위한 투약도 최소한으로 절제된다. 넘어지는 경우 가족에게서 항의를 받는 경우는 없고 가족에게 충분히 상황을 설명하면 인지한다. 일본의 경우는 낙상사고가 일어날시 가족으로부터 격렬한 항의를 받기 때문에 환자를 침대에 묶어두거나 하여 비판이 가지않게끔 하기 때문이다.

교도소의 소장이 말했던 인상깊었던 말 " 우리의 목표는 모범적인 수감자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건전한 시민을 만드는 것입니다."

즉 일본의 교도소와 핀란드의 교도소의 차이는 범죄자를 수용하는 목적을 '형벌'로 보느냐, '사회복귀(좋은 시민 양성)'로 보느냐에 따른 것이다.

'교도소'로 대변되는 높은 담장 너머에서 우울증, 섭식장애, 불안증, 과대망상, ADHD 등 다양한 마음의 병을 앓고 있는 사람들을 가해자란 이유로 방치한다면 과연 인간으로서의 역할을 우리가 제대로 하고 있는 것일까하는 생각을 해보게 한다. 또한 교도소에서 같이 살아가며 밤낮으로 지원해주는 사람들은 단순히 그들을 격리하고 교정하는 것 외에도 어떤 생각을 하며 살아갈까. 이 책은 우리가 살아가는 사회로부터 격리된 특수한 공간에서의 의료 현장을 정신과 의사의 실제 경험을 들어 생생하게 담아내고 있다는 점에서 흥미롭게 처음부터 끝까지 재미있게 읽었다. 많은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겪었을 의사의 고뇌와 갈등, 복잡한 내면 고백을 들으며 또다른 공간에서의 그들의 인생과 삶에 대해 자세히 알아보는 계기도 되었다.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직접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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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도소의 정신과 의사 - 치료와 형벌 사이에서 생각한 것들
노무라 도시아키 지음, 송경원 옮김 / 지금이책 / 202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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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도소 수감자들에게 필요한 것은 형벌일지 치료일지 깊이 생각해보는 시간을 갖게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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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코 나의 운명을 원망하지 않으리라 - 쇼펜하우어의 인생에 대한 조언(1851) 라이즈 포 라이프 2
아르투어 쇼펜하우어 지음, 김요한 옮김 / RISE(떠오름) / 202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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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투어 쇼펜하우어는 독일의 철학자로 19세기 서양 철학계의 상징적인 인물이다. 그의 책들을 이제껏 찾아 읽어보았지만 전반적인 느낌은 냉정하지만 시원하고 통찰력이 넘친다는 점이다. 흔히 쇼펜하우어를 염세주의자, 비관론자로도 알려져 있지만 그는 인생의 참된 의미를 전달하고자 실질적이고 현실적인 내용을 설파하며 끊임없이 탐구한 인물이다.'철학자의 철학자'로도 일컬어지면 니체, 프로이트, 톨스토이, 보르헤스, 카프카, 아인슈타인 등 많은 위인들에게 영감을 주었으며 그의 작품들은 아직까지도 불멸의 고전으로 읽혀지고 있다.

시중의 쇼펜하우어에 관한 책들은 주로 저자의 견해를 담아 재해석한 '자기계발서'가 주를 이룬다는 사실에 안타까워하면서 지은이가 쇼펜하우어의 <Counsels and Maxims>를 그대로 옮겨와서 아무 주석없이 원문 그대로를 실었다. 그리하여 독자분들에게 한장한장 여러번 정독하면서 다른 사람의 재해석이 아닌 스스로 해석하는 과정을 통해 정말 쇼펜하우어가 전달하고 싶은 것은 무엇인지 스스로 탐구하고자 하는 것을 목적으로 삼았다. "쇼펜하우어의 원문을 읽으면서 그 의미를 스스로 해석해보는 것은 어떨까요?"


#"현명한 사람은 고통이 없기를 바라고 쾌락을 추구하지 않는다."

행복하게 산다는 것은 작은 불행에 의해 그럭저럭 견딜만한 삶을 산다는 것을 의미한다. 즉 행복은 삶의 쾌락과 향락을 누리는 것이 아니라 삶의 고통을 피하고자 노력하는 것이다. 우리는 행복이라는 환상에 너무 빠지지 않고 되도록이면 추구하지 않을수록 삶의 목표는 성공할 수 있다고 말한다. 그러므로 쾌락,재산,지위,명예와 같은 요구를 최대한 적게 설정하자. 그래야 행복해질 수 있다.

#누군가가 얼만큼 행복한가를 평가한다면, 무엇이 그를 괴롭히는지를 먼저 따져야 한다. 무엇에 만족하고 있느냐가 아니라, 괴로운 이유가 사소하면 사소할수록 그 사람은 행복한 것이다. 행복한 상태일 때에는 사소한 일에도 민감하지만 불행할 때에는 사소한 일들이 전혀 느끼지지 않기 때문이다.


#현재가 진실이며 실재적인 시간이자 오로지 현재 속에 우리가 있다.

세네카가 말하길 " 하루를 하나의 인생처럼 살아라"라는 말이 있다. 이와 연관되는 말이겠지만 현재 즉 오늘 하루를 하나의 인생처럼 소중하게 아끼면서 알차게 살아야 한다. 여러 계획을 세우면서 미래를 미리 걱정하거나 이미 지나간 과거를 후회해봤자 아무 필요가 없으며 오직 지금 현재는 현실이자 가장 정확한 것이다. carpe diem 또는 Seize the day 와 같은 명언들이 있다. 이 명언들 또한 현재를 중시하고 하루하루 현재를 중요하게 생각하라는 말과 부합할 것이다.

#질투는 항상 사람들 사이에 존재한다.

쇼펜하우어는 말하길 질투를 행복의 적으로 여기고 나쁜 생각을 억누르듯 질투를 억눌러야 한다고 말한다. 다른 사람과 비교하지 말것, 자신보다 더 행복하고 나은 사람을 보며 괴로워 한다면 우리 자신은 결코 행복해질 수 없다.

'자신보다 나은 사람들이 많이 있다면, 자신보다 못한 사람들도 많이 있다는 것을 명심해라' 우리가 누군가로부터 질투를 받았을 때는 어떻게 해야할까. 질투하는 사람들을 최대한 멀리하고 되도록 그들과의 접촉을 피하고 큰 간격을 두라고 충고한다. 정 거리를 둘 수 없다면 그들의 공격에도 최대한 태연하게 참는 연습을 할 것!


#세상에는 다양한 사람들이 있다. 나도 살고 남도 살게 하라.

우리는 다양한 사람들을 마주치고 살아갈 수 밖에 없다. 내가 마음에 드는 사람이 아니더라고 각자가 자신의 성격에 따라 존재할 권리를 인정해야 하며, 그 성격을 우리가 강제로 변하게하려고 하거나 비난하기보다는 허용범위 내에서 그것을 이용할 방법을 찾는 것이다. 그것이 바로 자신도 살고 남도 살게하는 격언의 의미이다.

#사소한 일에서 진짜 모습이 나타난다.

사람들은 작고 사소한 일 속에서 자신의 진짜 성격을 드러낸다. 그러므로 우리는 사소한 태도를 관찰하여 그 사람에 대해 알 수 있는 무한한 이기심에 대한 기회를 얻을 수 있다. 세상 사람들은 언제나 한 면만 보여주게 되어 있다. 모든 사람은 모방의 재능이 있어 가면을 쓰고 다른사람인 척 할 수도 있다. 그러므로 새로 알게 된 사람에게는 지나치게 호감을 갖지 않고 조심하는 것이 좋다고 충고한다. 그렇지 않으면 실망감과 수치심을 얻거나 큰 피해를 얻을 수도 있다.



#진정한 우정이란 무엇일까?

진정성 있고 순수한 우정은 상대방의 기쁨과 슬픔에 대해 강한 공감을 전제로 한다. 하지만 그의 감정에 대한 진실성을 테스트하기 제일 좋은 방법은 당신의 불행한 소식을 전달하고 어떻게 대응하는지를 관찰해보는 것이다. 그렇다면 당신의 친구는 진심어린 동정심을 도와주면서 같이 위로해주려고 애쓸 것이다.'우리는 가장 친한 친구의 불행에 직면했을 때 언제나 반드시 기분이 나쁘지 않은 무언가를 발견한다.'

#행복과 불행은 한 끗 차이다.

인생을 살아가면서 다양한 경험을 할수록 행복하거나 불행하다고 해서 영원하지 않다는 점, 행복이 쭉 이어지거나 불행이 오히려 결국 행복으로 인도하는 등 우리는 불행하다고 해서 계속 우울해거나 슬퍼할 필요가 없다. 전화위복이라는 말이 있듯이 오히려 불행한 일을 겪음으로서 더욱 인생의 모습이 달라지고 성숙해져 더 좋은 행복의 길로 나아갈 수도 있으니 말이다. 그러므로 어떠한 일이 당신을 덮치더라도 너무 기뻐하지도 슬퍼하지도말라. 셰익스피어는 말하길 '나는 너무 많은 기쁨과 슬픔의 변덕을 느꼈다.이제는 둘 중 하나가 일어나도 곧바로 감흥받지 않는다.'행복과 불행에 무감각,무관심하라는 소리는 아닌 듯 하다. 언제나 우리 인생에 불행이 일어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대비하고 살아간다면 막상 그 순간이 왔을 때 우리는 더욱 단단해져 버틸 수 있고 그 고통도 덜 아프고 가혹하게 느껴진다. 하지만 전혀 아무런 준비 없이 고통을 맞닥뜨린다면 우리는 엄청난 공포심과 고통에 삶을 이겨내기가 너무 힘들 것이다.결국 우리가 흔히 겪는 삶의 크지 않는 불행들은 더 큰 불행이 다가왔을 때 견디도록 우리를 훈련시키는 과정이라고 생각하자. 그렇다면 순간순간 매일 찾아오는 그 고통에도 우리는 무덤덤해지고 슬기롭게 이겨낼 수 있을 것이다.

어느 누구에게도 나의 비관적인 운명을 탓하거나 떠넘기고 책임지라고 하지 마라. 모든 것은 어느정도 나의 책임이 반드시 있다. 이것이 쇼펜하우어가 말하고자 하는 내용 중의 하나라고 나는 생각한다. 불행에 대한 책임도 나에게 있다. 불행을 겪은 사람이 현명해진다.헛된 욕망과 쾌락에 휘둘리지 마라. 등등 그래서 쇼펜하우어가 염세적,비관적이라는 말을 들었구나라는 생각도 들었다. 어쩌면 사람들에게는 냉정하지만 신랄하고 강력한 말 한마디가 정신을 바짝 차리게 할 수 있다. 어르고 위로하고 달래는 것도 좋지만 뭔가 머리를 한방 맞은 것같은 쇼펜하우어의 글은 읽을 때마다 느슨하게 살고 있던 나의 인생에 있어, 잠시 발을 멈추고 다시 무장하여 열심히 앞으로 나아가게 해주는 역할을 해준다.나의 운명을 원망하지 말고 나의 인생에 책임을 지고 명쾌하고 당당하게 나아가는 법을, 쇼펜하우어는 지금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들에게도 강력한 메세지를 전다해준다.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쓴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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