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이란 생활이란 이런 것이다.이 소설은 집중해서 읽기 힘들고, 중간에 때려쳐도 상관없다. 그러나 계속 읽게 되는 것. 미미한 희망을 안고 계속 읽어나가게 되는 것이, 우리가 살아가는 그것과 같다.매우 지루하고 재미없지만, 내 최고 소설 중 하나이다. 누구애게 권하긴 매우 힘들지만 읽은 누군가와 이야기를 나누고 싶은, 그런 소설이다.
창가에는 자홍색, 에메랄드색, 주홍색, 색색가지 액체가 채워진병들이 아래쪽 조명으로 환하게 빛나며 놓여 있었다. 그 병들이 온방을 밝혀주는 듯이 보였다. 담배 연기에 눈이 따가워서 눈물이 흐를 지경이었다. 음악은 잦아들었다가 다시 무시무시하게 커지곤했다. 나는 내 의자 뒤의 벽감에 쳐놓은, 기름 먹인 반들거리는 천으로 만든 검은 커튼을 손으로 쓰다듬었다. 기이하게도 커튼은 아주 차가웠다. 등불은 알프스의 소 방울 모양이었다. 바 위쪽으로는복슬복슬한 흰 원숭이 한마리가 앉아 있었다. 그다음 순간, 정확하게 샴페인을 마신 만큼 취했을 때, 뭔가 환상을 본 것 같았다. 나는한모금 마셨다. 그리고 이제 아주 선명하게, 어떤 열정이나 악의도없이, 나는 삶이 진짜로 무엇인지 보았다. 그건, 내 기억으로는, 빙빙 돌아가는 햇빛 가리개와 관련이 있었다. 그래, 춤추게 내버려둬.나는 중얼거렸다. 그들은 춤을 추고 있었다. 나는 기분이 좋았다.
내게 다가올 용기를 내려고 애쓰고 있음이 분명했다. 샬럿이 혹시 엉뚱한 해석을 하지 않게 하려고 나는 가방에서 『전망 좋은 방』을 꺼내 6장을 펼쳤다. 대화 중인 두 사람 사이에 끼어드는일보다 책을 읽는 한 사람을 방해하는 일을 더 꺼리는 것은 인간의본성 중에서 기묘하면서도 사랑스러운 부분이다. 설사 그 사람이읽고 있는 책이 멍청한 로맨스소설이라 해도 마찬가지다. - P133
"뉴욕에서 태어난 사람들의 문제가 바로 저거야. 남들처럼 뉴욕으로 도망칠 수가 없잖아." - P142
이곳에서 사진을 둘러보고 있는젊은 변호사와 신참 은행원과 활기찬 사교계 아가씨 들은 틀림없이이런 생각을 했을 것이다. 정말 절묘한 사진들이야. 이 얼마나 예술적인지. 이런 것이 바로 인간의 얼굴이야!‘하지만 사진이 찍히던 당시에 젊은이였던 우리에게는 사진 속 사람들이 유령처럼 보였다.1930년대….그 얼마나 힘든 시절이었는지..대공황이 시작됐을 때 나는 열여섯 살이었다. 1920년대의 태평하고 매력적인 분위기에 속아 넘어가 꿈과 기대를 품기에 딱 적당한 나이. 마치 미국이 맨해튼에게 교훈을 가르쳐주기 위해 대공황을 발진시킨 것 같았다. - P14
"바로 그 말이에요. 하지만 세월이 흐르면서 신도들이 점점 떨어져 나갔어요. 새로운 신자들은 자기들만의 교회를 지었고, 크고 오래된 교회들은 그냥 홀로 남겨졌죠. 노인들처럼, 전성기 시절의 기억만 간직한 채로, 그런 분위기가 나한테는 아주 평화롭게 느껴져요." - P75
그 이후의 모든 일들도 같은 이유 때문에 저질렀다. 한 가지 잘못된 일을 저지름으로써, 그 모든 일을 잘할 수 있다고 생각하게 됐던 것이다. - P117
내 머리는 모순된 순서로 뒤죽박죽된 명령을 내 몸에 마구 보내고 있었다. 앞으로 뛰어올라서 권총을 잡으라고, 달아나라고, 몸을 숙이라고, 문뒤로 숨으라고. 그러나 내 몸은 말을 듣지 않았다. 몸은 제멋대로 움직였다. 내 팔이 엽총을 들었고, 내 손가락이 방아쇠를, 차가운 금속 혀를 찾아서 뒤로 당겼다. - P284
어떻게 각각의 사건이 어쩔 수 없이 다음 사건으로이어졌는지, 왜 다른 대안은 전혀 없었는지, 왜 그 길에 갈림길은 전혀 없었는지, 왜 우리가 이미 한 일을 되돌려서 취소할 기회라고는 전혀 없었는지 논리적으로 설명할 수 있었다. 내가 형을 쏜 것은 형이 정신 나가기 직전이었기 때문이며, 그것은 내가 소니를 쐈기 때문이며, 그것은 내가 낸시를 쏜 것을 숨겨야 했기 때문이며, 그것은 낸시가 나를 쏘려 했기 때문이며, 그것은 형이 루를 쐈기 때문이며, 그것은 형이 루가 나를 쏘려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며, 그것은 루가 엽총으로 나를 협박했기 때문이며, 그것은 내가 루에게 드와이트 피더슨을 죽였다고 자백하도록 속였기 때문이며, 그것은 루가 나를 협박했기 때문이며, 그것은 내가 여름 전까지 - P349
내가 울고 있는 동안에도, 내가 가만히 앉아서 숨을 헐떡이는 동안에도, 나는 그런 행동이 아무 의미가 없음을, 내 범죄를 없던 일로 만들 수 없음을, 그 범죄에 대한 내 기분조차 바꿀 수 없음을 깨닫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미 저지른 일은 되돌릴 수 없다. 그렇게받아들이는 것만이 내가 계속 살아갈 수 있는 유일한 길, 내가 형의 죽음을 딛고 살아남을 수 있는 유일한 길이었다. 그렇지 않으면, 내가 허점을보이면, 비탄은 서서히 후회로 변하고, 후회는 가책으로, 가책은 벌을 받고자 하는 잠행성 욕구로 변할 것이다. 그러면 내 인생은 망가진다. 나는비탄을 조절하고 억누르고 떼어놓아야 했다. - P35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