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는 도망가거나 신분을 바꾸거나 머나먼곳에서 새로운 삶을 시작하려는 것이 아니었다. 그렇다고 자살을 생각한 것은 더더욱 아니었다. 비록 리노 같은 아들이 자신의 몸에서태어났고 그를 돌보아야 한다는 사실에 진저리를 치기는 했지만 말이다.릴라가 바라는 것은 전혀 다른 차원의 것이었다. - P17
릴리는 말 그대로 증발하기를 원했다. 그녀를 구성하는 세포 하나하나가 뿔뿔이 흩어져서 그녀에 대한 그 어떠한 흔적도 발견되지 않기를 바랐던 것이다. 나는 릴라를 아주 잘 알고 있기 때문에, 적어도 잘 알고 있다고믿기 때문에, 그녀가 이 세상에 머리카락 한 오라기도 남기지 않고사라지는 방법을 알아낸 것이 분명하다고 생각했다. - P18
나는 릴라가 나폴리를 한 번도 벗어난 적이 없었는데도 어린 시절부터 이미 이 모든 이치를 다 이해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릴라에게 인정해주고 싶었다. 하지만 말을 마치자마자 부끄럽게느껴졌다. 내 말에서 노인네 특유의 고약한 염세주의가 느껴졌다. - P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