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험해, 폴 디는 생각했다. 정말 위험해. 한때 노예였던 여자가 뭔가를 저렇게나 사랑하다니, 무척이나 위험한 짓이었다. 특히 사랑하는 대상이 자기 자식이라면 더욱더 그가 알기로는 그저 조금만 사랑하는 것이 가장 좋았다. 모든 걸, 그저 조금씩만 그래야만 사람들이그 대상의 허리를 부러뜨리거나 포대에 처넣는다 해도, 그다음을 위한 사랑이조금은 남아 있을 테니까. - P82

세 사람은 서로 손을 잡지 않았지만 그림자들은 손을 잡고 있었다. 세서가 왼편을 힐끗 보니, 세 사람의 그림자가 나란히 손에 손을 잡고땅 위를 미끄러져가고 있었다. 어쩌면 그가 옳은지도 몰라. - P85

그들의 발밑에 왼편으로 길게 드리운 세 그림자는 서로 손을 꼭잡고 있었다. 하지만 세서 말고는 아무도 그 사실을 알아채지 못했는데, 그녀도 좋은 징조라는 결론을 내리고 나서는 더이상 내려다보지않았다. 인생. 어쩌면 가능할지도 몰라. - P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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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업 작가이기에 내 삶은 수많은 원고 마감일로 채워져 있지만 바깥에서 보는 나는 태평하게 보일지도 모른다. 마감일을 며칠 넘기는 일도 잦은데(편집자 여러분 죄송합니다) 동동거리거나 예민하게 촉을 세워 성질을 부리지도 않는다. 사실 혼자서는 꼼꼼히 스트레스를 받지만 겉으로는 태연함을 유지한다. 결국 숱한 우여곡절을 지나서 원고를 차곡차곡 쌓아 송고할 나를 믿기 때문이다. 동동거린다고 달라질 게없으므로 태평한 척을 한다. 태평한 척은 진지한 연기로이어지고, 연기를 하다 보면 정말 태평함을 갖게 되기도 한다. 원고는 여유를 머금은 채 짠 하고 태어난다(쉽지 않다!). 지금은 안다. 이게 내 생김, 내가 살아가는 태도라는 것을. 나는 무리하지 않고 느긋하게 하지만 정성을 들여 그곳(고지!)으로 가는 타입이다. - P67

당신은 우울하다고 말합니다. ‘우울‘이란 단어엔 우물 같은 이응이 두 개나 들어 있군요. 우울의 우물은 좁고 깊습니다. 누구나 빠질 수 있고 습관적으로 빠지거나, 들어가면 나오기 싫어하는 자도 있습니다. 우울한 사람은 무엇도하고 싶지 않습니다. 문을 닫고 눕지요. 누워서 무언가를기다립니다. 그 무엇이란 (심각할 때 말이지만) ‘죽음‘을 가리키기도 합니다. 우울한 사람은 죽음을 생각하지만 실행할힘이 모자랍니다. 누가 저에게 우울이 뭔지 한마디로 말해보라 하면 모든 면에서 힘이 모자란 상태라 답하겠습니다. 우울한 사람은 시들어 있습니다. 빛, 흙, 물을 앞에 두고도양분으로 삼지 못하는 식물과 같은 상태이지요. 사계절을겨울나무로 살아야 하는 힘없는 존재. 돌아누우면 베개위로 눈물이 후드득 떨어지는 것. 도망치고 싶은 매일의 낮과 밤을 사는 것입니다. - P73

그러니까 우울은 슬픔을 두드려 얇게 펼친 것, 엷은 분노, 슬픔보다 진하진 않지만 광활하고 끝을 알 수 없는 무엇이겠지요. 누가슬픔보다 우울을 가볍다 할 수 있겠어요? 바닷물에서만사람이 죽는 건 아니지요. 사람은강물, 냇물, 접시 물에서도 익사할 수 있습니다. 펼쳐진 슬픔, 얕은 깊이를 존중하고 들여다보아야 하는 까닭이지요. - P74

손을 다치는 이유는 손을 사용하기 때문이다.
마음을 다치는 이유는 마음을 사용하기 때문이다. - P1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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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하는 쪽은 노는 쪽을 게으름뱅이 기생충이라며 경멸했고, 노는 쪽은 일하는 쪽을 재수 없는 얼간이로 보았다. 그런 와중에도 양측으로부터 사랑받는 부류가 있었다. 에세이스트, 아이돌, 싱어송라이터, 팟캐스트 진행자……….내면을 기꺼이 드러냄으로써 타인의 정신을 어루만진다고여겨지는 존재들, 그래서 반대로 열광적인 사랑을 퍼부을수 있는 존재들이었다.
이 분야에서는 인공지능조차 경쟁력을 잃었다. 기술적인 완벽성이나 심미성 또한 중요하지 않았다. 다들 진짜를원했다. 이 세계에서 진정 하나이며 그래서 가치 있는 것. 하지만 그 고유성으로 인해 한없이 연약해지는 것. 팬들의환호성 안에서만 무한히 빛날 수 있는 것. 악착같이 싸우지않아도 살아남을 수 있는 세상에, 남아도는 에너지를 퍼부을 만한 것. - P27

인간관계를 최종적으로 지배하는 것은 총점의 평균이 아니라 불합리한과락 조건이니까. 아무리 호의를 베풀더라도 하나가 충족되지 않으면 충격을 받고, 반대로 그 하나만 만족시키면 다른 것쯤이야 괜찮은 관계를 많이 보고 겪었다. 어쩔 수 없이 받아들였지만 웃긴 일이라고 생각한다. - P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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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사랑한 것은 셜록 홈스라는 인물만은 아니었다. 인상적이기는 해도 그 추리극만도 아니었다. 내가 가장 큰 매력을느낀 것은 홈스와 왓슨이 사는 세상이었다. 템스강, 자갈길을 요란하게 달리는 사륜마차, 가스등, 소용돌이치는 런던의 안개. - P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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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치 볼썽사나운 외모를 가진 사람은 저절로 더 좋은 내면을 지니게 된다는 듯, 아니면 외모의 결함을 내면의 뭔가로 당연히 보충해야 한다는 듯이 말했다.
그런 친절한 사람들은 틀렸다. 나의 내면은 아름답지 않다. 사람들이 나를 기피하고, 주정뱅이들은 나를 안줏거리 삼아 짓궂은 농담을 하고, 길에서 십대들이 조롱하고 놀리며 따라오는데 어떻게 그럴 수 있단 말인가? 옷가게에서 옷을 사려 할 때 점원조차 다가오지 않는데 어떻게 평범해질 수 있단 말인가? 평생 그런 대우를 받으며 살아온 내가 어떻게 아름다운 영혼을 지닐 수 있겠는가? 나는 내면도 외면도 아름답지 않다. 언니가 빈번히 정확하게 지적했듯 적지않은 적개심을 품고 있다. 지독하게 수줍음을 타고, 영원히 성마르며, 자신에게만 집착한다. - P3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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