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업 작가이기에 내 삶은 수많은 원고 마감일로 채워져 있지만 바깥에서 보는 나는 태평하게 보일지도 모른다. 마감일을 며칠 넘기는 일도 잦은데(편집자 여러분 죄송합니다) 동동거리거나 예민하게 촉을 세워 성질을 부리지도 않는다. 사실 혼자서는 꼼꼼히 스트레스를 받지만 겉으로는 태연함을 유지한다. 결국 숱한 우여곡절을 지나서 원고를 차곡차곡 쌓아 송고할 나를 믿기 때문이다. 동동거린다고 달라질 게없으므로 태평한 척을 한다. 태평한 척은 진지한 연기로이어지고, 연기를 하다 보면 정말 태평함을 갖게 되기도 한다. 원고는 여유를 머금은 채 짠 하고 태어난다(쉽지 않다!). 지금은 안다. 이게 내 생김, 내가 살아가는 태도라는 것을. 나는 무리하지 않고 느긋하게 하지만 정성을 들여 그곳(고지!)으로 가는 타입이다. - P67
당신은 우울하다고 말합니다. ‘우울‘이란 단어엔 우물 같은 이응이 두 개나 들어 있군요. 우울의 우물은 좁고 깊습니다. 누구나 빠질 수 있고 습관적으로 빠지거나, 들어가면 나오기 싫어하는 자도 있습니다. 우울한 사람은 무엇도하고 싶지 않습니다. 문을 닫고 눕지요. 누워서 무언가를기다립니다. 그 무엇이란 (심각할 때 말이지만) ‘죽음‘을 가리키기도 합니다. 우울한 사람은 죽음을 생각하지만 실행할힘이 모자랍니다. 누가 저에게 우울이 뭔지 한마디로 말해보라 하면 모든 면에서 힘이 모자란 상태라 답하겠습니다. 우울한 사람은 시들어 있습니다. 빛, 흙, 물을 앞에 두고도양분으로 삼지 못하는 식물과 같은 상태이지요. 사계절을겨울나무로 살아야 하는 힘없는 존재. 돌아누우면 베개위로 눈물이 후드득 떨어지는 것. 도망치고 싶은 매일의 낮과 밤을 사는 것입니다. - P73
그러니까 우울은 슬픔을 두드려 얇게 펼친 것, 엷은 분노, 슬픔보다 진하진 않지만 광활하고 끝을 알 수 없는 무엇이겠지요. 누가슬픔보다 우울을 가볍다 할 수 있겠어요? 바닷물에서만사람이 죽는 건 아니지요. 사람은강물, 냇물, 접시 물에서도 익사할 수 있습니다. 펼쳐진 슬픔, 얕은 깊이를 존중하고 들여다보아야 하는 까닭이지요. - P74
손을 다치는 이유는 손을 사용하기 때문이다. 마음을 다치는 이유는 마음을 사용하기 때문이다. - P1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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