둘은 말없이 서로를 마주 보았다. 그 순간은 팽창하는 듯, 어딘가에 아슬아슬하게 매달린 채 정지한 듯 느껴졌다. 마치 물방울처럼, 눈물 한 방울처럼…. 그러다가 커튼이 바람에 펄럭거리고 달그락거리는소리가 나자 릴리안은 퍼뜩 정신을 차렸다. 그녀는 고개를 숙이고서발길을 돌려 방을 나갔고, 문을 닫았다. 왜 그런 행동을 한 걸까? 무슨 의도로? 프랜시스는 베개에 등을 파묻은 채, 멀어져가는 릴리안의 발소리를 들으며 의문에 빠졌다. 가슴에 손을 얹어보니 상상 속의 말뚝에 관통당했던 자리가 약간 말랑말랑하게 느껴졌다. 프랜시스는 블라우스 옷깃을 끌어 내리고 축 처진캐미솔 끈을 젖힌 뒤, 방 저편의 거울 앞으로 건너가서 가슴을 비춰보았다. 눈에 띄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피부에 아무런 흠도, 자국도없었다. 당연히 그럴 리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침대로 돌아와 심장위에 손을 올리고 누우면서 그녀는 확신했다. 릴리안의 손길이 자신의 가슴에 일으켜놓은 어떤 열기가 일렁이는 것이, 피가 훅 달아오르는 것이 느껴진다고.
"왜요?" 그러면 실망하실 테고요." "언젠가는 분명 제가 좋은 사람이 아니라는 걸 알게 되실 테니까요. 프랜시스는 고개를 저었다. "상상도 안 되는 걸요. 그리고 지금 저는 당신이 그 어느 때보다도 좋아요! 우리 친구 할까요?" 미소를 굳히더니, 미간을 찡그렸다가 다시 폈다. 그러고는 시선을 나바버 부인이 깔깔 웃었다. "좋아요. 친구 해요." 그것만으로 충분했다. 그들은 테이블 너머의 서로를 마주 보며 미소를 지었다. 그때 둘 사이에서 어떤 변화가 일어났다. 무언가가 살아움직이고 활력이 도는 듯한…. 프랜시스는 이 느낌을 빗댈 만한 적절한 표현을 요리에서밖에 찾을 수 없었다. 달걀흰자가 뜨거운 물속에서 진줏빛으로 변하는 듯한, 우유 소스가 냄비 안에서 걸쭉해지는 듯한, 미묘하면서도 확실하게 감지할 수 있는 어떤 변화. 바버 부인도그걸 느꼈을까? 분명 느꼈을 것이다. 그녀는 의아한 눈빛을 띠면서 - P118
프랜시스는 양동이를 치우고 부랴부랴 샐러드를 준비했다. 음식은정원으로 가지고 나가서 피나무 아래에서 먹었다. 식사 내내 그녀는어머니와 활기차게 대화를 나누었다. 화제는 온통 가니시 신부의 자그 순간 종잡을 수 없는 흥분이 치솟았다. 몸이 달뜨는 기분이었다. 선 사업에 대한 것으로, 교구의 병약한 아이들을 받아줄 해안 지역의입양처를 찾았다는 이야기였다. 그런데 그릇을 다 비우고 나서 어머니와 편안한 침묵을 나누며 주위를 둘러보니, 화단의 풍경이 새삼 또렷하고 경이로워 보였다. 참제비고깔이 얼마나 파란지, 그런 파란색은 생전 처음 보았다. 마리골드와 오렌지색 금어초는 불꽃처럼 휘황했다. 꽃가루가 흩뿌려진 벨벳 같은 꽃송이 안으로 벌들이 드나들고있었다. 노란색 꽃가루 하나하나가 눈에 보였고, 모든 곤충의 모든 날갯짓 소리가 귀에 들어왔다. 문득 집 쪽을 돌아보니, 월워스의 친정에가려고 외출복을 차려입은 릴리안이 계단 창문을 지나가고 있었다 - P3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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