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라서, 다시 이야기가 끝나는 방식에 관해 생각해 볼 기회다. 무엇이 이야기가 끝나는 것을 허락할까? 끝날 수도 있는 자리를 지나가 버리면 계속해서 무엇을 이루어야 하는가?
단편 형식의 극단적 효율을 고려할 때 남은 페이지들이 비본질적이라고 느껴지지 않으려면 무엇을 해야 할까?
점점 늘어나는, 동시에 계속 잊지 말고 불신해야 하는 소설의 보편적 법칙 목록("구체적이어야 한다!‘, ‘효율을 존중하라!‘)에 다음을 덧붙일 수도 있다. 늘 확장하라. 사실 그게 이야기의 전부다. 지속적 확장 체계. 산문의 한 구획은 이야기가 (여전히) 확장하고 있다는 느낌에 기여하는 만큼만 이야기에서 자기 자리를 얻는다. - P243

우리가 어떻게 알까? 이미 말한 대로, 우리가 알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우리의 독자가 우리와 거의 똑같이 읽는다고 가정하고 우리가쓴 이야기를 읽어보는 것이다. 우리가 지루하면 독자도 지루하다. 약간 기쁨이 터져 나오면 독자도 기분이 좋아진다.
표면적으로는 괴상한 가정이다. 독서 클럽이나 창작 워크숍을 통해 사람들이 똑같이 읽지 않는다는 사실을 우리 모두 알고 있다. 하지만 영화관에서 사람들은 가끔 모두 동시에 입을 떡 벌린다. - P259

이상한 방식이지만 그게 기술의 전부다. 마치 앞에 있는 산문(이미백만 번은 읽었을 것이다)이 자신에게 완전히 새로운 글인 양 읽기시작하는 자신을 합리적으로 체현하는 상태로 빠져드는 것. 우리가텍스트의 한 구획을 이런 식으로 경험하면서 우리의 반응을 살피고그에 따라 바꿀 때, 독자의 눈에는 노력의 증거로 보인다(처음 읽는독자도 작가가 살려둔 문장 뒤에 노력이 덜 들어간 다른 형태의 수많은 문장이 있음을 직관적으로 안다고 말할 수도 있다. - P2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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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 관계에는 두 종류가 있다. 하나는 서로에게서 활기를얻는 관계고, 다른 하나는 활기찬 상태여야 만날 수 있는 관계다. 첫 번째에 속하는 사람들은 함께 시간을 보내기 위해 방해물을 치운다. 두 번째에 속하는 사람들은 일정표에서 빈 곳이있는지 찾는다.
나는 가끔은 로라 같고, 가끔은 레너드 같다. 어쩔 때는 하루가 지나기도 전에 성향이 바뀌기도 한다. - P21

"그 사람들은 어른인 척한 거야." 레너드가 말했다. "그뿐인 얘기지. 40년 전에 사람들은 결혼이라고 불리는 벽장에 들어갔어. 벽장 안에는 옷이 두 벌 있는데 너무 뻣뻣해서 저절로서 있을 정도야. 여자는 ‘아내‘라고 불리는 드레스 속으로, 남자는 ‘남편‘이라고 불리는 정장 속으로 걸어 들어갔지. 그게 다야. 그 사람들은 옷 속으로 사라졌어." 레너드는 성냥을 켜고 담배에 불을 붙인다. "지금 우리는 척을 하지 않아. 벌거벗은 채로여기 서 있지. 그런 거야." 그가 담배를 빨아들인다. 나는 몇 달만에 처음으로 그가 담배를 피우는 것을 지켜본다.
"나는 이 삶에 적합한 사람이 아니야." 내가 말한다.
"누군들 적합하겠어?" 레너드가 내 쪽으로 연기를 내뿜으며 말한다. - P41

그렇다면 나는 어디에 있을까? 끊임없는 투쟁 속에 있다.
나는 세 차례나 구원 같았던 로맨스의 상실을 견뎌냈다. 사랑이라는 환상, 공동체라는 환상, 일이라는 환상의 상실이 그것이었다. 그것들을 하나하나 잃을 때마다 나는 나도 모르게1970년 11월의 그 계시적이었던 첫 순간으로 돌아갔다. 초기의 페미니즘은 나에게 투명해지는 통찰의 생생한 번쩍임으로남아 있다. 그것은 나를 자기연민에서 구하고, 세상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고 싶은 마음이라는 비할 데 없이 훌륭한 선물을내게 선사했다.
나는 여전히 사랑 때문에 고심한다. 내 단단한 마음을, 그리고 또 다른 인간 존재를 동시에 사랑해보려고 애를 쓴다. 그리고 나는 일을 한다. 매일의 노력은 여전히 몹시도 고통스럽다. 그러나 노력하는 한, 나는 로맨스에 저항하고 있는 것이다. 로맨스에 저항할 때, 내가 받아들일 수 있는 가장 힘겨운 진실을 꾸준히 바라볼 때 나는 조금 더 나 자신에 가까워진다.
페미니즘은 내 안에 살아 있다. - P61

친밀감이 무너져내린 것을 (그 일의 비정상성과 그것이 준충격을 슬퍼하는 동안 불행은 수치스럽게 느껴졌다(우리는 솔로였을 때보다 결혼한 뒤에 더욱 혼자가 되어 있었다). 수치심은사람을 고립시킨다. 그 고립은 굴욕적이었다. 굴욕을 느끼면 사람은 생각할 수 없게 된다. 우리는 생각하지 않는 일에 몰두하기 시작했다. - P68

그리고 나는 동시에 바로 이것이 외로움임을, 외로움 그 자체임을 깨달았다. 외로움이란 내면의 삶이 사라지는 것이었다. 외로움이란 내가 나 자신으로부터 차단당한 상태였다. 외로움이란 바깥에 있는 그 무엇으로도 치유할 수 없었다. - P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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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 프란츠, 그 벌레 부분은 과잉이지만 나는 허용하겠어. 계속해 봐. 당신은 내가 알아챌 수밖에 없는 그걸로 뭘 할거지? 보람이 있는 일이기를 바라."
작가는 우리를 비규범적 사건, 예컨대 물리적으로 있을 법하지 않은 상황이나 두드러지게 고상한 언어 (또는 두드러지게 일상적인 언어), 또는 어느 러시아 선술집에서 사건 도중에 사람들을 몇 페이지동안 정지 상태로 둔채 그들 각각을 차례차례 길게 묘사하는 일련의긴 일탈로 끌어들일 때 그 대가를 치른다. (중 략)
좋은 이야기는 과잉의 패턴을 만든 뒤 그 과잉에 주목하고 그것을 장점으로 전환하는 이야기다. - P137

당신은 단거리 선수들을 지켜본 그 긴 세월에서 영감을 받아 소중한 꿈을 키워왔다…, 단거리 선수가 되겠다고. 그러다가 21번째 생일을 맞아 방에서 풀려나 복도로 나서서 우연히 거울과마주쳤는데 자신이 2미터 키에 근육이 울퉁불퉁하며 136킬로그램이나간다는 것(타고난 단거리 선수는 아니다)을 알게 된다. 밖으로 나가 첫 100미터를 뛰어보니 꼴찌다. 그 상심이란! 당신의 꿈은 박살났다. 하지만 우울한 마음으로 트랙에서 걸어 나가다 체형이 당신 같은사람 한 무리를 보게 된다. 투포환 선수들이 연습을 하고 있다. 그 순간 당신의 꿈은 형태가 바뀌어 다시 살아날 수도 있다(단거리 선수가 되고 싶다고 말했을 때 내가 진짜로 하고 싶었던 말은 그냥 운동선수가 되고 싶다는 거였어‘). - P172

따라서 승리의 순간이 되어야 하는 순간(내 목소리를 찾았다!‘)은또 슬프기도 했다.
마치 멋진 꿩을 가져오라고 재능이라는 사냥개를 초원 건너로 보냈는데 정작 물고 온 것은, 어디보자, 바비인형 하반신인 듯한 느낌이었다.
다른 식으로 표현해 보자. 나는 헤밍웨이 산을 최대한 높이 올라가다가 아무리 열심히 해도 거기에서는 시종이 되기를 바랄 수밖에 없다는 것을 깨닫고 다시는 절대 모방 죄를 범하지 않겠다고 결심하고골짜기로 비틀거리며 내려오다 ‘손더스 산‘이라는 이름이 붙은 작은똥 무더기 언덕과 마주쳤다.
‘흠.‘ 나는 생각했다. ‘이거 너무 작은데. 게다가 이건 똥 무더기 언덕이야.‘
그렇기는 하지만, 거기에는 내 이름이 있었다. - P175

그런데 "밥은 안달을 내며 바리스타를 다그쳤는데, 바리스타를 보자 그의 죽은 아내가 떠올랐기 때문이다. 그는 그녀가 몹시 보고 싶었고, 특히 지금처럼 크리스마스 시즌에 그랬다. 크리스마스는 언제나 그녀가 1년 중 가장 좋아하던 때였다"라고 쓴 사람은 어쩐지 "밥은 재수 없는 인간이었다"라고 쓴 인간보다 나은 사람 같은 느낌이든다.
나는 늘 이런 일이 벌어지는 것을 본다. 나는 진짜 나보다 내 이야기들에 있는 나라는 사람을 좋아한다. 그 사람이 더 똑똑하고 재치있고 인내심 있고 재미있다. 세계를 보는 눈도 더 지혜롭다.
쓰기를 멈추고 나 자신으로 돌아오면 더 제한적이고 편견도 많고 편협해지는 느낌이다.
하지만 페이지에서 잠깐이나마 평소보다 덜 멍청해진 것은 얼마나즐거운 일이었는지. - P1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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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두 눈이 가늘어지며 심장이 식어가는 걸 느꼈다. 처음으로-그러나 마지막은 아니었다ㅡ남자들은 나와는다른 종이라는 자각을 했다. 철저히 분리된 이질적인종 나와 내 연인 사이에 보이지 않는 얇은 막 같은 게드리워진 것만 같았다. 욕망이 침투할 만큼 성기되, 인간적유대는 어룽거리게 보일 만큼 불투명한 막 내겐 그 막너머에 있는 사람이 현실 같지 않았고, 나도 그에게 그런것 같았다. …(중 략)…
나를 사랑한다면서도 자기가 인격체라고 느끼는 데 필요한 것이 내게도 필요하다는 사실은 납득하지 못하는 남자의 얼굴을 들여다보면 그 막이 반짝이는 게 보였다. - P38

우정에는 두 가지 범주가 있다. 하나는 서로에게 활기를불어넣는 관계고, 다른 하나는 활기가 있어야만 같이 있을수 있는 관계다. 전자는 함께할 자리를 미리 마련해두지만, 후자는 일정 중에 빈 자릴 찾는다.
전에는 이런 구분을 일대일 관계의 문제라고생각했었다. 요즘은 그렇다기보다 기질 문제라는 생각이든다. 그러니까 내 말은, 기질적으로 활기가 샘솟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그런 게 일처럼 느껴지는 사람이 있다는 얘기다. 활기 있는 사람들은 자기를 표출하고 싶어 안달이지만, 그런 게 일인 사람은 쉽게 울적해진다. - P44

"나는 사는 게 적성에 안 맞아" 내가 말한다.
"누군들 맞겠어?" 그는 내 쪽으로 담배 연기를 내뿜으며대꾸한다. - P48

놀라운 통찰이었다. 나는 몽상이 그간 내게 무슨 일을해주었는지 깨닫기 시작했다-무슨 짓을 해왔는지도기억할 수 있는 시점 이후로 평생, 나는 내가 무언가를원하는 상태라는 게 들통날까봐 두려웠다. 원하는일을 하면 기대에 못미칠게 분명했고, 알고 지내고싶은 사람들을 따라가봤자 거절당할 게 뻔했으며, 암만매력적으로 보이게 꾸며봤자 그저 평범해 보일 것이었다. 계속 움츠러들던 영혼은 그렇게 손상된 자아를 둘러싼 - P164

모습으로 굳어져버렸다. 나는 일에 몰두했지만 마지못해그럴 뿐이었고, 가끔 좋아하는 사람들을 향해 한 걸음다가서는 일은 있어도 두 걸음을 옮긴 적은 없었으며, 화장은 했지만 옷은 되는대로 입었다. 그 모든 일 중 무엇하나라도 잘해낸다는 건 별생각 없이 삶과 관계 맺는일, 다시 말해 내 두려움을 사랑했던 것 이상으로 삶을사랑하는 일이었을 텐데, 그것이야말로 내가 할 줄 모르는일이었다. 내가 확실히 할 줄 아는 건 몽상으로 세월흘려보내기였다. 그저 ‘상황‘이 달라져서 나도 달라지기를간절히 바라고만 있는 것.
예순이 된다는 건 앞으로 살날이 여섯 달 남았다는시한부 선고를 듣는 것과 비슷했다. 내일이라는 몽상속피난처로 숨어드는 것도 하룻밤 새 옛일이 되어버렸다. - P165

내게 없어선 안 되는 게 있다면, 바로 그 목소리들이다. 전 세계 도시란 도시에는 골목 돌길이며 허물어진 교회유적이 된 건축물마다 민중이 심겨 있다. 하나같이 몇백년 동안 한 번도 파헤쳐진 적 없이 그저 켜켜이 포개어올려진 것들, 뉴욕에서 나고 자란 이의 삶이라는 건구조물이 아니라 이 목소리들 그 어떤 목소리도 다른목소리를 밀어내지 않고층층이 쌓인 무수한 목소리-을다루는 고고학과도 같다. - P2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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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저 당장 다시 만나고 싶은마음뿐이지만-엘리베이터를 타고 집으로 올라가다보면 얄궂게 비꼬는 말과 부정적인 판단으로 가득했던저녁의 여파가 밀려드는 게 온몸에서 살갗으로 느껴지기시작한다. 심각한 상처도 아니고 고작 살짝 긁힌 생채기가느다란 바늘 천 개가 팔이며 목이며 가슴을 콕콕찔러대는 느낌 정도이지만 내 안의 어딘가, 이름조차붙일 수 없는 한구석은 머지않아 또 그런 걸 느낄 생각에움츠러들기 시작한다.
하루가 지난다. 그리고 또 하루 레너드한테 전화해야지, 다짐해보지만 몇 번이고 손을 전화기로뻗으려다가도 그만두고 만다. 물론 레너드도 똑같은심정이겠지, 전화가 안 오는 걸 보면, 행동이 되지 못한충동은 차곡차곡 쌓여 신경을 망가트리고, 망가진 신경은굳어져 권태가 된다. 복잡한 감정과 망가진 신경, 그리고마비된 의지까지 한 바퀴를 다 돌고 나면, 그제야 만나고싶은 마음이 다시 초조하게 올라오고 전화기를 향해 뻗는손은 마침내 동작을 완료한다. 레너드와 내가 서로를절친이라 생각하는 건 이런 주기가 일주일이면 돌아오기때문이다. - P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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