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가 우리에게 이 세상을 본래 의미 있는 곳으로, 여기서 일어나는 사건들을 언제나 더 큰 목적에 부합하는 일들로바라보기를 권하는 것처럼, 작가들은 모든 세부사항이 결국 의미 있는 무언가가 되게 만들고, 그 일을 통해 일관성 있는 세계를 발명함으로써 이야기 속에서 그런 목적을 창조해낸다. 대학원생이면서 동시에 소설을 쓰고 있던 나는 이 부분을 읽고 자신을 격려해주었다. 봐, 난 그냥 논문을 미루고 있었던 게 아니었어. 나는 일관성 있는 세계를 발명해내고 있었던 거라고! 하지만 무엇이 문제인지는 제법 빠르게 알 수 있었다. 종교가 세상에 일관성을 부과한다는 이 견해는 내가 가장 잘 아는 종교에는 전혀 해당되지 않는 이야기처럼 느껴졌다. 커모드의 주장은 서양의 종교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결말"이라는 생각에 기초해 있다. 그가 말하듯 "성경은 역사의 친숙한 모델이다. 그것은 처음에 ‘태초에‘라는 말로 시작하고, 마지막에는 종말을 보여주는 환영과 함께 ‘그럼에도 오소서, 주 예수여‘라는말로 끝난다." 말할 필요도 없지만, 히브리어 성경은 이런 방식으로 끝나지 않는다. - P132
이디시어와 히브리어 현대문학을 공부하고 있던 나는 이런 유대 언어들로 된 주요 작품들에는 구원받는 인물이나 깨달음을 얻는 일, 혹은 은혜로운 순간의 경험이 거의 나오지 않는다는 점을 깨닫기 시작했다. 사실이 분야 문학의 토대가 되는작품들을 읽어나갈수록 나는 이디시어와 히브리어 현대문학가운데 고전으로 여겨지는 단편소설과 장편소설 다수에 결말이라 할 만한 것이 전혀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 P134
그 시대로부터 멀어진 사람들이 잘못된 질문들을, 난파 사고나 전염병에 관해 할 법한 질문들을 하게끔 강요한다. 이런 사고방식은 누군가는 죽어야 하며, 누가 구명보트의마지막 자리나 마지막 백신을 차지할지가 유일하게 남은 딜레마라는 생각이다. 하지만 이런 질문들은 제대로 된 것이 아니다. 가해자들이 그 죽음과는 관계가 없었다고 가정하기 때문이다. 이루어진 선택들을 문제 삼는다면, 우리는 홀로코스트가 아예 일어나지 않았을 가능성도 고려해야 하지 않나? 누군가가 A라는 사람을 구할지 B라는 사람을 구할지 선택하는 위치에 있었다면, 전 세계 사회는 집단 학살이라는 개념을 완전히 거부하는 위치에 있어야 했던 것 아닌가? 왜 모두가 덴마크처럼 행동하지 않았는가?" - P221
구조자들과 구조된 사람들의 경험 사이에 존재하는 엄청난 차이는 이런 수치스러움을 더해줄 뿐이다. 구조된 사람들에게 그 시기는 인생에서 최악의 시기이자 자기 삶에 가장 의미가 없었던 시기였다. 반면 구조자들에게 그 시기는 인생에서최고의 시기이자 자기 삶의 의미가 가장 컸던 시기였다. - P2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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