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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랑하고 쫀득~한 세계사 이야기 1 - 인류의 기원에서 고대 제국까지 ㅣ 생각이 자라는 나무 13
W. 버나드 칼슨 지음, 남경태 옮김, 최준채 감수 / 푸른숲주니어 / 2009년 1월
평점 :
절판
인간을 여성과 남성, 이렇게 쉽게 두 부류로 나눌 수 있는 기준을 하나 더 보탠다면? 역사를 좋아하는 사람과 싫어하는 사람.
역사를 싫어하는 사람들에게 까닭을 묻는다면? 태반이 수많은 사건과 연대, 인물, 지명, 의의 등 암기 공부로 여기기 때문이다. 공부 잘 하기 위해 어쩔 도리 없이 외웠다 치자. 외워도 이해하기는 어려운, ‘왜?’라는 질문에 당황하는, 그저 시험 대비용으로밖에 쓰이지 못하는 지식을 얻을 뿐이다. 오래전 청소년 대다수가 그래왔고 오늘날의 청소년들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다.
공교육의 현실이 이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고, 시험 제도는 이를 확고히 하였다. 역사를 유연한 사고로 대할 수 있도록 유도하는 책이 있다면, ‘세계사=암기과목’등식을 깨부술 수 있는 책이 있다면 아이들에겐 오아시스 같지 않을까.
세계사=암기과목 NO!라고 외친 책이 출간되었다. 세계사가 다 거기서 거기지 싶어 별 기대 없이 책을 펼쳤는데 뭐랄까, 모험을 떠난 기분이었다. 신나는 모험을 빨리 끝내고 싶어 하는 아이는 아마도 없겠지? 천천히 읽을 도리밖에.
역사책인데 추리소설 같다. 어찌어찌하다 지구라는 곳에 인류가 정착하게 되는데 살아가기 위한 행동을 모색하고 그 행동의 흔적이 역사가 되었다. 흔적(단서)을 통해 추리하는 형식의 가설, 어쩌면 우리가 여태 배운 역사는 가설을 가교로 이은 것뿐인지도 모른다는 메시지도 <말랑하고 쫀득한 세계사 이야기>에 담겨 있다.
이를테면 프랑스의 라스코 동굴 벽화를 두고 많은 고고학자들은 ‘최초의 종교적 표현’이란 견해, ‘정보 수단으로써의 기록’에 불과하다는 견해, ‘천체 현상’을 중심으로 보는 견해, 단지‘예술을 위한 예술’이었다고 주장하는 견해 등 분분하다. 오랜 시간 후 더 다양한 해석이 추가될 수도 아니면 기존의 모든 해석을 뒤엎을 새로운 가설이 만들어질지도 모른다는 뉘앙스를 풍기기도 한다. 단순히 주술로 사냥할 짐승을 더 많이 표현하여 실제 사냥감이 많아지길 바라는 고대인의 바람만을 말하지 않아(이렇게만 풀이하는 책이 많다.) 역사를 새로운 시각으로 접근할 수 있다. 무엇보다 이 책의 강점이다.
잠자고 있는 또 다른 문명이 존재할지도 모르는 일. 인더스 문명을 발견한 지가 고작 100여 년 전인데, 100년 후에는 세계 7대 문명이라 말할지도 모르는 일이다.
대부분의 역사책이 ‘이긴 자들의 기록’이라면 이 책은 ‘생활 중심의 기록’이다. 세계 주요 나라의 흥망이 중심이 아니라 현존하는 인류와 별반 다르지 않는 인간의 가치관과 소소한 생활상, 도구와 건축을 통해 짐작해보는 기술의 진보, 각 지역의 문화 형성과 교류 등을 엿볼 수 있다.
풍부한 사진․그림 자료에 눈을 빼앗기는 시간이 점점 길어지다 문득 깨달았다. 나는 이 책을 읽으며 용어를 외우려고 용쓰지 않았다는 것을. 역사를 과거로 떠나는 여행쯤으로 여겼기 때문이겠지. 물론 이를 가능케 한 건 <말랑하고 쫀득한 세계사 이야기>이다.
사진 한 장 던져 주고, 이 유물 통해 알 수 있는 역사적 사실을 500자 내외로 기술하시오. 이런 식의 문제로 시험지가 도배된다면? 유물의 이름이 아니라 언제 만들어졌는지가 중요한 게 아니라 용도를 궁리하며 생활상까지 가설을 세우는 문제. 쓰기만 한다면 빵점은 없겠지? 과학적인 조사를 끝낸 유물을 식량 저장고라고 명명했으나 사실은 고대인의 요강일 수 있는 확률도 존재하기에. 우리가 지금까지 로마 유적이라고 알고 있었으나 언젠가는 듣도 보도 못한 새로운 나라가 존재했었음을, 그 나라의 유물이었음 인정할 날이 올 수도 있기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