깡통 반지
즈덴카 판틀로바 지음, 김태령 옮김 / 책이있는마을 / 201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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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의 제목을 처음 접했을 때 혼란스럽고 견딜 수 없이 고통스러운 전쟁의 소용돌이 속에서 사랑하는 연인과 강제적으로 이별하여 그리운 연인을 만나기 위해 목숨을 걸고 고군분투하는 내용인 줄 알았다.

그런 다이나믹한 이야기가 아닌 감시와 통제, 생명의 위협 속에서 인간의 한계를 넘는 극한의 어려움을 사랑하는 가족과 형제, 이웃과 함께 벗어나고자 하는 어느 가련한 여성의 처절한 몸부림에 대한 이야기이다. 그 중 연인아르노에게 사랑의 징표로 받은 깡통반지를 생과 사의 반복되는 위기에서 빼앗기지 않으려고 필사적으로 노력하며 소중히 지켜간다. 저자인 ‘즈덴카 판틀로바는 실은 가련하기 보다는 대담하고 영특하고 용기있는 여성이다. 끔찍하고 잔인한 수용소 안에서 동생은 임신까지 하기에 이르렀는데 본인의 몸도 가누기 힘든 상황에서 독일대원들에게 들키지 않게 묘안을 생각하며 동생을 숨기고 보호하며 노력하는 모습이 보는 이로 하여금 발각될까 걱정되어 두렵고 초조하고 애처롭게 하였다. 

 먹을 것도, 제대로 된 입을 것도, 화장실도, 씻을 것도 사람이 살아가기에 필요한 극히 최소한의 조건도 갖추지 못한 상황에서 이성적으로 생각하고 행동할 수 있는 사람이 과연 있었을까? 한 심리학자는 비정상적인 곳에서는 비정상으로 행동하는 것이 정상이라고 한다. 하지만 즈덴카 판틀로바는 아버지가 독일군에 끌려가기 직전 침착이 힘이라는 것을 잊지 마라.”라고 하신 말씀을 명심해 두고 매번 극적인 선택을 해야 하는 상황에서 용기와 대담함, 약간의 행운과 함께 침착하고 냉담하게 행동해나간다.

  발을 펴기도 힘든 판자 위에서 잠을 자야 하는 곳, 아주 가끔 씻을 수 있는 기회가 왔을 때 그곳이 샤워장인지 가스실인지 분간할 수 없는 생명의 위협을 받는 공포스러운 곳, 비위생적인 곳, 헐벗고 굶는 일이 부지기수인 최악의 상황인 곳에서 살아남을 수 있었다는 사실이 놀랍기만 하다.

히틀러의 잔인한 유대인 대학살은 지구 먼 곳에서도 모르는 이가 없을 만큼 끔찍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유대인과 연상되는 단어가 바로 그 악명 높기로 유명한 아우슈비츠 수용소이기 때문이다. 즈덴카 판틀로바그곳은 물론 그로스 로젠 수용소’, 오스트리아에서 가장 크고 잔혹했다던 마우트 하우젠 수용소를 거쳐 베르겐-벨젠 형무소에 이르기까지의 과정에서 사람이 감당하기 힘든 온갖 고초를 겪는다. 그리고 여 간수들 중 가장 악랄하다는  이르마 그제레라는 이름을 가진 이에게 인간 이하의 모욕과 대우를 받아가며 참기힘든 고통을 거쳐나간다. 결국 티푸스 전염병으로 죽음에 임박한 막바지에 환청인 듯 알 수 없는 목소리에 이끌려 뛰어 나가 국제 적십자에 의해 마침내 구조된다.

  어느 나라나 전쟁의 아픈 역사를 가지고 있다. 전쟁을 겪었다는 것, 그 자체로 공포이자, 잔인하고도 끔찍한 반인륜적인 행위들이 서슴없이 자행되었다는 사실들이 그저 무섭고 두렵기만 하다.

 전쟁의 결말은 언제나 참담하기 그지없다. 소수의 이득을 위해 대다수에게는 혼란, 절규, 절망, 고통, 슬픔, 괴로움만이 남을 뿐이다. 특히 사랑하는 가족, 친구, 이웃간의 영원한 이별, 그들에 대한 뼈에 사무치는 그리움, 그리고 이미 황폐화되어 추억 속으로 사라져버린 고향의 모습은 남아있는 이들의 가슴을 찢어질 듯이 고통스럽게 한다.

저자는 본인의 회고록을 담대하게 써내려 갔지만 보는 이의 감정은 무겁기 그지없다. 그저 이런 아픔의 역사가 다시는 반복되지 않기만을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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