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걷는다 1 - 아나톨리아 횡단 나는 걷는다
베르나르 올리비에 지음, 임수현 옮김 / 효형출판 / 200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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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제목이 참 당당합니다. ‘나는 걷는다.’ 걷는다는 행위가 나를 가장 잘 설명해줄 수 있는 말이기 때문이겠지요. 조금 더 나아가서 해석해보자면 걷는다는 행위를 하기 때문에 자신의 가치를 느낄 수 있다고도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왜 걷는 것일까? 걷는다는 행위가 어떻다는 것을 말하고 싶은 것일까? 이것은 관광과 여행이 근본적으로 어떤 다른 의미를 가지는지를 두고 생각해보면 어떤 답이 나오지 않을까 합니다.

 

길을 걷는다는 것에서 저자는 관광과 다른 여행의 가치를 발견합니다. 그것은 나를 원래의 상태 그대로 두고 다른 것들을 구경하느냐, 아니면 무언가와 접촉해서 나를 바꿔나가느냐의 차이입니다. 그리고 바로 이 접촉과 변화를 정직하고 밀도 높게 하기 위해선 나를 가두지 말고 내가 만나는 것들을 통제하려 들지 말아야 하겠지요. 이런 원칙을 가장 끝까지 밀고 나갈 수 있는 여행은 ‘걷기’. 그리고 누군가를 만날 상황을 만들어주는 ‘무전’. 이것들이 아닐까 합니다. 물론 저자가 완전한 무전여행을 하는 것은 아니며 책의 끝에 보면 피치 못할 사정으로 차를 타게 되지만, 적어도 여행의 원칙은 나를 던져서라도 미지의 것과 접촉해 그것을 새롭게 재정의 해보고자 하는 시도라는 확신이 저자의 책 제목에도, 이후의 행보에서도 곳곳에 나타납니다. 이는 저자의 첫 기획의도가 실크로드의 길을 직접 따라가 보고자 하는 거였다는 것하고 맞아떨어집니다. 한나라의 장건이 처음 실크로드를 개척했던 것도, 그 이후에 벌어진 숱한 무역과 교역도 사실 그 출발은 이 원시적인 욕망에서부터 시작된 것이 아니었을까요. 저자는 인류사를 다양하게 만들어왔던 이 욕망을 스스로가 온몸으로 누려보고자 했던 것 같습니다.

 

그렇지만 이는 역시 예전과 완벽히 같을 수는 없습니다. 서문에서 밝히듯 서양이 동양에 진 빚을 의식하며, 동서양의 만남의 과정을 다시 밟아보고 싶다는 의도야 똑같지만, 극히 제한된 정보만으로 그 만남에 도전했던 예전의 과정은 거의 순수한 미지의 상태로 서로를 만나는 과정이었겠지만, 지금은 서로에 대한 너무 많은 정보들이 돌아다닙니다. 문제는 그것들이 정말로 정확한 정보인지, 내게 진실을 말해주는지는 알 수 없는 상황이지요. 그래서 때로 여행이라 이름 붙여진 수많은 관광은 만남을 통해 새로운 관점을 얻는 것이 아닌 편견을 확인하는 작업에 그치는 것이 일수입니다. 그래서 우리의 여행은 최대한 자신의 편견을 지워내면서 만남을 통해 자기만의 새로운 편견을 만들어내야 하는 이중의 작업을 필요로 하지요. 저자가 자신이 가진 서양인의 시선으로 동양을 재단하는 오리엔탈리즘에 빠지지 않은 상태로 이 긴 여정을 무사히 마무리 지었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3부작인 이 책 중 1부작밖에 읽지 않은 상태여서요. 하지만 터키에서의 저자의 만남은 단순한 관광과 비교했을 때 상당히 다층적이고 흥미롭다는 것만은 확실해 보이는군요.

 

저자가 겪는 만남은 3가지 정도가 있는 것 같습니다. 1. 인간적 만남. 2. 역사적 만남. 3. 사회적 만남입니다. 인간적 만남에서 저자는 터키 사람들의 시골 마을에서 묵으면서 그들 간의 인간적인 교류를 체험합니다. 여기서 두드러지는 것은 터키 사람들이 가지는 서양인에 대한 강한 호기심과 손님을 성심성의껏 맞이하려는 태도입니다. 이것은 사실 흥미로운 현상인데, 우리의 시골도 예전 시절일수록 나그네를 잘 맞이해야 한다는 풍습이 강하게 남아있지 않았었나요? 정보로부터 물리적으로 떨어지고 고립된 듯 보이는 공동체일수록 새로운 존재에 대해 배타적이기보다 개방적임은 주목할 만한 사실입니다. 온갖 새로운 것이 서로 섞여있는 대도시에서 오히려 우리는 거래 관계로 상대방으로 파악하고 본능적인 경계를 늦추지 않는 반면 이들 터키의 시골마을에선 인간이 가지는 미지의 것에 대한 원초적인 호기심이 훨씬 스스럼없이 드러나며 이방인에 대해 여유 있는 환대의 태도를 취합니다. 이는 사회적으로 생가해볼 여지가 있는 사례들이었고, 무엇보다 저자도 그 터키 사람들도 2~3일의 짧은 만남이지만 서로를 진정한 우정을 나눈 상대처럼 대한다는 데에서 관계의 밀도와 시간 사이의 관계가 꼭 정비례나, 반비례 어느 한 쪽 만으로 결정지어지지 않음을 알 수 있었습니다.

그렇지만 꼭 그들과의 만남의 그런 쪽으로만 만들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인종갈등이 심하며 군부대와 인접한 마을에 들어설수록 변합니다. 여기서 간첩으로 오인 받아서 신고가 들어가는데, 사실 아무런 근거가 없는 오해였지요. 이 지역은 쿠르드족과의 인종갈등이 있는 곳이었습니다. 이것은 시사점을 던져주는데, 가난이 폭력에 대한 공포와 만났을 때 타자에 대한 태도는 이렇게까지 달라질 수 있다는 점입니다. 이처럼 타자를 대하는 태도는 환대도 있고 공포도 있지요. 하지만 군대가 가지는 태도는 사뭇 다르면서도 제일 무서운데, 동일화에 대한 강요이기 때문입니다. 어쨌든 타자에 대해선 내 편 아니면 적으로 볼 수밖에 없는 조직이란 점이 저자를 조사하는 과정에서도 드러나지요. 그 조직의 어쩔 수 없는 특성이긴 하지만, 역시 타자를 접하기 위한 여행의 과정이 순탄치만은 않음을 보여주었습니다.

 

역사적 만남은 실크로드의 숙소를 찾아가거나, 아무것도 없는 평원에서 당시의 전쟁을 상상하는 부분 등에서 드러나지만, 사실 이 책 전체가 기나긴 역사적 만남의 과정입니다. 실크로드를 따라서 걷는다는 것 자체가 역사 속에서 그 전 사람들이 가진 정신을 접하기 위한 시도이겠지요. 재미있는 점은 역사에 대한 만남이 실크로드처럼 유목적일 때는 보거나 관찰하는 게 아니라 이처럼 직접 길을 따라 걸으며 경험해야 한다는 것인데, 나의 문화유산답사기와 맞물려서 흥미 있게 느껴졌습니다. 답사와 여행의 차이가 역사가 가진 특징의 차이 또한 보여준다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사회적 만남은 사실 한계를 가지고 있긴 합니다. 사회 구조에 대한 통찰이라는 것이 단순히 어떤 사람을 만난다고 해서 한 번에 얻어지는 것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일종의 단서가 될 수 있는 것들은 있었습니다. 그 중에 가장 흥미로웠던 것은 어떤 마을에서 입대하는 청년들을 위해서 대대적인 환영파티를 해 주는 장면이었습니다. 터키 쪽은 군대가 가지는 인기가 상당하다고 하더군요. 아마 쿠르드족과의 분쟁, 그리스와의 갈등, 그리고 아타튀르크라는 청년 군인의 주도로 이루어진 사회개혁의 역사가 작용하는 듯싶었지만, 사실 군인 중심의 사회라는 것이 어떻게 보면 박정희 때가 떠오르더군요. 군대에 대한 의존도가 높고 그에 맞춰서 사회 개발이 이루어지는 것이 아시아 지역 개발도상국의 들의 공통점인 것인지, 아니면 우연의 일치인지, 또 그렇다고 해도 터키에서 유독 군인에 대한 이미지가 좋은 이유는 무엇인지 등이 조금 궁금했습니다. 

 

그 밖에도 가부장적인 터키인들의 태도, 마치 우리나라의 60년대를 생각나게 하는 문화재에 가해진 조잡한 시멘트 보수 등의 난개발 등이 눈에 들어왔습니다만, 역시 90년대 말 터키의 가장 사회적 이슈는 쿠르드 저항군의 리더 오잘란이 체포된 사건이었던 것 같습니다. 검색해보니 아직도 오잘란은 처형되진 않고 감옥에 있는 상태로 조직에 대한 실질적인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는 상태라는데, 당시는 재판 중이었던 것 같습니다. 오잘란에 대해선 특히 민감하고 말을 조심하는 저자와 다른 사람들의 태도, 그 와중에도 선생님 같은 식자층들이 지적하는 오잘란에 대한 언론의 왜곡보도 태도 등등이 중간 중간 던져집니다. 아무래도 여행자로서 내부의 깊숙한 문제에 대해서까지 어떤 가치판단을 내리는 게 조심스러운 부분이 있기 때문에 세세하게 나오는 것은 아니지만, 국제적 분쟁이란 건 어딜 가나 있는 문제인 것 같더군요. 우리나라도 결코 분쟁에서 자유로운 지역은 아니니만큼, 온전한 만남이란 것은 과연 어떤 것일까에 대한 생각을 하게 되는 부분이었습니다.

 

마지막으로 다시 묻게 됩니다. 저자는 왜 걸었던 것일까요? p.203에서는 이런 말이 나옵니다. “홀로 외로이 걷는 여행은 자기 자신을 직면하게 만들고, 육체의 제약에서 그리고 주어진 환경 속에서 안락하게 사고하던 스스로를 해방시킨다. 순례자들은 아주 긴 도보여행을 마친 후엔 거의 예외 없이 변모된 자신의 모습을 느낀다. 이는 그들이 그토록 오랫동안 스스로를 직면하지 않았다면 아마도 발견할 수 없었을 자신의 일부를 만났기 때문이다. 이는 또한 혼자 걷는 것을 선호해야 하는 이유가 되기도 하는데, 여정에서 친구들을 발견하는 기쁨을 누릴 수 있기 때문이다.” 

 

사실 왜 걷는가 하는 질문에 대해서 저자가 명확한 가치관을 가지고 여행을 시작한 것이라 아니라, 강한 충동에 의해서 시작한 다음 왜 이런 충동이 들었을까를 찾아가는 식이기 때문에 1권을 읽은 것을 가지고 단정적으로 말하기는 힘듭니다. 하지만 왜 만남의 방식에 있어서 만나는 시간보다 홀로 있는 시간이 대부분인 걷는 방식을 택했는지에 대한 나름의 느낌은 듭니다. 만난다는 것은 먼저 자신을 만나야 하는 것이기 때문이 아닐까요. 오랫동안 혼자 있을 수밖에 없는 경험은 의외로 많이 할 수 있는 것이 아니죠. 방에 혼자 있다고 해서 혼자 있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가상으로 자신이 원하는 것들만을 더욱 쉽게 접할 수 있기 때문에 사람이 더 좁아질 위험도 있죠. 걷는다는 것은 나를 혼자 있게 만들면서도 동시에 통제되지 않은 자극 속에 나를 놓아두는 것이기도 합니다. 그랬을 때에야 나를 생각해볼 수 있고, 그 다음에야 진정한 남들과의 만남이 가능했던 것이 아닐까요. 이 책이 어떤 사진도 없지만 흥미로울 수 있었던 것은 저자의 책에서 중요했던 것이 경치가 아니라 사람들이었기 때문이며, 그 사람들의 모습이 몸의 이동속도에 맞춰서 천천히 변해가는 것이 느리지만 확실한 리듬으로 제게 전해졌기 때문이었습니다. 여기서 우리가 얻을 수 있는 것은 우리가 같은 거인의 어깨 위에 서 있다는 감각이 아닐까요. 변화가 지나치게 빠르게 다가와 이 사람과 내가 단절된 듯이 느껴지는 게 아니라 내 몸으로 변화를 천천히 느끼면서 그것들 사이에 연결된 끈을 알아가는 것. 걷기는 그래서 세상을 온전히 느낄 수 있는 나름의 방식일 수 있다는 느낌이 듭니다. 그리고 동시에 그게 나를 온전히 직면하는 방법일 수도 있겠네요. 그것이 아마 저자가 진정으로 함께하고 싶었던 실크로드의 정신, 그 과거의 정신이 아닐까요. 건강뿐만 아니라 이런 의미에서 걷기를 한다면 더 가치 있는 일이지 않을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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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문화유산답사기 1 - 남도답사 일번지, 개정판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1
유홍준 지음 / 창비 / 201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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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문화유산답사기에 대해 쓴다면 역시 이 말부터 언급하고 넘어가야겠죠. 지금은 너무나 유명해진 명언. “우리나라는 전 국토가 박물관이다.”

  

책 속에서 이 말은 크게 두 가지 의미를 가집니다. 1. 유물은 제 위치에 있을 때 비로소 본래의 맥락을 제대로 살릴 수 있다. 2. 그러므로 지금부터 그 가치들을 제대로 보여주겠다. 

  

그렇지만 저에게는 전 국토가 박물관이라는 이 말이 문화를 가진 모든 민족에게 적용되는 말처럼 느껴지지는 않았습니다. 그런 상식이라기 보단 정주민인 우리 민족의 특징을 강하게 보여주는 말로 생각이 되었는데요. 우리가 살았던 이 공간이 유목민처럼 옮겨다니는 길로서의 공간이 아니라 여러 가지를 축적할 수 있었고 축적해왔던 터전으로서의 공간임을 나타내는 의미심장한 말로서 받아들여졌습니다. 그렇다면 당연히 그 공간의 속살을 보는 일은 실크로드 같은 곳의 속살을 보는 일과 다를 수밖에 없겠지요. 유목민의 정신은 걸으며 느껴야 하는 것이라면, 정주민의 정신은 보면서 알아야 하는 것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몸이냐 눈이냐, 경험이냐 지식이냐 하는 도구의 차이. 이 속에서 저는 과거와의 만남이 역경과 사람을 통하기보단 사물을 통하는 게 더 수월한 우리 정주민의 특징, 즉 기록문화의 특징을 봅니다. 아마 여기서부터 멋·맛·미에 대한 깊은 안목이 생겨난 것이 아닐까요. 유목 문화과 개방성과 경제를 떠올리게 한다면 정주문화는 일관성과 예술을 생각나게 합니다(내부로 완결된 안정적 경제구조. 정치구조를 가졌을 때 나타나는, 국가주도와 지원 하에, 혹은 풍요한 민속 속에 나오는 예술.). 여기서 저는 문화에 대한 감상법은 알고 나서야 보이는 것과 겪어봐야 아는 것. 이 두 가지가 있음을 느낍니다. 유홍준 씨 주장에 대한 반박은 아니지만, 유홍준 씨의 말은 문화 전반이라기 보단 우리 문화를 지켜볼 때 더 유용할 것 같다는 추측 정도가 되겠네요. 

  

또한 이는, 외국인이 우리의 유물을 관찰하는 것과 우리 문화의 속살을 우리가 내부인의 시각에서 애정을 가지고 보는 일이 엄연한 차이가 있을 수 있음을 보여주는 말이라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그 위치, 그 자리가 가진 문화적 맥락이 친숙하게 다가오지 않으면 온전히 즐기기 힘든 부분이 있겠다는 생각이 들기 때문입니다. 비록 배워야 아는 거라고는 하지만, 자신이 나고 자란 이곳의 익숙한 풍경에서 느끼는 정서와 애착이 없다면 과연 유물이란 것을 깊게 즐길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이 드는 것이지요. 이처럼 원래 내 땅의 내 것을 계속 보며 관찰과 정서와 애착을 키워나가는 과정, 묘사의 능력보단 맥락을 보는 안목을 기를 수 있는 방법이 바로 ‘답사’가 아닐까 합니다. 왜 이 책의 제목의 ‘나의’로 시작하고, 그 끝이 ‘답사기’로 끝나는지, 여기서 한 번 멈춰서 생각해봅니다. 마지막 ‘기’라는 기록의 의미로 끝나는 것도 참 의미심장하네요. 

  

답사란 말의 의미라 무엇일까요? 한자말 그대로 발을 써 직접 가 살피는 것입니다. 그것을 기록한다는 것은 보는 것만이 아니라 보기 전 했던 마음의 준비와 마침내 떠나는 과정, 모든 것을 보고 돌아오는 길의 정리까지 그 모든 것에 대한 기록을 의미합니다. 그래서 이 책은 ‘무량수전...’과는 다르게 보기 전과 본 후, 가고 오는 모든 과정에 대해서 서술합니다. 그것은 이 국토가 박물관이라면, 박물관의 유물을 보기 전과 본 후의 모든 공간이 전부 그 유물을 설명하는 맥락이 되기 때문입니다. 고속도로의 휴게소, 절 집의 누렁이 등 유물과 전혀 상관 없어 보이는 것들까지 유물과 어울려 하나의 인상이 되고 그곳의 문화로 기억 되는 것이 감상기가 아닌 답사기의 특징이기 때문이지요. 그래서 저자의 서술은 참으로 공간적입니다. 그리고 이 공간을 줄기로 삼아서 시간의 맥락이 엮어지지요. 이는 그 유물이 만들어질 당시의 역사적 맥락이기도 하지만, 그와 함께 1993년, 1994년, 2011년의 지금 현재에도 끊임없이 변하는 공간 속에서 갖는 우리들만의 새로운 감상도 자연스레 포함됩니다. 그래서 저자는 그 때가 지금이나 계절이 바뀌고 해가 바뀔 때마다 간 곳을 또 가는 것 같습니다. 언제 어느 상황 속에서 보느냐로 매번 다른 기억이 쌓이는 즐거움이 바로 답사임을 스스로 느끼고 우리에게 알리기 위해서겠지요. 

  

그렇지만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하는 아무리 여러 가지 맥락에 의해 달라지는 답사라고 해도 저자가 강조하고 또 강조하는 뼈대가 되는 맥락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것인 이 국토의 산천과 유물이 서로 어우러진 맥락입니다. 애초에 하나의 유물이 그것이 뿌리박고자 하는 고장의 자연과 어떻게 어울리고자 했고 그 땅의 특징을 어떻게 품었는가를 알아내고자 하는 데에 이 답사기의 진정한 목적이 있습니다. 이 같은 확신 - 문화의 아름다움이 진정 우리의 것인지를 따지려면 그 땅과 어울리는지를 먼저 살펴야 한다. -은 책의 곳곳에 드러납니다(책의 거의 첫마디로 나오는 감상이 남도의 흙에 대한 거였고, 그와 꼭 받는 절의 가람배치에 대한 감탄이었죠.). 이는 분명 나름의 일리가 있는 말입니다. 어떤 것을 우리 화 시키거나 우리 것을 살리고 싶거든 지금 발붙인 땅과의 관계부터 살피라는 것이겠지요. p.119페이지를 보면 이런 구절이 나옵니다. 

  

“답사를 다니는 일은 길을 떠나 내력 있는 곳을 찾아가는 일이다. 찾아가서 인간이 살았던 삶의 흔적을 더듬으며 그 옛날의 영광과 상처를 되새기면서 이웃을 생각하고 그 땅에 대한 사랑과 미움을 확인하는 일이다. 그런 답사를 올바로 가치 있게 하자면 그 땅의 성격, 즉 자연지리를 알아야 하고, 그 땅의 역사, 즉 역사지리를 알아야 하고, 그 땅에 살고 있는 사람들의 삶의 내용, 즉 인문지리를 알아야 한다. 이런 바탕에서 이루어지는 답사는 곧 ‘문화지리’라는 성격을 갖는다.” 

  

이는 답사의 일차 과제가 유물과 땅과의 관계를 살피는 것임을 드러내는 말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그 땅이 물리적 의미로 한정된 땅만을 가리키는 것이 아님을 드러내는 말이기도 합니다. 이는 땅이 옛날이 서린 그 기억과 향취를 불러일으키는, 축적되고 함축된 무언가를 풀어주는 일종의 매개체로서 있는 한 거기서 캐낼 수 있는 의미는 더욱 더 깊어질 뿐 소진되지는 않음을 역설하는 것이라고 믿습니다. 

  

예를 들어, 우리가 어린 시절 놀던 놀이터를 찾았을 때 거기에 대단한 추억의 물건이 숨겨져 있어서 가는 것일까요? 모래 말고는 아무것도 없고 심지어 사라졌을 수도 있지만 거기에서 우리가 되살려낼 수 있는 기억이 남아있는 한 진짜 무엇이 있는지는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공간은 그 때 그저 내 안에 숨어있는 감성과 상상력을 자극시키는 작은 자극이 되어 줄 뿐입니다. 그것만으로도 그 공간은 충분히 우리에게 가치 있는 공간이 되지요. 

  

문화지리, 즉 문화미란 그런 것입니다. 실제로 가치 있는 문화재가 있는지 없는지는 사실 결정적이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그저 우리가 우리의 내밀한 기억과 정서에서 발휘되는 그 능력의 역사의 몇 백 년까지 뻗칠 수 있는가 없는가의 문제일 뿐이지요. 물론 어렵습니다. 그렇지만 이건 매우 인간적인 능력입니다. 다른 동물들처럼 생존만을 위한 기억이 아닌, 아름다움을 위해 그리고 스스로를 풍요롭게 만들기 위해 기억하고, 그 기억에 일부러 살을 덧붙여 새롭게 창작까지 해내는 유일한 동물이 인간이겠지요. 얼마나 뛰어난 능력이고, 그 자체만으로도 아름답습니까. 

  

이처럼 우리 모두에게 타고난 문화미를 몇 백 년까지 거뜬히 느끼는 능력으로 키워내려면 우선 그 몇 백 년 전의 기억과 정서가 내 안의 내밀한 정서와 만나야 합니다. 그것은 그것들을 내 삶에 끌어들여야 한다는 말이고, 결국 자주 보고 또 보고 또 배우고 그걸 나만의 감성으로 풀어내서 생각하고 하며 그것들을 감상한 시간이 나만의 추억으로 쌓이고 쌓여가야 한다는 말입니다. 친구를 이해하고 싶으면 친구와 많은 걸 같이 해보면 되듯이, 옛날의 정신을 이해하고 싶으면 그 정신이 담긴 것들과 많이 함께하면 되는 것이 아닐까요. 그러다보면 자연스레 닮게 되고 알게 되는 것이 아닌가 합니다. 

  

그리고 마침내 이 속에서 전통의 재창조는 일어납니다. 말하자면 친구에게 충고까지 해 줄 수 있는 막역한 사이가 되었을 때 자신감 있게 전통을 계승할 수 있게 되는 것이지요. 그러므로 문화미, 문화지리를 만들어가는 과정은 기억 투쟁의 예술적 버전입니다. 무슨 기억을 가지고 있느냐로 우리 존재가 규정된다는 말은 문화미를 길러나가는 과정, 어떤 문화적 미감을 가지고 있느냐가 우리가 해낼 앞으로의 창조를 결정짓는다는 말과도 통합니다. 때문에 우리는 그 미감을 결정짓는 기억의 투쟁(서구의 기억과 역사냐, 우리의 기억과 역사냐 하는.)에서 우리만의 문화미를 이어받으려는 노력을 포기할 수가 없습니다. 우리 산천에서 그에 맞는 문화를 일구었던 분들의 자세를 빈 공간에서도 자연스레 떠올릴 정도가 되지 않으면 이 산천에 맞는 창작을 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5천년 역사의 기억을 버리고 어떻게 처음부터 다시 이 땅을 바라볼 수 있겠습니까. 이 땅도 더 이상 원시가 아니며 우리도 더 이상 서구 근대화를 벗어난 벌거벗은 눈을 가질 수 없는 상황에서 말입니다. 사실 그 동안 그러지 않았던 결과가 지금 세월의 난개발이 아니었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그래서 답사가 중요하며, 저자의 책이 가치를 가지는 부분도 바로 이런 부분입니다. 답사는 문화재를 보고 양식을 외우기 이전에 이 산천을 직접 발과 눈에 익게 하려는 수작이며 우리보다 먼저 이 땅을 바라봤던 조상들의 시선과 자세를 느끼기 위한 스무고개이기 때문입니다. 

  

다만 제가 저자에게 물어보고 싶은 것이 있습니다. 그 재창조의 과정과 답사의 의의에 대해서는 공감하나, 과연 그것이 지금의 지배적인 문화 양식의 재창조를 가능케 할 수 있는 일일까요? 근대화는 공업화와 어느 정도 통했던 말이고, 이 말에는 땅의 특성에 구애 받지 않고 최대한 표준화된 생산양식을 만들어내려는 강한 의지가 담겨 있습니다. 이게 문화엔들 영향을 주지 않았을까요? 지금 우리는 고장과 상관없는 표준 근대교육, 역시 고장과 상관없는 표준적인 건축물에서 표준 규격의 가구들과 함께 살고 있습니다. 이미 근대라는 말에서 우리는 토착을 느끼기 힘들게 되어버렸습니다. 우리는 땅에서 멀어진 국제적으로 획일화된 생활에 더 익숙해져 있죠. 이런 우리에게 토착이란 무엇이고, 한국미란 무엇입니까? 그것이 과연 가능한 것입니까? 

  

또한, 우리는 토착이란 말이 가지는 강한 정주문화의 냄새를 맡아야 합니다. 땅에 뿌리박는다는 말은 생각보다 그리 보편적인 삶의 방식을 아니며 농경시대 - 정주시대 우리 조상들의 삶의 방식이었습니다. 그렇지만 지금은 어떻습니까? 우리는 국제적 표준이 열어준 안정성 위헤서 자유로운 이동을 꿈꾸고 있습니다. 국제적 WWW 표준 하에서 이루어지는 사이버 유목민(이젠 이 용어도 좀 낡은 감마저 듭니다.), 국제적인 항공 표준을 통해 이루어지는 실제 물리적인 이민 등등, 이 와중에 우리가 정주시대의 유산인 ‘토착’이란 말에서부터 우리 문화를 출발시켜야 한다면, 그건 어떤 이유에서일까요? 우린 우리의 완전히 바뀐 생활양식에 맞는 또 다른 유목민 문화를 만들어가야 하는 처지가 아닐까요? 지금 우리 시대가 만들 수 있는 문화유산, 혹은 그 전의 문화유산 중 지금의 우리에 맞게 창조적으로 계승해야 하는 것에는 무엇이 있는 것일까요? 

  

p.119에 보면 이런 말이 나옵니다. 어떻게 우리 조상들의 문화가 5천년 내내 항상 찬란하기만 할 수 가 있었겠는가. 정치, 사회, 경제가 쇠퇴하는데 어떻게 문화 혼자만 고고히 찬란했다는 거짓말을 학생들에게 강요하지 말라. 모든 문화는 역사적 시기에 따라 침체 -> 새로운 준비 -> 새로운 일깨움 -> 찬란한 창조 -> 매너리즘과 과소비 현상 -> 문화적 가치의 대혼란 -> 침체 -> 새로운 준비의 과정을 거치게 마련이다. 그렇다면 지금 우리의 문화는 이 중 어떤 단계에 와 있는 걸까요. 이 거대한 세계화 시대에, 국제적인 표준의 시대에 우리는 우리의 문화를 향유하며 우리의 입장에서 새롭게 창조하고 소비하고 있는 중인지, 아니면 그저 침체하고 있는 중인건지, 저의 근본적인 의문과 맞물려 문득 그런 질문이 책을 읽으며 떠올랐습니다. 표준화된 대량생산으로 특징되는 근대사회에서 불상이나 절이나 공예처럼 공동체의 공통된 정신발현, 공공성, 기능성, 실용성, 대중들의 폭넓은 수용과 감상이 가능한 친숙성, 생활성을 갖춘 진정한 의미의 문화적 아름다움이란 지금 우리에게 무엇인 걸까요? 그것은 제가 당장 떠올릴 수 없음은 현시대를 완벽히 파악할 수 없는 현 시대인의 한계인 걸까요. 근대라는 시대 자체의 한계인 걸까요. 아니면 그저 침체기에 빠져있을 뿐인 우리 자신들의 문제인 걸까요? 아니면, 지금 우리 앞에 이전과 다른 어떤 새로운 문화의 형태가 나타나고 있는 게 아닐는지. 솔직히 확신은 못하겠습니다. 이 책이 이런 질문에 답하기 위한 책은 아니니까요. 하지만 이 책을 통해 촉발된 저의 질문에 대한 제 나름의 답을 여기에 정리하고 싶은 생각이 듭니다. 

  

어쩌면 지금 우리의 문화는 정신이 상징으로 표현되는 것이 아니라 정신이 바로 물질로 변화 가능한 시대이기 때문에 문화적 상징이 필요 없어진 세상이 된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굳이 말하자면 고정된 몇 개가 문화적 상징이 되는 게 아니라 우리가 뱉어낸 모든 글, 그림, 장난질이 하나의 거대한 문화유적 자체가 되는 것. 하지만 그건 지금까지의 문화유적처럼 거대한 절터나 폐허가 아닙니다. 데이터베이스인 것이지요. 저는 이걸 문화의 응집현상이라 부르고 싶습니다. 정신을 은유하는 물체는 사라지고, 정신 그 자체를 담는 그릇만이 남아있는, 그리고 그 그릇 안에 거의 모든 것이 다 들어있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이것은 동시에 유적이 없는 문화입니다. 고심 끝에 응축되지 않고 바로바로 공들일 필요 없이 표현된 정신은 항상 타이밍 속에서만 의미를 가집니다(트위터 이슈가 얼마나 빨리 바뀌는지만 보아도 알 수 있겠지요.). 특정한 흐름 속에서만 의미를 가지는 정신은 흔적이 될 수는 있어도 두고두고 전해질 유적은 될 수 없습니다. 아마 생활사 속에서는 의미를 가질 수 있을까요? 

  

저는 이걸 문화는 존재하지만 문화미는 없어진 시대라고 부르고 싶습니다. 개인으로서의 예술, 개개 건축가의 야심작들은 나오겠지만 더 이상 그것들이 한 시대의 문화를 대변하던 시대는 갔고(그런 것은 이제 개인을 대변할 뿐, 사회는 간접적으로 반영될 뿐입니다.), 정신 그 자체는 너무도 날렵해서 유적으로 머물지 못하는 시대. 하지만 이건 그 어떤 때보다 독특한 문화의 시대이기도 합니다. 바로 이것은 기록되는 유목민 문화이기 때문입니다. 그 동안의 유목민 문화는 경험으로 전달되는 것이었지 기록으로 전승되는 것이라고 볼 수는 없었는데, 지금 우리는 이 모든 것을 자동적으로 기록으로 남기고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우리 사회의 문화가 이제 새로운 준비 단계에 있다고 보고 싶습니다. 나중에 우리가 만든 포토샵이나 유튜브 같은 것이 문화미로 필견(必見) 대상이 될 수도 있겠지요. 단, 그것은 독립된 작품으로서 그 시대 문화의 대표작이 되는 것이 아니라 비슷한 경향, 비슷한 시기, 그리고 무엇보다 같은 주제로 한꺼번에 터져 나왔을 패러디 및 무수한 Feedback들이 한데 묶여서 하나의 ‘작품군’으로 취급받지 않을까 합니다. 강남스타일 영상이 하나 딱! 하고 대표작이 되는 것이 아니라 그 무수한 패러디 및 기타 영상들이 하나로 묶여서 취급받는 것 같이요. 왜냐하면 우리는 우리 자신도 모르게 작품을 협업하는 중이란 생각 때문이지요. 양반놀이를 생각해보면, 거기에는 양반과 취발이가 있고 주고받는 대사가 있습니다. 그리고 그것들은 오랜 세월에 걸쳐 전승되면서 여러 판본이 만들어졌고, 여러 사람의 개작을 거쳐 탄생한 협업의 작품입니다. 그런데 지금은 이런 수백년의 협업이 단 3~4주 만에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정주공동체는 해체됐지만 숱한 유목민들이 ‘순간의 공동체’ 혹은 ‘부분(만 공유하는)의 공동체’를 만드는 건 너무 쉬워진 거죠. 그 순간적인 발성들이 즉시 기록으로 남겨지고 바로 영향을 미치게 되었으니, 원격 공동체라는 이름으로 불러도 되겠습니다. 말하자면 이젠 양반놀이의 대사를 하나 당 한명씩 맡아서 동시에 만들어내는 시대가 된 것입니다. 전 훗날에 지금이 어쩌면 민중문화의 부활 혹은 최초로 전면에 민중문화가 등장한 시대로 불리게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래서 이 시대의 문화탐구는 물체의 특징이 아니라 흐름의 양상에 대한 탐구가 되지 않을까요? 여러 작품군을 통해 협업의 특징과 상호작용의 변화와 공통점을 알아내는 식으로 말이죠. 이 쪽에서 ‘으따’ 했는데 왜 조금 뒤에 저기서 그걸 ‘어따’로 받아쳤을까? 이런 것들에 대한 연구 말입니다. 민중문화 연구란 것이 결국 거기서 드러난 집단의식에 대한 연구이니, 전 저희 세대가 역사상 거의 최초로 후대에게 엄청나게 면밀한 집단의식의 관찰대상이 될 수도 있을 거란 생각이 듭니다. 이거, 재미있지 않을까요? 이때의 책 제목은 ‘나의 문화유산답사기’가 아니라 ‘나의 (사이버)유목문화체험기’ 정도가 되지 않을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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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학적 상상력
C. 라이트 밀즈 지음, 강희경.이해찬 옮김 / 돌베개 / 200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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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끄러운 일이지만, 거의 최초로 제 전공과 관련된 고전을 읽어보았습니다. C. Wright. Mills의 ‘사회학적 상상력’입니다

 

  

59년에 나온 하나의 사회학 서적이라고 하나, 사실 ‘사회학적 상상력’이란 말은 이제는 하나의 개념어와 같이 되었고, 이쪽을 공부하는 사람이라면 한 번이라도 안 들어볼 수가 없는 고전적인 어휘가 되었습니다. 그렇지만 언제나 그렇듯이, 어떤 어휘를 한 번 들어봤다거나, 어렴풋한 상을 가지게 되었다고 해서 그것을 충분히 안다고 볼 수는 없습니다. 이 말을 만들어낸 Mills의 말대로, 하나의 개념을 안다는 것은 그 개념이 가진 함축성을 풀어 여러 차원의 구체적인 의미로 분류 지을 줄 알고, 또 거꾸로 그 구체적인 분류들이 가진 본질적인 공통성이나 규칙이 얼마나 통일성 있게 다시 묶일 수 있는가를 재검토해 봄으로써 그 개념이 가진 의미를 더욱 정교하게 만들고 확대시킬 수 있는 능력을 가졌을 때, 그리고 이를 어떤 문제에 적용시켰을 때 명확한 이해를 도울 수 있을지를 정확히 알 때, 그래서 그 모든 것을 최대한 쉬운 말로 다른 사람들에게 전파할 수 있을 때 비로소 완성되는 것이겠지요. 그리고 이렇게 밖에 설명하지 못하는 저는 분명히 여기서 설명하는 개념들을 정확히 모르는 것이 확실합니다. 그래서 더더욱 적어도 제가 제 전공에서 자주 쓰는 말이 생겨난 근원 격인 책을 한 번이라도 정독해야 하지 않을까 싶었습니다. 역시 쉽진 않았지만요.

  

 

사실 이 책은 굉장히 단순한 구조를 가지고 있습니다. 1장에서 자신이 말하고자 하는 종합적인 주제를 개괄한 후, 2~6장에 걸쳐 기존 사회학의 잘못된 경향을(50년대 말의 미국 사회학의 경향입니다.) 비판 한 후, 다시 7~10장에 걸쳐 자신이 바라는 사회학의 미래와 진정한 사회과학자의 자세를 서술한 후 부록으로 이와 같은 사회과학자가 되기 위한 노하우랄까 그런 것들을 적어놓습니다. 그리고 덧붙이자면 이 모든 것들을 적어놓은 책 치고는 분량이 짧은 편입니다. 300페이지가 채 안 되니까요. 여기서 우리는 질문해야 합니다. 왜 그는 자신이 중요하게 여기는 이 주제에 대해서 그토록 단순하고, 짧게 썼던 것일까요?

   

여기에는 Mills의 글쓰기 철학이 담겨 있습니다. Mills에게 있어 무조건 글은 쉽고, 분명해야 하는 것이었습니다. 이는 단순히 알아먹을 수 있게 쓰라는 의미만이 담긴 것이 아닙니다. 그에게 있어 사회학적인 글을 쓴다는 것은 자신이 무엇을 지지하며, 무엇을 배척하는지를 명확히 하는 행위였습니다. 또한 그에게 사회학은 불변의 법칙을 찾아내는 자연 과학이 아닌 지금, 여기에 대해 다루는 학문이었고, 더 정확하게는 지금, 여기에서 자신이 문제라고 생각하는 것들을 밝혀내는 학문이었습니다. 글이 분명해야 함은, 그래서 자신이 문제라고 생각하는 게 무엇이며 왜 그렇게 생각하는 지를 명확히 밝힘으로써 읽는 사람들에게도 분명한 판단을 요구함을 의미합니다. 쉬워야 한다는 것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변화를 바라는 글쓰기로서 그 변화를 만들어낼 수 있는 대다수의 사람(여기서는 ‘공중’이라고 표현합니다.)이 동감할 수 있는 글이어야 그 목적이 달성됨을 의미합니다. 정교한 논리 전개는 꼭 필요한 부분에서만 해야 그 사람들이 복잡해하지 않을 것이니 당연히 중요한 부분만을 살려야 했겠지요. 이렇게 책의 목차와 분량에도 저자의 생각이 담겨 있습니다. 학문적인 엄정성을 유지하면서 오히려 그 엄정성이 더 큰 변화를 만들어내기를 바라는 역동적인 균형감각의 글쓰기를 Mills는 바로 이 사회학적 상상력이란 저서에서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이 같은 Mills의 열정을 느끼면서 책을 읽을 필요가 있습니다.

 

1장을 살펴보죠. ‘약속’이란 제목이 보입니다. 왜 ‘약속’이라는 말로 책의 시작을 열었을까요? 저자의 말은 이렇습니다. “...사회학적 상상력은 우리로 하여금 역사와 개인의 일생, 그리고 사회라는 테두리 안에서 이루어지는 이 양자 간의 관계를 파악할 수 있게 해준다. 바로 이것이 사회학적 상상력의 과제이며 약속이다. 이러한 과제와 약속을 인식하는 것이 고전적 사회분석가의 특색이다.(p.19)” 저자는 사회학적 상상력이란 용어를 지금 당장 분석이 필요한 연구대상을 지칭하기 위해 사용한 것이 아닙니다. 약속이란 제목은 그런 능력이 하나의 목표이며, 언제고 고전 사회학자들이 인간에게 약속했던 능력임을 말하고 있습니다. 즉 사회학이 품어왔던 ‘오래된 미래’로서 사회학적 상상력을 얘기하고 있는 겁니다. 1장에서 간결하게 정의내린 사회학적 상상력의 의미는 이렇습니다. 한 개인의 사적이고 통제가능하다고 여겨지는 환경이 보다 더 큰 구조 속에서 가지는 위치와 작동하는 맥락을 파악하여, 개인의 고통이 공공의 영역에서 가지는 의미를 추론해 낼 줄 알고, 사회구조의 변동으로 인해서 나타나는 여러 현상들이 다양한 영역의 개인들에게 미칠 환경적, 심리적 영향을 유추해 낼 줄 알며, 현재의 사회구조가 형성된 과정과 그것이 앞으로 나아갈 경향을 역사적 단계 속에서 위치 지을 줄 아는 역사의식을 가지고 한 이성적 인간이 자신이 처한 사회적 조건 속에서 사회적·역사적 행위자로서 어떤 행동을 취해야 할지를 주체적으로 설정할 수 있는 능력. 예를 들어 설명해보면 이렇습니다. PC방을 자주 가는 학생이 있다고 합시다. 이 학생은 자신이 택할 수 있는 자유롭고 사적인 환경으로서 PC방을 생각하겠지만, 사실 이것은 90년대 말 김대중 정부가 대대적으로 단행한 인터넷 통신망 광역화 사업, 이를 물리적 기초로 만들어진 온라인 게임 산업의 부흥, 적은 돈으로 즐길 수 있는 다양한 여가시설의 부족 및 여가 시간을 마음껏 즐길 수 없는 한국의 교육 구조가 중첩되어 만들어진 공간입니다. 이 학생은 자신이 PC방을 선택했다고 생각하지만, 사회 구조적으로 PC방을 고를 수밖에 없는 상황이 개인이 인식하지 못하는 사이에 이미 정해져 있었다는 것이죠. 하지만 이것을 인식할 때 한 학생이 PC방을 가는 것은 개인적인 문제가 아닌 인터넷 문화와 여가 시간의 활용에 대한 공공의 문제가 됩니다. 반대로 PC방이 전국적으로 퍼져있는 지금의 상황이, 모든 개인들에게 똑같은 환경과 심리상태로 다가올까요? 수도권과 지방의 PC방 문화, 90년대 말 PC방이 가진 청소년 사이의 위상과 지금의 위상 차이, 남자와 여자가 PC방에 대해 가지는 다른 생각들, 이런 것들이 있지는 않을까요? 이 때 PC방은 공공의 문제에서 그 공공의 문제가 개인들에게 끼칠 서로 다른 영향력을 상상하는 공간이 됩니다. 이처럼 사회학적 상상력은 지극히 개인적인 문제를 가지고 공공의 영역에서 토론 가능한 사회적 의제를 끄집어내며, 사회적 의제가 개개인에게 미칠 다양한 영향력을 고려하는 작업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주체적 개인의 역사적 행위 설정은 좀 더 큰 사례를 두고 얘기해 보겠습니다. 일자리가 없는 지금의 상황 속에서, 우리가 지금 당장의 모습과 멘토라는 이름을 가진 사람의 소리만 들으면 그저 개인적으로 최선을 다하기만 하면 어떻게든 해결이 될 것 같은 생각을 가질 수도 있습니다. 그렇지만 일자리가 없는 사회가 왜? 어떤 과정을 거쳐서 만들어졌으며, 내가 이 사회에서 처한 역사적 위치가 무엇인가를 자문해봤을 때, 이것은 7~80년대 국제적 분업 경제 체제 속에서 대량 생산 산업을 담당했던 한국의 역할이 90년대 새로운 역할(콘텐츠 중심의 아이디어, 문화 산업)을 담당할 준비를 하기 직전 IMF를 맞으며 기존 제조업 중심 재벌들에게 특혜를 몰아주며 살아남은 역사적 선택의 결과이며, 이 속에서 부족한 국제적 경쟁력을 싼 노동력으로 보완해야 하는 재벌 기업들을 위해 비정규직이 양산되는 사회에 살고 있는 한 20대 청년의 위치가 내가 속한 조건임을 자각하게 됩니다. 그리고 나의 노력만으로 이 구조를 해결할 수 없음을 알 때, 그는 역사적 행위자, 즉 사회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공중의 한 명으로서 중소기업의 강화, 협동조합의 경제적 기회 보장, 임금 절감을 통한 경쟁력 제고가 아닌 고숙련 기술자 육성 교육을 통한 품질 제고 등의 요구를 당당히 외치게 되는 것입니다(88만원 세대 참고.). 결국 사회학적 상상력이 가진 궁극적 목적은 각 개인들이 저마다 공중의 역할을 수행하게끔 하는 데에 있다는 것을 우리는 주체적 개인의 역사적 행위 설정이란 말에서 알 수 있습니다. 이는 사회학이 이를 위해서 존재해야 한다는 Mills 개인의 생각이 반영된 것이기도 합니다. 그는 진정한 사회학자는 자연법칙을 갈망하는 관찰자이기 보단 필연적으로 공중을 길러내는 목적을 가질 수밖에 없는 사람으로서, 그 자신이 먼저 공중의 한 명이 되어야 한다고 여겼기 때문에 그토록 가치판단이 확실한 글을 썼던 것이지요.

 

다시 약속이란 말로 돌아갑시다. 이렇게 좋은 일이, 왜 현실이 아닌 미래의 약속인 걸까요? 아마 이를 실현되지 못하게 만드는 것들이 있기 때문이겠죠. Mills는 사회학을 사회학답지 못하게 만드는 50년대 말 미국 사회학계의 몇몇 경향을 2~6장에 걸쳐 풀어놓습니다. 그렇지만 이는 사실 우리 사회학계의 문제이기도 합니다.

 

2장인 거대이론에 대한 장은 불변의 법칙을 발견해내고 싶어 하는 사람들의 이야기입니다. Mills가 예로 들은 파슨스의 저작에서 우리는 그런 경향의 특징을 알 수가 있는데, 이들은 어느 시대, 어느 사회에서든 공통적으로 적용되는 자연 법칙과 같은 것을 사회에서 찾고 싶어 합니다. 제도와 질서에 대한 이야기, 이에 대한 일탈과 이를 정당화시키는 이야기 등 다양하고 (Mills스러운 표현에 의하면) 쓸데없이 정교한 논리들이 엄청나게 두꺼운 책을 만들어내지만, Mills는 이 모든 것들이 현실 사회 속에서 어떠한 의미도 가질 수 없다고 잘라 말합니다. 그에게 있어 모든 이론은 본질적으로 특수 이론이고, 그것은 특히 사회학 분야에서 더욱 두드러지기 때문입니다. 역사적인 맥락을 배제한 상태로, 이 곳이라는 지정학적 위치를 배제한 상태로 어디에나 똑같이 적용되는 법칙이란 게 있을 수 있을까요? 동아시아와 서구 유럽의 다른 근대화 과정이 얼마나 다른 사회와 국민성을 만들어냈는지를 떠올려 보면 쉽게 알 수 있을 것입니다. 이처럼 지금 이 곳의 다른 이야기 속에서 그들이 만들어낸 거대 이론은 어떤 유용성(개개인에게 자신의 위치를 깨닫게 하고 어떤 행동을 취해야 할지를 알려주는)을 던져주지 않습니다. 그저 자신들을 방어하기 위해 개념을 쪼개거나, 합치거나, 의미 없는 재분류를 할 뿐입니다. Mills에게 있어 사회학 연구의 정당성은 항상 ‘지금, 이 곳’에 대한 설명에 있었습니다. 인간과 사회와 역사는 엄청난 다양성을 담고 있기 때문에 우리가 그 앞에서 어떤 절대성을 찾아낼 수 있다는 오만을 부려서는 안 된다는 것(p.204 8장, 역사의 효용)입니다. 또한 현상을 보고 이를 해석하려 들어야지 해석 틀을 미리 만들어놓고 거기에 맞게 현상을 재단해서는 안 된다는 Mills의 경고는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프로크루스테스의 침대를 떠올리게 만드는군요. 자신의 침대에 맞춰서 손님의 키를 늘리거나 발을 잘랐다는 악한 말입니다. 공부를 하는 사람이 새겨들어야 할 말일 것입니다. 

 

다음 이야기는 자연과학의 연구 절차를 본 따 목적을 달성하고 싶어 하는, 방법론적 금기에 사로잡힌 사람들의 이야기입니다. 3장 추상적 경험주의에서 Mills는 이런 경향이 사회학이 가진 본래의 약속을 잊어버리게 하고 사회학자를 관료들과 이데올로기에 종사하는 단순한 조사 기술자로 만들어버린다고 주장합니다. 그들의 논리는 이렇습니다. 자연과학이 그 누구도 부정하지 못할 명백한 데이터에 기반 해서 가설을 검증하는 것처럼, 우리가 사회학에서 무엇보다 해야 할 것은 자신의 주장을 뒷받침하는 데이터의 명백한 사실성을 검증하는 일이다. 그리고 이를 통해서만 제대로 된 과학을 할 수 있다는 것. 이 이야기는 언뜻 보면 그럴듯해 보입니다. 그러나 가만히 질문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우리가 접하고 다루고 있는 하나의 사실과 현상이, 과연 자연과학이 실험하는 순수 철, 순수 인, 순수 황산 같은 것처럼 독립적으로 떨어질 수 있고, 우리가 원하는 것들만 결합시켜 결과를 지켜볼 수 있을 만큼 통제 가능한 재료들인 걸까요? 이들은 개개인들의 심리와 행동을 하나하나 모아나가면 전체 구조를 자연스레 알 수 있을 것처럼 굴지만, 우리가 한 개인의 행동에 어떤 맥락들이, 얼마나 많이 있는지, 단 하나의 맥락만을 지배적으로 가진 하나의 행동이 어디 있으며 그것들만을 어떤 식으로 모을 수 있는지, 과연 알 수 있겠습니까? 사회학자는 기본적으로 자신들이 다뤄야 하는 재료를 완벽히 알 수 없으며, 설령 완벽히 안다고 해도 시간과 자금과 권력 등의 문제로 이를 완벽히 통제할 수도 없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그들이 할 수 있는 방법은 한 가지입니다. 바로 자신들의 방법으로 완벽히 통제 가능한 사실들만을 연구에 쓸 자격이 있는 데이터로 인정하며, 이런 데이터를 통해 얻어낸 결과만을 진정한 연구결과로 인정하는 것입니다. 반대로 자신들의 방법으로 검증할 수 없는 연구 주제나 가설은 철저히 부정됩니다. Mills는 이를 ‘방법론적 금기’라고 부릅니다. 사회학이 본래 가졌던 약속을 지키기 위한 다양한 질문과 호기심이 주가 되는 것이 아니라, 방법이 주가 되면서 거꾸로 방법에 자신들의 질문을 맞추는 전도 현상. 이는 추상적 경험주의자들의 조사 현실에서도 나타납니다. 자금과 정보의 부족으로 이들은 주로 정부나 기업과 연계하여 수감자 통계, 기업의 수요 조사 등등에 자신들의 기술을 이용합니다. 이것이 설령 매우 정확한 방법으로 결과를 내놓는다고 한들, 과연 이것들이 누구를 위한 지식이며, 무엇에 도움이 되는 지식이겠습니까? 자신들의 ‘확실한’ 방법으로 ‘확실한’ 사회적 통찰을 얻어내겠다는 추상적 경험주의는 이처럼 자신들이 주장하는 ‘확실한’ 방법에서 더 이상 벗어나려고 하지 않는 관료주의적 의식으로 거대 조직의 이익을 올려주기 위한 기능적 지식만을 생산해 내며, 그럼으로써 사회에 대한 전체적 상을 그려내야 하는 사회학의 목적은 상실되고 사회학자의 위상은 지식인이 아닌 기술자로 축소됩니다. 

 

반면 이들은 이렇게 반박하기도 합니다. 이런 식으로 ‘확실한’ 사실들이 쌓여 가면 언젠가 그것들이 모여 세상의 뼈대를 보여줄 것이라고 말입니다. 그렇지만 우리는 우리가 알고 싶다고 결정한 문제들만을 알 수 있습니다. 즉 식이 없는데 답이 먼저 나올 수는 없는 것처럼, 정보를 모아간다는 것은 단순한 축적이 아닌 가설과 문제의식을 필요로 합니다. 지금까지 본 백조가 모두 하얀색이므로 모든 백조는 하얗다는 귀납을 행하기 위해선 세상의 모든 사물이 아닌 백조라는 것만을 골라내서 정보를 모아야 하는 선택이 있어야 하며, 이 선택 뒤에는 백조는 하얗다. 혹은 모두 그런 것은 아니다, 이 두 가지의 가설 중 어느 것이 맞는지를 알고자 하는 문제의식이 선행되어야 합니다. 즉 세상의 모든 동물들의 색깔을 모았다고 한들 백조의 색깔을 알고 싶어 하는 마음이 없으면 그것에 대한 사실은 우리의 인식 속에 아예 존재조차 하지 않는 사실이 되어버리는 것처럼, 세상의 뼈대, 즉 사회 구조를 알려면 많은 정보들 속에 자신이 생각하는 구조에 대한 문제의식을 대입시켜 확인하려는 의지가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런 구조적 문제의식을 결여한 채 방법에 어울리는 질문만을 찾는 추상적 경험주의가, 어떤 구조를 확인해 줄 수 있는 가치 있는 정보를 만들어낼 수 있을까요? 아마 힘들 겁니다. 백조의 색깔을 알겠다는 의지가 없이 지금 당장 사냥이 가능한 동물들의 색깔만을 무조건 잡아서 쌓아나가는 사람이 먼 훗날 누군가가 백조의 색깔을 내가 얻은 정보로 알 수 있겠거니 하는 거나 마찬가지이니 말이죠.

 

또한 이들이 ‘확실한’ 사실이라고 여기는 것이 정말로 확실한 것인지, 그리고 이들이 그렇게 해서 얻어낼 수 있는 ‘절대적인’ 법칙이 존재하는지에 대한 의문을 품어 볼 수 있습니다. 사회학에 있어서 모든 이론은 본질적으로 특수 이론이며 지금, 이곳에 대한 이론이어야 한다는 주장은 앞에서 언급했으니 뒤의 의문은 넘어가더라도, 이들이 만들어내는 사실이란 단위가 신빙성이 있는지에 대해서는 조금 더 이야기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왜냐하면 이들 또한 자신들의 연구대상을 정하는데 있어서 필연적으로 이론에 근거한 어떤 가정 하에서 이를 진행하며, 그들이 연구대상에게 물어보는 질문은 매우 표준화되어 있어 그 질을 담보하기가 어렵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이들이 여론조사란 이름으로 설문조사를 벌일 때, 여론이란 말을 쓰기 위해서 ‘공중’이란 말을 개념어로 사용하지만, 정말 공중이란 말의 구체적인 의미가 무엇이며 지금의 사람들을 공중이란 이름으로 부를 수 있는지, 공중의 범위를 어디까지이며 이는 역사적으로 어떻게 형성되어왔고 과거의 공중이라 불리는 사람들과 지금은 어떻게 다른지 등등에 대한, ‘공중’이라고 일컬어지는 개념어 밑에 깔린 전제 자체에 대한 질문을 던지지는 않습니다. 자신들이 빌려다 쓰는 명제나 개념에 대한 근본적인 논리적 검토 없이 이를 통해 ‘측정 가능한’ 결과를 내는 데에만 집착하는 것이지요. 그러나 당연하게도 이를 통해서 자신들이 똑같은 자료 수집으로 비교할 수 없고 측정할 수 없는 것들과의 비교연구, 즉 ‘상상력’을 요하는 비교 연구와 역사적 맥락에 대한 연구 없이는 그 자료들을 가지고 근본적 사회구조에 대한 통찰을 얻기는 불가능한 것입니다. 매해 투표 행위에 대한 여론조사가 실시되고, 이를 통해 당시 사람들의 정치 성향의 분포를 어느 정도는 알 수 있겠지만 그것만으로 그것이 정당한 여론인지, 지배 정당의 이데올로기 선전에 의한 결과인지, 역사적으로 어떤 방향을 향한 의의를 가진 투표였는지 등등을 알 수는 없는 것과 같은 것이죠. 그러나 추상적 경험주의는 마치 자신들이 표본 집단을 효과적으로 추출해냈으므로 이것은 여론이라고 믿는 경향. 그래서 이것은 반박할 수 없는 유일한 과학이라고 믿는 경향이 있습니다. ‘지금, 이 곳’에 집중하는 경험주의는 중요하죠. 그러나 이를 단서가 아닌 모든 것으로 보고, 구조적·근본적 문제의식 없이 방법론에만 치중에 무의미한 결과들을 내며 만족하는 추상화된 경험주의는 지양해야 한다고 Mills는 주장합니다.

  

4장과 5장은 묶어서 말하자면 이 같은 경향을 가진 사회과학이 실제로 새로운 흐름을 주도하기보단 기존 사회구조를 더욱 공고히 하는 데 활용되고 있음을 지적하는 장입니다. 각자 실용론의 여러 유형, 관료적 풍조란 제목을 달고 있지만 사회과학이 가진 장인으로서의 실용 대 관료로서의 실용에 대한 대비로 그 주제를 보면 될 것 같습니다.

 

Mills에 의하면 사회과학은 기본적으로 순수한 지적 유희와는 거리가 있는 학문입니다. 지금 이 곳에 집중한다는 것은 지금 여기에서 당신이 문제라고 생각하는 게 있다는 의미이며, 당신이 문제라고 생각하여 정하는 연구 주제는 기본적으로 당신의 가치관에 관련지어서 중요하다고 생각하거나, 가치관을 위협한다고 느끼는 것들, 당신이 지지하는 ‘누군가’와 관련된 문제라는 주장입니다. 예를 들어 생각해보면 당신이 지금 이 곳에서 정말 연구해야 하는 주제가 선거 제도에 대한 문제라 여긴다고 가정해봅시다. 선거 제도가 아무런 이상이 없고 당신의 가치관과 관련이 없는데 그것을 고등학교 상식 수준이 아닌 전문적인 연구가 필요하다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무언가 지금의 선거 제도가 당신의 이상을 뒷받침 할 수 있는 결정적인 증거나 수단이라고 생각하거나, 아니면 당신의 가치관을 통한 판단에 근거할 때 어떤 문제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을 때 비로소 당신은 선거 제도에 관심을 가질 것입니다. 또한 당신이 선거 제도에서 연구해야 하는 문제의 핵심은 그것이 얼마나 제대로 된 민의를 반영하는가 하는 것이라 여긴다고 가정해 볼 때, 당신은 이것이 반영되어야 하는데 제대로 자신들의 뜻을 반영 받지 못하는 누군가, 혹은 어떤 집단에 대한 관심과 간접적인 지지에 의한 결과임을 인식하게 될 것입니다. 기본적으로 그들에 대한 문제의식 없이는 이 같은 연구주제가 나올 수 없는 것이겠지요. 그리고 선거제도를 왜 연구 주제로 삼았는가 하는 것에 대해 이와 같은 자신의 가치와 사고의 과정이 명확하게 천명 되었을 때, 우리는 서로에 대한 제대로 된 교류가 가능합니다. 무엇이 우리에게 진정으로 중요한 문제인가에 토론은, 그래서 그것이 사실인가 아닌가 보다 선행 되어야 하는(더 중요하다는 뜻이 아닙니다.) 토론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Mills에 의하면, 지금의 사회과학은 자신이 연구해야 하는 주제에 대한 질문을 스스로 하지 않습니다. 그저 자신들이 정한 단 한 가지 방법으로 검증 가능한지 아닌지를 따지며, 이 때 그것을 활용하는 거대 조직에 의해(추상적 경험주의에 의한 통계는 다양한 수요조사로 잘 활용되고 있습니다. 과연 이것이 진정한 용도인가에 대한 의문이 없는 많은 학자들에 의해서 말이죠.) 사회학은 새로운 실용론으로 접어들게 됩니다.(공중을 위한 문제 설정이 아닌) 기존 사회구조에서 지배 계층의 이익을 위해 복무하는 관료적 기술로서의 실용이 되는 것이지요. Mills에게 있어 가치판단이 없는 사회학은 없었습니다. 스스로 가치 판단한 사회연구이냐, 남이 판단하고 대신 활용하는 사회연구냐의 차이가 있을 뿐이었습니다. 자신의 질문을 중심에 놓고 새로운 이론과 방법을 고심하는 창조적 장인에서 그 전의 안전한 방법만을 답습하는 관료로서 사회학의 성격이 변하는 상황. 무엇보다 학자를 내부에서도 학문적 탄탄함에 의한 경쟁이 아닌 자기 방어를 위해 생긴 파벌에 의한 무의미한 경쟁(학자들 사이의 위계와 명령체계가 생겨난다는 점에서 참으로 관료적입니다.). 그리고 자신들이 만들어낸 방법을 통해 현상을 ‘중립적’, ‘과학적’으로 ‘예측’하기 위해 마치 자연과학처럼 ‘변수를 통제‘하고 싶어 하는 고위급 관료 같은 생각. 이것이 Mills가 사회학적 상상력이란 용어를 만들어가며 지키고 싶었던 오래된 미래를 위협하는 주요 요인이었습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하는 걸까요? Mills는 장인적 기질을 강조합니다. 6장의 과학 철학에서 Mills는 방법론적 금기 같은 집착이 인문학에 과학의 지위를 부여하고 싶어 하는 많은 사람들이 그 전 사회학의 고전적인 방법들을 한 가지의 통합된 방법으로 묶으려는 시도에서 나왔음을 말합니다. 그리고 그것이 전혀 필요하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어떤 문제가 있는지를 집중하지 않은 상태에서 나오는 한 가지의 방법은 문제의 본질에 접근하고자 하는 상상력을 오히려 억압할 뿐이라고 주장합니다. p.155의 본문을 한 번 보죠.

 

“‘방법’과 ‘이론’을 터득했다는 것은 자의식적인 사상가, 즉 자신이 연구하는 문제의 전제와 함축된 의미를 인식하는 사람이 되었음을 의미한다. 반대로 ‘방법’과 ‘이론’에 지배당하는 것은 세계에서 벌어지는 사건을 알아내려는 노력을 하지 않는 것이다. 연구 방법에 대한 통찰이 없으면 연구 결과의 근거는 박약해지며, 그 연구가 중요한 결과를 가져오리라는 결단이 없으면 모든 방법은 무의미한 겉치레가 되어버린다. 고전적 사회 과학자에게는 방법도 이론도 자율적인 영역이 아니다. 방법은 어떤 범위의 문제를 파악하기 위한 방법이며, 이론은 어떤 범위의 현상에 관한 이론이다. 그것은 여러분이 살고 있는 나라의 언어와 같은 것이다. 즉 여러분이 말을 할 줄 아는 것은 전혀 자랑거리가 아니지만, 말을 못한다면 불편하고 창피한 일이다.”

 

이 정도로 문제의식 중심의 연구를 강조하고, 그 문제의식에 대한 자신의 가치관을 천명할 것을 갖은 공격을 통해 강조했으면, 이제 저자 스스로가 어떤 문제의식을 가지고 있는지, 그리고 그 문제의식을 가지게 된 자신의 가치관이 무엇인지를 밝혀야 할 것입니다. 7~10장을 통해서 Mills는 ‘나는 사회학이 무엇을 질문해야 한다고 생각하는가?’, ‘사회학이 이런 질문을 함으로써 가져야 하는 가치관은 무엇인가?’에 대한 자신의 확실한 생각을 풀어놓습니다. 7장의 제목은 그래서 ‘인간의 다양성’입니다. 

 

그렇습니다. 모든 인문학이 그렇지만 무엇보다 사회학은 인간에 대한 설명이라고 할 수 있겠죠. Mills가 말하는 사회학적 상상력의 중요 요소 또한 사회 구조와 그것의 변동 속에서 달라질 인간 개인들에 대한 추측 아니었습니까? 어떤 식으로 추측할 것인가라는 문제에 대해 Mills는 역사적, 공간적인 다양한 비교 연구를 제시합니다. 역사 속에서의 각 개인 간, 소집단 간, 대집단과 소집단 등의 비교 등을 통해서 제대로 된 인식을 할 수 있다고 주장하며 여기에는 학문의 지나친 전문화를 의식해서는 안 된다고 강조합니다. 사실 인간의 다양성이란 제목은 절대 주의를 경계하며 스스로에 대한 겸손을 주장하는 말인 동시에 자신의 문제를 명확히 하기 위해선 최대한 모든 것을 고려할 것을 열정적으로 권하는 제목인 것입니다. 아마 마지막 문단의 인용이 이를 뒷받침하는 적절한 근거가 되겠군요.

 

“그 진정한 의미는 이것이다. 우리 시대의 주요 문제를 제기하고 해결하기 위해서는 하나 이상의 여러 학문에서 자료와 개념과 바업을 취해야 한다. 사회과학자는 그의 문제를 명료히 하는 데 사용할 자료와 관점에 익숙해지기 위해 ‘그 분야에 통달할’ 필요는 없다. 학문의 전문화는 학문의 경계보다는 중요한 ‘문제’의 측면에서 이루어져야 한다.(p.179)”

 

사실 이런 비교 연구, 그리고 진정한 비교를 위한 각 요소들이 형성된 다양한 맥락들의 깊은 이해를 위해서 역사적 자료를 빼놓을 수가 없겠죠. 8장 ‘역사의 효용’은 바로 이런 역사 의식에 대한 중요성의 강조입니다. Mills는 이 저서 곳곳에서 지겨울 정도로 역사가 사회연구에 있어서 가지는 중요성을 언급하는데, 이는 역사가 지금 이 순간 무엇을 질문해야 할지를 알려주기 때문입니다. 본문에도 나오듯 역사는 “사회구조의 발전에서 그 시대의 중추적인 사건들을 파악할 수 있는 시야를 넓혀주는 원동력”이라고 할 수 있지요. 이것은 한 사회의 구조적 본질은 흔히들 그것이 큰 폭으로 변화해가는 과정에서 비로소 구체적으로 인식되며, 그 전에 비슷한 문제나 과정이 어떤 식으로 다루어졌는지에 대한 비교를 통해서 그 차이점을 파악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중세 시절의 사람들이 자신들이 사는 시대를 스스로 중세라고 불렀을까요? 산업 혁명이 일어나고, 근대라는 시대가 도래 하면서부터 그 전의 시대는 비로소 구조적으로 인식되고 이름이 붙여집니다. 여성의 노동 문제가 봉건제에서 다뤄지는 방식과, 2차 세계대전 이후 다뤄지는 방식이 같을까요? 이런 것들에 대한 비교는 같으면 같은 대로, 다르면 다른 대로 왜?라는 질문을 안겨줍니다. 이런 역사적 변화의 과정에 대한 질문은 대개 구조적 변화에 대한 질문과 맞물리고, 구조에 대한 질문이 되기 때문에, 그리고 지금의 시대가 어떻게 변하고 있는지를 그 전의 역사적 단계와 연결 지어 깊게 생각하게 만들고 어떻게 변해 왔는지를 두고 구조에 대한 상상력을 자극하기 때문에, 역사는 사회학과 떼놓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9장과 10장은 왜 사회학자는 자신이 지키고 싶은 가치를 가져야 하고 이를 밝혀야 하는가? 라는 물음에 대한 답입니다. Mills는 자신의 주장대로 자신이 지키고자 하는 가치를 밝힙니다. 이는 이성과 자유입니다. 9장 이성과 자유에 대하여는 Weber와 같은 문제의식을 보여주는 대목입니다. 사회가 합리화되어갈수록 개인이 이성을 발휘할 영역을 줄어들고, 이것이 개개인의 자유를 제약하는 요소가 됨으로써 민주주의는 위협받고 있다는 것인데, 아주 짧게 자신의 문제의식을 요약한 부분이니 이 정도만 하고 넘어가면 될 것 같군요. 

 

중요한 것은 이런 문제의식을 가진 학자가 어떤 식으로 자신의 의식을 실현시킬까 하는 것입니다. 10장 정치에 대하여는 바로 이에 대한 마음가짐을 말하고 있습니다. 이는 곧 사회학자가 사회에 대하여 지니는 진정한 의무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대한 답입니다.

 

자연과학자는 사실 자신이 실험할 재료에 대한 의무가 있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사회학자는 그래야 하는 책임과 의무가 있죠. 왜냐하면 그 자신이 이미 자신이 연구하려는 대상과 동떨어질 수가 없는 대상이며, 오히려 스스로의 생활 그 자체가 연구의 1차 대상이 되어야 하는 존재인 이상, 단순하고 완결된 법칙을 찾아내기보다 내 주변의 사람들에게 필요하고 나한테도 필요하다고 느껴지는 것들에 집중할 수밖에 없는 이상 무엇을 위한 연구인가가 가장 1차적인 문제가 되기 때문입니다.  

 

Mills는 사회학적 상상력은 사회학자는 당연히 가져야 할 능력이며, 이를 넘어서서 다양한 분야와 많은 평범한 사람들에게 이 상상하는 능력을 전파하는 것이 사회학자가 가진 지식인으로서의 의무라고 생각했습니다. 이는 사회학자가 자신의 정치적 역할을 개인의 문제를 공적인 역할로 연결시켜 행동할 수 있는 자기 해방적 인간을 길러내는 데에 둬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Marx의 말처럼 인간은 역사를 창조할 수 있지만 자신이 선택한 조건에서 역사를 창조할 수는 없기에, 사람들이 스스로가 역사적 행위자임을 자각하게 하고 이를 행하는 데에 있어 자신이 처한 조건이 어떠한지를 스스로 돌아볼 수 있게 해줘야 한다는 말입니다. 가르치는 선생이 진정으로 해야 할 것은 자신의 견해가 아니라 자신이 그 견해를 어떻게 만들어냈는지에 대한 절차를 가르쳐야 하는 것처럼 말입니다. 이는 곧 민주주의의 실현을 위해 사회과학자들이 존재해야 한다는 말이겠지요. 사회적으로 중요한 사안들에 영향을 받으면서도 그 사안을 결정할 권한을 커녕 무엇에 영향을 받고 있는지도 모르는 사람들에게 분명한 자각을 심어주고 이를 획득하기 위한 행동에 나서게 하는 중심에 사회과학자가 있어야 함을 Mills는 역설합니다. 개인적으로 이 책에서 가장 뜨겁게 읽었던 부분이었습니다. 

 

 

결국 가장 중요한 것은 대중들에게 공중이 되라고 소리치는 것이 아니라 사회과학자 스스로가 공중이 되는 것입니다. 사회, 운동, 정당, 계층 및 계급과 그 사이의 이해관계들 속에서 자신이 대변하거나 반대하는 것들을 명확히 설정하며, 다른 사회과학자들과 그 타당성을 놓고 경쟁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사회과학자가 정치인이 되라는 것이 아니라, 무엇이 현실에 대한 올바른 규정인지를 연구를 통해 겨루며, 그 속에서 무엇을 지지해야 하고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를 알리고 직접 따르며, 이것을 함께할 수 있는 공중들을 만들어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 과제의 무게가 설령 크다고 해도 그것이 이를 수행하지 않을 수 있는 변명거리가 되는 것은 아닙니다. 이를 피하지 않고 끝까지 안고 씨름하는 것이 1장에서 강조한 사회학의 ‘약속’을 지키는 일이겠지요.

 

그리고 마침내 사회학적 상상력의 이 모든 이야기들은 부록의 장인기질론에서 단 한 가지의 말로 귀결됩니다. “두려움 없이 질문하라.” 학문의 정형화된 테두리에, 근거가 불확실한 정확성을 담보한다는 방법에, 스스로의 연구와 방법이 불확실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에, 절대적인 법칙을 발견하겠다는 오만으로 지금을 보지 못하는 거대 이론에 대한 신봉에서 벗어나, 처음 학문이 생겨났던 그 원초적 의미. 세상과 인간에 대한 강렬한 호기심을 유일한 출발점으로 삼으며 이론과 방법은 이 호기심을 보조하는 역할 이상이어선 안 된다는 것. 그리고 자신이 왜 이런 호기심을 가졌는지, 호기심에 대한 호기심을 두려움 없이 내보일 것. 생활에서, 정치에서, 책을 읽으면서, 어떤 개념에 대해 파고들면서, 무엇을 알아야 하며 알고 싶은가, 어떻게 알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한 연구계획을 세우는 데 있어서 지치지 말 것. 이 책은 이처럼 생활과 학문이 처음의 그 자세를 가지며 결합될 것을 요구하는 책입니다.    

 

그 동안 사회과학을 공부한다는 것이 허무하게 느껴졌을 때가 있었습니다. 학교에서 배우는 지식은 너무 앙상하며 붕 떠있고, 현실 정치에서 모든 걸 아는 것 같은 시사 전문가들은 너무 지엽적이며 다른 대안이 아닌 최악만 아니면 된다는 식이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사회에 대한 비전이 있는 공부, 무엇을 알까가 아니라 알아서 어떻게 행동하면 어떤 사회를 만들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한 진정성 있는 공부와 행동의 일치가 어디에 있을까 생각했었는데, Mills의 책에서 어떤 느낌을 받았습니다. 그것은 장인이란 말에서 드러나듯 어떤 학제나 어떤 단체에서 전적으로 길러지는 것이 아니라 그것들을 활용하며 내가 스스로 나를 길러야 하는 문제라는 것을요. 상상력, 감수성. 이런 말들이 굉장히 낭만적으로 느껴질 수도 있지만, 여기서 말하는 이런 용어들은 사실 ‘훈련으로 동물 화된 통찰력과 판단력’을 의미합니다. 저 스스로가 그와 같은 통찰력을 가지기를, 그리고 동물화라는 말이 나타내듯 나 자신의 즉각적인 실천과 그 지침을 줄 수 있는 통찰력으로 완성해 가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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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화 - 한 지식인의 삶과 사상
리영희, 임헌영 대담 / 한길사 / 200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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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화는 사실 제가 고등학교 1학년 때 나왔던 책입니다(출간년도가 2005년이죠. 그러고 보니 고등학교에 입학한 해로부터 8년이 지났네요.). 당시 멋도 모르고 집어 들었지만 두꺼운 책을 쉬는 시간에 쪼개서 읽다보니 연속성이 없고 기억이 잘 안 나는 책이 되었던 기억이 있습니다. 그랬던 책을 우연한 기회에 다시 읽어보게 되었고, 리영희라는 큰 선생님에게서 무엇을 배울 수 있을지를 진지하게 곱씹어보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지식인, 더 나아가 지성인이란 것이 무엇일까요? 그 첫 번째는 무엇보다 “공부하는 사람”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저는 리영희 선생님의 역정 - 합동통신에서 근무하시던 50년대 말의 열악한 상황 속에서도 외신들을 끊임없이 스크랩 하시고, 아무도 들여다볼 생각도 하지 않았던 외국의 기밀문서와 공청회 보고서, 우리나라의 엄청난 분량의 조약 집까지 일일이 들여다보신 뒤에야 자신의 의견을 정리하고 글을 쓰시는 엄정한 태도에서 우선 지성인은 “어느 문제이건 정확하고 분명하고자 하는 논리적 시련(박이문)”을 겪는 자라는 명제를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개인적으로는 철저한 공부와, 특히 이를 가능케 했던 유창한 외국어가 제가 또 이루어내야 할 과제로 여겨지기도 했습니다.   

 

두 번째는 “이 땅을 위해서 공부하는 사람”이겠지요. 2005년에 KBS “TV, 책을 말하다.”라는 코너에서 장정일 씨가 ‘대화’를 두고 이런 말을 합니다. “선생님은 한국에 계셨지만 언제나 세계의 흐름을 놓치려고 하지 않았고, 세계의 흐름을 보고 있었지만 언제나 한국의 현실을 그 속에서 함께 보려고 하셨다.” 15년 이상을 베트남 전쟁의 전개와 그 속에 드러나는 미국의 제국주의적 속성을 파헤치고, 중국의 사회주의 혁명 속에서 나타난 세계사적 조류를 파악하려고 애썼지만 그 속에는 언제나 반공 이데올로기에 사로잡혀 있고 미국에 대한 불균형한 시각을 가지고 있던 사람들에게 다른 세상을 알려주려는 열정이 있었습니다. 이 땅이란 말 속에는 하나의 국가, 하나의 정부를 위한 공부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처한 이 현실을 개선하려는 실천적 열정에서 출발하는 공부, 그리고 이 현실이 나와 내 주변만이 아니라 훨씬 더 넓고 깊은 맥락 속에서 만들어진 현실임을 냉철히 인식하고 이를 많은 이들과 나누기 위한 공부라는 의미가 담겨 있습니다. 베트남 민족의 오랜 투쟁에서 그들에 대한 응원과 동시에 우리 민족에게 새로운 가능성을 알려주려는 리영희 선생님의 공부는 진정 “이 땅을 위한 공부”였다고 생각합니다.

  

세 번째는 뭘까요. “진실을 위해 공부하는 사람”이 아닐까요? 리영희 선생님의 말씀 중 이런 것이 있습니다. “내가 종교처럼 숭앙하고 목숨을 걸어서라도 지키고 싶은 것은 국가나 이런 것이 아니야. 진실이야.” 그 태도는 책을 읽으면서도 전반적으로 드러납니다. 지식인은 언제고 어느 곳에서도 자신의 최선을 다해서 가치판단을 해야 하는 사람이지만, 그 판단을 언제고 자신이 캐낸 사실에서 얻어낸 가치판단 그 이상이어선 안 된다는 것. 선생님은 미국의 국제정책에 대해서 단호하게 비판적인 자세를 취하지만 그것으로 모든 국제관계의 재앙의 근본적 원인을 미국의 치밀한 기획으로 돌리는 자세를 경계하며, 우리 사회 내부의 반공 이데올로기에 대해서 그것이 더 나은 사회를 막는 걸림돌이라는 자세를 취하지만 북한의 개인숭배 사상에 대해서도 똑같은 비판의 자세를 취합니다. 사회적인 압력이나 타인의 시선에 신경을 쓰며 본인의 주장을 고치지 말고, 본인의 주장을 내기 전에 철저하게 따져보는 정신, 그 정신이 기자 시절과 교수 시절의 해직과 구속에도 스스로를 지켜낼 수 있었던 힘이 아니었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마지막으로 저는 리영희 선생님이 지식인의 덕목으로 “자신을 위해 공부하는 사람”을 보여줬다고 생각합니다. 지식인이란 기본적으로 우스운 존재일 수밖에 없습니다. 자신이 내뱉는 말을 평생을 가도 따라가지 못한다는 것을 사실 모두가 알고 있기 때문이지요. 또한 스스로가 대변한다고 말하고 싶은 계층이 있지만, 절대 그 계층과 동화될 수는 없는 모순을 항상 안고 있습니다. 저는 이 책에서 바로 그와 같은 모순을 삶의 경험을 통해서 솔직하게 반추하시는 모습을 보며 결국 지식인은, 아니 공부를 하는 모든 사람은 스스로의 모자람을 반성하며 잘못과 실수를 인정하고 이를 고치기 위해 최선의 노력을 다하는 자기완성의 의지를 가져야 함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가정사에 소홀했던 자신의 경직성, 육체노동자가 되기를 포기할 수밖에 없었던 인텔리의 관념성, 동구 사회주의권 국가의 몰락에 따라 새로운 인간적인 체제를 고민하는 의지의 유연성까지, 공부는 내 밖에 나를 둘러싸는 성을 쌓는 것이 아니라 내 안에 탑을 쌓는 과정임을 선생님의 인간적인 고백을 통해 배울 수 있었습니다.

 

물론 이 책에서 보이는 선생님의 생각이 제 생각과 완벽히 일치하는 것은 아닙니다. 20세기말에 태어나 21세기의 청년기를 보내고 있는 저에게 보이는 국제 정세는 20세기의 모습과는 다른 양상을 보이는군요. 미국에 대항해 생겨난 반미국가 중 지금까지 유지되는 국가는 거의 대부분 독재와 가난이란 굴레에 있고, 그 안에서의 삶이 선생님이 바라온 것처럼 민중적인지에 대한 의문이 생깁니다. 중국의 문화대혁명에 대한 과거의 평가라든지, 사민주의가 과연 그렇게 완벽한지, 저에게 그것들에 대한 답을 충분히 내려주진 못합니다. 그렇지만 이건 그 누군가의 결함이라기보다는 한 시대와 다른 시대의 차이가 아닐까요? 제가 배워야 할 점은 한 시대에 충실했던 지식인의 자세이고, 그 꽉 막히고 모든 사실이 통제되던 시절 자신이 찾아낸 사실을 가지고 올바른 판단을 해보고자 악전고투하던 철저한 공부의 자세입니다. 저의 전공이 사회과학인 이상, 저는 사회를 공부하는 데 있어서 그 분이 가졌던 연구의 목적과 방법과 윤리의 철저함을 배우고자 합니다. 여러분에게 이 책을 권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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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토피아 을유세계사상고전
토머스 모어 지음, 주경철 옮김 / 을유문화사 / 2007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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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모든 고전은 당대의 사회문제에 대한 치열한 성찰에서 온다. 그러면 그것이 건드린 인간 본성에 대한 통찰과 빛나는 비전이 우리에게 끊임없이 새로운 영감을 주는 것이다.'라는 생각을 하게 만드는 책이 있다면, 아마 유토피아도 그 중 하나에 들어갈 겁니다. 사실 전형적인 사례라고 할 수 있겠죠. 유토피아라는 책에는 저자가 느꼈던 당대의 사회문제, 여기에 더해서 만들어낸 자신만의 국가관, 인간관, 인생관이 종합해서 들어가 있습니다. 하나의 국가를 만들어내는 작업이라는 건 자신이 가진 모든 철학을 총집결시킬 수밖에 없는 엄청난 작업이어서 그랬다는 생각이 드는군요. 1500년대에 꿈꿨던 국가. 그것이 우리에게 가지는 의미는 무엇일까요? 그것을 생각해보기 위해선 먼저 이 책이 쓰였을 당시 영국의 시대상부터 살펴봐야하겠네요.

 

토머스 모어가 살던 시기는 헨리 7~8세의 시기로, 이탈리아 등지에선 르네상스 운동이 활발하게 일어나고 있었고, 영국에도 그 물결이 들어와 여러 인문주의자들이 생겨나던 시기입니다. 상대적으로 교회의 영향력은 줄어들고 있었고, 왕권의 입김이 점점 강해지면서 다른 왕권들과의 충돌이 생겨나던 시기였지요. 그 때문에 정치적으로는 전쟁을 수행하기 위해 과도한 군사력이 유지되고, 이를 위한 가혹한 세금 수탈이 왕의 이름으로 자행되던 시기였습니다. 더불어 경제적으로는 방직 산업이 발달하는 초기 자본주의 형태를 보이면서 대대적인 1차 엔클로저 운동이 일어났고, 이에 따른 농민의 몰락, 노동자의 도시 유입이 급속도로 진행되던 시기였죠. 바로 이 시기, 사상적으로는 교회의 부패에 저항하는 인문주의가 생겨나고, 정치적으로는 강력한 왕권의 부작용이 부각되며, 경제적으로는 산업의 발달과 농촌의 몰락이 진행되던 혼돈의 격변기에 이 책은 씌어졌습니다. 당대의 사회를 어떤 곳으로 끌고가야 하는가에 대한 고민이 반영될 수밖에 없었겠죠.

 

이것들은 예를 들면 이런 식으로 드러납니다. 모든 도시민들은 의무적으로 1년씩은 교대로 농촌에 내려가서 농사를 지어야 하며, 노동의 절대 다수는 농민들의 농사가 차지합니다. 모두는 사치를 부리지 않은 똑같은 옷을 입으며(이건 아마 엔클로저를 지켜봤기 때문에 나온 발상이겠죠?), 황금은 일부러 가장 비천한 용도에만 사용해 욕망의 제거를 유도합니다. 정치는 자치와 의회 정치의 혼합이고(지역구 국회의원들이 나라를 다스리는 것과 비슷합니다.) 이들 또한 노동을 명예로 생각하며 모두는 공동식당에서 식사를 하고 사유재산은 일체 인정되지 않습니다. 필요한 모든 것(집까지 포함해서)은 공동소유이고 이밖에 황금 같은 사치품은 전쟁이나 교역을 위해서만 따로 준비해 놓고 있을 뿐입니다. 종교의 형식에 대한 자유는 인정되며 6시간 노동 이외의 여가는 보장됩니다.

 

아마 토머스 모어는 이런 세상을 꿈꿨던 듯 합니다. 왕 한 명이 다스리는 것이 아닌 민주정치 - 르네상스의 오래된 미래인 고대 그리스를 본딴 것이라는 생각이 듭니다만 -, 모두가 평등하게 노동하며 이를 명예로 생각하는, 농업이 중심인 나라. 그리고 이를 위해 필요한 욕망의 절제를 제도로 만들 구상까지 한 듯하군요. 사실 500년이 지난 지금 서울에서 공공주택 개념과 생활협동조합 개념, 10 몇년 전부터 논의되고 있는 식량주권 개념, 또한 공유경제가 한창 유럽에서 대안으로 떠오르는 현실을 생각했을 때 행복한 삶을 위한 국가와 경제란 무엇이어야 하는가에 대한 모어의 아이디어는 꽤나 섬세한 데가 있다고 보이는군요.

  

묘한 구석이 있기도 합니다. 결혼을 할 때는 공증인을 대동한 상태에서 반드시 알몸으로 서로를 살핀 뒤에 한다는 것인데, 아마 엄숙하고 통제된 중에 하는 집안끼리의 결혼에 대한 인문주의자의 불만이 없진 않았을 겁니다. 때문에 이런 과격한 뒤집기를 시도했지만 아직은 강력하게 남아있는 교회의 힘과 사회분위기에 공증인이라는 타협점을 내보이지 않았을까 싶네요. 노예들이 도살을 맡는다는 건 붉은 피가 정념을 불러일으킨다고 생각해서 기피하던 당시 중세의 생각이 반영되었던 것 같고, 모든 가족은 일차적으로 아버지의 말을 따라야 하는 가부장적인 요소도 당시의 한계로 지적할 수 있겠습니다. 유토피아인들은 쾌락을 즐기나 그것이 육체적인 쾌락을 의미하는 건 아니라는 에피쿠로스적인 철학도 길게 나오는데, 이건 아마 저자 개인의 인생관이 들어가지 않았나 합니다. 이 책은 제도를 말할 때는 정책집의 성격을, 풍속과 종교를 말할 때는 사회철학과 인생철학의 요소를 담고 있는 복합적인 책이기 때문에 이밖에 자세한 분석을 시도하면 더 많은 이야기들이 나오지 않을까 하네요.

   

그런데 문제는 이것만이 아닙니다. 그저 묘한 구석이 있다는 정도로만 끝나면 좋겠지만 솔직히 이 책을 다 읽었을 때의 제 심정은 이게 정말 유토피아라면 나는 절대 여기에 살기 싫다는 거였습니다. 우선 너무 금욕적입니다. 혼전성교와 간통을 제도적으로 강력히 통제해서 최고형을 사형까지 처한다는 그 생각 - 사람들 개개인의 도덕과 가치관을 법으로 강제하는 숨막힘을 그냥 넘어간다고 하더라도, 인구조절을 정부가 간단히 지시만 하면 이동이 가능한 걸로 간주하는 것, 모두가 강제인지 자발적인 참여인지 모르겠지만 똑같은 옷을 입고 같은 집에서 살 것이라고 가정하는 것이나 황금 등을 일부러 비천한 물품으로 만든다는 식으로 인간의 욕망까지 제도로 유도와 통제가 가능한 걸로 생각하는 독선과 오만이 저한텐 너무 끔찍해 보였습니다. 한 사람의 머리 속으로 만드는 국가라는 게 사실 독선이 전제로 깔려있지 않고선 불가능한 것입니다. 한 세상은 틀렸고 나 하나가 옳은 생각을 하고 있다는 확신, 이걸 해낼 수 있고 해내면 반드시 좋아질 거라는 확신이 은연중에 깔려있지 않으면 사실 어떻게 그런 글을 써서 책까지 낼 수 있었겠습니까. 서구의 이상향과 우리의 이상향은 조금 다릅니다. 우리는 몽유도원처럼 꿈을 꾼 한 사람이 선계에 들어가서 즐거이 놀다가 깨어난다는 식의 도피와 위로의 장이라면, 서구의 이상향은 현실에 발 붙이고 이를 해결할 수 있는 방법과 동력을 제공하기 위한 도구로서의 장입니다. 바로 그랬기에 그 무서운 추진력으로 한 때 세계를 자신들의 발 아래 두었을지도 모를 일입니다만, 저는 추진력보다 독선과 오만이 먼저 보였습니다. 뒤에 참고자료에 나오는 다른 다양한 서구의 이상향 텍스트들도 비슷한 형식을 취하고 있다는 점에 있어서는 어떤 무서움을 느꼈고요. 어쩌면 이게 서구의 텍스트를 읽는 동양인의 시각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이런 오만은 전쟁, 종교, 과학에 가서는 아주 노골적으로 드러납니다. 서구의 기독교 - 유일신 사상이라는 게 얼마나 뿌리 깊은지를 잘 보여주는 부분은 종교와 과학입니다. 어떤 의례를 지내는지, 어떤 형식의 기도를 하는지에 대한 자유는 열려있다는 대목에선 얼핏 교회의 영향력을 벗어나는 르네상스의 분위기가 묻어나는 듯 싶지만, 그 모든 종교는 기본적으로 가장 '합리적인' 유일신 사상이라는 것에 동의하는 종교이고, 이 외의 우상 숭배 등은 법으로 강력히 금지하고 있다는 대목을 바로 집어넣습니다. 과학과 학문 또한 이 세상을 만든 신의 능력을 찬탄하기 위한 수단으로서 쓰이는 것이라는데, 기독교적 세계관을 벗어나지 못하는 서구인의 한계를 느꼈다고 해야 하나, 저한텐 그랬습니다.

  

그렇지만 가장 비판받을 부분은 전쟁과 식민지입니다. 살 땅이 모자라면 다른 나라 원주민이 쓰지 않는 땅을 뺏으면 되는데, 이는 자연 법칙 상 당연한 것이고, 교역을 하는 다른 나라의 상인이 입은 피해까지 신경 써서 전쟁을 일으킨다는 대목, 그리고 그 전쟁에 사제들까지 종군한다는 인식 등은 빼도 박도 못하는 제국주의적 사고방식이로군요. 재미있는 건 저희가 배운 바로는 제국이란 자본주의적 생산양식에서 그 생산품이 포화상태에 이르렀을 때 새로운 독점적 시장을 확보하기 위한 수단으로 식민지를 만들어가면서 생기는 것인데, 바로 그 자본주의의 초기 단계에서 이를 뛰어넘는 공산주의적 이상향을 꿈꾼 모어에게도 식민지는 낯설거나 배척해야 하는 대상이 아니었던 겁니다. 사실 다른 얘기지만 맑스도 아시아 민족에 대한 시각은 굉장히 편협하고 오류에 가득 차 있었다고 하죠. 식민지의 시대였던 19세기가 아닌 무려 16세기부터 이들에게 이런 인식이 자연스러웠던 걸 보면 자본주의건 공산주의건 이런 시각과 사상이('나'와 내가 속한 집합인 '내' 국가가 무한히 강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조화로운 관계보단 이겨야 한다고 생각하는) 서구인들의 근본인 게 아닌가 하는 회의마저 들었습니다. 사실 그게 이 책에 별을 세 개밖에 안 준 이유이기도 합니다.

   

유토피아는 이렇게 끝을 맺습니다. 많은 부조리한 것들이 있었지만 몇 가지는 받아들일만한 가치가 있는 듯 보였다고, 실컷 말해놓고 이게 무슨 말인가 싶지만 이게 몽유 소설의 기본 문법이라고 하더군요. 자신이 꿈꾸는 것과 현실 간의 괴리를 이렇게 농담처럼 얼버무리는 거라고. 하지만 좋게 생각해서, 저는 이게 저자도 잘은 모르지만 내게도 무슨 오류가 있을지도 모른다는 걸 인정하는 거였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지금 이 시대의 눈으로 자신이 찾아낼 수 없는 잘못을 후대에 맡기는 장치를 집어넣은 거였으면 좋겠다고 말입니다. 그렇게 읽었을 때 이 책은 조금 더 편하고 유연하게 다가오지 않을까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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