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대화 - 한 지식인의 삶과 사상
리영희, 임헌영 대담 / 한길사 / 2005년 3월
평점 :
대화는 사실 제가 고등학교 1학년 때 나왔던 책입니다(출간년도가 2005년이죠. 그러고 보니 고등학교에 입학한 해로부터 8년이 지났네요.). 당시 멋도 모르고 집어 들었지만 두꺼운 책을 쉬는 시간에 쪼개서 읽다보니 연속성이 없고 기억이 잘 안 나는 책이 되었던 기억이 있습니다. 그랬던 책을 우연한 기회에 다시 읽어보게 되었고, 리영희라는 큰 선생님에게서 무엇을 배울 수 있을지를 진지하게 곱씹어보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지식인, 더 나아가 지성인이란 것이 무엇일까요? 그 첫 번째는 무엇보다 “공부하는 사람”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저는 리영희 선생님의 역정 - 합동통신에서 근무하시던 50년대 말의 열악한 상황 속에서도 외신들을 끊임없이 스크랩 하시고, 아무도 들여다볼 생각도 하지 않았던 외국의 기밀문서와 공청회 보고서, 우리나라의 엄청난 분량의 조약 집까지 일일이 들여다보신 뒤에야 자신의 의견을 정리하고 글을 쓰시는 엄정한 태도에서 우선 지성인은 “어느 문제이건 정확하고 분명하고자 하는 논리적 시련(박이문)”을 겪는 자라는 명제를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개인적으로는 철저한 공부와, 특히 이를 가능케 했던 유창한 외국어가 제가 또 이루어내야 할 과제로 여겨지기도 했습니다.
두 번째는 “이 땅을 위해서 공부하는 사람”이겠지요. 2005년에 KBS “TV, 책을 말하다.”라는 코너에서 장정일 씨가 ‘대화’를 두고 이런 말을 합니다. “선생님은 한국에 계셨지만 언제나 세계의 흐름을 놓치려고 하지 않았고, 세계의 흐름을 보고 있었지만 언제나 한국의 현실을 그 속에서 함께 보려고 하셨다.” 15년 이상을 베트남 전쟁의 전개와 그 속에 드러나는 미국의 제국주의적 속성을 파헤치고, 중국의 사회주의 혁명 속에서 나타난 세계사적 조류를 파악하려고 애썼지만 그 속에는 언제나 반공 이데올로기에 사로잡혀 있고 미국에 대한 불균형한 시각을 가지고 있던 사람들에게 다른 세상을 알려주려는 열정이 있었습니다. 이 땅이란 말 속에는 하나의 국가, 하나의 정부를 위한 공부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처한 이 현실을 개선하려는 실천적 열정에서 출발하는 공부, 그리고 이 현실이 나와 내 주변만이 아니라 훨씬 더 넓고 깊은 맥락 속에서 만들어진 현실임을 냉철히 인식하고 이를 많은 이들과 나누기 위한 공부라는 의미가 담겨 있습니다. 베트남 민족의 오랜 투쟁에서 그들에 대한 응원과 동시에 우리 민족에게 새로운 가능성을 알려주려는 리영희 선생님의 공부는 진정 “이 땅을 위한 공부”였다고 생각합니다.
세 번째는 뭘까요. “진실을 위해 공부하는 사람”이 아닐까요? 리영희 선생님의 말씀 중 이런 것이 있습니다. “내가 종교처럼 숭앙하고 목숨을 걸어서라도 지키고 싶은 것은 국가나 이런 것이 아니야. 진실이야.” 그 태도는 책을 읽으면서도 전반적으로 드러납니다. 지식인은 언제고 어느 곳에서도 자신의 최선을 다해서 가치판단을 해야 하는 사람이지만, 그 판단을 언제고 자신이 캐낸 사실에서 얻어낸 가치판단 그 이상이어선 안 된다는 것. 선생님은 미국의 국제정책에 대해서 단호하게 비판적인 자세를 취하지만 그것으로 모든 국제관계의 재앙의 근본적 원인을 미국의 치밀한 기획으로 돌리는 자세를 경계하며, 우리 사회 내부의 반공 이데올로기에 대해서 그것이 더 나은 사회를 막는 걸림돌이라는 자세를 취하지만 북한의 개인숭배 사상에 대해서도 똑같은 비판의 자세를 취합니다. 사회적인 압력이나 타인의 시선에 신경을 쓰며 본인의 주장을 고치지 말고, 본인의 주장을 내기 전에 철저하게 따져보는 정신, 그 정신이 기자 시절과 교수 시절의 해직과 구속에도 스스로를 지켜낼 수 있었던 힘이 아니었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마지막으로 저는 리영희 선생님이 지식인의 덕목으로 “자신을 위해 공부하는 사람”을 보여줬다고 생각합니다. 지식인이란 기본적으로 우스운 존재일 수밖에 없습니다. 자신이 내뱉는 말을 평생을 가도 따라가지 못한다는 것을 사실 모두가 알고 있기 때문이지요. 또한 스스로가 대변한다고 말하고 싶은 계층이 있지만, 절대 그 계층과 동화될 수는 없는 모순을 항상 안고 있습니다. 저는 이 책에서 바로 그와 같은 모순을 삶의 경험을 통해서 솔직하게 반추하시는 모습을 보며 결국 지식인은, 아니 공부를 하는 모든 사람은 스스로의 모자람을 반성하며 잘못과 실수를 인정하고 이를 고치기 위해 최선의 노력을 다하는 자기완성의 의지를 가져야 함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가정사에 소홀했던 자신의 경직성, 육체노동자가 되기를 포기할 수밖에 없었던 인텔리의 관념성, 동구 사회주의권 국가의 몰락에 따라 새로운 인간적인 체제를 고민하는 의지의 유연성까지, 공부는 내 밖에 나를 둘러싸는 성을 쌓는 것이 아니라 내 안에 탑을 쌓는 과정임을 선생님의 인간적인 고백을 통해 배울 수 있었습니다.
물론 이 책에서 보이는 선생님의 생각이 제 생각과 완벽히 일치하는 것은 아닙니다. 20세기말에 태어나 21세기의 청년기를 보내고 있는 저에게 보이는 국제 정세는 20세기의 모습과는 다른 양상을 보이는군요. 미국에 대항해 생겨난 반미국가 중 지금까지 유지되는 국가는 거의 대부분 독재와 가난이란 굴레에 있고, 그 안에서의 삶이 선생님이 바라온 것처럼 민중적인지에 대한 의문이 생깁니다. 중국의 문화대혁명에 대한 과거의 평가라든지, 사민주의가 과연 그렇게 완벽한지, 저에게 그것들에 대한 답을 충분히 내려주진 못합니다. 그렇지만 이건 그 누군가의 결함이라기보다는 한 시대와 다른 시대의 차이가 아닐까요? 제가 배워야 할 점은 한 시대에 충실했던 지식인의 자세이고, 그 꽉 막히고 모든 사실이 통제되던 시절 자신이 찾아낸 사실을 가지고 올바른 판단을 해보고자 악전고투하던 철저한 공부의 자세입니다. 저의 전공이 사회과학인 이상, 저는 사회를 공부하는 데 있어서 그 분이 가졌던 연구의 목적과 방법과 윤리의 철저함을 배우고자 합니다. 여러분에게 이 책을 권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