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문화유산답사기 1 - 남도답사 일번지, 개정판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1
유홍준 지음 / 창비 / 201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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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문화유산답사기에 대해 쓴다면 역시 이 말부터 언급하고 넘어가야겠죠. 지금은 너무나 유명해진 명언. “우리나라는 전 국토가 박물관이다.”

  

책 속에서 이 말은 크게 두 가지 의미를 가집니다. 1. 유물은 제 위치에 있을 때 비로소 본래의 맥락을 제대로 살릴 수 있다. 2. 그러므로 지금부터 그 가치들을 제대로 보여주겠다. 

  

그렇지만 저에게는 전 국토가 박물관이라는 이 말이 문화를 가진 모든 민족에게 적용되는 말처럼 느껴지지는 않았습니다. 그런 상식이라기 보단 정주민인 우리 민족의 특징을 강하게 보여주는 말로 생각이 되었는데요. 우리가 살았던 이 공간이 유목민처럼 옮겨다니는 길로서의 공간이 아니라 여러 가지를 축적할 수 있었고 축적해왔던 터전으로서의 공간임을 나타내는 의미심장한 말로서 받아들여졌습니다. 그렇다면 당연히 그 공간의 속살을 보는 일은 실크로드 같은 곳의 속살을 보는 일과 다를 수밖에 없겠지요. 유목민의 정신은 걸으며 느껴야 하는 것이라면, 정주민의 정신은 보면서 알아야 하는 것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몸이냐 눈이냐, 경험이냐 지식이냐 하는 도구의 차이. 이 속에서 저는 과거와의 만남이 역경과 사람을 통하기보단 사물을 통하는 게 더 수월한 우리 정주민의 특징, 즉 기록문화의 특징을 봅니다. 아마 여기서부터 멋·맛·미에 대한 깊은 안목이 생겨난 것이 아닐까요. 유목 문화과 개방성과 경제를 떠올리게 한다면 정주문화는 일관성과 예술을 생각나게 합니다(내부로 완결된 안정적 경제구조. 정치구조를 가졌을 때 나타나는, 국가주도와 지원 하에, 혹은 풍요한 민속 속에 나오는 예술.). 여기서 저는 문화에 대한 감상법은 알고 나서야 보이는 것과 겪어봐야 아는 것. 이 두 가지가 있음을 느낍니다. 유홍준 씨 주장에 대한 반박은 아니지만, 유홍준 씨의 말은 문화 전반이라기 보단 우리 문화를 지켜볼 때 더 유용할 것 같다는 추측 정도가 되겠네요. 

  

또한 이는, 외국인이 우리의 유물을 관찰하는 것과 우리 문화의 속살을 우리가 내부인의 시각에서 애정을 가지고 보는 일이 엄연한 차이가 있을 수 있음을 보여주는 말이라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그 위치, 그 자리가 가진 문화적 맥락이 친숙하게 다가오지 않으면 온전히 즐기기 힘든 부분이 있겠다는 생각이 들기 때문입니다. 비록 배워야 아는 거라고는 하지만, 자신이 나고 자란 이곳의 익숙한 풍경에서 느끼는 정서와 애착이 없다면 과연 유물이란 것을 깊게 즐길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이 드는 것이지요. 이처럼 원래 내 땅의 내 것을 계속 보며 관찰과 정서와 애착을 키워나가는 과정, 묘사의 능력보단 맥락을 보는 안목을 기를 수 있는 방법이 바로 ‘답사’가 아닐까 합니다. 왜 이 책의 제목의 ‘나의’로 시작하고, 그 끝이 ‘답사기’로 끝나는지, 여기서 한 번 멈춰서 생각해봅니다. 마지막 ‘기’라는 기록의 의미로 끝나는 것도 참 의미심장하네요. 

  

답사란 말의 의미라 무엇일까요? 한자말 그대로 발을 써 직접 가 살피는 것입니다. 그것을 기록한다는 것은 보는 것만이 아니라 보기 전 했던 마음의 준비와 마침내 떠나는 과정, 모든 것을 보고 돌아오는 길의 정리까지 그 모든 것에 대한 기록을 의미합니다. 그래서 이 책은 ‘무량수전...’과는 다르게 보기 전과 본 후, 가고 오는 모든 과정에 대해서 서술합니다. 그것은 이 국토가 박물관이라면, 박물관의 유물을 보기 전과 본 후의 모든 공간이 전부 그 유물을 설명하는 맥락이 되기 때문입니다. 고속도로의 휴게소, 절 집의 누렁이 등 유물과 전혀 상관 없어 보이는 것들까지 유물과 어울려 하나의 인상이 되고 그곳의 문화로 기억 되는 것이 감상기가 아닌 답사기의 특징이기 때문이지요. 그래서 저자의 서술은 참으로 공간적입니다. 그리고 이 공간을 줄기로 삼아서 시간의 맥락이 엮어지지요. 이는 그 유물이 만들어질 당시의 역사적 맥락이기도 하지만, 그와 함께 1993년, 1994년, 2011년의 지금 현재에도 끊임없이 변하는 공간 속에서 갖는 우리들만의 새로운 감상도 자연스레 포함됩니다. 그래서 저자는 그 때가 지금이나 계절이 바뀌고 해가 바뀔 때마다 간 곳을 또 가는 것 같습니다. 언제 어느 상황 속에서 보느냐로 매번 다른 기억이 쌓이는 즐거움이 바로 답사임을 스스로 느끼고 우리에게 알리기 위해서겠지요. 

  

그렇지만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하는 아무리 여러 가지 맥락에 의해 달라지는 답사라고 해도 저자가 강조하고 또 강조하는 뼈대가 되는 맥락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것인 이 국토의 산천과 유물이 서로 어우러진 맥락입니다. 애초에 하나의 유물이 그것이 뿌리박고자 하는 고장의 자연과 어떻게 어울리고자 했고 그 땅의 특징을 어떻게 품었는가를 알아내고자 하는 데에 이 답사기의 진정한 목적이 있습니다. 이 같은 확신 - 문화의 아름다움이 진정 우리의 것인지를 따지려면 그 땅과 어울리는지를 먼저 살펴야 한다. -은 책의 곳곳에 드러납니다(책의 거의 첫마디로 나오는 감상이 남도의 흙에 대한 거였고, 그와 꼭 받는 절의 가람배치에 대한 감탄이었죠.). 이는 분명 나름의 일리가 있는 말입니다. 어떤 것을 우리 화 시키거나 우리 것을 살리고 싶거든 지금 발붙인 땅과의 관계부터 살피라는 것이겠지요. p.119페이지를 보면 이런 구절이 나옵니다. 

  

“답사를 다니는 일은 길을 떠나 내력 있는 곳을 찾아가는 일이다. 찾아가서 인간이 살았던 삶의 흔적을 더듬으며 그 옛날의 영광과 상처를 되새기면서 이웃을 생각하고 그 땅에 대한 사랑과 미움을 확인하는 일이다. 그런 답사를 올바로 가치 있게 하자면 그 땅의 성격, 즉 자연지리를 알아야 하고, 그 땅의 역사, 즉 역사지리를 알아야 하고, 그 땅에 살고 있는 사람들의 삶의 내용, 즉 인문지리를 알아야 한다. 이런 바탕에서 이루어지는 답사는 곧 ‘문화지리’라는 성격을 갖는다.” 

  

이는 답사의 일차 과제가 유물과 땅과의 관계를 살피는 것임을 드러내는 말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그 땅이 물리적 의미로 한정된 땅만을 가리키는 것이 아님을 드러내는 말이기도 합니다. 이는 땅이 옛날이 서린 그 기억과 향취를 불러일으키는, 축적되고 함축된 무언가를 풀어주는 일종의 매개체로서 있는 한 거기서 캐낼 수 있는 의미는 더욱 더 깊어질 뿐 소진되지는 않음을 역설하는 것이라고 믿습니다. 

  

예를 들어, 우리가 어린 시절 놀던 놀이터를 찾았을 때 거기에 대단한 추억의 물건이 숨겨져 있어서 가는 것일까요? 모래 말고는 아무것도 없고 심지어 사라졌을 수도 있지만 거기에서 우리가 되살려낼 수 있는 기억이 남아있는 한 진짜 무엇이 있는지는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공간은 그 때 그저 내 안에 숨어있는 감성과 상상력을 자극시키는 작은 자극이 되어 줄 뿐입니다. 그것만으로도 그 공간은 충분히 우리에게 가치 있는 공간이 되지요. 

  

문화지리, 즉 문화미란 그런 것입니다. 실제로 가치 있는 문화재가 있는지 없는지는 사실 결정적이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그저 우리가 우리의 내밀한 기억과 정서에서 발휘되는 그 능력의 역사의 몇 백 년까지 뻗칠 수 있는가 없는가의 문제일 뿐이지요. 물론 어렵습니다. 그렇지만 이건 매우 인간적인 능력입니다. 다른 동물들처럼 생존만을 위한 기억이 아닌, 아름다움을 위해 그리고 스스로를 풍요롭게 만들기 위해 기억하고, 그 기억에 일부러 살을 덧붙여 새롭게 창작까지 해내는 유일한 동물이 인간이겠지요. 얼마나 뛰어난 능력이고, 그 자체만으로도 아름답습니까. 

  

이처럼 우리 모두에게 타고난 문화미를 몇 백 년까지 거뜬히 느끼는 능력으로 키워내려면 우선 그 몇 백 년 전의 기억과 정서가 내 안의 내밀한 정서와 만나야 합니다. 그것은 그것들을 내 삶에 끌어들여야 한다는 말이고, 결국 자주 보고 또 보고 또 배우고 그걸 나만의 감성으로 풀어내서 생각하고 하며 그것들을 감상한 시간이 나만의 추억으로 쌓이고 쌓여가야 한다는 말입니다. 친구를 이해하고 싶으면 친구와 많은 걸 같이 해보면 되듯이, 옛날의 정신을 이해하고 싶으면 그 정신이 담긴 것들과 많이 함께하면 되는 것이 아닐까요. 그러다보면 자연스레 닮게 되고 알게 되는 것이 아닌가 합니다. 

  

그리고 마침내 이 속에서 전통의 재창조는 일어납니다. 말하자면 친구에게 충고까지 해 줄 수 있는 막역한 사이가 되었을 때 자신감 있게 전통을 계승할 수 있게 되는 것이지요. 그러므로 문화미, 문화지리를 만들어가는 과정은 기억 투쟁의 예술적 버전입니다. 무슨 기억을 가지고 있느냐로 우리 존재가 규정된다는 말은 문화미를 길러나가는 과정, 어떤 문화적 미감을 가지고 있느냐가 우리가 해낼 앞으로의 창조를 결정짓는다는 말과도 통합니다. 때문에 우리는 그 미감을 결정짓는 기억의 투쟁(서구의 기억과 역사냐, 우리의 기억과 역사냐 하는.)에서 우리만의 문화미를 이어받으려는 노력을 포기할 수가 없습니다. 우리 산천에서 그에 맞는 문화를 일구었던 분들의 자세를 빈 공간에서도 자연스레 떠올릴 정도가 되지 않으면 이 산천에 맞는 창작을 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5천년 역사의 기억을 버리고 어떻게 처음부터 다시 이 땅을 바라볼 수 있겠습니까. 이 땅도 더 이상 원시가 아니며 우리도 더 이상 서구 근대화를 벗어난 벌거벗은 눈을 가질 수 없는 상황에서 말입니다. 사실 그 동안 그러지 않았던 결과가 지금 세월의 난개발이 아니었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그래서 답사가 중요하며, 저자의 책이 가치를 가지는 부분도 바로 이런 부분입니다. 답사는 문화재를 보고 양식을 외우기 이전에 이 산천을 직접 발과 눈에 익게 하려는 수작이며 우리보다 먼저 이 땅을 바라봤던 조상들의 시선과 자세를 느끼기 위한 스무고개이기 때문입니다. 

  

다만 제가 저자에게 물어보고 싶은 것이 있습니다. 그 재창조의 과정과 답사의 의의에 대해서는 공감하나, 과연 그것이 지금의 지배적인 문화 양식의 재창조를 가능케 할 수 있는 일일까요? 근대화는 공업화와 어느 정도 통했던 말이고, 이 말에는 땅의 특성에 구애 받지 않고 최대한 표준화된 생산양식을 만들어내려는 강한 의지가 담겨 있습니다. 이게 문화엔들 영향을 주지 않았을까요? 지금 우리는 고장과 상관없는 표준 근대교육, 역시 고장과 상관없는 표준적인 건축물에서 표준 규격의 가구들과 함께 살고 있습니다. 이미 근대라는 말에서 우리는 토착을 느끼기 힘들게 되어버렸습니다. 우리는 땅에서 멀어진 국제적으로 획일화된 생활에 더 익숙해져 있죠. 이런 우리에게 토착이란 무엇이고, 한국미란 무엇입니까? 그것이 과연 가능한 것입니까? 

  

또한, 우리는 토착이란 말이 가지는 강한 정주문화의 냄새를 맡아야 합니다. 땅에 뿌리박는다는 말은 생각보다 그리 보편적인 삶의 방식을 아니며 농경시대 - 정주시대 우리 조상들의 삶의 방식이었습니다. 그렇지만 지금은 어떻습니까? 우리는 국제적 표준이 열어준 안정성 위헤서 자유로운 이동을 꿈꾸고 있습니다. 국제적 WWW 표준 하에서 이루어지는 사이버 유목민(이젠 이 용어도 좀 낡은 감마저 듭니다.), 국제적인 항공 표준을 통해 이루어지는 실제 물리적인 이민 등등, 이 와중에 우리가 정주시대의 유산인 ‘토착’이란 말에서부터 우리 문화를 출발시켜야 한다면, 그건 어떤 이유에서일까요? 우린 우리의 완전히 바뀐 생활양식에 맞는 또 다른 유목민 문화를 만들어가야 하는 처지가 아닐까요? 지금 우리 시대가 만들 수 있는 문화유산, 혹은 그 전의 문화유산 중 지금의 우리에 맞게 창조적으로 계승해야 하는 것에는 무엇이 있는 것일까요? 

  

p.119에 보면 이런 말이 나옵니다. 어떻게 우리 조상들의 문화가 5천년 내내 항상 찬란하기만 할 수 가 있었겠는가. 정치, 사회, 경제가 쇠퇴하는데 어떻게 문화 혼자만 고고히 찬란했다는 거짓말을 학생들에게 강요하지 말라. 모든 문화는 역사적 시기에 따라 침체 -> 새로운 준비 -> 새로운 일깨움 -> 찬란한 창조 -> 매너리즘과 과소비 현상 -> 문화적 가치의 대혼란 -> 침체 -> 새로운 준비의 과정을 거치게 마련이다. 그렇다면 지금 우리의 문화는 이 중 어떤 단계에 와 있는 걸까요. 이 거대한 세계화 시대에, 국제적인 표준의 시대에 우리는 우리의 문화를 향유하며 우리의 입장에서 새롭게 창조하고 소비하고 있는 중인지, 아니면 그저 침체하고 있는 중인건지, 저의 근본적인 의문과 맞물려 문득 그런 질문이 책을 읽으며 떠올랐습니다. 표준화된 대량생산으로 특징되는 근대사회에서 불상이나 절이나 공예처럼 공동체의 공통된 정신발현, 공공성, 기능성, 실용성, 대중들의 폭넓은 수용과 감상이 가능한 친숙성, 생활성을 갖춘 진정한 의미의 문화적 아름다움이란 지금 우리에게 무엇인 걸까요? 그것은 제가 당장 떠올릴 수 없음은 현시대를 완벽히 파악할 수 없는 현 시대인의 한계인 걸까요. 근대라는 시대 자체의 한계인 걸까요. 아니면 그저 침체기에 빠져있을 뿐인 우리 자신들의 문제인 걸까요? 아니면, 지금 우리 앞에 이전과 다른 어떤 새로운 문화의 형태가 나타나고 있는 게 아닐는지. 솔직히 확신은 못하겠습니다. 이 책이 이런 질문에 답하기 위한 책은 아니니까요. 하지만 이 책을 통해 촉발된 저의 질문에 대한 제 나름의 답을 여기에 정리하고 싶은 생각이 듭니다. 

  

어쩌면 지금 우리의 문화는 정신이 상징으로 표현되는 것이 아니라 정신이 바로 물질로 변화 가능한 시대이기 때문에 문화적 상징이 필요 없어진 세상이 된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굳이 말하자면 고정된 몇 개가 문화적 상징이 되는 게 아니라 우리가 뱉어낸 모든 글, 그림, 장난질이 하나의 거대한 문화유적 자체가 되는 것. 하지만 그건 지금까지의 문화유적처럼 거대한 절터나 폐허가 아닙니다. 데이터베이스인 것이지요. 저는 이걸 문화의 응집현상이라 부르고 싶습니다. 정신을 은유하는 물체는 사라지고, 정신 그 자체를 담는 그릇만이 남아있는, 그리고 그 그릇 안에 거의 모든 것이 다 들어있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이것은 동시에 유적이 없는 문화입니다. 고심 끝에 응축되지 않고 바로바로 공들일 필요 없이 표현된 정신은 항상 타이밍 속에서만 의미를 가집니다(트위터 이슈가 얼마나 빨리 바뀌는지만 보아도 알 수 있겠지요.). 특정한 흐름 속에서만 의미를 가지는 정신은 흔적이 될 수는 있어도 두고두고 전해질 유적은 될 수 없습니다. 아마 생활사 속에서는 의미를 가질 수 있을까요? 

  

저는 이걸 문화는 존재하지만 문화미는 없어진 시대라고 부르고 싶습니다. 개인으로서의 예술, 개개 건축가의 야심작들은 나오겠지만 더 이상 그것들이 한 시대의 문화를 대변하던 시대는 갔고(그런 것은 이제 개인을 대변할 뿐, 사회는 간접적으로 반영될 뿐입니다.), 정신 그 자체는 너무도 날렵해서 유적으로 머물지 못하는 시대. 하지만 이건 그 어떤 때보다 독특한 문화의 시대이기도 합니다. 바로 이것은 기록되는 유목민 문화이기 때문입니다. 그 동안의 유목민 문화는 경험으로 전달되는 것이었지 기록으로 전승되는 것이라고 볼 수는 없었는데, 지금 우리는 이 모든 것을 자동적으로 기록으로 남기고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우리 사회의 문화가 이제 새로운 준비 단계에 있다고 보고 싶습니다. 나중에 우리가 만든 포토샵이나 유튜브 같은 것이 문화미로 필견(必見) 대상이 될 수도 있겠지요. 단, 그것은 독립된 작품으로서 그 시대 문화의 대표작이 되는 것이 아니라 비슷한 경향, 비슷한 시기, 그리고 무엇보다 같은 주제로 한꺼번에 터져 나왔을 패러디 및 무수한 Feedback들이 한데 묶여서 하나의 ‘작품군’으로 취급받지 않을까 합니다. 강남스타일 영상이 하나 딱! 하고 대표작이 되는 것이 아니라 그 무수한 패러디 및 기타 영상들이 하나로 묶여서 취급받는 것 같이요. 왜냐하면 우리는 우리 자신도 모르게 작품을 협업하는 중이란 생각 때문이지요. 양반놀이를 생각해보면, 거기에는 양반과 취발이가 있고 주고받는 대사가 있습니다. 그리고 그것들은 오랜 세월에 걸쳐 전승되면서 여러 판본이 만들어졌고, 여러 사람의 개작을 거쳐 탄생한 협업의 작품입니다. 그런데 지금은 이런 수백년의 협업이 단 3~4주 만에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정주공동체는 해체됐지만 숱한 유목민들이 ‘순간의 공동체’ 혹은 ‘부분(만 공유하는)의 공동체’를 만드는 건 너무 쉬워진 거죠. 그 순간적인 발성들이 즉시 기록으로 남겨지고 바로 영향을 미치게 되었으니, 원격 공동체라는 이름으로 불러도 되겠습니다. 말하자면 이젠 양반놀이의 대사를 하나 당 한명씩 맡아서 동시에 만들어내는 시대가 된 것입니다. 전 훗날에 지금이 어쩌면 민중문화의 부활 혹은 최초로 전면에 민중문화가 등장한 시대로 불리게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래서 이 시대의 문화탐구는 물체의 특징이 아니라 흐름의 양상에 대한 탐구가 되지 않을까요? 여러 작품군을 통해 협업의 특징과 상호작용의 변화와 공통점을 알아내는 식으로 말이죠. 이 쪽에서 ‘으따’ 했는데 왜 조금 뒤에 저기서 그걸 ‘어따’로 받아쳤을까? 이런 것들에 대한 연구 말입니다. 민중문화 연구란 것이 결국 거기서 드러난 집단의식에 대한 연구이니, 전 저희 세대가 역사상 거의 최초로 후대에게 엄청나게 면밀한 집단의식의 관찰대상이 될 수도 있을 거란 생각이 듭니다. 이거, 재미있지 않을까요? 이때의 책 제목은 ‘나의 문화유산답사기’가 아니라 ‘나의 (사이버)유목문화체험기’ 정도가 되지 않을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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