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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지노와 소셜 스낵 - 소셜미디어, 연결되지 않으면 불안한 중독자들
최영 지음 / 이담북스 / 2021년 8월
평점 :
*본 서평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되었습니다*
카지노와 소셜 네트워크 SNS의 공통점은 무엇일까?
두 단어를 들었을 때 어떤 공통점이 있을까 생각해 보았었다. 카지노는 어두운 분위기라면 소셜 네트워크는 좀 더 가벼운 분위기라 생각했는데, 도서를 읽으니 가볍게 생각할 것이 아니었다. 이 둘의 공통점. 그것은 바로 '중독'이었기 때문이다. 세상에 존재하는 중독이란 단어를 붙일 수 있는 행위들이 그러하듯 SNS 중독 또한 자신의 시간을 잡아먹고 때론 일상을 방해하는 행위임에도 손에서 놓지를 못하고 계속 그곳에 시간을 쓰게 된다. SNS 중독의 더욱 무서운 점은 일상 속에 깊이 스며들어 내가 중독인 줄도 모르게 혹은 중독인 줄 알면서도 멈출 수 없게 만든다는 점이다. 이러한 소셜 중독에 대한 단어들도 벌써 생겨나고 있다. 그것은 바로 소셜 스낵킹과 퍼빙이다.
소셜 스낵킹과 퍼빙.
먼저 소셜 스낵킹이라는 단어를 알아보자. 소셜 스낵킹(social snacking)이란 몸에 좋지 않은 것을 알지만 자극적인 과자를 즐기는 것과 같이 온라인을 통해 사회적 교류를 과자를 즐기듯 짧게 그리고 빈번하게 지속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짧은 영상을 올리고 인스타 피드를 확인하는 것과 같이 짧은 분량의 SNS를 즐기는 것을 의미한다. 이런 정보들은 사실 핸드폰을 내려놓고 나면 기억이 나지 않을 정도로 중요하지 않은 정보들임에도 불구하고 짧은 분량의 SNS들을 오랜 시간 들여다보게 된다. 이런 것이 바로 이미 중독된 상태라고 할 수 있겠다.
두 번째 단어, 퍼빙이다.
퍼빙은 (phubbing) 전화기 (phone)과 무시, 타박, 냉대라는 뜻을 가지고 있는 스너빙 (snubbing)의 합성어로 상대방을 앞에 두고도 스마트폰에만 집중하는 행위를 뜻한다. 저자는 퍼빙은 소셜미디어가 퍼진 모든 환경과 문화에서 존재하며, 문맥에 따라 각각 다양하게 해석할 수 있다고 이야기한다. 퍼빙 현상의 성격을 세 가지로 정리해보자면 첫 번째는 사회적 요소. 두 번째는 인지적 요인. 세 번째는 문화적 요인으로 나누고 있다. 또한 흥미로운 점은 자기 통제력이 낮을수록 인터넷 중독에 빠질 확률이 높고, 인터넷 중독에 빠질수록 퍼빙을 할 가능성이 높다고 한다. (개인적으로 최근에는 상대가 눈앞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직접적으로 말하기보다는 SNS를 통해 소통하는 경우도 심심치 않게 발견할 수 있는데, 이런 경우는 오프라인에서의 소통보다는 온라인에서의 소통을 좀 더 편안하게 느끼는 경향이 짙어짐에 따라 발생되는 것으로 보인다)
과학의 발전으로 원하는 정보와 많은 정보들을 짧은 시간 안에 쉽게 검색할 수 있게 되었다. 그러나 이러한 서비스의 대가로 우리는 뇌의 산만함을 경험하고 있다고 저자는 이야기한다. (실제 한 실험에서도 실험자에게 안구 운동 추적장치를 부착 후 스마트폰을 사용할 때 사람들의 시선 이동을 기록한 적이 있었다. 이때 사람들의 시선은 일정한 속도로 정보를 받아들이며 차례로 글을 읽기보다는 이리저리 산만하게 시선이 움직이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또한, 퍼빙과 같은 행위는 뇌의 산만함과 과잉행동으로 인해 이뤄진 결과이자 동기가 될 수 있다고 저자는 지적한다.
본 도서 카지노와 소셜스낵. 도박의 위험성을 알지만 SNS가 가져다 놓는 위험성에 대해 알지 못한다면 읽어보는 것을 추천한다. 책의 말속에 가장 강렬하게 인상이 남는 부분은 빅데이터를 통해 기업이 설정한 궤도와 목표에서 벗어나려고 한다면 어김없이 설득기술과 적응 기술을 가동하여 이용자를 원 위치로 돌려놓는다는 부분이었다. 요즘 많은 플랫폼들이 알고리즘을 이용하여 소비자의 취향을 분석하여 나도 모르게 내가 좋아할 법한 콘텐츠들과 상품들을 메인화면에 띄워 시선을 사로잡는다. 여기서 벗어나 다른 콘텐츠를 클릭한다면 이다음 접속 때 나의 선호도를 다시금 분석하여 기업의 설정한 궤도에 다시금 올려놓는다는 것을 경험했었다. 이러한 경험과 위의 문장은 인간이 바라던 효율성을 추구하다 기술 중심으로 인간은 가축과 같이 육성되어 컨테이너 벨트 위에 올라 자유를 침해받는다는 것조차 모르는 상황이 도래 되었다는 걸 일깨워주는 계기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