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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읽는 아틀리에 - 나를 열고 들어가는 열쇠
천지수 지음 / 천년의상상 / 2021년 6월
평점 :
*본 서평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된 글입니다*
페인팅 북 리뷰
'미술 ㅡ 서평 융합 프로젝트'
책 읽는 아틀리에
책을 읽으며 그림을 볼 수 있다니! 이런 책이 또 있을까 싶었다. 책을 읽고 서평을 쓰는 입장으로 누군가의 서평이 모아둔 책을 읽고 또 서평을 쓴다는 행위가 참 묘하다. 도서 책 읽는 아틀리에는 천지수 화가가 책을 읽고 난 소감과 더불어 독서를 하는 동안 떠올랐던 영감들을 붓으로 펼쳐 그림과 함께 글로 완성한 것을 모아 놓은 책인데, '미술과 서평을 융합시킨 프로젝트'는 기존에 없었던 새로운 시도라고 한다.
53권의 책과 53점의 그림.
누군가의 서평을 그 사람이 영감을 받아 그린 그림과 함께 감상한다는 것은 참 재밌는 일인 것 같다. 한 장 한 장 서평을 읽어내려갈 때면 이 책. 메모해뒀다가 한 번 읽어봐야겠다는 생각이 절로든다.
각자의 속도로, 서로의 리듬으로
박철현 작가의 어른은 어떻게 돼?
17년 전에 일본 땅으로 도피성 유학을 간
한국인 청년이 이젠 중년이 되어 삶을 살아가고 있다는 이야기.
'이 아저씨 이제 어떡하지? 이번 생은 망해야 정상인데. 어? 잘 살고 있네'라는 느낌으로 읽어주신다면 무지하게 감사하겠다는. 저자의 말로 시작된다는 이 책은 방황이라는 단어가 다른 이의 삶과 비교하기에 존재하는 단어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게 한다. 방황을 하고 있다고 느낀다는 것은 무언가 기준점이 있다는 것인데 그 기준은 안에서 찾기가 참 힘들다. 내 안에서 기준을 만들어내지 못하다 보니 자꾸 눈을 바깥으로 돌려 다른 사람의 삶의 기준을 가져다가 내 삶의 기준으로 마음에 긴 창을 박아 넣는다. 그리곤 어느덧 그 기준이 나에게는 맞지 않는 기준임을 알았을 때 그 기준의 막대를 조금씩 잘라다가 내다 버리는 것은 아닐까 생각해 본다. 때로는 멀리 내다 버린다는 것이 바로 코앞에 던져두고 다시금 그 기준을 가져다가 원래 있던 곳에 테이프로 칭칭 감아두기도 한다. "이상하다? 잘 살고 있네"
'어른은 어떻게 돼?' 저자의 장인어른이 돌아가셨던 날. 아이들은 고인이 되신 할아버지를 마치 살아있는 사람을 대하듯 활짝 웃으며 대했다고 한다. "저쪽 세상은 아름답대요."라는 말과 함께 말이다. 이 일화는 '순수함'이라는 단어를 떠오르게 만든다. 모두들 '죽음'이라는 존재를 잊고 살아간다. 그 존재를 잊고자 하는 이유는 '죽음'을 모든 수고와 노력이 헛된 것이 되며 '죽음'자체를 허망한 일이라 생각하기 때문에 잊으려 하는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그러나 '죽음'이라는 것이 무거울 수밖에 없는 것일까? 저자는 '어른들의 무거운 생각은 옳고, 아이들의 가벼운 생각은 틀린 것인가?'라는 물음을 던진다. 이 아이들에게 있어 '죽음'은 다른 세상에서 아프지 않은 삶을 새롭게 살아갈 수 있는 기회로 바라보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그러기에 슬프다는 감정보다는 즐거이 보내준다는 감정을 내보이는 것일지도 모른다.
어른은 어떻게 되는 것일까?라는 질문에 갑자기 떠오른 생각은 어린아이의 순수함을 어릴 때 저절로 갖고 있을 수 있던 것이었다면 어른의 순수함은 계속해서 자신의 순수함을 지켜나가는 힘이 있어야 계속 갖고 있을 수 있다는 생각이 든다. 그 순수함을 갖고 있을 때 어린아이의 눈높이에서도 세상을 바라보며 함께 걸어나갈 수 있을 테니까 말이다. 어떻게 되는 것일까? 어른이란 건. 어른은 모두 자신의 책임을 다하는 사람이라 믿었던 때가 있었다. 그러나 어른의 이름이 붙여졌다고 해서 사전에 나오는 '어른'이 되는 것은 아니었다. 어른이 어떻게 되는 것일까.라고 묻는다면 어떻게 된다라기보단 나는 어떤 어른이 되고 싶은 걸까를 고민하는 것이 더 빠를 것 같다. 어떻게라는 과정보다 어떤이라는 목표가 과정을 만들어 나갈 수 있을 테니 말이다.
책에 소개된 내용 한 편만 보더라도 다양한 생각과 함께 소개한 책에 대한 궁금증이 이른다. 서평과 저자의 생각이 어우러져 흥미를 돋는 글과 영감을 받아 그려진 그림은 눈까지 즐겁게 해주시니 감사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