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란츠 리스트 피아니스트의 탄생
우라히사 도시히코 지음, 김소영 옮김 / 성안뮤직 / 2020년 6월
평점 :
품절


프란츠 리스트. 클래식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들어본 그의 이름일 것이다.

한국 문화와 클래식 문화는 생활 속에 정말 절묘하게 섞여 들어가 숨을 쉬고 있다는 것을 매일 경험한다.지하철에서도 누군가에게 전화를 걸 때 핸드폰 컬러링 속에서도 심지어는 화장실에서도 클래식이 들린다. 한국의 문화에 정말 감탄을 멈출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린 그 음악이 누구의 음악인지 모른 채 살아가고 있다.



헝가리의 피아니스트이자 작곡가인 프란츠 리스트는 피아노를 처음 배우기 시작할 때 마주하는 체르니 혹은 피아노 실력을 물어볼 때 흔히들 '체르니 몇까지 쳤어?'의 까를 체르니(Carl Czerny)의 제자이기도 하다. 도서에선 리스트의 유일한 스승이었던 까를 체르니가 리스트의 연주를 처음 들었을 때의 상황을 묘사하고 있었다. 처음 만났던 것은 리스트가 열 살 정도 나이를 먹었을 무렵이었다. 창백하고 허약한 아이가 피아노를 연주하기 위해 의자에 앉으려는데 그 모습조차도 힘이 없어 보여 술이 취한 사람이 휘적휘적 돌아다니는 것 같았다고 한다. 이윽고 연주가 시작되는데 운지법도 엉망이고 건반 위에 손을 내동댕이 치듯 연주를 하는 리스트지만 까를 체르니는 그 속에서 리스트의 재능을 알아볼 수 있었다. 비록 배워야 할 부분들이 많았지만 리스트는 화성에 대한 지식이 없이도 타고난 센스로 피아노 연주하며 완벽하게 표현해 냈던 것이다. 이후 스승인 체르니의 지도가 더 해져 리스트는 피아노 연주에 있어 더욱 탄탄한 기초를 쌓을 수 있게 되었다.



리스트 또한 슬럼프에 빠질 때가 있었는데 정서적으로 불안정하여 종교를 통해 안정을 찾고자 했었다. 이때 리스트는 아버지께 신학교에 진학하고 싶다는 뜻을 밝혔으나 아버지는 "너는 예술을 하는 사람이지 종교를 할 재목이 아니다."라고 말하며 그의 뜻을 꺾는다. 그러나 리스트에 마음에선 성직자의 길을 지워버릴 수 없었던 듯하다. 오랜 시간이 흐른 뒤 1865년 4월 리스트는 로마에서 신품 성사를 거쳐 성직자가 되었으니 말이다. 이 소식을 들은 그의 어머니는 '정신적 자살'이라며 리스트의 선택에 한탄했다고 한다.



그러나 살아생전 리스트는 자신의 삶에 목적에 대해

"살아 있는 모든 귀한 사람들에게 빛을 비추고, 세상을 떠난 모든 사랑스러운 사람들이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나 평안히 잠들 수 있게 하는 것. 그것이 내가 추구하는 예술이자 목적입니다."

- 도서 260페이지 -



라고 말을 남겼다고 한다. 나는 처음 도서에 대해 접할 때 프란츠 리스트가 자신을 실패한 천재라고 이야기할 때 이 뜻의 무엇일까 생각했다 또한 도서에 적힌 미래를 향한 던진 창(메시지)가 무엇일까 생각을 했었다.

이에 대한 말은 책을 어느 정도 읽어나갈 즈음에 조금씩 알게 되었다. 리스트는 스스로가 타고난 재능과 노력 등이 자신을 만든 천재임을 알고 있었던 것 같다. 천재는 사회에 끊임없이 환원해야한다라는 압박감과 부담감에 정신없이 바쁜 일정을 소화하며 대부분의 시간을 보냈다. 사회에 환원하며 쏟아부은 노력이 큰 만큼 사회가 좋은 방향으로 변하지 못한 모습들을 볼 때마다 그는 천재로서의 자질을 의심했었던 것 같다. 신념을 지키기 위해 자신을 지워버린 사람에게 천재라는 타이틀로 살아가는 삶이 행복했을까라는 생각이 든다.



그가 천재로서의 삶은 실패했다 느꼈을지 몰라도 프란츠 리스트의 삶은 실패라 느껴지지 않는다. 삶은 평가를 내릴 수 없는 것이지만 몇 백년이 흐른 지금까지도 그의 연주를 기억하며 배우는 사람들이 있으니 말이다. 이는 그의 삶에 대한 짤막한 글들과 그 글들로는 담아낼 수 없는 그의 맑은 눈동자로 알 수 있다. 도서에서 그의 젊은 시절의 초상화와 나이가 든 후의 사진이 들어간 것이 정말 좋은 선택이라고 생각이 들었다. 끊임없는 고뇌 속에 태어나는 자아는 의미가 큼을 다시 한번 느낄 수 있는 시간이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