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왕들의 참모
신영란 지음 / 아이템비즈 / 201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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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을 움직여 역사를 바꾼 참모와 비선들의 이야기 제왕들의 참모는 현재를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인간관계에 대해 큰 교훈을 주는 듯하다. 왕족으로 태어나 왕이 되기 위해서는 혼자만이 살아남고 잘 해서는 안 된다. 반드시 누군가를 자신의 편으로 만들어야 그 권력이 오랫동안 살아 숨 쉴 수가 있는 것이다. 이러한 것들은 주어진 환경과 나를 둘러싼 사람들은 어떤 사람들이 있는가 그들에게 나는 어떤 사람으로 존재하는 가를 돌아보게 만드는 것 같기도 하다.



현종에게는 덕종, 정종, 문종이라는 세 아들이 있었다. 덕종, 정종, 문종인데 그중에서 셋째 아들 문종은 다른 형제들에 비해서 37년 동안 왕위를 차지했다고 한다. 문종은 고려의 정치,문화,외교,학문 등 다양한 분야에서 업적을 남겼는데 전에 조선 문종실록에 문종은 관우와 같이 잘생기고 예의가 바르며 소양이 깊어 사신들에게 많이 사랑받았다고 전해진다. 그런 문종은 28살에 즉위하였는데 이는 16세나 17세 정도에 왕으로 즉위하였던 과거의 왕들보다는 나이가 많은 상태에서 왕에 즉위한 것이다. 갈고닦아왔던 아버지로부터 물려받은 백성을 사랑하는 마음 즉, 애민정신으로 불합리하게 잘못 적용되어 있어 억울한 백성들을 위해 법률들을 바꿔나가기 시작했다.

 


이러한 법을 개정하기 위해서 적임자로 택한 것이 바로 최충이었다. 최충은 관직을 떠난 후에도 문종과 만나 종종 국정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었다고 한다. 그야말로 엄청난 왕의 신임이 아닐 수 없다. 이 정도의 신임을 받으면 권력에 취해 자신의 본분을 망각할 수도 있지만 최충은 그러하지 않았다. 심지어는 자신의 두 아들들에게 "결코 권세에 빌붙어 출세하기를 바라지 말라"라고 말하며 그 모범을 보여 두 아들들에게 배우게 했다고 한다. 이토록 강직한 성품을 가진 사람들은 원리원칙에 얽매여 행동할 수 있다. 자신이 가지고 있는 생각과 의견들이 상황을 개선하는데 적합하며 이를 위해 주장을 꺾지 않는 것 말이다. 그러나 최충은 매사 합리적으로 판단하려 하는 장점을 아울러 갖고 있어 문종의 지지를 받았다고 한다. 문종이 최충을 얼마나 신뢰하는지 알 수 있는 몇몇 사건들이 있는데 그중 하나는 서북 지방에의 흉년이 들어 백성들의 생활이 궁핍해졌을 때 최충은 문종에게 성을 보수하는 일 외에는 다른 공사를 중지시킴으로 백성들의 고단함을 알아달라는 주청을 했다고 한다. 이에 대해 문종은 두 말없이 최충의 주청을 받아들였다고 한다.



이 일화에서 최충의 사람을 생각하는 마음과 문종의 백성들을 사랑하는 마음을 동시에 알 수 있는 것 같다.나랏일에 대해 사용되는 인력이라고 하나 신분이 낮아 이러한 고단함에 대해 무신경할 수 있으나 문종은 좌시하지 않고 최충의 주청을 받아들여 백성들의 고충을 돌아봤다. 또한 최충은 백성들을 생각하는 왕의 마음을 알기에 백성들의 고단함이 문종에게 전해질 수 있도록 노력한 사람으로 보인다. 이러한 일들은 현재 정치권에서 중요하게 생각하는 소통과도 맞닿아있다.



최충이 사직을 할 때에 "좋은 신하를 곁에 둠으로써 군왕이 성덕을 펼 수 있는 것이다"라며 최충의 사직을 아쉬워하며 이제까지 맡은 바 소임을 다한 것에 대해 칭찬하였다고 한다. (이 당시에 왕이 감히 신하에게 감사를 돌린다는 것은 있을 수 없었으므로 이 감사한 마음을 칭찬으로 대체했던 것은 아닐까 생각이 든다) 문종이 백성들의 고충을 잘 살필 수 있던 이유는 그 뒤에 최충이라는 참모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현재의 국가의 최고 통치자라 불리는 대통령의 주변에도 최충과 같은 참모가 있을까 생각이 든다. 정치라는 것은 결국 혼자 할 수 없다는 것을 본 도서를 통해 알았기에 소통을 하기 위해서는 그 소통을 가져다주는 사람도 반드시 필요하다. 이 소통이 개인의 이익을 위한 것이 아니라 국민을 위한 일들로 채워져야 문종이 백성들의 고충을 살필 수 있었듯이 이를 전해주는 바른 이가 있어야 대통령 또한 국민의 소리를 들을 수 있게 되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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