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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크라테스의 변명·크리톤·파이돈·향연 (그리스어 원전 완역본) - 플라톤의 대화편 ㅣ 현대지성 클래식 28
플라톤 지음, 박문재 옮김 / 현대지성 / 2019년 11월
평점 :
출판사 현대 지성에서 나온 현대 지성 클래식 28번째 플라톤의 대화편인 소크라테스의 변명·크리톤·파이돈·향연은 그리스어 원전 완역본이라고 한다. 들어가기에 앞서 주목해야 될 부분이 있다.
바로 도서의 제목인 소크라테스의 변명이라는 부분에서였다. 소크라테스는 불경죄와 청년들을 부패시킨 죄로 고발되어 재판을 받는다. 이곳에서 소크라테스는 자신의 재판을 위한 변론을 한다. 잠깐. 변론? 근데 도서에서는 변론이 아닌 변명이라는 단어를 썼다.
[명사] 1. 사리를 밝혀 옳고 그름을 따짐. 2. 소송 당사자나 변호인이 법정에서 주장하거나 진술함. 또는 그런 주장이나 진술.
[명사] 1. 어떤 잘못이나 실수에 대하여 구실을 대며 그 까닭을 말함. 2. 옳고 그름을 가려 사리를 밝힘.
(네이버 국어사전 출처)
재판에서 자신을 변호하기 위해 주장하는 것이기에 변론이라고 도서의 제목에도 이야기하는 것이 맞지 않나? 생각이 들었다. 변명과 변론은 분명 다르다고 생각이 든다. 변론과 변명 모두 옳고 그름을 가린다는 뜻을 가지고 있지만. 변명이라는 단어는 구실을 대며 그 까닭을 말한다는 의미를 포함하고 있기 때문이다. 도서에서는 책의 제목을 변론이 아닌 변명으로 한 이유에 대해서는 다음과 같이 밝혔다. 다양한 역자들의 의견이 있지만 이번 도서의 역자가 변명으로 표기한 까닭은 다름이 아니라 '소크라테스의 변명'이 오랫동안 독자들에게 알려져 있었기에 익숙한 표현을 사용하기 위해 변명으로 채택한 것이라고 한다.
그러나 변론이 아닌 변명으로 지어진 까닭에 대해서는 개인적으로 책을 읽으면서 수긍이 간다. 소크라테스는 자신이 살기 위해 자신의 의견을 펼치고 있는 것이 아니라 이제까지 자신이 저질렀던 행동들에 대해 그 까닭을 이야기함으로 자신의 행동이 그럴만한 이유가 있었다고 변명하고 있다는 느낌이 강하기 때문이다.
그 예를 들면 이런 상황이 있었다. 어떤 한 사람이 델포이 신전으로 가서 신탁을 구했다고 한다. (신탁이란 어려움에 직면한 사람이 신에게 그 지혜를 구하기 위해 신전에 나아가 질문을 하는 것을 의미한다) "소크라테스보다 더 지혜로운 사람이 있나요?"라고 말이다. 그러자 여사제는 소크라테스보다 더 지혜로운 사람은 없다고 대답을 한다. 이를 들은 소크라테스는 자신이 알고 있는 자신보다 더 지혜롭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을 만나 그들을 시험하기에 이른다. 나보다 당신이 더 지혜로운 사람이지 않소. 그러니 나보다 더 잘났다는 것을 내게 확인시켜주시오. 하면서 말이다. 그러나 여기서 소크라테스는 그들이 사실은 자신의 생각보다 지혜롭지 않다고 판단을 한다.
그 이유는 그 사람들이 인간적인 지혜. 곧 살아가면서 배운 지혜들을 바탕으로 글을 쓰며 이야기를 한 것이 아니라 태어나면서부터 주어진 본능과 능력 혹은 외부의 요인으로 인해 영감을 얻은 것을 바탕으로 글을 쓰며 이야기를 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하여 그들은 자신이 말을 내뱉고도 스스로 그 뜻을 이해하지 못하는 자들이라 결론지어버렸다.
그들과의 대화를 한 후 소크라테스는 이렇게 생각한다. '그들을 잘 알지도 못하는 것을 안다고 생각하고, 나는 잘 알지도 못하는 것을 안다라고 착각하지 않고 있기에 그들보다 더 지혜로운 자인 것이구나'라고 말이다.
지혜로운 자는 겸손한 자. 겸손한 자가 지혜로운 자라고 평소 생각해 왔기에 소크라테스의 행동이 지혜로운 것으로 볼 수 있는 것인 가에 대해 의문이 생겼다. 이러한 의문에 대해 소크라테스와 크리톤의 대화에서 힌트를 얻을 수 있었다.
소크라테스와 크리톤은 선한 견해와 악한 견해에 대해 이야기를 나눈다.
선한 견해란 무엇인 것인가?
선한 견해란 지혜로운 자들의 견해이고, 악한 견해라는 것은 어리석은 자들의 견해?
악한 견해와 선한 견해에 대해 소크라테스는 이러한 비유를 남긴다. 체력을 키우기 위한 사람에게 가장 좋은 조언을 해줄 수 있는 사람은 체력을 키우는 것에 대해 전문적인 지식을 갖춘 사람일 것이다. 그 사람의 견해가 중요한 것인데 다수의 견해를 존중해야 한다는 생각에 스스로의 체력을 키울 지식을 얻지 못해 행동하지 못한다면 그 불이익은 누구에게 돌아가는 것인가? 바로 자신이다. 그렇다면 다수의 의견을 존중하지 못한다는 것이 악한 견해가 될 수 있는 것일까? 고로 우리가 따라야 할 견해는 정의와 불의에 대해 잘 알며, 진리 자체를 말할 줄 아는 사람을 따라야 하는 것이라고 말이다.
결국 다수에게 지혜롭다는 평가와 겸손하다는 평가를 받는다는 것도 좋은 일이겠지만 그것이 자신에게 있어 자신을 움직이는 힘이 되어서는 안된다라는 생각이 든다. 나를 움직이게 하는 힘은 주변의 평판과 말들이 아니라 나 스스로 옳다고 여겨지는 것을 알고 배우며 원동력으로 삼아 움직이는 것이 스스로를 지혜의 길로 이끄는 것이라고 말이다.
재판에서 소크라테스의 죄는 지식을 경멸하여 궤변을 정설로 만들어 그것을 다른 사람들에게 가르치는 불법을 자행하여 재판에 회부되었다고 한다. 소크라테스는 재판을 하나의 강의실로 쓰기 위해 자신의 목숨까지 건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