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싱글맨
크리스토퍼 이셔우드 지음, 조동섭 옮김 / 그책 / 2009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서점에 가서 직접 책을 고르는 경우엔 내용을 훑어보지만, 인터넷으로 구매할 경우에는 상당부분 시각에 의지하게 되는 경향이 있다. 책제목이나, 표지 일러스트 등 보기에 자극적이거나 눈에 확 띄는 것을 선호하게 된다. 드라마가 제작될 때 캐스팅이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내가 「싱글맨」을 선택한 것도 시각의 일조가 크다. 기사에 베니스영화제에 영화화되어 출품된 작품이라는 소리가 나를 반응하게했고(개인적으로 원작이 있는 작품은 스토리가 탄탄해서 선호하는 편이다), "그럼 소설이 원작인가!"하는 궁금증이 나를 움직이게 만들었다.
살아있다는 느낌
이 책은 책에 대한 정보없이 읽다보면 조금씩 진도가 나갈 땐 잘 못느끼지만 이 소설은 딱 하루를, 나열하는 것처럼 이야기하고 있다. 기상해서 느낀 점부터 출근길, 학교 풍경, 퇴근길에 들르는 곳에 대한 생각, 학생을 만나 보내는 밤-다시 아침이 찾아왔을 때의 육신의 상태.
육신의 이름은 조지. 그는 일어나자마자 느껴지고 보이는 것들을 3인칭화 시킨다. 자신에게서 먼 존재로 인식한다. 그것부터가 내용을 전개하는 하나의 장치로 사용되었다고 볼 수 있겠다. 순간순간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슬픔에 휩싸여 과거에서 허우적댄다. 그렇다고 해서 숨을 못 쉴 정도는 아니다. 사물을 인지하고, 시간을 착실하게 조지라는 인물로 살아가지만 사랑하는 사람과 이 공간에서 공존했었다는 사실이 그를 괴롭힌다.
하지만 조지는 의미를 찾아내는데 탁월하다. 어떤 일은 자신에게 무슨 의미를 지니고 있으며 그로 인해서 자신이 어떤 생각을 하는지 알고 있다. 그것은 곧 삶을 살아가는 참됨을 알아가고 있다는 증거이기도 하다.
옮긴이의 말을 읽다보면 이런 말이 나온다. '즉, 조지는 이셔우드의 자전적 모습이다. 그래서 삼인칭의 소설이기는 하지만 일인칭에 가깝다. 조지를 보는 또 다른 시선이 있기보다 조지의 눈으로 모든 것을 보고 이야기한다. 이러한 형식은 조지와 작가를 더욱 일치시킨다.'
맞다. 앞에서 언급했듯이 조지는 모든 것을 3인칭화하여 인식한다. 그렇지만 읽는 이는 정말로 모든 것들이 조지로부터 멀리 떨어져 있다는 느낌은 받을 수 없다. 그저 조지의 눈에만 그렇게 보이는 것처럼 읽힌다.
작가가 자신을 모티브로 쓴 글이기 때문에 어쩜 이리도 표현이 생생한 것인지에 대한 답을 찾아낼 수 있다. 조지가 말을 길게 하는 부분들을 보면 그 생생함을 확연히 느낄 수 있다. p.100쪽부터 시작되는 조지의 말을 보면 내용상으론 신시아의 말에 반박하는 내용이었지만, 자신의 의견을 말하고 있다는 생생한 말투에서 작가를, 그리고 조지가 살아있음을 느낄 수 있다.
작가는 이런 조지를 창조해냄으로써 자신 또한 살아있음을 느꼈을거라 확신한다. 그것이 조지와 작가의 온전한 일치가 되는 순간이기 때문이다.
아쉬움의 반쪽
이 책에서 가장 아쉬운 점이 있다면 번역소설이라는 점이다. 늘 번역소설을 읽을 때마다 느끼는 점이긴 하지만, 한국소설이라면 작가가 적은 그대로의 글에서 느낌을 얻지만 번역소설은 이미 한 번 걸러져서 온 책으로 변모하기 때문에 늘 아쉬움이 남는다. 작가와의 직접적인 감정교류가 사라지는 느낌이다. 그렇다고 해서, 이 작품의 나머지 감동이 사라지는 건 아니다. 작품 자체에 담겨있는 의미와 소통함으로써, 상실된 부분 외의 것들과 눈을 맞출 수 있게 된다. 아쉬운 점은 말 그대로 아쉬움을 남길 뿐이지 장점 혹은 단점이 되는 것은 아니다. 굳이 어느 한 쪽에도 속하지 않고 한 발씩 걸치고 있는 장단점이 되는 존재랄까.
공감대 형성하기
- p.86 "뭐, 관점에 따라서는 사실일 수도 있지. 있잖아, 스스로 알고 있으면서도 질문을 받기 전까지는 자신이 아는 줄 모르는 일들도 있어."
사람이 나이먹으면서 얻는 가장 큰 것은 무엇엔가 명확해진다는 것이다. 답이 존재하지 않는 어떤 것일지라도 그것이 답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걸 명확히 알게 되면 오히려 홀가분하다. 위에 조지가 한 말은 나에게 그런 느낌을 얻게 했다. 내가 늘 막연하게 생각했던 문제에 대해서 저리도 간결하고 명쾌하게 해답을 내릴 수 있다니. 그래, 사람은 모든 걸 알진 못하지만 아는 것조차 자신이 안다고 깨닫지 못하는 것들이 너무 많다. 조지도 똑같다. 사랑하는 사람을 떠나보냈어도 그것과 함께 삶에 의미를 찾으면서 계속해서 살아가야 한다는 사실을 모르진 않았을텐데, 어떤 순간 대화를 하다가-의미를 찾다가 그것을 통해서 알고 있었음을 깨닫게 된다.
사람은 늘 그런 존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