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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죽으러 갑니다
정해연 지음 / 황금가지 / 2018년 4월
평점 :
어떤 사람이 있다.
또 어떤 사람들도 있다.
그들은 모두 같은 곳을 바라보며 모였지만, 결국 같지 않다.
아주 우연한
기회로 알게 된 책을, 서평단까지 신청해가며 읽어본 게 참 오랜만이었다. 주로 서점가서 직접 구매를 하기 전까지 엄청난 고민을 거치곤 했는데, <지금
죽으러 갑니다>라는 책은 그 고민이 컴퓨터 앞에서 이뤄졌다.
이 책을
통해 내가 가장 읽고 싶었던 것은 무엇일까, 하고 돌이켜 보니 죽음을 바라보는 자리에 어떤 일과 감정이
소용돌이 치는지, 그것을 바라보는 제3자의 시선은 어떻게
드러나는지 였다.
애초부터
드러난 살인자의 지독한 냄새, 기억이 지워진 태성이라는 존재, 죽어보겠다고
일단 모인 4명의 사람들. <지금 죽으러 갑니다>라는 아주 여유 넘치는 제목은 얼마 전 보았던 영화 <지금
만나러 갑니다>와는 아주 다르면서도, 살아야 가능한
그 어떤 것들을 향해 흘러가는 내용이었다.
자살을 꿈꿀 만큼 현실이 괴로웠지만 어차피 죽을 사람이었다고 하더라도 그런 식으로 죽어 마땅한 것은
아니다. _268p
이유 없는
무덤은 없다고 했던가. 수많은 죽음 앞에는 묘비명이 세워졌고, 이
책에 나오는 5명의 자살자들 역시도 나름의 묘비명 내용을 가지고 모여들었다. 그들은 어떤 죽음을 꿈 꿨을까. 죽음에 안락함이 있을 것을 기대하며
모였을까. 자살하려는 존재들이 인간의 존엄성이 논의하는 책을 읽을 때마다 나는 늘 물음표를 지울 수
없었다. 무시해서는 안되겠지만, 기대할 것도 없어야 할 그
순간이라서.
죽음에 이유가
붙기 시작하면 사람은 죽고 싶지 않아진다. 누군가 날 죽이려 해서, 이
죽음은 원하지 않던 거라서, 이렇게 죽을 수 없어서, 생각해보니
살만한 것 같아서. 그렇게 되자 앞서 드러났던 살인자의 지독한 냄새가 가감없이 자신의 본체를 드러내기
시작한다. 살고자 하는 것을 죽일 때의 희열을 살인자들은 아주 잘 알고 있어서. 처음이 어려운 거야.
목숨을 건지기 위한 세 번의 도망이 있었다. … 더 이상
억울함도 원망도 서글픔도 없었다. _353p
모여든 다섯
명의 사연과 또 숨겨진 정체가 드러나면서, 기억이 사라져 달동네 판자촌에서 살던 태성은 살아야겠다고
생각한다. 도망치고 도망치고 도망친다. 그 사건이 진행되면서
누군가는 죽고, 누군가는 같은 선택을 하지만 죽고, 누군가는
죽이고 싶어했다. 하이타이까지 물에 타먹으며 죽음을 꿈꿨던 태성은 끝에 끝까지 악착이다. 그 떠오른 기억들이 자신이 지금까지 버티게 해준 이유를 떠올리게 해버렸고 말이다.
그 기억에
악착같이 매달린 태성은 끝내 기억을 잃은 태성이 아닌, 모든 기억을 간직하고 있던 태성의 소원을 이루고야
만다. 아주 철저하게 ‘살고 싶었던’ 그 모습으로. 이중성이 부과된 ‘살다’의 뜻에 결말까지 읽고 내용을 정리하고 나니 소름이 돋았다. 살아남는
것이 승자이며, 승자의 결과물이 역사라는 말을 어디선가 들은 적 있다.
그 말과 겹치니 더 무섭다.
가볍게든
무겁게든 ‘죽고 싶다’고 말하는 누군가에게 한 번 읽으라고
권해주고 싶다. 혹시 당신의 마음 속에도 이런 어둠이 도사리고 있지는 않냐고. 그런 의미에서 그 어둠을 여실히 담아낸 정해연 작가님께 박수를 보낸다. 이
책을 쓰면서도, 쓰고 나서도 한 동안 집필 시간이 영향을 끼쳤을 게 눈에 선하다. 덕분에 손에 땀 쥐고 즐거운 독서시간을 보내게 된 건 참 영광이지만 J
참고로, 처음에 드러난 아주 가벼운 듯 사소한 환경 장치들은
마지막 피날레를 위한 아주 중요한 복선 이었음을 스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