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를 모자로 착각한 남자
올리버 색스 지음, 조석현 옮김 / 이마고 / 2006년 2월
평점 :
구판절판


이 책은 임상보고서이다. 저자인 올리버 색스는 의사로서 자신이 만난 환자들의 이야기를
소설인 듯, 연구서인 듯 그렇게 써나갔다.
 
이 책을 읽는 내내 정말로 이런 병이 있단 말이야, 하고 속으로 중얼거렸다.
제목처럼 얼굴인식불능증에 걸린 사람이 있는가 하면, 오른쪽만 인식을 하고 왼쪽을 인식하지 못하는 사람도 있었다.
그는 왼쪽을 인식하기 위해서는 오른쪽으로 끊임없이 회전을 해야 했다.
또 어떤 사람은 자신의 몸을 인식하지 못했다. 우리는 앉아 있을 때, 팔이나 발을 보지 않고도
나의 신체가 어떻게 자리잡고 있는지를 안다. 그러나 이 여자는 눈으로 확인하지 않는 이상은 자신의 몸을 느낄 수 없다.
식사를 하다가 잠시 한 눈을 팔면 손에 쥐고 있던 포크가 여지없이 떨어지는 상황에 부딪혀야 했다.
나는 환자들에게 미안하지만, 나의 상상력이 빈곤하다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정말로 누구도 상상해내지 못하는 병을 앓고 있는 환자들이 한없이 안쓰러웠다.
정말로 극기가 아니면 하루도 살지 못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책에는 아픈 사람이 있고,
아픔을 이기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이 있고,
반드시 아픈 것이 불행이 아니라는-병과 즐거이 살아가는-사람도 있었다.
 
우리가 알고 있는 현실이라는 게 얼마나 좁은 것인지 다시금 느꼈다.
도대체 뭘 느꼈다고 말하기도 전에, 너무 많은 감정의 촉수들이 한꺼번에 일렁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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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더랜드 여행기 - Izaka의 쿠바 자전거 일주
이창수 지음 / 시공사 / 200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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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이 책은 쿠바여행기다. 쿠바. 체 게바라의 나라라고 해도 좋을 만큼 쿠바, 하면 그의 이름이 제일 먼저 떠오른다.
저자도 체 게바라와의 흔적을 좇기 위해 쿠바로 갔다.
하지만 동기는 조금 달랐다.
카스트로가 한 행사에서 연설을 마치고 내려오다가 보기 좋게 구른 것을 여행을 하기로 결심을 했다.
그것도 자전거 여행을.
 
저자는 전에도 '나쁜 여행'이라는 여행기를 책으로 낸 적이 있다.
그때도 자전거를 타고 유럽을 여행했다고 한다.
그는 무척이나 자전거를 좋아한다.
나도 자전거를 무척 좋아하는데 그 이유는 자전거는 바람을 만들어내기 때문이다.
바람이 불지 않는 날에 바람을 느끼고 싶다면 자전거를 타면 된다.
(불행히도 역곡에 와서는 자전거를 한 번도 못 탔지만 수유리에 있을 때는 우이천을 따라 구 경계를 넘나들며 자전거를 타곤 했었다)
 
쿠바 국가 수입의 50%는 관광산업을 통해서이다. 그렇지만 여행하기에 편리한 나라는 아니 것 같다.
일단 영어가 잘 통하지 않는 것 같다. 저자는 여행 내내 스페인어를 사용하고 있다.
아이스크림을 먹으려고 해도 2시간이 걸리고 개 3마리 때문에 열 명이 넘는 경찰이 난리를 일으키기도 한다.
그뿐이 아니다. 저자는 쥐가 나오는 방에서 잠을 자기도 하고 질 나쁜 청년을 만나 위험한 일을 당할 뻔 하기도 했다.
 
저자는 감동받을 준비를 하고 떠난 여느 여행자의 과오는 범하고 있지 않다.
오히려 쿠바에서 받는 불편함을 TIC이라는 용어로 만들어냈다. This is Cuba의 줄임말.
여기는 쿠바다. 그는 여행의 불편함을 그런 식으로 이겨내며 하루가 끝날 때마다 맥주를 마셨다.
나는 여기서 저자의 솔직함에 두 가지 양면적인 느낌을 받았다.
우선은 칭찬일색의 여행기가 아니라서 좋은 것-불편함은 저자의 편견일 수도 있지만 한국에서 나고 자란 사람들의 편견일 수도 있다. 불편함의 호소로 인해 나 혹은 우리를 되돌아보고 다시 냉정해져서 그들을 바라볼 수 있는 기회를 갖게 되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과
체 게바라를 흠모하면서도 자의식이 너무 과잉되어 있어서 타인을 바라보는 시선이 여유롭지 못하다는 것이다. 어쩌면 이것이 그의
최고의 장점일지도 모르겠다. 누가 욕할 것을 알면서도 나는 이렇게 느꼈다, 적어도 거짓말하면서 무언가 깨달은 척 하지는 않았다,
는 것을 역설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과연 나는 이렇게 솔직한 여행기를 쓸 수 있을까.
 
저자는 특이하게도 쿠바 여행의 모든 경비를 치킨회사인 비비큐 사장에게서 후원 받았다.
그는 서울대 언론정보학과에 재학중인데 비비큐 사장이 학교에 강의 때문에 나온 적이 있었나 보다.
그는 수업 발표를 맡겠다고 자처했고, 발표 후에 여행 경비를 후원해달라고 했다. 사장은 흔쾌히 제안을 받아들였다.
 
꽤나 재기발랄한 청년이다. 나중에 알아보니 나와 동갑인 스물 일곱 살이다.
쿠바와 자전거. 어느 하나만 해도 어려운 여행을 참 잘 해낸 기특한 청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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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이러 갑니다
가쿠타 미쓰요 지음, 송현수 옮김 / Media2.0(미디어 2.0) / 2007년 1월
평점 :
절판


다들 누군가 한번쯤은 살의를 느낀 적이 있지 않을까. 이 책은 바로 그 점에 대해서 말하고 있다.
아주 사소한 이유들, 일상 속에서 반복적으로 느끼는 감정들로 인해
죽어버려. 누군가에게 이런 말을 속으로라도 해본 적이 없을까.
 
 
어느 날, 버스 뒷좌석에서 누군가를 죽이러 간다는 사람의 말을 듣고
자신 속에 오랫동안 숨겨져 있던 살의를 깨닫는 여자.
-> 여자의 살의의 대상은 초등학교 선생님이었는데 그녀는 이미 너무 늙어서 정신이 오락가락한 상태다.
그녀에게 뭔가 행동을 개시하려는 순간, 그녀는 이미 자신도 기억하지 못하는 선생에게
왜 그토록 오랫동안 살의를 느끼고 있었는지 자신에 대해 더 분노하게 된다.
분노에만 미쳐서 선생님을 죽였다면 그녀의 감정이 그렇게 실감나게 느껴지지 않았을 것이다.
 
식성이 다른 남편에게 살의를 느끼는 여자.
 
자신에게 이유없이 반항하는 딸에게 살의를 느끼는 어머니.
-> 사람들은 자기 자식만큼은 똑똑하고 예쁠 거라고 기대한다. 그러나 그 믿음이 배반 당하고, 오히려 자식이 자신에게 반항을 한다면
얼마나 당황스러울까. 차라리 남이라면 관계를 끊을 수도 있지만 혈연은 그럴 수도 없다는 데서 숨막히는 해답을 가져다준다.
 
헤어지자고 한 여인에게 복수를 하기 위해
그녀가 기르던 강아지를 훔쳐오는 남자.
 
사소한 섭섭함을 분노를 치환시켜 죽음의 리스트를 만드는 소녀.
-> 예전에 중학교 친구 중에도 이런 아이가 있었다. 언젠나 나를 만나면 자신의 분노의 대상들을 쏟아놓으며 욕을 해댔다.
나중에는 언젠가는 나도 저 아이에게 그런 대상이 되지 않을까 하는 불안감을 갖게 되어 결국 헤어지게 되었다.
이 소설의 내용도 나의 경험과 거의 일치한다. 과연 그 친구는 지금쯤 무얼 하고 있을까, 아주 오랜만에 그녀가 궁금해졌다.
 
언뜻 들으면 신경과민인 아닌 사람들이 아닐까 싶지만
작가는 인물의 감정을 아주 세밀하게 그림으로써 충분한 설득력을 획득하고 있다.
인물들이 살의를 느끼는 게 상식적으로는 이해가 안 가더라도
감정적으로는 그래, 그럴 수도 있지, 하는 생각이 든다.
 
어쩌면 사람들은 자신이 사소한 이유 때문에 분노함게 됨을 더 두려워하는 지도 모를 일이다.
 
어떤 감정이 자신 안에 들어왔을 때, 마치 따뜻한 공기가 순환을 통해 시원한 비로 내리듯
그러한 과정을 거치면 좋을 텐데, 어디로도 가지 못하고 쌓이기만 해서 결국 부패해버리면
이 소설집에 나오는 인물들처럼 섭섭함이 화로, 화가 분노로, 분노가 살의로 변하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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