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브리맨
필립 로스 지음, 정영목 옮김 / 문학동네 / 200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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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매에 걸리면 먼저 잊혀지는 것은 시간 그 다음은 공간과 인적 위치, 사람이라 한다. 가끔 하려던 말을 잊어버리거나 뭔가를 사러가서 그걸 잊고 다른 걸 사오거나 꼭 해야할 뭔가가 기억나지 않을 때 사람들은 농담처럼 치매인가봐, 하고 말하지만 그건 대개 치매에 대한 두려움이 진심은 아닌 사람들의 가벼운 농일 뿐이다. 그러나 어쩌면 아무것도 기억나지 않는 순간이 올 것이다. 오늘과 내일을 혼동하고 오전과 오후가 구별되지 않고 그러다 자신이 서있는 곳을 잊고 부모를 형제를 자식을 잊고 딸과 동생을 헷갈리는 순간이 올 수도 있다.

 

아버지가 암을 진단 받았다는 얘기를 할 때 친구도 말했다. 생각해보니 말야, 난 여태까지 엄마와 아빠가 언젠가 돌아가신다는 생각을 해 본 적이 없었어. 존재로서의 당위가 아니라 개별성으로서의 죽음. 그러나 엄마는 요새도 말씀하신다. 나는 이 날 이 때까지도 부모님이 돌아가신다는 사실이 낯설다고. 내가 자식을 낳고 그 자식이 자식을 낳았는데도. 나 역시 죽음을 고심할 나이인데도.

 

집 근처에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가 모두 있다. 교복을 입고 걸어가는 아이들을 볼 때 아이들과 나의 나이 차를 무심코 계산해본다. 저 아이들에게는 내가 몇 살로 보일까. 내가 저만할 때는 지금의 내 나이가 퍽 어른같았다. 실은 지금도 그렇다. 나이를 먹는다는 사실을 알지만 내년 내후년의 나이는 비교적 인지하기 쉽지만 언젠가 내게도 60대, 70대가 올 거라는 사실은 요원해보인다. 마치 누군가 네가 뱃속에 있던 시절을 떠올려보라 말하기라도 하듯, 뿌연 막막함이 든다.

 

어릴 적엔 편식을 하는 어린이였다. 물론 지금도 못 먹는 음식, 못 먹진 않아도 안 먹는 음식이 있다. 여전히 비위가 약하고 음식에 대한 모험심이 많지 않다. 그렇지만 분명 변한 부분도 있다. 예전엔 꼬치전을 먹을 때 맛살로 파를 가려 먹었다면 지금은 파가 있어서 맛살을 먹을 수 있고, 상추를 먹으려면 고기가 있어야 했지만 이젠 상추와 마늘 없이 삼겹살을 못 먹을 것 같다는 것. 야채를 걸르긴 커녕 야채주스를 만들어 먹고 심지어 파프리카와 양파는 좋아한다. 먹지 않던 반찬에 절로 손이 가는 걸 보면 이게 나이를 먹으면서 입맛이 변하는 부분인지도 모르지만 어느 정도는 두려움 때문도 있다.

 

새해가 넘어가는 첫날, 장염 증상이 보여 괴로웠다. 공기를 통해서도 전염된다는 것을 처음 알았고 복통과 설사는 없는데 구토와 두통이 심했다. 이틀 동안 자다 깨다만 반복했고 물도 제대로 먹지 못했다. 다치는 것 빼곤 크게 앓거나 입원을 한 적도 없고 감기나 몸살 정도만 경험할 뿐 소화불량에도 잘 걸리지 않는 평균 이상의 건강을 가지고 있었다. 게다가 고통에 대한 역치가 높은 편인지 참는게 그렇게까지 괴롭다고 여기는 편이 아니었다. 어릴 적 생각이 난다. 빨리 낫게 해주세요, 농담이라도 아파서 학교 안 가면 좋겠다는 말 안 할게요. 앞으로 편식도 안 할게요. 아플 때는 늘 한가지 생각만 하게 된다. 다투지 않는 남동생을 바라거나 좋은 성적표를 바랄 수도 갖고 싶은 선물을 기다리지도 않는다. 그냥 아프지 않으면 뭐든 할 수 있을 것 같다. 아니 뭐든 하지 못해도 상관 없어진다. 아픔이 퍽 서러워진다. 그 다음엔 외로워진다. 아픔의 근원은 외로움이구나. 그러나 자리를 털고 일어나면 늘 잊는다. 쉽게 몸을 학대하고 방치한다.

 

아빠의 디지털카메라 사진을 폴더별로 정리해드리다 우연히 사진을 봤다. 3년 전. 지금의 나와 똑같은데 신기하게도 훨씬 앳되어 보였다. 얼굴이 달라졌다거나 변했다거나 가시적으로 나이가 들고 있다고 생각한 적이 없는데. 앳된 얼굴이 남의 것 같았다.

 

애니 레보비츠의 사진전에서 수잔 손택의 사진을 본다. 누군가의 죽음 앞에서도 카메라를 들이미는 마음이란 뭘까. 사진이라는 반영구적 영속성과 어긋나는 피사체의 점멸漸滅이라는 모순에 뒷걸음질 쳤다. 가장 기억에 남는 사진은, 데미 무어의 만삭 사진도 존 레논과 오노 요코의 유명한 잡지 사진도 아니고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의 아름다운 시절도 아닌 무덤을 들어낸, 혹은 들어갈 자리로 보이는 구덩이 사진이였다. 제목은 <무제>. 그 사진의 작고 무방비함은, 방치되듯 전시된 모습은 -다른 사진들이 '삶'이라면- 마치 삶과 대비되는 죽음 같았다. 저 속에 눕는거구나. 정말 그 그림이 무덤가였을까. 그리 보였다. 축축한 흙의 기운과 묘지가 품은 체념, 특유의 무방비함까지 떠올랐다. 저기에 눕는거구나. 죽음의 다른 이름은 무제구나. 

 

그는 그들에게 그만하라고 말하고 싶었다. 더 하지 말라고 명령하고 싶었다. 그들이 아버지의 얼굴을 덮고, 아버지가 생명을 빨아들이는 통로를 차단하는 것을 막고 싶었다. 나는 태어날 때부터 저 얼굴을 보아왔어. 내 아버지의 얼굴을 흙 속에 묻지마 ! 그러나 그들은, 그 튼튼한 청년들은 리듬을 타고 있었다. 그들은 멈출 수도 없고, 멈추려 하지도 않았다. 설사 그가 묘혈 안에 몸을 던져 매장을 중단할 것을 요구한다 해도 소용없었다.

 

그는 아버지가 세상에서 1센티미터씩 사라지는 것을 다 지켜보았다. 맨 끝까지 그 과정을 따라갈 수밖에 없었다. 두 번째 죽음 같았다. 그렇다고 첫 번째 죽음보다 덜 끔찍하지도 않은 죽음. 그는 갑자기 밀려오는 감정에 실려 자신의 삶의 켜들을 뚫고 아래로, 저 아래로 내려갔다.

 

집으로 돌아와 필립 로스의『에브리맨』을 다시 읽다. 처음 읽었을 때도 굉장한 소설이라고 생각했고 인상 깊다 여겼지만 지금 보니 그건 선 밖에서 바라본 감상에 가까웠다. 미사여구를 늘어놓지 않는 간결함과 들끓는 두려움과 절망과 대비되는 차가운 문장, 민감한 이야기의 주인공을 훑는 태연한 시선이라는 그릇이 마음에 들었다면 이번에는 그릇 안에 담긴 내용이 보인다 아마 그건 스스로에게 점차 물결처럼 퍼지는 예감 혹은 본능적 두려움이 생겼기 때문이리라. 나이 들고 있다, 는 인식이 처음으로 심장 박동처럼 느껴졌다, 새삼.

 

지금보다 어릴 적엔 아파도 약을 잘 챙기지 않았고 건강 때문에 혹은 염려증 때문에 온갖 것들을 먹는 사람을 이해하지 못했다. 지금은, 이해를 한다 그 두려움은. 나도 요샌 감기가 더 심해지기 전에 미리 약을 먹고 다친 상처를 방치하지 않고 소독을 한다. 낫겠지 하며 아무렇지 않게 물을 묻혀서 상처를 키울 때도 있었는데 요즘은 웬만하면 조심해서 빨리 낫는게 좋은 거라고 생각한다. 심한 멍이 들었을 때 붉은 빛이 푸른, 보라빛으로 변하다 노랗고 갈빛으로 바뀌는 걸 보며 순서대로 잘 빠지고 있다는 걸 확인하고 일주일이 넘자 차차 연해지는 걸 보며 재생능력에 감사했다. 방심하면 몇 잔이고 높아지는 카페인 양을 제한하고 커피를 내리려다 우유나 차로 바꾸는 경우가 있고 멍하니 앉아있을 때 무심코 손톱 끝을 매만지거나 손 여기저기를 꾹꾹 누른다. 특별히 보양식을 먹거나 약은 챙기진 않지만 -누가 먹으라 하지 않아도- 자기 전에 비타민 한 알을 입에 털어넣고 맛 없어도 브로콜리에 손을 댄다. 의식적으로 물을 많이 마시려 한다. 예전에는 나이가 들어 생기는 자연스러운 주름을 찬미했다면 요샌 그래도 하는 데까지 노력은 해보고 싶다고 생각한다. 시, 수술을 하고 싶다는게 아니라, 예전이라면 나이 들면 주름도 생기고 하는거지, 라면 지금은 나이 들어 주름은 생기지만 최대한 예쁘게 천천히 생기면 좋겠다고 속상해한다. 말하자면, 수단은 납득하기 어려워도 동기는, 목적은 이해가 가기 시작했다.

 

그는 형이 건강을 잃기를 바라는 원한 가득한 마음을 오래 품고 있지는 못했다. 질투를 한다지만 그 정도까지 가지는 못했다. 형이 건강을 잃는다고 해서 자신이 건강을 되찾을 수 있는 것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어떤 것도 그의 건강, 그의 젊음을 되찾아줄 수 없었고, 그의 재능에 힘을 불어넣어줄 수 없었다. 그럼에도 격앙된 상태에서는 하위의 건강 때문에 자신이 건강을 망쳤다고 믿는 지경에 이르기도 했다. 물론 그렇지 않다는 걸 잘 알고 있었지만, 교양 있는 사람답게 불평등과 불행의 수수께끼를 너그럽게 이해하지 못하는 바 아니었지만. 옛날에 정신분석가가 급성 맹장염 증상을 질투의 증상이라고 그럴싸하게 진단했을 때, 그는 여전히 부모의 품 안에 있는 아들이었으며, 다른 사람의 소유물이 내 것이었으면 좋겠다고 부러워할 때 찾아오는 느낌을 알지 못했다. 하지만 이제는 알았다. 노인이 되어서야 그는 질투하는 사람에게서 평온, 나아가서 심지어 현실적인 태도까지 빼앗아가는 감정 상태를 발견했다 - 하위가 생물로서 부여 받은 것이 자기 것이기도 했어야 한다는 이유로 하위을 미워했으니까.

갑자기 그는 원시적으로, 본능적으로 형을 견딜 수가 없었다. 그의 두 아들이 그를 견디지 못하는 것처럼.

 

누군가 말하길 인간은 스무 살이 넘기 전 자신이 죽는다는 사실을 모르고 산다고 했다. 그럴 수도 있다. 젊을 때는 젊음을 영광스러운 한편 수치스러워하고 죽음에 대한 두려움보다 매혹을 강하게 느끼거나 매혹을 느껴야만 한다고 믿음으로써 치기 혹은 만용 따위를 부린다. 그러나 어쩌면 그들이 모르기 때문일 수도 있다. 단지 모르는 것이다. 경험하지 못했기에. 자신이 죽는다는 사실, 천천히 나이 든다는 것의 실례實例를. 더 이상 100미터를 십 몇 초 안에 들어올 수 없을수도 있고 숨을 쉬지 않고 50미터의 수영장의 코트를 왕복할 수 없을지 모르고 더 많은 노력만이 예전과 같은 몸매를 얻는다는 것을 모른다. 쿵쾅거리는 헤드폰을 끼지 않아도 절로 청각은 손상되고 눈을 벌겋게 하고 특별히 스마트 기기에 매달리지 않아도 언젠가 앞에 있는 것이 차차 흐려진다는 것을. 그래서 최대한 그것을 늦추고 싶어한다는 것을. 그들은 모르기 때문에 두려워하지 않고 두려워하지 않기에 젊다. 부자를 부자로 만드는 것이 가난에 대한 무지라면 젊음을 규정하는 것은 쇠퇴에 대한 무방비였다.

 

사실 가족 해체는 그의 전공이었다. 그는 세 명의 자식에게서 일관된 유년을 빼앗고 아버지로서 애정 어린 마음으로 그들을 지속적으로 보호해주지 못하지 않았던가. 그 자신은 그렇게 소중했던 아버지, 오로지 자신과 하위만의 것이었던 아버지, 그들 외에 다른 누구도 소유하지 못했던 아버지에게서 다 받았으면서.

 

자신이 없애버린 모든 것, 이렇다 할 이유도 없는 것 같은데 스스로 없애버린 모든 것, 더 심각한 일이지만, 자신의 모든 의도와는 반대로, 자신의 의지와는 반대로 없애버린 모든 것을 깨닫자, 자신에게 한 번도 가혹하지 않았던, 늘 그를 위로해주고 도와주었던 형에게 가혹했던 것을 깨닫자, 자신이 가족을 버린 것이 자식들에게 주었을 영향을 깨닫자, 자신이 이제 단지 신체적으로만 전에 원치 않았던 모습으로 쪼그라든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수치스럽게 깨닫자, 그는 주먹으로 가슴을 치기 시작했다.

 

쇠락과 쇠약과 쇠퇴에서 오는 체념과 절망과 회한. 어쩌면 후자가 전자보다 두려울지도 모르겠다. 한스 홀바인의 <대사들>이 생각났다. 메멘토 모리와 바니타스를 뜻하는 회화들이 떠올랐다. 헛되고 헛되고 헛되도다. 죽음을 기억하라. 메멘토 모리를 기억하며 바니타스를 되새기며 삶을 체념할 수도 있지만 때문에 유한한 삶에 경애를 바치며 열심히 살 수도 있다는 것은 사람의 삶에서만 느낄 수 있는 아니러니.

 

처음엔 두렵지 않았고 그 다음은 두려워하지 말자 생각하고 나중엔 두려워도 숨기자 생각하다 마침내 두렵다고 생각한다.  모두에게 다가오는 것이라고 누구나 의연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의연한 척 할 수는 없어도 의연할 수는 없는 것. 인정한다. 나는 나이를 먹는다. 나는 언젠가 죽는다. 실은 우리 모두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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맥거핀 2014-01-30 14: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것저것 생각을 하게 해주는 글 잘 읽고 갑니다.

Shining님, 새해 복 많이 받으시고, 좋은 소망 이루시는 한해되세요. 짧은 연휴 즐겁고 의미있게 보내시구요.^^ 아..그리고 아프지 마세요.

Shining 2014-02-04 20:04   좋아요 0 | URL
여러모로 멘탈 붕괴 상태라;; 서재도 버려두고 이제야 읽었네요ㅠ 인사가 너무 늦어서 죄송해요ㅠ
맥거핀님, 명절 잘 보내셨나요?^^ 좋은 일이 많은, 무엇보다 건강 건강한 한 해 되길 바랄게요 :)

낭만가롱 2016-11-30 14: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멋진 글 잘 읽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