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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라임 이펙트 - 세계사를 바꾼 결정적 범죄들
이창무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14년 12월
평점 :
품절
마약, 자살, 낙태 같은 것들이 죄가 아니던 시절이 있었다. 현대 시대에는 당연히 나쁘다고 생각되는 것들이 과거 특정 시점에서는 선도 악도 아닌 어정쩡한 것들이었다는 사실. 이렇듯 범죄라는 것은 시대에 따라 상대적으로 다르게 정의됐는데 장기적인 시야로 보니 범죄가 낳은 역사는 꽤나 광대했다. 그럼 현대 기준으로 범죄가 낳은 역사를 살펴볼까. 제국주의 시절에 다른 나라를 정벌하고 약탈하는 행위들은 자국의 이익이라는 명분으로 그럴 듯하게 포장됐다. 물론 이런 범죄들은 역사의 심판을 받는다. 제국 열강들의 지배를 받던 나라들이 독립운동 등으로 들고 일어서며 결과적으로는 범죄를 범죄로 다룰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역사의 흐름을 경제학자는 경제로, 정치학자는 정치로 풀어내는데 저자는 범죄로 풀어냈다. 역사상 큰 변화 뒤에는 꼭 범죄가 있었다는 시각은 꽤 흥미로웠다.
신기한 것은 범죄가 낳은 역사를 살펴보니 기득권의 탐욕과 범죄의 포장이 곳곳에 자리잡고 있었다는 것이다. 소크라테스와 예수의 죽음을 설명한 챕터가 있다. 왜 이들은 그들의 생을 죽음으로 마무리했을까. 사실 그들은 자신을 어떻게 변론하느냐에 따라 죽지 않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 허나 그들이 죽음을 일부러 선택한 것 같다는 후세의 추측이 나올 정도로 그들은 당당히 죽음을 맞이했다. 이에 대해 기존 질서가 잘못됐고 그 질서에 대해 저항했기에 그들이 죽을 수밖에 없었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기득권을 가진 이들은 그들이 구축한 질서가 그대로 가기를 원한다. 법이라는 것도 효과를 발하려면 교육이 충분히 돼야 하는데 일반 평민이 법을 제대로 배울리 만무하다. 이런 문자에 대한 독점권을 기득권은 꽤 오래전부터 구축해왔다는 것. 기득권 세력에 저항해 정의를 구현하는 일은 생각보다 훨씬 어려운 일이었다.
역사적으로 발생된 여러 범죄들을 접하며 드는 또하나의 생각. 범죄의 형태는 시대별로 다르게 나타나지만 그 동기는 비슷하다는 것. 앞서 말했듯이 기득권의 이익 앞에 범죄는 그럴듯한 명분으로 포장된다. 십자군 전쟁의 예가 이에 해당된다. 사람 마음을 움직이는데 명분만큼 효과적인 것도 없다. 전쟁은 어떤 경우에도 피해야할 악이지만 그럴듯한 명분이 주어지면 사람들은 그 명분 때문에라도 전쟁에 나선다. 당시 왕과 교황 사이에서 수탈받아 고통 당하던 사람들은 교황의 '신의 명령'이라는 말에 꾀어 십자군 전쟁에 나선다. 이런 명분 뒤에는 기득권의 이익이 감춰져 있다. 십자군 전쟁을 교황의 권위를 높이는 결정적인 기회로 여긴 교황은 살인 같은 범죄에 정당성을 부여한 셈이다. 물론 처음 전쟁을 시작할 때는 자신의 종교를 지키기 위한 순수성이 있었을지 모르나 십자군 전쟁은 시간이 지날수록 성격이 변질돼 각자 위치에서의 실리추구 수단으로 전락했다.
아편전쟁은 어떠한가. 영국 제국주의의 탐욕은 자유무역, 국익이라는 포장지에 싸여 전쟁을 정당화시켰다. 물론 이런 범죄들은 역사의 변화에 나름의 역할들을 했지만 중요한 것은 이 포장지를 만드는데 청나라 정부도 한 몫을 했다는 것이다. 처음엔 약용으로 들여오던 아편이 나중엔 담배와 섞어 피우며 심각한 중독성 있는 기호품이 됐다. 담배를 피우는 것이 대중적 문화가 되자 청나라는 아편을 금지했고 영국은 이에 동조하기 어려웠던 것. 영국은 끊임없이 아편을 수출하기 위해 혈안이 됐고 결국 아편전쟁이 터진 것이다. 청나라 정부에게 중요한 것은 자신의 왕위를 잇는 것이었다. 영토를 할양해주는 것은 단기적으로 큰 일이 아니었나보다. 이런 정부의 무능, 부패로 치욕스런 조약들이 맺어지는 것이다.
한국에서는 유독 정치인들에 대한 신뢰가 낮다. 여든 야든 신뢰할 만한 당을 찾기 어렵다는 인식이 있다. 이런 인식이 자리잡은 데는 기득권 층의 영악한 이기주의가 기반에 깔려있으리라. 자신의 공약은 선거를 위한 명분일 뿐, 당선 이후에는 안면을 바꿔 언제 그런 공약을 했느냐는 식이다. 정권이 바뀌면 정치, 사회, 문화 등 모든 분야에는 교체 바람이 분다. 명칭부터 인사는 물론 제도에 이르기까지 대대적인 공사를 하는 식이다. 대한민국의 역사는 정권이 바뀌어도 이어지는 것인데 왜 대통령이 바뀐다고 전 정권과 무조건 다른 길을 추구해야하는지 이해가 안 된다. 기득권의 입장에서는 단기적인 시야에서 자신의 권력을 과시하는데 이런 방식이 좋을지 몰라도 대한민국의 역사를 끊김없이 이어가고 있는, 나은 방향으로 진전시키고 싶은 국민의 입장에서는 가슴아픈 일이다. 기득권 층이 보다 장기적인 시야를 가지고 모든 일을 처리하면 어떨까. 물론 소수의 개인이 자신의 이익을 포기한다고 역사가 바뀌는 것은 아닐테지만 그런 기득권층의 잘못된 생각이 범죄가 되면 무수히 많은 시민들이 고통을 받아야함은 불보듯 뻔한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