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나가 있던 자리
오소희 지음 / 북하우스 / 201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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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람을 여행하고 글을 쓰는 오소희 작가의 생애 첫 번째 소설입니다. <해나가 있던 자리>는 삶에서 가장 소중한 것을 잃은 한 사람이 마음 속에 자리한 상처를 치유해나가는 이야기에요. 어린아이를 하늘나라로 보내고, 낯선 길 위에서 만남과 이별을 통해 아픔을 회복해나가는 해나의 과정은 지난 참사를 떠올리게 하더군요. 수 백의 목숨이 바다 속으로 가라앉은 안타까운 일이었고, 애도의 물결이 줄을 이었습니다. 참담한 나날들의 연속 가운데 이를 시시닥 거리는 이들, 면피와 서로 다투며 계산하기에 급급한 이들은 인상을 찌푸리게 만들었지요.

  각설하고, 자식을 잃은 부모님들의 마음을 어떤 것으로도 표현해내기 어렵겠지 비통함, 참혹함을 견뎌내기 버거운 상황에 놓여있다는 것, 상실과 박탈은 지속적으로 이어지지만 그 누구도 이것을 제대로 채워주지 못한다는 것을 압니다. 이 책의 시작은 그러한 삶에 있어 응원과 위로의 말을 전해요. 도저히 일어설 수 없을 거 같은 상실감, 어떻게 일어서고 방황하다가 연대할 손을 잡게 되는가에 대하여 - 말이죠. "아무런 일들이 일어나지 않는 현실이 이 책의 시작이 되었다"

꽃은 자랄 수 있어요 그 어떤 곳에서라도

- 뿌리째 잃고 나면 얘기가 달라지죠 -p153

  열 번이고, 스무 번이고 '그날'을 되풀이하며 보내게 되는 시간, 자포자기하며 잠들고 멍한 눈으로 세상을 보며 희망이란 불씨를 꺼갈 무렵 해나는 무작정 낯선 길위에 서게 됩니다. 자신의 실수라 자책하며 죽은 아이를 마음에 묻지 못하는 그미의 마음을 저는 짐작도 할 수도 없지만, 사랑하는 이를 먼저 떠나보내야 한다면 그 찢어지는 마음이 오죽할까요. 광활한 사막 한가운데에 뻣뻣한 막대기가 되어 꽂혀 있는 느낌이 아닐까, 작가의 글에 밑줄 그어봅니다.

​"하지만... 하지만 어떤 고통은... 감히 그것을 벗어나겠다는 발상만으로도 미안해져요."

- "이것이 당신에게 좋은 예가 될지는 모르겠습니다만, 모든 고통은 절대적인 것으로 시작해 상대적인 것으로 끝을 맺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변화라는 것 자체가 일말의 부도덕을 안고 있죠. 당신의 고통이 인류 최초의 것이 아니라면, 인류 최후의 것도 아니라면, 아마 당신은 감당할 수 있을 겁니다. 지금의 고통을 흔적 없이 지워버린다는 뜻이 아닙니다. 몸속의 장기처럼 떼어낼 수는 없지만 간직하기 편한 형태로 변모시켜서 함께 살아가게 된다는 뜻입니다. 다만 그렇게 되기까지.... 누구도 중간 과정을 건너뛸 수 없을 뿐이죠." -p74

​  아무리 멀리 도망쳐도, 새로운 생활 속에서의 일과를 구축해도, 작은 틈 속으로 생생하게 파고는 아이의 흔적을 마주할 때의 감정을 잘 담아낸 거 같아요. 함께했던 공존의 순간들, 그 모든 것들이 당연했기에 감사하게 받아들이지 못했음을, 후회로 점철된 삶의 끝자락에서 그미는 깨달아요. 시간과 사연이 얹어져 단단해져버린 매듭처럼 끊어낼 수는 없어도, 이 매듭을 한 코 한 코 열심히 짜나가며 한발자국씩 나아간다는 것을요. 자신을 되찾고, 사람들과의 관계 속에 사랑하고 사랑주는 삶에 천천히 물들겠지요.

  작가의 말에서 '진짜 해나'는 아직도 옷장에서 나오지 못하고 있다. 이 땅에는 야만이 범람하고 있다. 그래서 해나가 안식을 찾은 곳은 이 땅이 아니다. 그린레프트라는 가상의 공간을 소재로 한다고 쓰여있어요. 우리 모두가 너무 힘들어서 이 곳을 떠나 살고 싶어 해요. 상처가 난 곳에 약을 발라주긴 커녕, 후벼파기 급급하니까요. 어설픈 공사로 책임을 피하고, 수박 겉 핥기식이 언제까지 괜찮을 수 있을지, 자식 잃은 어미새의 아픔을 넘어 사회가 안일하게 생각하는 부분들을 돌아보게 한 책이었어요.


​잃어버리는 기술을 통달하기란 어렵지 않.다 하도 많은 일들이 상실을 목적으로 삼는 듯하니 그들을 잃는 것은 이미 재난일 수가 없다​. 매일 무엇인가 잃어라. 방문 열쇠를 잃거나, 시간을 허비한 낭패감을 순순히 받아들여라 잃어버리는 기술을 통달하기란 어렵지 않다 그리하여 더 많이 잃고, 더 빨리 잃는 법을 연습하라 : 장소들, 그리고 이름들, 그리고 당신이 여행하려 했던 곳을 이런 어떤 것도 재난을 불러오지 않는다 (중략) 잃어버리는 기술을 통달하기가 어렵지 않다는 건 분명하다. 비록 그게 재난처럼 보일지라도 - pp64 *하나의 기술, 엘리자베스 비숍 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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