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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토끼처럼 귀를 기울이고 당신을 들었다 - 황경신의 한뼘노트
황경신 글, 이인 그림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15년 4월
평점 :

당신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니 시간 가는 줄 모르겠더라. 황경신 작가의 <나는 토끼처럼 귀를 기울이고 당신을 들었다>라는 제목처럼 그가 들려주는 언어의 노래는 활자에 오래도록 머물게 하는 힘이 느껴지더군요. 추억을 벗삼아 길거리를 자박자박 걷는 모습을 함께 공유하기도 하고, 너와 나는 다르지만 또 같은 세계를 살아가고 있다는 것에서 위로를 받기도 했지요.
또한, 그 혹은 그녀가 되어 당신과 함께한 일들을 회상하고 지나가버린 아쉬움을 탓하는가 하면 격려도 해가며 그렇게 살아가는 모습이 소란했지만 보통날이 아니었던가 합니다. 여러 시각에서 읽으려 노력했지만 힘든 연애사의 고충을 토대로 납득하고 싶은 부분 위주로 살폈던 거 같아요. 단 맛보다는 쓴 맛의 아픔에 초점이 맞춰졌고, 씁쓸함에 귀를 더 쫑긋거렸지요.
한때 가까웠던 사람이 멀어진다. 나란하던 삶의 어깨가 조금씩 떨어지더니 어느새 다른 길을 걷고 있다. 특별한 일이 생겨서라기보다 특별한 일이 없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 어쩌다 만나면 서로 속내를 펼쳐 보이는 대신 겉돌고 맴도는 이야기만 하다 헤어진다. 삶이 멀어졌으므로 기쁨과 슬픔을 공유하지 못한 채 멀어진다. 실망과 죄책감이 찾아오지만 대단한 잘못을 한 건 아니므로 쉽게 잊는다. 그런 일이 반복되고, 어느 날 무심하고 냉정해진 자신을 발견하고 깜짝 놀라기도 하지만, 새삼스럽게 돌아가기에는 이미 멀리 와 버렸다. 삶이란 둘 중의 하나, 이것 아니면 저것. 그런 것들이 쌓여 운명이 되고 인생이 된다. - p187 소주제, 그런 것들이 쌓여
각설하고 이인 화백의 그림을 바라보는 작가의 시선을 함께 공유할 수는 없었어요. [제게 화가의 그림은 물음표? 물음표투성이에요.] 벅찬 그림들로 하여금 꿈이 찬란하였다 말하는 저자는 심장을 말랑하게 만들고, 손바닥을 간질이기도 하며, 귓볼을 단단하게 조이는 등의 무슨 마음을 먹게 하거나 어떤 행동을 유발한다는 그림을 통해 낯선 길을 만든다고 하였지요. 다시 말하면 만져보고 두드려보아야만 알 수 있는 수백, 수천개의 문으로 나아가는 길을 그림을 통해 보았고, 이를 보고 느낀 것을 여러 갈래로 가지치기한 모양입니다.
진실과 거짓, 상상력이 동원된 활자 속에서 인상 깊었던 것은 가령이라는 소주제로 이야기를 만들어낸 것이었어요. 규칙을 좋아하는 '령'과 상식을 싫어하는 '가'는 낮은 탁자를 사이에 두고 마주 앉아 차를 마시고 빵을 먹는다. 언제라도, 누구에게나, 무슨 일이든 일어날 수 있다. 가령, 이를테면, 만약에, 마음을 굳게 먹고 누가 누군가를 찾아간다면. -p73 가와 령 서로가 편견에 사로잡혀 한 발자국도 나아가지 않는다면 이어질 수 없는 인연처럼, 굳어진 사고를 벗어던지고 낯선 모험을 시작하는 행위에 반가움을 표하게 됩니다.
차분하게 읊조리고, 오랜 잔상이 마음에 남던 황경신 작가님의 글에 마음 한쪽이 너그러운 생각을 가져봅니다. 뒤늦게 오는 소중한 것들, 천천히 더디게 와주어 때론 고마운 것들을 껴안으며 삶 속에서 마주한 인연들과 함께한 동행을 조심스럽게 떠올려보는 책.